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외동아들인 A씨(당시 22세)는 대학을 휴학한 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8개월간 홀로 간병했다. 약 8개월간 입원치료로 청구된 병원비만 1,500만 원, 결국 월세가 밀리고 전화와 가스, 인터넷이 차례차례 끊겼다. 더 이상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 테니, 그전에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힘겨운 간병과 경제적 어려움에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결국 아버지를 방 안에 방치했고, 아버지는 끝내 숨졌다. 2021년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로 국가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간병청년 강도영(가명) 사건'이다. 현재 강도영 씨와 같은 영케어러는 정부 추산 약 1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1일 평균 간병비는 12만7천원, 한 달이면 381만원. 연봉 5,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실수령액 전액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무려 18만 명의 청년들이 홀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운 좋게 돌봄을 함께할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24시간 계속되는 돌봄에 지쳐가고, 그로 인해 학교, 직장 등의 일상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는 수많은 가족들이 돌봄 앞에서 좌절하게 만든다. 실제 간병 경험자의 61.2%가 간병 부담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바 있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위험이 되는 돌봄 공백 해소를 위한 대응을 사회・국가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은 1990년 커뮤니티케어법을 제정하여 지방정부에 지역 내 포괄적 케어서비스 제공 책임을 부여했고, 일본은 2013년부터 '병원・시설에서 지역・재택으로'를 목표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도입했다. 스웨덴은 1950년대 재가 돌봄서비스를 도입하고, 2001년 사회서비스법을 개정해 지역의 책임과 재량을 확대하는 등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이제껏 돌봄 제공의 책임을 민간 시설에 위임하고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 결과, 87%의 노인들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하지만, 간병 부담을 개인과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요양 시설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마저도 비용 문제로 열악한 시설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강도영 씨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8개월, 그가 내려야 했던 참혹한 선택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었다. 돌봄을 개인과 그 가정에 떠넘긴 국가의 실패였다. 18만 명 영케어러를 비롯한 돌봄 가정의 일상을 복원하고, 강도영 씨와 같은 안타까운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돌봄 체계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돌봄은 그 필요에 따라 어떤 내용을, 어디를 통해, 어떻게 제공받을지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폭 넓은 다양성을 띠는 서비스다. 단적인 예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의 돌봄 모델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과 같은 곳에 적용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영국, 일본, 스웨덴이 지방정부에 돌봄의 책임과 권한을 대폭 부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돌봄 확대의 출발점은 강도영 씨와 같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가장 가까운 곳,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돌봄의 확대는 당장 지원이 필요한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과 청년에게도 새로운 활력과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가 필수 일자리의 고용주로 역할하는 국가일자리보장모델을 활용해 지역의 돌봄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면, 강도영 씨처럼 혼자 간병을 떠안아야 했던 청년들에게는 실질적 지원을,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를 동시에 제공하여 개인과 지역 전체의 성장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 일본 나가야마는 지역 돌봄 체계를 확대하는 과정이 지역 재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역 돌봄 확대는 인력 확충 외에도 지역의료인력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화, 지역 보건·의료체계 확립 등 돌봄까지 이어지는 통합적 지원을 위해 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맞아 각종 지역 공약들이 준비되는 지금, 정치권은 '돌봄'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강도영 이후 대한민국, ‘돌봄’에 대한 정치의 책임있는 자세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공백 없는 돌봄'을 향한 지역의 첫걸음으로 만들길 바란다. 양윤찬 사회민주당 청년위원회(준) 운영위원(99nahcnooy@gmail.com)
2025년 11월 4일 이민자, 무슬림, 사회주의자인 34세의 젊은 정치인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1892년 이후 최연소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맘다니의 승리는 무엇 덕분일까. 선명한 민주사회주의 이념 덕분일까, 아니면 고물가에 지친 뉴욕 시민에게 생활 밀착형 민생 공약이 먹혀들었기 덕분일까.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공약을 통해 확보한 청년층 중심의 자원봉사자와 유권자들이었다. 맘다니의 주요 공약 가운데 ‘비현실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임대료 동결, 버스 요금 폐지, 소상공인 부담 완화 같은 공약은 언뜻 보면 거대한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급진적 정책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의 실제 설계는 철저히 뉴욕 시장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무상 아이돌봄, 최저임금 인상처럼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한 것들도 있다. (현재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맘다니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불리는 뉴욕 시장의 권한이 정확히 어디까지 미치는지 세밀하게 짚은 뒤, 그 안에서 ‘시장이 당선 직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 임기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공약을 구성했다. 유권자들에게는 이것이 신뢰로 이어졌다. ‘당선되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주면서 상대 후보가 ‘비현실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일 여지를 좁힌 것이다. 실제로 맘다니 공약을 비판한 이들조차 ‘실현 불가능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실현되면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대중이 열광하는 공약이라면 이런 비판은 선거 결과를 뒤집을 힘을 갖기 어렵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많은 사람들이 맘다니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올리는 ‘임대료 동결’ 공약이다. 뉴욕시에는 이미 전체 임대주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100만 채의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가 존재하고, 이들의 임대료 인상률은 매년 ‘임대료 가이드라인 위원회’(RGB)가 정한다. 시장은 이 9명의 위원 전원을 임명하며, 위원회는 임대료를 동결할 수 있는 재량을 가진다. 맘다니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새로운 법은 하나도 필요 없고, 제도는 이미 있고, 뉴욕 시장이 권한을 쥐고 있는데도 에릭 애덤스 현 시장이 그 권한을 쓰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맘다니의 ‘임대료 동결’은 ‘뉴욕의 모든 집세를 동결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활용해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를 동결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계획이다. 