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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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영혼이 우리 앞에 재생될 때,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

[리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다큐멘터리 상영작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달 17일부터 26일까지 부산에서 열렸다. 열흘 동안 328편의 영화가 상영됐고, 총 23만 8,697명의 관객이 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9월 25일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는 ‘와이드앵글 -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선정작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Put Your Soul on Your Hand and Walk)>가 상영됐다. 해당 섹션은 영화의 시선을 확장해 색다르고 차별화된 비전을 담은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해당 영화는 앞서 2025 칸영화제 ACID 부문에도 초청된 바 있다. ACID는 프랑스 독립영화 배급협회가 주관하는 비경쟁 섹션으로, 독창적인 독립영화를 발굴하고 배급 기회를 넓히는 데 주력한다.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가자 지구에 남은 사진작가 파템 하수나와, 이란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 중인 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화상 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파르시 감독은 13세에 이란 혁명을 겪고, 16세에 반체제 활동으로 투옥됐다. 18세에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영화 제작 당시에도 유배자 신분이었다. 파르시 감독은 2024년 4월부터 약 1년간 이어간 두 사람의 화상 통화 대화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중심으로, 전쟁 보도 뉴스 화면과 파템이 직접 촬영한 가자 지구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은 파템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폭격이 매일 이어져 건물이 무너지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마치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평범한 청년의 일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도 파템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는 “이런 (폭격이 계속되는) 삶에도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아직 가자 지구를 벗어나 본 적은 없지만, “바깥에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정한 통화 연결, 화면 너머 들려오는 폭격 소리, 담담히 가족의 죽음을 전하는 파템의 모습은 폭력적인 장면 없이도 전쟁의 위협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살아 있는 목소리의 힘’으로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파템은 가자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이곳에 남아 모든 것을 기록(document)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인다. 두 사람의 마지막 통화에선 영화가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파템을 초대하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다. 기뻐하는 파템의 모습으로 통화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곧 영화에서 전해지는 파템의 죽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절망을 드러낸다. “언젠가 만나자”던 두 사람의 약속은 허공을 떠돌며 관객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상영 후 이어진 GV에서 진행자는 마지막 통화 장면을 영화에 포함한 이유를 물었다. 감독은 “많이 고민했지만, 영화 출품 소식 이후 파템이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되어 살해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그 장면을 담아야 했다”고 답했다. 이어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희생됐다고 덧붙였다.

 

한 관객은 실제 뉴스 화면을 카메라로 다시 담은 이유를 물었다. 감독은 “뉴스조차도 미디어가 변형한 이야기이기에 개인적 의견을 담고 싶었다”며 “줌인이나 블러 처리, 화면에 비친 나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 등으로 의도된 연출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객은 “뉴스로만 접하던 사건들이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는 감상을 남기며 영화의 제작 의도를 물었다. 감독은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그저 가자 지구 사람들은 폭격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오니스트 프로파간다(이스라엘 정부를 옹호하는 편향된 메시지나 선전 활동) 속에서 비인간화되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삶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감독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란 독재가 심화하고, 가자 지구 학살도 계속되고 있다”며 “힘든 상황이지만 어디서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모두가 함께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자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감독은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현재 150척의 배가 식량과 지원품을 싣고 가자 지구 진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각자의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계속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는 화려한 연출이나 기술 없이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힘을 보여준다. 영화는 파템을 비롯해 전쟁에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스크린에 계속해서 불러낸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는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해지며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연대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작품 정보]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2025, 112분)
감독: 세피데 파르시 / 출연: 파템 하수나 / 제작사: REVES D′EAU

 


박서연 기자(syeone3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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