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는 중요한 사회 경험이자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기회다. 학비와 생활비 마련, 사회생활 경험 등 대학생들은 다양한 이유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다. 문제는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대학생들이 노동 권리 침해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외대알리는 실제 임금체불 피해를 겪은 한 대학생을 인터뷰해 피해 과정과 대응 경험을 들어봤다. 당시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근무 환경은 어땠나요? 20세 대학생 A 씨는 용돈벌이를 위해 약 2개월간 한 개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수험 생활을 마친 후 처음으로 해보는 사회 경험이었다. A 씨: 주 3~4일 정도 근무했고, 시급 형태로 임금을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는 ‘아르바이트 초보자’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성실히 근무했다. 노동에 따른 대가가 지불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생겼고, 처음이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A 씨: 근무 초기에는 사장님과의 관계가 특별히 나쁘지 않았고, 매장 분위기도 비교적 평범했어요. 다만 직원 수가 많지 않은 소규모 매장이어서 급여 지급이나 근무 일정 등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느
* 본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7월 3일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AI 영화 국제경쟁과 함께 대대적인 기술적 전환을 발표하면서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기자에게 가장 강렬한 잔상을 남긴 것은 재일 조선인 3세 소녀의 서툰 소동을 다정하게 담아낸 극영화 한 편, 바로 손명아 감독의 <트로피>였다. 판타스틱영화제라는 기술과 장르의 최전선에서 기자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울린 순간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사적인 이야기였다. 이 아이러니한 어긋남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걸까. AI 창작자들의 기술적 투쟁: 완벽한 '형식'을 향하여 <부천 초이스 AI 영화 단편 1> 세션 GV 무대에는 젊은 창작자들이 나란히 앉아 관객의 질문에 답했다. 생성형 AI 덕분에 예산과 인력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온 고백은 기술적 해방감보다는 고단한 투쟁에 가까웠다. <티켓 투 네버랜드> 연출진은 비전공자임에도 AI 툴을 통해 3D 애니메이션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밝혔으나 손가락처럼 미세한 디테일과 정교한 공간 구도를 제어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음을 털어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일본 오키나와 출신 청년 사키하마 소라네 씨(崎浜空音·25)가 도쿄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 이유다. 그는 게이오대학 로스쿨 1학년으로, 시민단체 'WE WANT OUR FUTURE'에서 활동하며 평화헌법 9조 개정 반대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는 협력 단체(What is SOFA?)를 꾸려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달 6월 12일, 그를 영상 통화로 만났다. 왜 한 사람의 죽음에 오키나와 전체가 분노 했을까 사키하마 씨의 이야기는 2016년 4월 28일, 그가 15살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우루마시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가 미군기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오키나와 주민 전체가 분노했다. “왜 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오키나와 전체가 분노하는 걸까?” 어린 사키하마 씨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현재 미일 주둔군지위협정(SOFA) 아래, 일본 국토 면적의 약 0.6%에 불과한 오키나와현에는 전국 재일 미군 전용 시설의 약
