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불교전통종단인 한국불교태고종은 한국 불교의 주요 종단 중 하나로, 한국의 선불교 전통을 계승하는 대표적인 종단이다. 태고종은 전통적인 불교문화와 종단 운영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태고종은 고려 말기 고승인 ‘태고 보우(1301-1382)’의 법맥을 계승하는 종단이다. 태고 보우는 고려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중국 원나라에서 임제종의 선풍을 한국에 전파했다.
이후 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 불교계의 큰 변화였던 ‘불교 정화 운동’으로 인해 불교계가 분열했고 교화승 등의 전통을 중시하는 승려들이 모여 1970년에 ‘한국불교태고종’이라는 전통 종단을 형성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고종은 타 종단과는 다르게 보살승(가정을 이루고 활동하는 승려)와 사찰의 개인 소유 등을 허용한다. 보살승이란 결혼, 가정생활을 병행하면서 승려로서 살아가는 이를 의미한다. 태고종을 비롯한 법화종 등의 일부 불교 종단에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보살승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하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
보살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사찰 세습, 사치생활, 불분명한 회계처리 등이 거론된다. 실제로 2015년에 전북 남원의 태고종 사찰 주지가 음주와 부적절한 사생활이 적발된 사례가 존재했다.
태고종의 역사와 전통, 특히 보살승에 대한 태고종의 견해을 듣기 위해 한국불교태고종 교육원장인 재홍 스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불교태고종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태고종은 한국 전통 불교 종단이자 정통 종단입니다.
태고종의 역사는 고려 시기 태고 보우 스님의 ‘임제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임제종은 한국 선종(참선과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시초로서 원나라에서 태고 보우 스님이 임제종을 배워와 고려에 이를 전파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 건국 시기 국교를 유교로 채택하면서 불교에 대한 배척과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들인 세종으로 인해 불교의 많은 종파가 사라지고 불교의 선종과 교종을 합쳐 ‘선교양종’의 형태로 불교를 개편하게 됩니다.
이후 성종 시절 경국대전을 편찬하면서 “승려가 간통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상민으로 한다”라는 법이 제정되면서 승려가 낳은 아이는 상민으로 격하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승려들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불교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승려는 결혼할 수 없으며 애를 가진 자는 승려가 간통해서 낳은 아이다”라는 인식을 갖고 법을 제정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연산군 시절에 승려가 낳은 아이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지자 연산군의 명령으로 성종 시기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신분 복권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가 불교를 믿으면서 승과가 복원되고 불교에 대한 유화정책을 실행하게 됩니다. 이때 불교 정책을 주도한 사람이 ‘보우’라는 승려입니다. 하지만 문정왕후 사후에 다시 불교에 대한 탄압으로 기조가 변화되면서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불가하게 되고 불교 정책을 주도했던 보우 스님은 곤장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후 330년 동안 한국의 불교는 산속으로 들어가서 수행 생활을 하는 ‘산중불교’의 형태가 됐습니다.
도성 출입이 불가하게 되면서 승려들의 생활과 포교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보니 승려들 스스로가 머리를 기르고 결혼하며 승려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특히 조선 조정에서는 도성 안에서 사는 승려들에 대해 스님들이 결혼하지 않았을 시 강제로 결혼을 시키기도 했었고 응하지 않을 경우 함경도로 유배를 보내 노역과 군역을 부과하기도 했었습니다. 불교가 탄압당했던 조선시대에 불교를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건 이러한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의 한 승려가 “서양의 선교사나 중국, 일본의 스님들은 도성 출입이 가능한데 한국의 승려들은 도성 출입을 왜 못 하게 하냐”라며 조선총독부에 압박을 넣어 도성 출입이 허가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승려가 들어와 한국에 있는 불교를 ‘31개 본산제’의 형태로 설정해 놓고 종정(불교 종단의 최고 지도자)를 일본 승려로 추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의 친일 행위가 가속화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이에 반발한 승려들이 모여 ‘임제종’이라는 종단을 만들게 됩니다. 한국의 불교는 고려시대 태고 보우 스님의 ‘임제종’을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이승만 정권에서 “일제 치하에서 사용한 이름이다”라는 명목으로 임제종이라는 명칭을 삭제시키자 다시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단 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이승만은 전통적으로 한국에 결혼한 승려에 대해서 “일제의 문화를 받아들였다”라는 베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이 가진 생각이 더 커지게 된 계기로는 은진 관촉사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의관을 갖춰 맞이했는데도 불구하고 승려들이 입은 옷과 의례가 부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심지어 당시는 전통의 영향으로 스님들이 머리를 기르고 두건도 썼다 보니 더 부정적으로 봤다고 합니다.
