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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알리 오피니언] 학생들의 분노는 태도의 문제에서 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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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혼란스러웠던 1학기가 우여곡절 끝에 종강했다.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대면 강의를 할 수 없게 된 대학생과 학교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야했다. 학생들은 작은 화면을 통해 가르침을 받아야 했고, 교수들은 작은 화면 속에서 가르침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스마트캠퍼스 서버 과부하, 일부 교수들의 그릇된 행태 등으로 인해 수업의 질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더군다나 수업 평가 방식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한 학생들의 분노는 지속됐다. 학교 시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등록금의 일부 반환조차 불가하다는 현실은 좌절감까지 느끼게 했다. 총학생회와 학생들 간 신뢰까지 무너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커져갔다. 돈을 지불하고 배움의 시간을 갖는 학생들의 분노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림알리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에게 관용의 자세를 바라는 입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림대학교 학생들의 분노는 어떻게 자라났는가. 그간의 상황들을 살펴봤다.

 

학기 초 스마트캠퍼스 접속 오류로 인해 학생들은 노트북을 계속 들여다봐야했다. 강의 재생은 물론 과제 제출까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분노는 단순 불편함 때문은 아니었다. ‘수업의 질’에 대한 문제였다. 대학이라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에서 생동감 있는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학생들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강의에 대한 충분한 개관 없이 과제만 부여하거나 강의조차 올리지 않는 교수들도 있었다. 역량교육혁신원은 학생들의 불만 인지 후 찾아가는 강의 서비스, 수업 노하우 릴레이 프로젝트와 같은 나름 효율적인 대책을 세웠지만, 상황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온라인 강의를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는 교수들이 많다는 것은 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땅한 사실에 대해 박수를 보낼 여유가 없다. 이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지적은 잘못된 것들을 빠르게 바로잡지 않고, 결단력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교수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성실한 강의 진행, 상황이 빠르게 호전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학교의 공식적인 상황설명이나 사과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은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에서 서로 간의 관용의 자세를 그저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학교가 어떤 상황에서든 학생을 우선시하는 모습, 비싼 등록금에 걸 맞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체감할 수 있었다면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학교의 입장은 총학생회의 피드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고, 특정 입장을 취하게 된 과정도 피상적으로 설명할 뿐이었다. 마땅히 사과해야 할 문제 또는 보상해야 할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불신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총학생회를 통해서만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자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교수에게 불만을 토로하라거나 짜증 섞인 훈수를 듣는 경우도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그저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학생들의 지적은 ‘태도’의 문제에서 기인했다.

 

성적평가 방식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지난 4월 6일, 전 과목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절대평가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부가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무팀은 한 학생이 한림신문고를 통해 제기한 민원 답변에서 “평가방식이 변경 된 것은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평가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더욱 확대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간단한 설명이었다. 학생들의 우려가 커지자 총학생회는 “A+가 95점 이상, A가 90점 이상”이라는 절대평가 기준은 교육부의 지침 기준일 뿐, 교수의 재량으로 성적 보정이 가능하다는 피드백을 내 놓았다. 그러나 절대평가 학점 기준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총학생회는 성적 평가 방식 관련 피드백을 수차례 내야 했다.

 

학기가 거듭될수록 목소리가 날로 높아졌던 문제는 단연 등록금 반환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이유에서다. 수업료에 상응하는 질 높은 수업을 듣지 못한 것, 학교 시설물을 이용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는 총학생회의 피드백을 통해서 '등록금의 수입 70%가 교원들의 임금으로 쓰인다는 점과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많은 비용이 소모된 점 등'의 이유로 등록금 일부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우리는 모두 안다. 대학에 학문을 탐구하러 오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대학도 안다. 기괴한 사회 구조 속에서 대학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대학에 온다. 대학 졸업장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한림대학교는 대학사회의 곪은 문제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가. 더불어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성찰의 시간을 갖는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보여줬던 학교의 행태를 살펴보자면, 학교는 학생을 소비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학생들의 불신은 이번 사태로 인해 더욱 깊어졌다. 이렇듯 학생들의 분노는 복합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총학생회에게도 비판이 향한다. 총학생회의 시선은 지엽적이다. 학생들이 분노하는 문제를 깊게 고민하지 않은 듯 하다. 그동안 쌓여왔던 학생들의 복합적인 불신을 들여다봤다면 학생들에게 “불편에 대한 비판과 비난보다, 관용과 이해”를 바라지 않았을 터. ‘일단 의심하는 자세’가 결여돼있다. 학교는 스마트캠퍼스 등 시스템 확충에 많은 비용이 들었음을 이유로 등록금 일부 반환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이 설득력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즉, 투명한 결산 공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이를 일찍이 요구하지 않았다. 지난 6월 28일, 한 학생이 이에 대해 에브리타임 댓글로 의문을 제기하자, 그제서야 총학생회는 지출 내역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답을 남겼다. 또한 총학생회는 학교 측에게 누적적립금(약 532억원)의 활용에 대해 언급은 해봤는가. 이 또한 알 수 없다.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자신들을 대변해 학교를 상대로 진행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학교의 입장을 납득할만한 구체적 증거를 가져오길 원했다. 하지만 총학생회가 내 놓은 피드백 속 회의 내용은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에만 치중한 듯 했다. 여러 가지 수를 계산하지 않아 일처리는 더뎠다. 결국 ‘화난사람들’이라는 공동소송플랫폼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온라인 강의 운영현황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를 하게 됐다. 그러나 만약 학교가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한다면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궁극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는 총학생회가 갖고 있다.

 

그간 총학생회는 소통창구의 추가 같은 가시적인 해결에 집중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총학생회는 어디서부터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가. 이들은 학생들의 낮은 학내 정치참여율의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구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안일함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건설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 쉬운 일이 아님은 맞다. 총학생회에게 모든 화살을 돌려서도 안 된다. 요구만 존재하며 적극적인 참여 없는 학내분위기는 그들에게도 분명 절망적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방학은 시작됐다. 그러나 학생들은 여전히 찜찜하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들이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면, 학교의 대처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수업시간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던 일부 교수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수업료는 어떻게 보상이 되는 것일까.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도 동일한 임금을 받는 일부 교수들과는 달리, 학생들은 최대한의 불편을 감수하고도 수업료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 복잡하게 얽힌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학생들의 감정은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