무료 버스 공약도 같은 맥락에 있다. 맘다니의 공약 이름은 Free buses(무료 버스)가 아니라 Fast, fare free buses(빠른 무료 버스)다. 사람들이 흔히 기억하는 것은 ‘버스 무료화’이지만 맘다니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사실 ‘FAST’, 즉 더 빠르고 편리한 버스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행정 조치였다. 버스 요금 무료화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 증세를 하는 문제는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버스를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버스 전용차로를 확장하고, 버스 우선 신호를 늘리고,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한 전용 하역 구역을 만들고, 카메라 단속을 강화하는 일들은 굳이 주 의회의 입법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시장과 시정부가 가진 행정 권한만으로 추진 가능한 일이다. 이미 뉴욕시에는 일정 규모의 버스 전용차로를 확보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있다. 그동안 시장과 시정부가 이를 소극적으로 집행해 왔을 뿐이다. 맘다니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있는 법을 제대로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맘다니의 유튜브 선거 영상 ‘We owe 34th Street a dedicated Busway. So where is it?’는 이런 접근법을 압축한 것이다. 1분 44초짜리 영상에서 그는 이미 다른 구역에서 성공한 버스 전용차로 사례를 먼저 보여주며 자신이 제안하는 정책이 ‘실험’이 아니라 검증된 모델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이어 연방 교통부와 주민이 선출한 커뮤니티 보드가 이미 34번가 버스 전용차로를 권고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제안이 전문가와 주민 의견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 다음에는 왜 이 권고가 아직도 실행되지 않았는지를 짚는다. 에릭 애덤스 현직 시장이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현직 시장의 무능을 겨냥한 정치적 쟁점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으로 맘다니는 자신이 시장이 되면 어떤 절차로 이 정책을 채택하고, 언제까지 실행하겠는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짧은 영상 하나에 성공 사례, 정당성, 책임 소재, 실행 계획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건조한 정책 설명이 아니라 생생한 정치 서사다. 이미 성공한 사례, 권고했지만 묵살당한 전문가와 주민, 실행하지 않은 현 시장, 그리고 당선되면 실행할 후보라는 네 요소만으로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 속에서 뉴욕 시민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누구를 시장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을 유튜브 알고리즘에 맞는 길이와 리듬으로 편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Small Business, Big Priority’ 영상도 같은 문법을 따른다. 여기서 맘다니는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추상적인 구호를 반복하지 않는다. 과태료와 각종 행정 수수료를 절반으로 줄이고,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1:1 법률·재정 컨설팅 같은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내건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결국 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 상점 물가를 낮추는 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뉴욕의 작은 식당과 가게들을 진짜로 옥죄는 문제는 ‘경기가 안 좋아서’가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허가 서류, 알아듣기 힘든 행정 언어, 언제 끝날지 모를 인허가 지연 속에서 임대료와 인건비가 새어나가는 구조다. 맘다니는 바로 이 현실을 겨냥해, 관료주의와 허가 비용, 과태료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곧 ‘장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한다. 실제 골목 상인들이 느끼는 짜증과 불안을 언어로 정확히 포착해, 그것을 자신의 핵심 메시지인 생활비 문제와 일관되게 연결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 구조가 있었기에 맘다니 캠페인은 대규모 자원봉사자 군단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중 특히 주목할 만한 이들은 Z세대 자원봉사자들이다. 맘다니에게 투표할 수 있는 연령도 아직 되지 않은 16세의 아키 벤야민은 맘다니의 당선을 위해 거리를 누빈 100명의 고등학생 자원봉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공동체의 느낌, 그리고 가깝게 느껴지는 이슈를 위해 단결하는 것”을 위해 자원봉사단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생존경쟁, 실업, COVID-19를 겪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갈망하던 청년층에게 맘다니의 선거 캠페인이 공동체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비롯해 맘다니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다양한 연령대, 문화, 인종, 언어의 10만 4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은 단순히 ‘좋은 사람 한번 밀어보자’는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아니라 ‘맘다니의 캠페인이 왜 가능한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는지’ 철저하게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민주당 뉴욕시장 경선 기간에만 가정 방문, 전화 등 직접 접촉 활동에 참여한 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160만 번 문을 두드렸고, 24만 7천 건의 대화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 경선 투표자 전체의 약 4분의 1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이렇게 맘다니의 캠페인은 수많은 유권자들, 특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청년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냈다.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2021년 선거에 비해 가장 많이 투표율이 늘어난 연령대는 40대 이하 유권자였고, 이들은 부모 세대까지 맘다니에게 표를 던지도록 설득했다. 그 결과 CBS 출구조사에 따르면 18세부터 44세 유권자들은 70%가, 처음으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66%가 맘다니에게 표를 던졌다. 맘다니 캠페인의 중심에는 늘 같은 질문, ‘당선되면, 어떤 권한으로, 언제까지,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가 놓여 있었다. 이는 진보 정치가 자주 빠지는 함정인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출마한 자리가 가진 권한 구조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오류를 극복한 것이다. 맘다니는 뉴욕 시장의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추상적인 단어인 맘다니와 그가 속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의 ‘민주사회주의’는 ‘맘다니에 투표하면 내 월세가 얼마나 줄고, 내 출근 시간이 얼마나 짧아지는지’와 연결되면서 뉴욕 시민들에게 비로소 설득력을 얻었다. 맘다니의 승리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선거는 당선 후 주어진 권한과 현실 정치 지형을 감안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싸움이다. 비현실적인 공약은 하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공약은 당선된 자리가 가진 법적, 행정적 권한 안에서, 임기 안에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좋은 캠페인 콘텐츠는 건조한 정책 요약이 아니라 정치 드라마여야 한다. 성공 사례, 정당성, 책임 소재, 실행 계획, 감정적 호소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자원봉사, 조직, 대중 접촉은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정치의 핵심이다. 대중을 만나고, 듣고, 언어를 다듬고, 메시지를 시험하는 과정 속에서만 ‘대중에게서 나와 다시 대중에게로 돌아가는’ 진짜 민생 공약이 만들어진다. 결국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나는 이 대안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왜 다른 후보는 못하고, 나만 할 수 있는가?” 기존 정치가 ‘대안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대안은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며, 당장 실행할 수 있다.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기존 정치가 그 대안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그 대안이 기득권의 이해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맘다니는 이 두 지점을 모두 정면으로 겨눴다. 이제 진보정치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을 넘어 대안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 준비위원장 이준해(junhae.lee1107@gmail.com)
