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으로 출퇴근하던 시절, 나만큼이나 부지런히 그 일대를 오가던 이들이 있었다. 나는 인턴기자였고, 그들은 ‘여사님’의 석방을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이었다. 정권 교체 목소리와 애국가 사이로 늘 한 노래가 반복됐다. “짱X, 북X, 짱X, 북X,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 일명 '짱북송'으로 불리는 귀에 박힌 그 구호는 퇴근길에도, 샤워 중에도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자극적인 리듬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건, 그 안에서 엉겨진 얼굴들이었다. 공산당과 중국인 관광객, 권위주의와 중국인 유학생, 체제와 개인이 몇 음절 안에 뭉그러졌다. 언어는 세상을 정리하는 힘을 가진다. 현실은 복잡하고, 감정은 쌓이기 쉽다. 그럴 때 하나의 말 혹은 하나의 개념은 문제의 전모를 요약해주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이상적 실체가 아니라, 현실 위에 덧씌워진 굳은 관념. 그 틀은 이해를 돕기보다는 판단을 앞세우고 구분을 흐리게 만든다. 지금 한국 사회에 떠오른 ‘혐중’은 그런 이데아에 가깝다. 반중과 혐중은 분명 다르다. 반중은 공산당 체제나 그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정치적 견해이며, 정당한 저항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OO가 부모님을 찾아가 죽일까봐 두렵고 제게도 찾아올 것이 두렵습니다. 그리고 처벌 의사가 있습니다. (고(故) 김은진, 지난 3월 경찰서에서 쓴 피해자 진술조서 중)” 지난 5월,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전 연인에게 스토킹당하다 피살된 30대 여성 고(故) 김은진씨가 경찰에 제출한 100쪽짜리 진술서다. 4년 넘게 이어진 데이트 폭력, 9차례의 신고, 600쪽의 고소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다. 7월에는 인천 부평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1년 전부터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남편에게 원하는 돈을 주고 이혼할 때까지 기다리라”였다. 결국 접근금지 처분이 해제된 직후,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다. 8월, 울산에서 2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흉기로 피습을 당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의 큰 수술을 받고 회복중에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88,394건의 교제폭력 신고가 접수되고 13,075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스토킹 피해접수는 13,269건으로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70% 이상 증가했다. 2023년 발생한 전
2025년 11월 4일 이민자, 무슬림, 사회주의자인 34세의 젊은 정치인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1892년 이후 최연소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맘다니의 승리는 무엇 덕분일까. 선명한 민주사회주의 이념 덕분일까, 아니면 고물가에 지친 뉴욕 시민에게 생활 밀착형 민생 공약이 먹혀들었기 덕분일까.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공약을 통해 확보한 청년층 중심의 자원봉사자와 유권자들이었다. 맘다니의 주요 공약 가운데 ‘비현실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임대료 동결, 버스 요금 폐지, 소상공인 부담 완화 같은 공약은 언뜻 보면 거대한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급진적 정책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의 실제 설계는 철저히 뉴욕 시장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무상 아이돌봄, 최저임금 인상처럼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한 것들도 있다. (현재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맘다니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불리는 뉴욕 시장의 권한이 정확히 어디까지 미치는지 세밀하게 짚은 뒤, 그 안에서 ‘시장이 당선
지난 2021년, 외동아들인 A씨(당시 22세)는 대학을 휴학한 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8개월간 홀로 간병했다. 약 8개월간 입원치료로 청구된 병원비만 1,500만 원, 결국 월세가 밀리고 전화와 가스, 인터넷이 차례차례 끊겼다. 더 이상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 테니, 그전에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힘겨운 간병과 경제적 어려움에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결국 아버지를 방 안에 방치했고, 아버지는 끝내 숨졌다. 2021년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로 국가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간병청년 강도영(가명) 사건'이다. 현재 강도영 씨와 같은 영케어러는 정부 추산 약 1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1일 평균 간병비는 12만7천원, 한 달이면 381만원. 연봉 5,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실수령액 전액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무려 18만 명의 청년들이 홀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운 좋게 돌봄을 함께할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24시간 계속되는 돌봄에 지쳐가고, 그로 인해 학교, 직장 등의 일상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언제 끝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2026년 만 8세 이하까지 확대하여 임기 내 12세 이하까지 늘려 나가고, 저소득층 청년을 위해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생애주기별로 촘촘하게 지원하는 기본사회 정책을 환영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본사회’를 달성하기까지 갈 길은 멀다. 기본 중에 기본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특히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매월 3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기본소득과 조건없이 모든 청년이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기반이 되어줄 청년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 소득불평등이 출생불평등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혼 및 출산을 희망하는 청년에게는 돌봄을 분담해줄 ‘아이를 같이 키워주는 국가’가 필요하다. 영유아 집중 지원에 머무는 아동수당만으로는 지대한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더욱이 학령기 아동의 막대한 교육비 지출을 보완하기 위해 아동의 생애 전 시기를 촘촘하게 보장하는 아동기본소득이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동기본소득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공동체를 꾸리고자 하는 청년에게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출산과 양육의
