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1 (수)

대학알리

[기고] 쿠팡에게 '패가망신'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

최재봉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준) 운영위원

 

쿠팡에게 '패가망신'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인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같은 기본 정보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의 안전과 직결된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다. 정보가 곧 자산인 시대에 국민 개개인의 일상이 통째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셈이다.

 

그럼에도 쿠팡의 대응은 여전히 안일하기 짝이 없다. 실질적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고, 국가의 행정 절차를 무시하며 독단적인 발표를 이어갔다. 3,370만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쿠팡이라는 플랫폼을 신뢰하고 자신의 사생활을 맡긴 국민들의 믿음 그 자체였다.

 

이 믿음의 파괴가 청년 세대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는 이들이 처한 객관적인 사회적 고립 지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대인신뢰도(14년도 대비 24년 : 19~29세 -21.5%, 30~39세 -20%)는 10년 전보다 현저히 하락했으며,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비율(15년도 대비 23년19~29세 +3.2%, 30~39세 +3.7%) 역시 과거에 비해 증가하여 심리적 완충재가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고 관계적 안전망이 부재한 청년들에게, 디지털 플랫폼은 일상의 편의를 넘어 사회와 연결되는 주요한 통로 중 하나다. 그러나 쿠팡은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청년들의 물리적 안전의 보루인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같은 민감 정보를 유출함으로써, 청년들이 기대했던 시스템의 공정성과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 자본마저 무너뜨렸다.

 

문제는 쿠팡이 필요할 때만 한국 기업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때는 미국 기업의 담장 뒤로 숨는 이중적인 태도에 있다. 창업자 김범석 의장은 국회의 청문회 소환에 해외 일정을 핑계로 매번 불참하며 대한민국 대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한국의 사법·행정 체계를 가볍게 여기는 오만한 태도의 전형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의 정당한 제재 움직임에 대해 미국 정치권이나 통상 이슈를 끌어들여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전략은 한국 시장을 그저 수익을 거두는 전초기지로만 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법과 국민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는 기업에게는 한국의 법과 원칙이 얼마나 엄격하게 작동하는지 명확하고 단호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로켓배송이라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쿠팡의 비대함을 무분별하게 방치해왔다. 어느새 쿠팡은 국가 경제의 유통망을 좌우할 만큼 거대해졌고, 그 독점적 영향력은 때로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고 노동 환경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결과로 돌아왔다. 특정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기업의 단 한 번의 실책에 국가 전체가 휘청이고 수천만 명의 안위가 위협받는 현상은 결코 건강한 구조가 아니다.

 

이제는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깨어나 독점적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소 상공인과 지역 경제가 상생할 수 있는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구조적 노력이 절실하다. 특정 기업이 국민의 일상을 볼모로 삼아 군림하는 시대는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결국 쿠팡의 배경에 거대 자본과 글로벌 세력이 있다면, 우리가 택할 유일한 대안은 경제적 자립과 주권의 회복이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산 플랫폼에 우리 국민의 생체 정보, 결제 정보, 그리고 가장 사적인 공간인 주거 정보까지 전적으로 맡길 것인가. 이제는 눈앞의 편리함보다 데이터 안전과 국가적 경제 주권을 우선시하는 '자주 경제'의 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지역 물류망을 독자적으로 재건하고, 데이터 보안을 기업의 선택 사항이 아닌 최우선 생존 조건으로 강제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정 플랫폼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 독립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경제적 자립의 시작이다.

 

최근 쿠팡이 내놓은 5만 원 이용권 보상은 진정성 있는 배상이라기보다, 유출 피해를 입은 소비자를 다시 자사 서비스에 묶어두려는 고도의 마케팅적 수법에 가깝다. 특히 대인신뢰도가 낮고 공정 가치에 민감한 청년들에게, 피해의 대가로 자사 쿠폰을 주며 다시 쇼핑을 강요하는 제안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선 기만이자 국민적 우롱이다. 따라서 정부는 매출액 대비 징벌적 과징금을 역대 최고 수위로 부과하는 것은 물론, 영업정지 처분과 같은 강력한 제재를 병행해야 한다. 보안 관리에 소홀한 기업은 시장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명확한 경종을 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기업의 고의적인 방치나 중대한 과실에 대해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결함으로써 사법 정의가 살아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해야 한다. 청년들 또한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복구하기 위해 기만적인 보상안에 안주하지 않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며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오만이 미래 세대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입증하고, 쿠팡 사태를 '패가망신' 수준의 강력한 선례로 남겨야한다.

 

 

최재봉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준) 운영위원(jbong9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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