대학언론에 ‘위기’라는 꼬리표가 달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 대학언론은 오늘도 위기다. 위기론의 지속은 ‘무엇이’ 위기인지, ‘얼마나’ 위기인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조차 희박하게 만든다. [대학언론 대담]은 방향 전환의 시도다. 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대학언론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 그들이 느끼는 뿌듯함, 그들이 느끼는 문제점, 그들이 떠올린 해결책을 듣는다. 정답은 없다. 명확한 해결 방안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많은 대학언론인들은 이야기한다. 대학언론은 존재해야 한다고, 대학언론은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왜’와 ‘어떻게’다. 대학언론은 왜 이어져야 하는가? 대학언론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 대학언론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부산대학교 언론사 <채널PNU>에서 지난 7월 1일자로 부대신문 편집국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는 교육학과 21학번 정윤서입니다. Q. <채널PNU>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부산대언론사 <채널PNU>는 1954년 창간한 부대신문, 1963년 개국한 부대방송국 PUBS, 1972년 창간한 효원헤럴드(영자신문)가 2022년 3월 통합하여 출범한 부산대학교 학생 미디어입니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한 세 조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로 마련됐습니다. 현재 <채널PNU>는 하나의 통합 뉴스룸으로서 ‘One Source Multi Use’를 바탕으로 보도부와 제작부가 협업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유기적으로, 하나의 조직처럼 운영되고 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처럼 부대신문과 효원헤럴드를 발행하고 부대방송을 송출하고 있어 차이를 못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보도부는 취재팀과 소통팀으로 구성되며 취재팀은 학내 소식과 지역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취재해 보도하고, 소통팀은 <채널PNU>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홍보물도 함께 제작합니다. 제작부는 영상제작팀, 영문뉴스팀, 방송뉴스팀, 양산제작팀, 밀양제작팀으로 구성되어, 각각 영상 기획·제작, 외국인 유학생을 주요 독자로 한 영문 기사 작성, 영상기사 제작, 오디오 프로그램 제작 등을 맡고 있습니다. Q. 세 언론사를 <채널PNU>로 통합한 뒤 변화한 점이 있다면. 세 매체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예산과 인력 등 자원이 결합됐고, 그 덕에 조직 규모 자체가 커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육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화됐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수습기자 때 취재, 영상 제작 등의 교육을 모두 받을 수 있어서, 하나의 언론사 안에서 PD와 기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강점입니다. 실제로 여러 역할로 활동하는 기자들도 있고요. 이렇게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이 가능한 구조는 다른 대학언론과 비교했을 때 정말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 매체의 특성과 작업 방식, 일하는 리듬 자체가 워낙 달라서 협업 과정에서 조율해야 할 일들이 많고, 그 과정에 적지 않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어요. 가끔 대학언론이지만 기성 미디어만큼 조율에 조율을 거듭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죠. 외부적인 측면에서의 고민도 있어요. 세 매체가 하나로 통합되다 보니 <채널PNU>가 학내 유일한 권력 감시 기구가 되어서, 그만큼 외부 견제나 압박이 한 곳으로 쏠리는 구조가 되기도 해요. 취재를 하거나 비판 보도를 해야 할 때 언론사가 하나밖에 없는 셈이니, 집중된 타겟이 된다는 부담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채널PNU>가 가진 교육적·구조적 강점은 분명하다고 보면서도, 통합 체제가 안고 가야 할 내부 조율과 외부 부담이라는 현실도 같이 감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Q. 언제 처음 대학언론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지. 2024년 3월에 수습기자로 들어와서 지금 2년 차 활동 중입니다.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언론·방송 쪽에 관심이 많았고 기자나 PD 같은 진로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입시가 생각만큼 잘 풀리진 않아서 우선 다른 진로를 택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공에만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대학언론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실제로 해 보니 제 성향과도 아직까지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 활동이 제 대학 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는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Q. 현재 대학언론이 마주한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동안 예산 부족, 인력 부족, 편집권 침해 등 대다수 대학언론이 직면한 다양한 위기들을 직접 취재하면서 ‘대학언론의 위기’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대학언론이 학내 부속 기구로서 존재하는 구조적인 한계나 독자 외면 및 감소 문제 역시 분명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뚜렷하게 체감하는 위기는 ‘기자 개인의 태도 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이전과 달리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난마저 가중되다보니 많은 대학생이 어떤 활동을 선택할 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얼마나 명확한 결과나 보상이 주어지는지를 먼저 계산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 기준에서 보면, 대학언론 활동은 비교적 시간이 많이 들고 즉각적인 성과를 얻기 어려운 활동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활동을 하더라도 학생 기자로서의 책임감이나 사명감보다는, 활동이 나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학언론 기자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유의미한 일이라는 인식이 분명했던 것 같고, 그만큼 사명감도 강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지금은 이 활동이 단순한 ‘스펙’면에서 나에게 얼마나 이로운지를 따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런 분위기가 결국에는 대학언론의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어렵게 하는 등 좋지 않은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것이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청년들이 도전할 여유조차 갖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지. 앞선 답변과도 이어지는데요, 저는 대학언론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청년들이 처한 사회 환경에 있다고 봅니다. 도전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지고 ‘실패하면 어쩌지’,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불안이 선택을 가로막는 구조입니다. 