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에큐메니칼(Ecumenical)’은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뜻하는 말로 그리스어의 ‘오이케 오(οκω)’, 곧 ‘살다’라는 뜻의 단어에서 파생된 ‘오이코스’(집, 가정, 세상)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단어의 시작은 동서방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로 개신교 교회에서 사용합니다. 코너를 통해 종교 화합과 진정한 종교가 무엇인지 신학 전공인 기자의 눈으로 살펴봅니다.

가끔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요즘 행복하십니까?”
과거에는 갖고 싶던 장난감을 갖게 되거나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 게 행복의 전부였는데, 현재에 와서는 단순한 행복 그 이상을 바라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다 보면 제 스스로 반성을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인한 행복이 아닌 세속에서 물질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행복이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안함과 기쁨, 안정감을 의미합니다. 시편 17장 15절에서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뵙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으로 흡족하리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며 기도를 통해 끝없이 소통하는 건전한 관계를 맺었을 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건전한 관계를 맺었을 때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복은 단순히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닌 하느님이 주신 행복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 또한 행복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조건 없이 주신 사랑을 내 주변 이웃에게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인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실천할 때 가장 완벽한 행복입니다.
이 글을 마치며 요한복음 14장 27절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주시는 하느님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감사드립시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주님과 함께.
김동현 기자(mvp2450@naver.com)
편집인: 조우진 편집국장 (국제 21)
담당 기자: 김동현 기자 (신학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