이후 이승만의 불교 정화 사업의 목적으로 “한국에서 결혼한 승려는 절을 떠나라” 명령했으나 당시 송만남이라는 승려가 이승만에게 합의안을 보냈으나 이승만이 그 합의안을 보지 못한 채 일부 승려들을 앞세워 강제로 진행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불교 내에서 이승만 정부 편을 들은 승려들인 “선학원” 파와 이에 반대하는 승려들인 “종무원” 파가 서로 이념 전쟁을 했고 이승만 정부는 선학원 편을 들어 당시 대한불교조계종의 태보사 이름이 조계사로 변경되고 종무원파 승려들은 선학원파 스님들에게 쫓겨나게 됩니다.
사건이 있고 난 뒤 종무원파 승려들은 “대한불교조계종 종무원파”라는 종명으로 정부에 등록하려 했으나 정부가 거절했고 결국 1970년대 ‘한국불교 태고종”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한 뒤 종명이 바뀌게 됩니다.
태고종의 소의 경전인 ‘금강경’과 화엄경에 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태고종은 전통적으로 금강경과 화엄경을 소의 경전(종단의 근본 경전)으로 채택했습니다. 금강경이란 “지혜의 완성으로 살아가는 길”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에 그대로 앉아 설교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불교의 사상인 ‘유일심(心)’ 사상(모든 현상과 존재의 근원이 하나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불교의 사상)의 핵심은 화엄경에 있습니다. 금강경이 공사상(모든 현상은 고정된 본질이 없으며, 실체적 존재 없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의존적이라는 불교의 사상)이라면, 화엄경은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고 그 마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된다고 말합니다.
화엄경은 특히 태고종이 가지고 있던 한국 불교 전통 소의 경전이었고 태고종은 전통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과거 고승이신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주장했던 사상이 일심사상(모든 마음은 하나에서 나옴)이 유일심 사상을 추구하는 화엄경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태고종은 ‘보살승’을 허용하는 종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살승에 대한 태고종의 입장과 교화승 제도가 결혼생활과 종교인의 생활 양립에 어려움이 있으신 지도 궁금합니다.
우선 대처승이라는 표현은 결혼한 승려를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보살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전해진 문화라는 오해가 있지만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온 우리의 역사입니다.
보살승의 역사적 기록으로는 고려 말의 “수륙제”라는 책이 있는데 그 수륙제 의문에 보면 국가 행사의 단상에 비구승단(독신), 국가의 직을 맡은 스님, 그리고 교화승단(기혼)이 설치됐었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불교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불교의 의식이나 전통이 변형되어 내려오는 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다 보니 보살승에 대한 이미지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현대 불교의 경우 이승만 정권 당시 학자나 지식인으로 활동했던 보살승 승려들은 불교 정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탄압했기 때문에 불교 내 지식인이 전부 사라지고 대중불교로서 세상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던 불교를 비구 중심의 불교로 쇠퇴하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결혼한 스님이라는 인식이 대중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다 보니 보살승의 자녀가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갔을 때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가 다수 있습니다. 사회의 통상적인 모습과는 다른 아버지다 보니 아버지의 존재를 밝히지 않기도 하고 가정에서의 불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자식과 부모가 아예 다른 종교를 갖는 경우도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보살승 스스로가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승려로서, 그리고 가정에서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부모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승려로서 수행도 열심히 해야 하고 집안도 돌봐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과거에는 아내가 가정을 책임지는 경향이 강했으나 요즘은 스님들이 아버지로서 학교에 자식들을 데려다주기도 하고 상담이 필요하면 상담하러 가기도 하고 자식을 위해 학교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노력은 세상이 변화하면서 보살승 또한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입니다.
대학생과 청년에게 알리고 싶은 태고종의 문화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통문화로는 ‘영산재’가 있습니다. 영산재는 한국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 중 하나로 부처님이 영산에서 법화경을 설교하는 장면을 재현하고 모든 존재의 깨달음과 해탈을 기원하는 의례입니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살아 있는 중생의 해탈과 깨달음을 기도합니다.
이 외에도 불교에서는 악기 다루는 행위를 '세납'이라 표현합니다. 불교 내 세납에 대한 명인들이 많이 있으며 바라춤과 나비춤, 탱화(불교의 교리나 문화 등을 표현한 그림)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과 청년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이 도전을 멈추는 그 순간 퇴보합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도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발전을 해왔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곳은 뒤처지기 마련입니다. 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명 외도’
사명 외도란 “탈은 승려의 탈을 쓰고 부처님 모시고 사는데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서 승려가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명 외도는 우리 사회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청년분들이 우리의 인재이자 도전의 결과입니다.
김동현 기자(mvp2450@naver.com)
편집인: 조우진 편집국장 (국제 21)
담당 기자: 김동현 기자 (신학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