특히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는, 대학언론처럼 꾸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활동이 쉽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효율이나 성과 중심의 선택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기준으로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적 시선 역시 절실합니다. Q. 대학언론의 위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결국 청년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돌파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조금 늦거나 실패하더라도 경험 자체를 가치 있게 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청년들 자신도 1~2년 늦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대학언론은 그런 의미에서 성과보다 가치를 좇는 경험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알기 힘든, 지금처럼 경쟁이 과열되는 시대에는 그 역할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Q. 최근 <채널PNU>가 개최한 특별기획 세미나 ‘함께 쓰는 80년의 역사’도 비슷한 맥락인지. 이번 세미나는 부산대 언론사가 지금까지 발행한 콘텐츠들의 기록과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자리였습니다. 2022년 통합 당시 조직은 새롭게 정비되었지만, 기존 발행물들이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대학언론의 기록물로서의 중요성을 되짚고, 그 가치를 되살리고자 이번 세미나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Q. 위기에도 여전히 대학언론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대학언론은 단순히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학내의 유일한 권력 감시자이자, 캠퍼스 사회를 기록하는 중요한 주체입니다. 학내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이 존재하지만, 이를 외부 언론이 세심하게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그 안에서 대학언론은 캠퍼스 안팎의 현안을 밀도 있게 취재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됩니다. 대학언론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경제적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입니다. 광고나 수익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문제의식과 공적 책임감에 기반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의 상업 언론 환경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예민한 사안일지라도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런 역할을 대학언론이 가장 앞장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언론은 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기억을 만드는 언론’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되돌아봤을 때, 지금 우리가 경험한 대학 사회의 풍경과 고민, 그리고 청년의 언어가 고스란히 담긴 아카이브가 되어 줄 수 있죠. 지금은 많은 사람이 대학언론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대이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시기일수록 더더욱 대학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아도, 누군가는 공적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까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관심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학생들의 이야기를 가장 밀접하게 담아내는 건 대학언론이니까요. 많은 참여나 관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채널PNU>는 자극적인 사건이 있을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늘 현장을 누비며 학내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의 순간들에도 학우분들의 관심이 함께한다면, 저희에겐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언론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채널PNU>는 언론사 간 통합을 통해 코로나19 당시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많은 대학언론은 통합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되거나 내부 갈등을 빚는 등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즉각적인 보상과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 대학언론은 느리지만 꾸준하다. 천천히, 함께, 멈추지 않고, 그렇게 산을 넘는다. 김태섭 기자(taesub01@naver.com)
‘인공지능(AI) 전선’에 뛰어든 대학들의 커리큘럼이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인문계(대학입시 기준, 인문·사회 계열) 학생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인문계 학생도 AI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탄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학가, 너나없이 AI 교육 도입 중 많은 대학이 ‘AI 인재 확보’를 외치며 경쟁적으로 교육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첨단분야 학과를 서울 소재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이 증원하면서(89명) AI 중심 학과인 ‘의료인공지능공학과’와 ‘지능형네트워크융합학과’를 신설했다. 중앙대학교도 AI 학과와 산업보안학과의 정원을 늘리면서 의료 AI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점진적인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단국대학교는 ‘AI 캠퍼스’ 조성을 위해 단과대별 ‘AI-PD(Program Director)교수’를 배치했다. 인문계 학생의 좁은 취업길, 여전히 ‘문송합니다’ AI 중심으로 교육 과정이 재편되는 시대에 인문계 학생들은 여전히 취업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를 보면 인문계 취업률은 ▲인문계열 61.5% ▲사회계열 69.4%로 나왔다. 전체 대졸 평균 취업률 70.3%보다 낮은 수치다. 산업 전반에서 기술 기반 직무가 확대되면서 인문계가 기존의 강점만으로는 노동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워진 구조적 문제가 반영된 결과다. 이에 인문계 학생들은 대학원 진학이나 복수 전공 등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는 A 씨는 “인문계열 단일 전공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울 것 같다”며 “학사로는 부족할 것 같아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동국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 중인 B 씨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신입사원 623명 중 문과는 4명에 불과했던 점을 지적하면서 “사기업이 인문계열 인재를 잘 뽑지 않아, 전문직(로스쿨)이 살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문계열은 이제 AI 관련 복수전공이나 최소 상경 계열(경영·경제) 복수전공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균형·실용적인 교육과정 개편 요구돼… 인문계 학생도 ‘AI 핵심 인재’로 인문계 학생이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기존의 분리된 교육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문·이과 학생 교육은 균형적이라 보기 어렵다”며 “인문계열 학생 취업난의 근본 원인은 ‘인문은 이론, 이공은 실습’ 중심으로 구분된 교육제도와 산업 구조의 부조화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실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인턴십과 현장 중심 교육훈련을 확대하고, 통합적 산학협력 모델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직무 경험을 일찍부터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인문계 학생들이 ‘기술을 해석하는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융합 교육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인문계열생이 다양한 산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나가야 한다”며 “지금 인문계열 전공 학생에게 필요한 역량은 문제 정의력, 분석적 사고와 데이터·AI 리터러시”라고 밝혔다. 대학 총장들 “AI 활용에 인문학적 능력 필요해” 대학 총장들도 AI 중심 커리큘럼에는 인문학적 능력과 문제의식이 필수적이라 보고 있다.