요즘 기업들은 앞다투어 ‘ESG 경영’을 외친다. 환경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ESG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아는 재무제표보다 훨씬 불확실한 숫자들이 들어 있다. 이제 ESG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회계장부가 되고 있다. ESG 보고서의 중심에는 ‘스코프(Scope)’라는 개념이 있다. Scope 1은 기업이 직접적으로 배출, Scope 2는 기업에서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지는 않지만 전기나 스팀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간접 배출, 그리고 Scope 3은 협력사와 소비자까지 포함한 전체 공급망 배출이다. 이 중 Scope 3은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연결회계가 감사되지 않은 추정치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협력업체 데이터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평균값이나 모델링으로 Scope 3을 계산한다. 결국 ESG 보고서는 ‘감사받지 않은 회계장부’가 되고, 기업은 그 불확실한 숫자 속에서 “탄소를 줄였다”고 주장한다. ESG의 평가는 실제 감축 노력보다 보고 방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는 ‘성과가 보고서를 만드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특히 일각에서는 15억 이상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한 10.15 대책을 두고 '청년들의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청년들이 더 좋은 주택을 살 기회를 막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청년들이 과연 누구인가.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 중 자기들의 힘으로 15억 원짜리 주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출 규제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주장은, 애초에 부모의 도움으로 그 사다리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소수 상위층의 이야기다. 아직까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금융 규제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적어도 고가 주택의 투기성 투자를 막겠다는 의지만큼은 도리어 청년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한다. 어떤 이들에게 부동산은 자산 투자지만, 대다수 청년들에게 부동산은 ‘주거 안정’ 그 자체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온 수많은 전국의 청년들이 하는 말은 ‘이토록 집이 많은데, 왜 내가 살 집은 없는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의 주택 수는 늘어도 소유율은 역비례해 줄어들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수십억 원 상당의 집을 보유해도
요즘 청년층을 설명하는 통계 속 단어 하나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냥 쉼.” 통계청에 따르면 구직활동도, 학업도, 직장생활도 하지 않는 이른바 ‘쉬는 청년‘이 꾸준히 늘고 있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멈춤이다. 사회는 이를 “청년의 무기력”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이 청년 개인의 나태가 아니라 구조의 피로가 만든 멈춤이라고 본다. “그냥 쉰다”는 말에는 체념이 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건 불합격 통보, 끝없는 경쟁, 불안정한 미래다. 대기업의 공개채용은 사라졌고, 남은 자리는 대부분 단기계약직과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쉰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0% 안팎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청년들은 이제 “노력하면 된다”는 말에 웃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도 사회는 그 열심을 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안정 노동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청년의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 본능의 신호다. 그러나 이 멈춤이 개인 차원에서만 머문다면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기리며 이태원 참사 이후 세 째 10월 29일이 되었다. 별이 된 159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3년의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온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참사 3년 만에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인파 관리 소홀로 지목됐다. 23일 발표된 정부 합동감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이태원에 인파가 몰려들 것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경찰과 용산구청은 이태원이 아닌 대통령실 주변 집회 관리에만 집중했다.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대통령실 이전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놀러 온 2·30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늦었지만 조금이나마 드러나고 있는 진실을 환영한다. 명확한 진상규명만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반복되는 참사의 경험은 청년 세대에게 상흔을 남겼다.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10대에는 세월호에서, 20대에는 이태원에서 또래 청년을 잃었다. 2022년 뉴시스 조사에 따르면 1995~1999년생 응답자의 97.3%가 본인이 참사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세월호
존 스튜어트 밀이 강조했듯 기회 균등은 사회 정의의 근간이다. 그러나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3년 소득이동통계'는 우리 사회 청년층의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가 위기에 놓였음을 시사하며,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심각한 정치·사회적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15~39세 청년층은 2023년 기준 23%가 소득 상향 이동을 경험해 중장년층보다 높은 역동성을 보였으나,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청년층의 소득 하향 이동 비율이 17.4%로 중장년층 대비 높아 청년 10명 중 2명 가까이가 경제적 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소득 하위 20%(1분위) 청년의 '탈출률'이 38.4%로 전년 대비 1.7%p 감소했다는 점이다. 반면 2~4분위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상향 이동을 더 많이 경험했는데, 이는 소득 하위층이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층 내부의 양극화가 뚜렷하게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의 배신은 청년들의 정책적 효능감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소득 하위 청년의 고착화를 막고 하향 이동 위험에 노출된 청년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임
