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기대, 총학생회 선거 무산
지난 11월 진행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제42대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 미비로 무산됐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는 ST:and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가 단일 출마했다. 윤여원 총학생회장 입후보자(기계자동차공학과 23)와 김유선 부총학생회장 입후보자(조형예술학과 23)가 후보자로 나섰다.
본투표는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단일후보의 당선에 대한 찬반을 투표하면 된다. 투표율이 40% 이상일 경우 개표가 가능하며, 투표자의 2/3 이상이 찬성하면 당선이 확정된다.
그러나 투표율은 예상보다 미비했다. 투표 마감 전날 저녁까지도 약 22% 정도에 머물렀다. 투표 마지막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독려 이벤트를 확대 진행했지만, 결국 최종투표율 34.87%를 기록하며 개표 불가로 막을 내렸다.
서울과기대 중앙선거세칙에 따르면, 투표 마감 기준 투표율이 40% 이상일 때 개표를 진행한다. 35% 이상 40% 미만일 경우 중앙선관위의 의결을 통해 연장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개표 요건과 연장 투표 요건에 미치지 않아 공식 무산되었다.
세칙에서는 본선거가 무산될 시 이듬해 3월 재선거를 할 것으로 명시한다. 중앙선관위는 선거 무산 공고 게시글에서 내년 3월 중으로 제42대 총학생회 재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브리타임(온라인 익명 게시판)에서는 학우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후보자와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잘 됐다’는 식의 조롱 섞인 반응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선거 기간 동안 ‘나는 투표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비친 글들이 종종 게시되기도 했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존재했다. 반대표를 던지지 못할지언정 아예 투표 자체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글들이 게시되었다. 후보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가 ‘주변 평판이 안 좋아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등인 점도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올해 봄 제41대 총학생회장의 제적으로 인한 공백, 소홀한 회계 관리, 일부 공약 미이행 등으로 인한 기존 총학에 대한 불신이 후대 총학 투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서울과기대 신문사 조사에 따르면, 제41대 결:結 총학생회의 전체 공약 달성률은 약 56%를 기록했다. 소통 분야에서는 높은 공약 이행률을 보였지만 교육·문화·생활 분야에서는 ▲ 그룹스터디실 24시간 개방 ▲ 교환학생 프로그램 협력 대학 확대 건의 ▲ 취업 지원 프로그램 확대 추진 ▲ 농촌 봉사활동 재개 추진 ▲ 기숙사 자치위원회 구성 ▲ 흡연 질서 확립 및 환경 개선 등 일부 공약들이 이행되지 못한 채 남았다.
▲ 취득 학점 포기 제도 도입 ▲ 학위복 개선 추진 등의 공약은 수요 조사를 통해 필요성을 확인했지만 실제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한 익명 게시글은 “계속 설문조사만 하고 학교에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며 “보여주기식 일 처리만 하다가 끝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작년이랑 비교했을 때 학생들에게 체감되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확산하는 대학가 학생 자치 무관심
총학생회 선거 무산은 비단 과기대만의 일은 아니다. 대학 자치에 대한 무관심은 대학가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2026학년도 총학생회 선거를 마친 현재, 서울 소재 4년제 종합대학 33곳 중 19곳만 총학생회가 꾸려졌다. 저조한 투표율과 입후보자의 부재 등이 원인이다.
한양대는 총학생회 선거 개표 결과 전체 유권자 수 대비 찬성률이 24.91%로 당선 기준인 33.3%를 넘기지 못해 선거가 무산됐다. 서울대·고려대·서울시립대·한국외대·숙명여대 등은 입후보자 부재로 총학생회 선거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조한 투표율 속에서 선거 관리상의 문제나 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돼 당선이 취소된 사례도 있었다. 연세대의 경우 총학생회 선거 과정에서 투표 독려 문자를 보내는 등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당선 무효 처리됐다. 경희대는 일부 기표소에서 개표 지연과 부정투표 의혹이 발생하며 당선 확정이 보류됐고, 결국 무효 처리됐다.
해당 학교들은 내년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비대위는 총학생회보다 대표성이 없어 사업과 예산 운영에 여러 제약이 따른다. 투표로 선출된 단체가 아니기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존재하고 정책의 연속성이나 정당성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최소한의 업무만을 수행하기에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누리는 복지와 혜택은 축소된다.
그러나 재학생 중에는 ‘총학생회와 비대위의 차이를 크게 못 느끼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 모 씨(23)는 “고학년이 될수록 선거에 누가 나오는지, 어떤 공약을 가지고 나오는지 관심이 없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속한 단과대 선거도 아니라 나에게 직접적으로 오는 영향도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탈정치화된 대학, 위축되는 인권 기구
최근 대학생들이 학생 자치에 관심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학생 사회가 더 이상 ‘나의 일’로 인식되지 않는 구조적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과거 학생회가 학생을 대변하고 대학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는 기구로 인식되었다면, 오늘날 학생회는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용 활동’이나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자연스럽게 대학 사회 전반의 정치적 거리 두기로 이어진다. 학생 자치가 개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고 느껴질수록 정치 참여는 줄어들고 정치적 의제와 논쟁은 피하고 싶은 부담으로 인식된다. 그 결과 대학은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공론장이 되기보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의 눈치를 보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멀어지려는 ‘탈정치화’가 곧 정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무관심과 침묵이 만들어낸 공백을 오히려 정치적 입장이 뚜렷한 소수의 세력이 차지하는 ‘역설적인 정치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대에서는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서명을 받아 공약을 제출하며 공직자의 학내 선거 개입 논란이 불거졌고, 충북대에서는 학내 극우 폭력 사태에 연루된 인물이 총학생회 선거에 입후보해 논란이 이어졌다.
정치적 논란이 반복되자 대학가의 정치 신뢰도는 하락하고 학생들은 정치적 의제 전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취업난과 개인화된 삶은 학생 사회를 점점 그들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나게 만들고 있다. 학생 자치를 지탱해 온 주체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는 인권 담론과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해 온 특별기구로 향한다. 서울과기대 교지편집위원회 ‘러비’의 폐간,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의 강등,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여학생위원회의 통폐합 등 인권과 차별 문제를 논의하던 공간들이 잇따라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하지만, 조롱과 냉소를 보내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대학 사회의 현주소다.
그야말로 대학 사회 전반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로부터 멀어지려는 선택이 과연 대학 자치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말할 수 있는 자리 자체를 좁혀버린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자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박서연 기자 (syeone31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