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은 지난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I는 본질적으로 기술에 불과하기에 인문학을 결합하지 않으면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며 “교육 과정 전반에 AI 활용을 필수적으로 도입하되,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질문 능력을 결합하는 플랜을 만들 것”이라 밝혔다. 이향숙 이화여자대학교 총장도 “AI 시대에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사회계열의 깊이 있는 통찰과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8월 한국대학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체계적인 인문·AI 융합 커리큘럼 도입 과제로 남아 다만 대학의 AI 융합 교육이 빠르게 확산하는 만큼, 실제 교육 인프라와 커리큘럼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Language & AI학부’와 ‘Social Science & AI학부’ 도입으로 AI 융합 교육을 작년부터 선보인 한국외국어대학교는 현재 교육 인프라와 커리큘럼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Language & AI학부 2학년 C 씨는 “학부 내 실습실이 부족한 상태”라며 “현재 전용 강의실이 단 1개뿐이라 신입생이 추가로 입학하면 학습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Social Science & AI학부 2학년 D 씨 역시 “현재 전공 커리큘럼이 불명확하고 전공 강의 수가 부족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외대 서울캠 총학생회혁신위 역시 “두 학부 모두 3·4학년 커리큘럼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았으며, 특히 Social Science & AI학부의 경우 1학년 1학기 전공 필수 과목이 부재해 신입생들이 교양과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난 7월 정책 해커톤에서 비판했다. AI 인재 양성을 둘러싼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술의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인문학의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 대학이 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문계 학생이 AI 시대의 핵심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교육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외대알리 강승주 기자 (math.sang.ju@gmail.com) 대학알리 고아름 기자 (areumsecond@gmail.com)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2026년 만 8세 이하까지 확대하여 임기 내 12세 이하까지 늘려 나가고, 저소득층 청년을 위해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생애주기별로 촘촘하게 지원하는 기본사회 정책을 환영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본사회’를 달성하기까지 갈 길은 멀다. 기본 중에 기본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특히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매월 3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기본소득과 조건없이 모든 청년이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기반이 되어줄 청년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 소득불평등이 출생불평등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혼 및 출산을 희망하는 청년에게는 돌봄을 분담해줄 ‘아이를 같이 키워주는 국가’가 필요하다. 영유아 집중 지원에 머무는 아동수당만으로는 지대한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더욱이 학령기 아동의 막대한 교육비 지출을 보완하기 위해 아동의 생애 전 시기를 촘촘하게 보장하는 아동기본소득이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동기본소득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공동체를 꾸리고자 하는 청년에게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출산과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동·청소년의 권리로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생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체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모두가 주역이라고 하지만 AI의 확산으로 청년고용은 위축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줄어든 청년층 일자리 21.1만개 가운데 20.8만개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특히, AI는 경력이 적은 청년층의 업무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했다. 국가 주도의 인공지능 인재 양성은 중요한 과제이나, 국가 주도의 일자리가 언제나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일 수는 없다. 핵심은 AI 발전에 따른 이익을 공유해 소득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빅데이터는 모든 사람이 생산에 참여하는 사회공통자산이다. 임금 노동을 해야만 시민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견해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생성에 기여하는 모두를 공유자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청년세대 삶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경기청년기본소득과 부산 청년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경우 청년기본소득은 구직이나 이직을 하려 할 때에도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제공하여 다음 일자리를 찾거나 자기계발에 집중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주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부의 혼란을 마무리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염원 속에서 출발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모든 구성원의 존엄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본소득이다. 노키즈존으로 물리적으로마저 아동을 소외시키는 세계에 아동기본소득은 아동의 삶의 튼튼한 울타리가 되는 동시에 돌봄의 사회화 그 자체로 기능할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청년에게 청년기본소득은 실패할 수 있고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 개혁의 시계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지금, 기본소득 있는 기본사회를 상상해 볼 때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원지영(basicincome_youth@naver.com)
요즘 기업들은 앞다투어 ‘ESG 경영’을 외친다. 환경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ESG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아는 재무제표보다 훨씬 불확실한 숫자들이 들어 있다. 이제 ESG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회계장부가 되고 있다. ESG 보고서의 중심에는 ‘스코프(Scope)’라는 개념이 있다. Scope 1은 기업이 직접적으로 배출, Scope 2는 기업에서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지는 않지만 전기나 스팀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간접 배출, 그리고 Scope 3은 협력사와 소비자까지 포함한 전체 공급망 배출이다. 이 중 Scope 3은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연결회계가 감사되지 않은 추정치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협력업체 데이터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평균값이나 모델링으로 Scope 3을 계산한다. 결국 ESG 보고서는 ‘감사받지 않은 회계장부’가 되고, 기업은 그 불확실한 숫자 속에서 “탄소를 줄였다”고 주장한다. ESG의 평가는 실제 감축 노력보다 보고 방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는 ‘성과가 보고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보고서가 성과를 만드는’ 구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하나의 ESG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외부 검증을 받고, 컨설팅을 받는 데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어간다. 