* 본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마주친 엉뚱한 진심 유튜브라는 범람하는 생태계 안에서 독보적인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유튜버 '빠더너스’를 말할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영상은 단순히 웃기고 가벼운 스케치에 머물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는 지독하리만치 진지하게 반응하고, 도리어 무거운 현실은 한없이 가볍게 비틀어내는 특유의 감수성. 어떤 장르던지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화해내는 그 태도가 늘 좋았다. 유튜브 세상 안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참 낭만적인 결이었다. 그런 빠더너스가 프랑스 칸 영화제 마켓의 문을 두드렸다. 국내 관객들에게 본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코미디 영화를 직접 소개해보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떠난 길이었다. 전 세계의 묵직한 담론과 거대한 자본의 예술영화들이 즐비한 마켓 한편에서, 그들은 캠코더로 거칠게 찍힌 캐나다의 한 생소한 독립 영화를 마주했다. 바로 <너바나 더 밴드…> 다. 주인공 맷이 쿵쾅대며 계단을 내려오고, 카메라가 줌인을 사정없이 당겨버리는 초반 시퀀스. 문상훈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칸 마켓에서 소위 말하는 ‘유튜브스러운’
세종대학교 행복기숙사 새날관의 ‘의무식’ 제도를 둘러싸고 학생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기숙사에 입사하려면 기숙사비와 보증금뿐 아니라 식비까지 함께 납부해야 하는데, 사용하지 못한 식권은 월 단위로 소멸하고 환급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숙사 입사하려면 식권 구매 필수… 미사용분은 월마다 소멸 세종대 2026년도 1학기 새날관 행복기숙사 신입생 입사 모집 안내에 따르면, 입사생은 식비 항목에서 150식(82만 5,000원) 또는 180식(95만 4,000원)을 필수로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미사용 식권 처리 방식이다. 공고에는 ‘월 기준 부과된 식수 중 미사용분은 소멸’되며, ‘미사용분 환급 불가’라고 명시돼 있다. 퇴사 시 잔여 식비는 위약금 10%를 공제한 뒤 환불된다. 학생들은 이를 두고 “기숙사 입사를 조건으로 원하지 않는 식권까지 사야 하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행복기숙사에 거주 중인 A 씨는 “음식의 맛보다 환불 방식에 가장 큰 불만이 있다”며 “식권을 다 쓰지 못해도 월마다 미사용분이 사라지는 구조가 불합리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기숙사에 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식비까지 미리 내야 하는 점이 부담”이라고 했다. 세종대 에브리타임 자유게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본관, 대기 의자에 앉은 청년들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과 병실 문 사이를 오간다. 모니터에는 대학교 비대면 강의가 재생되지만 이들은 강의보다 환자 호출 벨 소리와 보호자 출입 통제에 더 자주 반응한다. 이처럼 전국의 수많은 대형 병원 복도는 가족이나 친지를 간병하기 위한 청년들, 이른바 ‘영케어러’들로 가득하다. 영케어러는 부모나 조부모 등 가족을 돌보는 34세 미만의 청년을 뜻한다. '간병 지옥'이 삼켜버린 청춘의 궤적 대학생 조 씨(25)는 사고로 입원한 아버지와 지병 치료를 받는 어머니를 동시에 돌봤다. 다른 학생들이 학점 관리와 취업 스펙 쌓기에 분주할 때, 조 씨는 보호자 간이침대의 협소한 공간과 소음을 버티며 전공책을 읽고, 사이버 강의를 듣는 중에도 때마다 환자의 소변 통을 비워야 했다. 그는 “하려던 일과 인생 계획을 모조리 포기하고 간병에 뛰어들어야 했다”며 “준비할 시간도 없이 피보호자에서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3년 넘게 이어진 간병 뒤 조 씨의 삶은 사뭇 바뀌게 됐다. 조 씨는 본래 체육계 진로를 꿈꾸고 있었으나 부모님의 간병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연습을 할 수 없게 됐다. 떨어진
| 편집자 주 6월은 흔히 과거를 '기억'하는 달로 여겨진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6월 민주항쟁은 교과서 속 빛바랜 흑백사진이자, 공기처럼 누리는 제도로 다가올 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한 번의 사건으로 굳어지는 유물이 아니다. 당연하게 여긴 권리가 행정의 허점으로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왜 여전히 1987년의 한 짝의 운동화를 마주해야 할까. “꿈에서는 신발이 삶의 터전이나 의지할 대상을 상징한다고 하더군요. 부모나 배우자, 자식, 협력자를 의미하기도 한다고요.” - <L의 운동화> 중 신발은 대개 닳으면 버리는 소모품이다. 하지만 어떤 신발은 한 사람의 생애와 그 시대의 열망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2000년대에 태어난 필자에게 있어 6월 민주항쟁은 그저 오랫동안 교과서 속 박제된 역사일 뿐이다. 높은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한열'이라는 키워드를 외웠고, 빛바랜 흑백사진 속 군중을 보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이미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었고, 그랬기에 6월은 그저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추모의 달에 불과했다. <L의 운동화>는 1987년 6월, 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