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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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자치언론 탄압, '대학교지 네트워크'로 뚫는다

성균지·대학언론인네트워크·정정헌·고대문화·용봉·서울대저널, '2025 대학교지좌담회' 개최

 

"활동 사진에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50년 된 편집실에서 쫓겨나고, "취재원을 대라"며 예산 삭감 압박을 받는 등 대학교지를 향한 기상천외한 탄압 실태가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대학교지 편집위원들은 학생사회의 '행정적 검열'을 성토하며, 고립된 투쟁이 아닌 긴밀한 연대로 생존을 모색하자고 입을 모았다.

 

2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수선관에서 <성균지> 주도로 '2025 대학교지좌담회'가 열렸다. <정정헌>, <고대문화>, <용봉>, <서울대저널>,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도 공동주최로 참여해 위기에 처한 대학교지의 현실을 증언하고 생존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날 좌담회는 1부 '재정, 자치권, 편집실'과 2부 '교지 홍보 및 운영'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온·오프라인으로 함께한 30여명의 참석자들은 학교 본부와 학생회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의 구체적인 사례를 공유하고, '대중성'과 '정치성' 사이에서 교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활동 사진에 사람 적다"며 50년 된 편집실서 쫓겨나

 

1부 발제에 나선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의 권우베 편집위원은 최근 겪은 편집실 퇴거 조치의 부당함을 성토했다. 정정헌은 1971년 창간해 학내 여성·소수자 담론을 이끌어왔으나, 2025년 1학기 동아리 재등록 심사에서 탈락해 준중앙동아리로 강등되었고, 지난 11월 17일 편집실에서 퇴거했다.

 

권우베 편집위원은 "동아리연합회가 '제출된 활동 사진상 인원이 소수이고 동일 인물이 반복된다'는 이유로 활동 인원 미비 판정을 내렸다"며 "교지 편집 특성상 온라인 집필 활동이 많은데, 오프라인 사진만으로 인원을 증빙하라는 것은 회칙에도 없는 자의적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명 과정에서 다른 동아리 대표자가 기준의 부당함을 지적하자 동아리연합회 측이 고성을 지르며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며 "결국 2000여 권의 여성주의 장서가 보관된 공간을 한 달 만에 비워야 했다"고 말했다.

 

권 위원은 "이제 성균관대에 남은 인권 분야 중앙동아리는 장애인권동아리 하나뿐이며, 그마저도 존폐 위기"라며 "소수자 인권을 다루는 단체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동아리연합회와 학생사회는 사라지는 인권 동아리들의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등록금으로 인쇄하니까 광고 내역 내놔라"

 

전남대 유일의 자치언론 <용봉>의 이정하 편집장은 예산 삭감을 통한 길들이기 실태를 증언했다. 이 편집장에 따르면 2021년 당시 총학생회는 "등록금으로 인쇄되는 만큼 광고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했고, 용봉 측이 절차적 정당성을 요구하자 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렸다.

 

이 편집장은 "현재 용봉의 예산은 선배 및 외부 후원 의존도가 54%에 달한다"며 "인쇄비가 없어 발행 부수를 1500부에서 600부로 줄여야 했고, 재정 공백을 구성원의 노동으로 채우다 보니 피로 누적과 의욕 저하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으로 예산이 삭감된 덕분에 대학 본부나 총학생회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성을 얻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용봉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편집장은 "국어문화원의 '우리말 가꿈이' 사업에 참여해 회식비를 지원받거나, 학내 신문인 '전대신문'에 정기 기고해 원고료를 받는 방식으로 예산을 확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원 대라" 감사위원회가 기구 해산 시도

 