결국 대기업만이 ‘ESG 장부’를 낼 수 있고, 중소기업은 애초에 회계 참여조차 어려운 구조가 된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비용 불평등을 낳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ESG를 기업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다. 정부 역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회계 기준과 공시체계를 제시해야 한다. 현재 ESG 평가 기준은 기관마다 달라 비교가 어렵고, Scope 3 산정 방법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정부가 산업별 표준 산정 모델을 만들고, 감사 가능한 데이터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ESG인 척’ 하는 보고서가 아닌, 진짜 ‘ESG 보고서’로 인정받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Scope 3처럼 측정이 어렵고 불확실한 영역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개하려는 태도, 그리고 ‘얼마나 진정성 있게 변화하느냐’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초록색 로고나 친환경 슬로건보다 중요한 것은 숫자 속의 진실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용기다. 우리는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마케팅의 수단이 아닌 책임의 언어가 되길 바란다. 그린워싱을 구별할 줄 아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측정 기준을 세울수록, 기업은 더 이상 숫자 뒤에 숨을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지속가능성은 정직함과 투명성에서 시작된다.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대학생위원장 임규이(ij06111@naver.com)
대학언론인들이 문제와 목소리를 알리며 이룬 변화성과를 서로 공유하고 축하하며 응원하는 자리이자, 학교 본부의 검열로 인해 발간되지 못한 콘텐츠를 공유하는 자리 ‘제1회 대학언론인 어워드’가 오는 12월27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모이다(다목적홀)’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는 라이프인과 한국대학신문이 주최하고,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와 대학알리가 주관, 아름다운재단이 후원한다. 학보사·방송국·영자신문·자치언론·독립언론 등에서 활동한 전·현직 대학언론인들은 2024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발행돼 대학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거나 대학본부의 검열을 받은 콘텐츠를 주제나 형식의 제한 없이 본 대회에 응모할 수 있다. 개인 또는 최대 5인의 팀으로 응모 가능하며, 발표자 1인이 본선에 필참하면 된다. 한 언론사에서 최대 3건을 응모할 수 있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접수를 받고 있다. 예선 접수 기간은 11월10일부터 12월8일까지이며, 예선 심사는 12월9일부터 12월12일까지 진행된다. 주관사의 심사를 통해 본선에 올라간 10개 팀은 12월13일 예선 결과 및 본선 참여 안내를 받게 된다. 본선 참여자들은 12월23일까지 발표할 PPT를 마감해 제출하면 된다. 본선 PT 및 시상은 12월27일 오후 1시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된다. 시상은 입선·우수상·최우수상·대상 순으로 진행되며, 심사 기준은 소재의 참신성(10), 콘텐츠의 완성도(20), 공동체 연대의식(30), 변화성과 및 임팩트(40) 등이다. 본선 진출 시 한 작품당 10분(PT 6분, 질의응답 4분 권장)의 발표 시간이 주어진다. 입선 작품에는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명의의 상장이 지급된다. 우수상·최우수상·대상 작품에는 상패도 함께 지급된다. 저작권은 온전히 응모자에게 있으며, 주최·주관사로 이관되지 않는다. 단, 응모작에 대한 아카이브 및 홍보는 이뤄질 수 있다. 대학알리의 아름다운재단 사업 간행물에 실려 대학언론의 사회변화 성과 기록으로 남기는 식이다. 본 대회는 심사위원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정화령 라이프인 편집인과 김준환 한국대학신문 부국장은 더 나은 콘텐츠를 위한 조언 전달과 심사 기준에 대한 코멘트에 집중한다. 대신 본선에 진출한 참여자들이 간 상호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스프레드 시트가 제공된다. 기성언론인의 관점이 아닌 대학언론인들의 관점으로 콘텐츠를 평가하자는 취지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어워드 스태프는 “비록 대회에서 제공하는 상금은 없지만, 대학언론인들이 서로의 노력이 이룬 변화성과를 공유하고 축하하며 응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따스한 연대가 형성될 것으로 보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린다. 학교 본부의 검열로 인해 발간되지 못한 콘텐츠는 희망 시 대학알리에 기고할 수 있으니 참고 해달라”고 전했다. 김태섭 기자(taesub01@naver.com)
동물권 보호 비영리 시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주관하는 서울동물영화제(SAFF)는 다양한 동물 영화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축제다. 올해로 8회를 맞은 영화제는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과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 퍼플레이에서 열렸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은 ‘비로소 세계(The World That Therefore We Become)’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물을 세계의 공동 구성원이자 행위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전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 2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비전과 풍경’ 부문 선정작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이 상영됐다. 해당 섹션은 최근 제작된 전 세계의 동물과 동물권 관련 주요 신작을 모은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특히 한국의 동물 운동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 영화는 앞서 개최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상은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선정된 한국과 아시아 작품을 대상으로 관객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에 주어진다.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던 반달가슴곰들이 구조되어 강원도 화천에 있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생츄어리(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을 위한 보호 시설)로 옮겨진다. 영화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그곳에서 열세 마리의 곰을 돌보는 네 명의 여성 활동가의 일과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전작 <동물, 원>(2018)과 <생츄어리>(2022)를 통해 청주동물원과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동물들과 사람들을 다룬 왕민철 감독이 또 한 번 동물 영화를 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동물’에서 ‘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영화는 눈이 한가득 덮인 설산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곰들이 겨울잠에서 깨는 봄부터,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담는다. 활동가들은 곰의 우리를 청소하고, 먹이를 준비하고, CCTV로 곰의 행동을 살피기도 하며 더 나은 생츄어리를 만들기 위해 하루를 반복한다. 활동가들의 삶과 고민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활동가 ‘민재’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집을 떠나 산골짜기에서 곰을 돌보는 일을 계속 이어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곰을 위해 일하겠다는 신념만으로 이 일을 하기에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계속 이곳에 머물지, 생츄어리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길지, 그렇다면 이 일을 계속할 것인지 끊임없이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한다. 누군가는 곰을 돌보는 일에 진심이라서, 화천에서의 생활이 좋아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곳에 계속 몸담기를 선택한다. 민재의 고민은 조금 다르다. 스스로 다른 활동가만큼 곰을 돌보는 일에 열정적이지도, 끊임없이 공부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도 잘 서지 않는다. 결국 그는 활동가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택한다. 