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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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가 본 세상

[학식 먹고 한 페이지] 게으름을 찬양할 수 있는 사회

떼지 못하는 ‘쉬었음 청년’의 낙인 쉼의 이유보다 결과를 먼저 판단하는 사회 “쉬었다=게으르다”로 단정하지 말아야

기록을 깨기 위해서 쏜살같이 달리거나 또는 비행기를 타고 전속력을 내는 어른은 아무것도 못 봅니다. - <게으름의 찬양> 중 어느 순간부터 ‘쉼’이라는 말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에 따르면, 2024년 청년층 ‘쉬었음’ 인구의 28%만이 자발적 사유로 쉬고 있다. 72%의 청년은 불가피하게 일을 멈추고 쉰다는 의미다. 우리는 언제부터 ‘쉬는 사람’을 하나의 통계적 집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2003년 1월, 통계청은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쉬었음’ 상태가 하나의 통계 범주로 설정했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주된 활동’도 세분화하며 ‘쉬었음’을 별도의 범주로 포함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쉬었음’ 청년이 크게 늘어 이제 이 지표는 하나의 정책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쉼’을 재충전이 아닌 공백으로 여기는 사회, 우리는 왜 쉬는 것을 이토록 불편히 여기게 될까. 어쩌면 문제는 ‘쉬었음’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일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1936년 11월 17일, 벨기에 자유 학술원 공개 회의에서 러끌레르끄(Jacques Leclercq)가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