<서울대저널>의 천세민 편집장은 최근 겪은 '감사 테러' 사례를 공유했다. 지난 9월 설치된 총학생회 산하 감사위원회가 취재원 보호를 위해 비공개해야 할 인터뷰 내용까지 소명하라고 요구하며 기구 해산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천 편집장은 "참고 도서가 기사에 어떻게 쓰였는지 일일이 밝히라고 하거나, 사적으로 쓴 것 아니냐고 몰아세웠다"며 "결국 학내 구성원 100여 명의 연서명을 받아 해산은 막았지만, '자치언론기금'이라는 제도적 기반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학생회가 자치언론을 공격하는 원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이정하 편집장은 "총학생회가 자신들이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로 대학교지를 타깃 삼는다"며 "상황이 어려울수록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대중 심리에 영합해 만만한 자치기구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대문화>의 엄정후 편집장은 "총학생회가 스스로를 정치 기구가 아닌 행정 기구로 인식하며 '정치적 중립'을 강박적으로 지키려 한다"고 짚었다. 엄 편집장은 "이런 관점에서 소수자를 다루는 자치언론을 승인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중립을 해치는 '정치적 행위'라고 판단해 배제하는 것"이라며 "제도권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가장 제도권 정치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학내일 모델 따라야" vs "조회수 좇는 건 답이 아냐"

 

2부에서는 대학교지의 생존 전략을 두고 '대중성'과 '정치성'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임주영 활동가는 발제를 통해 교지의 전면적인 쇄신을 주문했다. 임 활동가는 "학생들이 교지가 있는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대학내일'이 지면을 폐지하고 사라진 자리를 교지가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우들을 표지 모델로 세우고 실생활 정보를 담아 범용성을 확보해, 모교를 상징하는 매거진이 되어야 한다"며 "교지는 일부 운동권만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활동가는 이어 "학우 다수가 진보 의제를 다루는 교지에 반감을 가진 것이 현실"이라며 "일반 학우가 읽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오히려 독자와 멀어진다. 진보적 의제를 내려놓자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교지를 가까운 매체로 인식하도록 콘텐츠의 난도를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저널> 김수환 기자는 "대학사회가 상업화되는 흐름에 따라 대학언론이 상업화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학우를 표지 모델로 세워 조회수를 올리는 방식은 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더라도 '이 학교에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감각, 즉 내가 학생사회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기획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알리는 것이 언론이 책임을 위임받는 방식"이라며 "대중성이라는 미명 하에 저널리즘의 본령을 잃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적극적인 '정치적 행위' 필요해

 

엄정후 편집장은 '읽히는 교지'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엄 편집장은 "교지의 내용적 측면에서 정치적 밀도를 줄이고 내용을 가볍게 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에 끌려다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편집실이라는 안락한 공간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우리끼리 칭찬하는 것은 '동질적인 주변의 사랑에 파묻혀 괴사'하는 길"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엄 편집장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 정치적 투쟁이라는 행위조차 교지에 기입되는 언어와 구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교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중성을 핑계로 탈정치화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를 통해 텍스트를 확장하고 독자를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언어적 차원에서 읽히는 교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행위로 읽힐 수 있는 교지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투쟁하고 싸워 나갈 때, 교지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담론은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성균지>의 오현지 편집장 또한 교지의 '뉴트럴(Neutral)'한 입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오 편집장은 "성균지는 인권 단위에 비하면 소극적이고, 언론 단위에 비하면 적극적인 수준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며 "이러한 태도가 학교의 거부감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으므로 자유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자평했다. 그는 "교지 운영이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면 언제든 탈정치화되거나 보수화될 수 있다"며 시스템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흩어지면 죽는다"…연대체 결성으로 돌파구 모색

 

참석자들은 각기 다른 노선을 주장하면서도, '연대'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했다. 오현지 편집장은 "위기를 기회 삼아 '대학교지 네트워크'가 인력과 시스템,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적인 장이 되어야 한다"며 "학교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적 단체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네트워크가 앞으로 교지 감시와 보호의 역할을 맡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정하 편집장은 구체적인 연대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교육 자료를 마련하기 어려운 교지들을 위해 운영 매뉴얼과 세미나 자료를 공유하자"며 "정기적으로 만나 상황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영 활동가는 구조적 해결책으로 ▲대학언론발전기금 마련 ▲간행물 검열 학칙 폐지 ▲공동 편집실 및 통합 플랫폼 마련 등을 제안하며 "개별 대학의 싸움을 전국 의제로 묶어내야 고립을 깨고 압박에 공동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참석자는 "대학교지는 단순히 소멸의 위기뿐만 아니라,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소회를 전했다.

 

 

차종관 기자(chajonggwan.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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