끊임없이 불안정함에 흔들리고, 자신의 진심을 의심하는 한 청년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청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맞는 공부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나와 어울리는 곳인지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선의나 정의만으로 지속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의 척도를 스스로 가늠하는 일은 괴롭기만 하다. 그렇게 화천은 곰들에게도, 곰을 돌보는 이들에게도 ‘잠시 머무는 곳’이 된다. 영화는 다시 찾아온 봄, 떠난 이와 남은 이의 자리를 따스하게 비추며 끝난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왕민철 감독은 “동물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영화로 담게 된 동기가 있냐”는 질문에 “동물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대가 없이 마음을 쏟는 어떤 순수함이 있다”며,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들이 그렇게 몰두하는지를 궁금해하며 카메라를 사람에게로 향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 영화는 곰의 이야기가 아니라, 곰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신념으로 일하기 때문에 개인의 삶과 일이 구분되지 않아 쉽게 소진된다”며, “그런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의 끝에선 화천을 떠나는 길의 풍경이 영사되고, 배경에는 이소라의 <Track 6>이 흐른다. 노랫말 속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한없이 불안해 보이는 곳”이라는 구절은 활동가들이 마주한 현실과 닮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디든 나 있는 곳”, “어디든 나야”라는 마지막 가사는 불안한 청춘에게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곧 당신의 자리’라는 위로와,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응원을 건넨다. 헤매고 떠도는 일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어쩌면 삶의 한 과정이라는 듯이. [작품 정보]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2025, 112분) 감독: 왕민철 / 출연: 강지윤, 구시연, 김민재, 도지예, 이세림, 조아라, 최태규 / 제작사: 케플러49 박서연 기자(syeone319@gmail.com)
“손님은 사장 나오라고 막 소리치는데, 사장님한테 가서 이야기하니까 그냥 무시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안 나오더라고요. 사장님이 음식 순서를 잘못 내보냈는데, 사장님은 무시하라고만 하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이 계속 죄송하다고만 했죠.” _ 국민대학교 조현지(가명) 학생 “학생 몇백 명 시험을 전부 수기로 채점하고 입력하다 보면 실수할 수밖에 없잖아요. 실수한 건 잘못이지만, 틀릴 때마다 너무 심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_ 한국외국어대학교 곽지영(가명) 학생 런던베이글뮤지엄이 20대 남성 직원 과로사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가운데, 20대 청년들이 주로 근로하는 단시간근로(아르바이트) 등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20대 ‘쉬었음’ 청년이 전월 대비 3만 6천여 명 감소하며 청년 고용 시장에 활력이 도는 가운데, 아르바이트 단계부터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 정효원 주임(26세/남성)은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입사 14개월 만이었다. 유족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인으로 단정할 지병이나 수술 이력이 없다며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에 과로에 따른 산재를 신청했다. 고인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과 스케줄표 등을 기반으로 업무량을 복원한 결과 사망 직전 2~12주 동안 한 주 평균 58시간, 사망 직전 1주 동안 80시간을 근무했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만약 유족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기준법 제50조 위반에 해당한다. 논란이 가중되자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은 28일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은 “지문인식기기의 오류로 인해 사고 직전 고인의 실제 근로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나, 직전 일주일 함께 근무한 동료 직원들의 근로시간은 분명 평소 근로시간 대비 높은 수준”이라며 “사실이 명확히 밝혀질 수 있도록 협조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하겠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과 서울 종로구 본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합정의 카레집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국민대학교 조현지(가명) 학생는 “원래 두 명을 고용해 한 명은 주방 업무를, 한 명은 홀 업무를 맡기로 했는데 당일에 한 명이 오지 않아서 혼자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고용 당시 이야기했던 휴식이나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아르바이트생과 고용주의 갈등은 많은 경우 휴게와 관련된 사항에서 발생한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에 따르면 27.2%의 갈등 사례가 열악한 휴게 공간, 휴게시간 미준수 등 ‘휴식’을 이유로 발생했다. 휴일 및 휴가를 위반한 경우도 15.2%에 달했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사례도 다수 존재했다. 경상북도 경산시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구대학교 최은지(가명) 학생은 “총 2곳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한 곳은 8천 원, 다른 한 곳은 9천 원의 시급을 받고 일했다”며 “대학 상권이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 대학생이고, 그래서 시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구대학교 권여운(가명) 학생 역시 “일은 힘들지 않았지만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처음 한 달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의 절반만 지급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장애인 근로자나,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수습기간으로 설정한 최대 3개월까지 최저임금의 90%만을 지급할 수 있지만, 한국표준직업분류상 숙련 향상 필요성이 낮아 수습기간 운영이 불필요한 단순노무업무의 경우 최저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단순 포장, 배달, 청소, 경비, 패스트푸드 판매 등 단순노무업무로 분류되는 직무 외에는 수습기간 최저임금 90% 지급이 불가능하다. 2025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10,030원이다.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한국표준직업분류상 단순노무업무인가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단순노무업무로 분류한다고 하더라도 현행 최저임금의 90%인 9,027원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고용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지난 3일 유가족 측은 런던베이글뮤지엄과 공식 합의하고 산업재해 신청을 취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4일, 고용노동부는 기존 근로감독 대상이었던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에서 일부 법 위반 정황이 확인되어 감독 대상을 전 지점 및 계열사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산재 여부와 관계 없이 위법적인 사업 운영 방식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취지다. 곽지영 학생은 “청년의 아르바이트는 결국 생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그만두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과로 등으로 쓰러지는) 일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결단하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강조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사태 해결을 넘어 건전한 청년 노동 환경을 확립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주기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섭 기자(taesub01@naver.com)
