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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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레드로드', 행정으로 지워진 문화…공공디자인은 어디에 있었나

행정 편의와 시각적 통일성 중심의 레드로드, 지역 고유 문화와 사용자 경험 외면
레드’라는 기표보다 다양한 사회적 행위를 담을 수 있는 디자인 필요
공공디자인은 정답이 아닌 ‘과정’, 지역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적 거버넌스 요구

 

홍대 앞 거리 문화는 단순히 상업화나 관광 조성 이전부터 이미 다층적인 예술 활동과 자생적 실험이 버무려진 공간이었다. 1980~90년대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설치미술, 퍼포먼스, 벽화, 인디음악, 그래피티 등을 선보이면서 ‘대안 예술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클럽 문화, 라이브 클럽 공연, 스트리트 댄스, 버스킹 문화 등이 어우러지며 지금의 홍대 인디 문화 생태계가 구축되었다.언니네 이발관, Delispice, 교감, 노브레인, 장기하와 얼굴들 등 수많은 밴드와 음악인이 홍대 클러버(클럽을 찾는 사람들)와 라이브 클럽 문화를 통해 성장해 갔고, 이들은 거리와 클럽 공간을 무대로 삼아 ‘홍대 음악’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클럽 공연장 무대에서 실험적 사운드를 시도하던 이 시절이야말로, 홍대 앞 거리와 공간이 예술가들에게 ‘가능성의 땅’이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의 홍대 앞 거리는 그래피티, 거리 미술, 벽화 프로젝트 등 상업적 장식이 아닌 도시와 삶, 저항과 표현이 교차하던 지점이었다. 수많은 청년 예술가들이  스프레이 캔을 들고 벽에 메시지를 쓰고, 거리에 그림을 그리며 이 공간을 ‘자발적 갤러리’로 바꾸곤 했다.

 

이처럼 홍대 문화는 ‘누군가가 디자인한 무대’가 아니라, 예술가와 주민, 상인, 방문객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쌓아 올린 공공성과 실험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시 주도하에 시작된 '레드로드' 프로젝트는 홍대만의 다채로운 정체성을 '레드(Red)'라는 단색으로 뒤덮고, 행정 편의적인 권역으로 나누며 그 본질을 흔들고 있다.

 

사용자가 외면하는 공공디자인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 확보와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조성한 레드로드.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 상인, 예술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소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실제 사용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홍익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여성 A 씨는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관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관광차 홍대를 방문한 대구 출신 20대 남성 B씨 역시 "권역을 나눈 기준을 모르겠고, 방문하는 입장에서 동선이나 목적지 설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더욱이, 마포구는 레드로드 조성과 함께 KT&G 상상마당 주변 예술 활동 공간 등 기존에 다양한 문화가 혼재했던 복합문화거리를 일률적인 ‘붉은색’으로 뒤덮으며 사실상 그 문화의 한 측면을 지워버렸다. 단색으로 공간을 덧칠하는 행위는 단순히 거리의 외관을 바꾸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다양하고 자생적인 문화적 층위를 무시하고 획일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디자인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행정 주도 방식은 실제 거리 위에서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수상 실적, 그 이면의 진실

 

홍대 레드로드 프로젝트는 2023년 '아시아도시경관상' 본상, 2024년 '지방정부 정책대상' 우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글로벌 도시브랜드 대상' 등을 수상하며 정책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마포구는 레드로드 조성 이후 방문객 수가 급증했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 및 관광 재개 시점과 맞물린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과 2024년 동안 홍대 지역의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각각 15%와 18%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적인 관광 회복 추세와 일치하는 수치로, 레드로드의 직접적인 효과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마포구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레드로드 조성 이후 상업 시설의 매출은 평균 5% 증가했으나, 이는 홍대 지역 전체의 상업 활동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이어졌다. 방문객 수의 증가를 온전히 레드로드 프로젝트와 온전히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이다.

 

 

기표에만 머무른 도시 디자인, '의미'가 빠졌다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 전공 이현성 교수는 현대 도시 문제와 같이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하나의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를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하나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레드로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에 머물러 있던 홍대 문화를 행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 디자인에서 가장 잘못된 것 중 하나는, 장소가 품고 있는 고유한 의미(기의)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랜드마크, 상징색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기표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태도"라고 지적했다. 현대 도시 디자인이 마주한 문제의 본질을 레드로드 프로젝트에 적용한 분석이다.

 

이어서 그는 "레드로드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빨간색'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행위들을 받아낼 수 있는 플랫폼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었다"라며, "사람들이 걷기 불편해도 홍대 거리를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 예측 불가능한 만남과 경험, 즉 '사회적 기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인데, 현재의 레드로드에는 이러한 고민이 부족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결국, 행정적 성과와 시각적 통일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홍대라는 '도시'가 가진 복합적인 의미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답'이 아닌 '과정'을 디자인해야

 

홍대 레드로드는 우리 사회의 공공디자인이 '사악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남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정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공공디자인은 단번에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때로는 갈등하고, 또 함께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판'을 짜는 것에 가깝다. 단순히 거리를 붉게 칠하고 구역을 나누는 행정 조치 대신 지역 예술가와 상인,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작은 실험들을 꾸준히 시도하며 점진적으로 공간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화려한 수상 실적이나 단기적인 방문객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홍대 거리의 미래는 또 다른 색으로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과정'을 디자인하는 데에 달려있다.

 

 

강현지 기자(hyunji0212@g.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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