개별 한자 암기 교육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시킬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 지성사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들이 쓰인 '한문이라는 외국어'를 어떻게 현대 한국어의 일부로 온전히 재창출할 것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동서양 고전 번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강화해야만 인문학의 토대를 다지고 한국어가 AI 시대의 언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글 전용이 공문서, 신문, 출판, 인터넷 등 전 사회에 자리잡은 후 한자 교육은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자 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측에서는 문해력에 한자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월요일(10월 20일) 이재명 정부 신임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이 성균관을 예방해 "우리말 명사의 80%가 한자인 만큼, 정신문화를 계승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초등학교 단계부터 인성 및 한자교육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만 보아도 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교육상 한자 교육을 줄이거나 늘려야 한다는 주장 모두 우리가 쓰는 현대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중요한 이유를 간과한다. 우리 조상들이 쓴 것은 개별 글자인 '한자'가 아니라, 고유의 문법 체계를 지닌 서면어인 '한문'이었다. 이 한문에서 비롯된 개념들과 근대 시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들을 표적으로 한 납치·감금·사망 사건이 다수 보도되고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 들어, 캄보디아 현지에서 “고수익 아르바이트”나 “해외 취업 알선” 등을 미끼로 한국 청년들을 유인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은 여권을 빼앗기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당한 채 보이스피싱, 마약 운반 등 불법 노동에 투입된다. 일부는 폭행과 고문 끝에 사망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장기 적출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외교부는 캄보디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일대에 여행주의보를 발령하였다. 또한, 현지 당국과 공조를 통하여 구금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십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된다. 사건의 표면은 해외 사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청년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향하게 된 공통된 배경에는 경제적 절박함이 있었다. 통계청의 고용보조지표에 따르면 현재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여전히 15~20%대를 오가고 있다. 비자발적 비정규직, ‘그냥 쉬었음’ 청년까지 포함하면 체감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나마 일하는 청년들도 단기 아르바이트나 플랫폼 노동 같
"여자친구는 있니?", "결혼할 생각은 있니?" 이번 명절에 연애하고 결혼하라는 집안 어르신들의 조언, 얼마나 들으셨나요? "제가 꼭 연애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겠습니다!" 하고 친척들이 원하는 모범 답안을 내놓으셨나요? 아마 그렇게 답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가 직면한 삶이 도저히 그 길로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서 반복되는 연애·결혼 이야기는 오늘날 청년의 삶과 큰 괴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적 결혼 제도에 맞춰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은 청년 세대의 다양한 삶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사는 청년보다 혼자 사는 청년이 이미 훨씬 많습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청년(20~34세)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율은 2000년 17.1%에서 2020년 51.5%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또, 청년 인구 중 결혼하여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경우는 14.7%에 불과하지만, 혼자 사는 1인 가구 청년은 23.3%에 달합니다(통계청, 2021). 이미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청년이 더 많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연애와 결혼이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져도 되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청년의 삶을 결혼이라는 전통적인 틀에 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의(衣)·식(食)·주(住)이다. 아는 바로 국가의 존재 목적과도 직결되는데, 국가는 국민이 이 세 가지 기본권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책무를 가진다. 바로 이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국민이 자신이 가진 일부의 권리를 국가에 위임하며 얻고자 하는 주요한 무언가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청년들의 타운홀미팅 등이 개최된 청년주간을 맞아, 이재명 정부는 청년월세지원의 대상을 넓히고 제도적 장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확대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단순한 복지정책 확대의 범주를 넘어, 국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책임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년월세지원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청년들에게 현금성 지원을 바탕으로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대표적 정책으로 자리해 왔으나, 실제 수혜를 받지 못한 청년들이 여전히 많았다. ‘소득기준’과 ‘임대료 상한선’ 등 제도적 제한으로 인해 현실과 괴리된 기준이 있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또한 지원자 수에 비해 책정된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 제한된 인원에게만 지원할 수밖에 없기에,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인원들을 대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