1990~1996년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에서 활동한 박종진 前 유뉴스 대표, 現 필맥 페이스북 그룹 운영자의 수기록을 아카이브 목적으로 종합한 기사입니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전대기련)은 1970년대 ‘전국대학언론인협회’와 1980년대 ‘자유언론실천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자대기련)’을 거쳐 1987년 전국 조직으로 공식 출범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활동 전성기를 맞았다. 1992년 '중앙상황실 통신'이 제작돼 각 대학·지역·사회운동 소식과 공동기사·공동 설문 결과가 공유됐다. 이후 하이텔 'UNIP 동우회'로 온라인 교류가 이어졌고, 이 경험은 2000년 대학 전문 뉴스사이트 'Unews(유뉴스)' 탄생의 계기가 됐다. 1996년 발간된 '필맥(筆脈)' 46호는 전대기련 10년의 10대 소식을 정리해 당시 고민과 사업의 전모를 전한다. 전대기련은 2000대 초부터 쇠퇴하다가 2010년대 초 마지막 '기자한마당'을 끝으로 소멸했다. ① 1970~71년 협회 결성과 '대학언론헌장'…주간 '필맥' 20호 뒤 잠정 휴간 1960년대 말까지 대학기자 활동은 UNESCO 한국위원회·대학생봉사연합회 세미나 참석, 1968년 시작된 문공부장관배 대학신문기자 배구대회 등 외부 프로그램이 중심이었다. 그러다 1970년 5월 27일 서울 시내 12개 대학 200여명이 ‘대학신문기자 연합대회’에 모여 대학신문의 기관지적 성격을 벗고 편집자율권의 학생 이양을 결의했다. 이 흐름은 1971년 5월 11일 흥사단 본부에서 '전국대학언론인협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대표 상임위원 3인을 둔 상임위원회가 구성됐고, 5월 14일 상임위원회는 주간 협회지 필맥 발행을 결의했다. 협회는 즉시 현안에 개입했다. 5월 25일 연세춘추 편집자율권 투쟁을 측면 지원했고, 7월 29~30일 불암산 캠프장에서 '대학언론의 이상실현'을 주제로 '제1회 전국대학언론인 세미나'를 열었다. 9월 9일 우석대신문사 편집장 사표 강요 사건에는 특별조사위를 꾸려 조용범 주간교수에게 사표를 받아냈다. 서울대 사대 경찰난입 사건엔 경찰·학교당국에 항의서를 전달했고, 국회에 방문한 문교부장관의 대학언론 자유 왜곡 발언에 대해서는 필맥에 반박문을 게재하고 자율권을 촉구했다. 10월 5일에는 지방대를 포함한 20개 대학 300여명이 신문회관에서 제2차 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10월 15일 위수령과 휴업령이 내려지면서 협회 활동은 원천 봉쇄됐다. 상임위 모임에는 강한 탄압이 가해졌고, 대표 상임위원의 재적 조치까지 이어졌다. 11월 23일 비상 상임위원회에서 10월 26일자 제20호를 끝으로 필맥 잠정 휴간을 결의했다. 선거를 앞두고 서울대·경희대 선배 기자가 구속됐으며, 당시 남학생 중심이던 서울지역 다수 편집장이 강제징집됐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등 사형 집행 인사만 30여명, 민주화 요구 인사들의 의문사 수백명, 서해 어민 1250명이 납북 후 간첩으로 몰렸다는 방송 보도가 있었다. 긴급조치로 대학생 2000명이 구속·강제징집됐다. 이 시기 채택된 '대학언론헌장'은 "대학언론은 대학인의 것(최고 독자는 학생)이며 학생에 의해 제작된다", "대학사회를 대변하고 지향할 창조적 이념을 제시한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를 꾀한다", "편집권은 학생에게 있고 자율·자주적으로 행사된다", "대학의 자유·학문의 자유 보장이 전제"라는 원칙을 명시했다. ② 1982~84년 자대기련 탄생·침체…비밀 회동·홍성사 거점, 금서와 '필맥' 복간 1979년 10·26 사건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대학신문은 학교 홍보지를 넘어 시대 현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의 강경 기조 속에서도 1982년 여름, 개강 직전 주 평일 저녁 동숭동 문예회관 앞에서 4개 대학 5명이 비밀 회동을 갖고 전국 연합조직 건설을 결의했다. 프레스센터 지하 '프레스다방'에 모인 19개 대학 대표 21명은 근처 음식점으로 이동해 회장을 선출했다. 회장이 동·서·남·북 지평별 부회장 4인을 지명했고, 각 사 부장단 모임을 핵심조직으로 삼아 3차년도에는 전체기자 대중조직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을 확인했다. 전국조직을 상정하되 전체 기자 총회가 열릴 때까지는 서울지역 편집(국)장 모임이 대신한다는 부칙을 마련했다. 회장단은 종로3가 홍성사 편집실을 거점으로 거의 매주 회동했다. 공개 총회가 무산되는 상황에서 홍성사의 출판 계획을 활용해 1983년 4월 '대학이여, 대학인이여'를 발간했으나 곧 판매금지 조치를 받았다. 1983년 12월 필맥이 복간돼 2호까지 이어졌고, 선·후배 유대 복원을 위한 체육대회도 열렸다. 1983년 2월에는 '쟁이82'가 신·구임 편집장 모임을 통해 현역에게 조직을 넘겼고, 같은 해 '쟁이83'이 결성됐다. 쟁이82는 자체 회지를 간행하며 선·후배 유대를 다졌고, 이듬해 초에는 관제언론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제작해 전국 대학신문과 주요 언론사에 우편 발송했다. 1984년 5월 비로소 81학번이 현역에게 조직을 인수·인계했지만, 모임은 사전에 누설되는 일이 잦아 회합 장소에 안기부·경찰 요원이 들이닥쳤고, 참석자들이 다음 날까지 하루씩 유치장에 머무는 일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1984년 필맥 3·4·5호가 발간되며 명맥을 이었다. ③ 1985~86년 정비기…창립총회 180여명, 조사위 출범, '노도' 창간·주기 변경 1985년 3월, 현역대표자 15인은 자대기련 조직강화 및 활성화를 결의했다. 5월 회칙을 수정·확정하면서 운영위 산하에 편집·기획·재정·조사 4개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5월 19일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해 각 대학 언론탄압 사례를 수집했다. 같은 해 6월까지 부기련(부산)·호대기련(호남)·충대기련(충청) 등 권역별 조직 사업의 형식적 틀도 마련했다. 7월 3일 "가자, 민족·민주·민중언론의 새 지평을 향하여"를 내걸고 창립총회가 열렸다. 전경의 원천봉쇄를 피해 산을 넘고 담을 넘어 180여명의 기자가 모였다. 관제언론·정부·언론인에게 보내는 글, 발족취지문, 탄압사례 폭로가 발표됐고, 필맥 6호가 현장에서 배포됐다. 이즈음 쟁이82와 쟁이83은 '민중언론 청년회' 결성을 시도했으나 좌초했다. 대신 총회에 걸개그림을 제작·기증해 현역들의 등 뒤에 부착하게 했다. 총회를 주도한 회장단 다수가 군입대(강제징집 압박 포함)로 빠지면서 2학기 조직은 둔화했지만 1986년 2월 23일 필맥 7호가 발행되었다. 1986년 6월 서강대에서 제2회 총회가 400여명 규모로 열렸고, 같은 해 10월 8일 자대기련 기관지 '노도'가 창간됐다. 노도는 1~3호를 월간으로 낸 뒤(10월 27일 2호, 11월 22일 3호) 4호부터 학기 1회, 7호부터 격월로 주기가 변경됐다. 1987년 5월 31일에는 경희대에서 제1회 대동제가 20여개 대학 200여명 규모로 열렸고, 같은 해 6월 5일 노도 4호가 발행돼 전대기련 결성 직전의 논의가 정리됐다. ④ 1987~88년 전대기련 공식 출범…헌장 공표, 공기단·속보 상설화, 문화분과 확장 1987년 8월 21~22일 지방대를 포함한 50여개 대학이 참가한 제3회 총회가 1박 2일로 진행돼 "사전검열제 철폐·예산자율권 보장"을 결의했다. 같은 해 11월 29일 고려대에서 전국 60여개 대학 700여명이 모여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전대기련) 결성식이 열렸다. 11월 27일 제정된 '대학신문 헌장'이 이 자리에서 공표됐다. 1988년 1월 27일 노도 5호가 발행됐고, 3월에는 '자대학련'이 결성되었다. 6월 5일 서울시립대에서는 '자대기련 비상총회 및 제2회 대동제'가 26개 대학 400여명 규모로 열렸다. 전대기련은 1988년 '6·10 남북학생회담' 취재를 위한 '제1차 공동기자단(공기단)'을 구성했고, 8·15 국토순례 대행진과 제2차 남북학생회담 투쟁 기간에는 '8·15 속보'를 제작·전국 배포했다. 10월 4일 '대학언론 탄압분쇄를 위한 자대기련 비상총회'가 열렸으며, '서울지역 대학신문 만화기자 동인회' 주최 사진전, '문화부기자 연합회' 결성, 12월 24일 자대학련 주최 심포지움이 이어졌고, 책 발간 작업도 병행됐다. 1989년 1월에는 '자대문연'이 시집을 발간했다. 공동취재의 출발점에는 1988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가 김일성대학에 '6·10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한 사건이 있었다. 1988년 1차 공기단을 거쳐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공기단 구성으로 공동취재 틀이 완성됐다. ⑤ 1989~91년 '매체혁신'·'대중언론관'·총노선, 5월 상황실·속보…방북취재 추진과 판문점 포옹 1989년 전대기련은 '매체혁신'을 결의했다. 주체혁신(민중지향적 시각 견지), 조직혁신(봉건적 관료성·폐쇄성 타파·대중성 확보), 지면혁신('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의 실천적 편집노선 전환)을 골자로 했다. 광고면을 상업적 영역으로만 보던 관점에서도 벗어나 "광고도 지면의 일부"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광고질서 회복운동'이 전개됐다. 1991년에는 1년 사업의 좌표인 '총노선'이 도입돼 전국 편집장들이 전대회를 통해 정세와 혁신운동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 해 계획을 공동 설계했다. 각 단위사는 이를 전술로 번역한 '편집노선'을 수립했다. 같은 해 도입된 '대중언론관'은 언론을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자기해방을 위한 정치·사상적 무기"로 규정하고, 왜곡된 언론 질서를 바로잡아 언론의 생산·소유의 주체를 대중에게 돌려주는 '대중언론'의 전망을 제기했다. 1991년 5월 연쇄 분신 국면에서 전대기련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투쟁 제안서를 각 단위사에 배포했다. 제안은 ▲고정적 편집틀을 깨고 투쟁 열기를 수렴하는 지면 전환 ▲단위사별 사진전·기획 대자보·속보·대학신문 시민배포 ▲신문사 비상체계 구축 등이었다. 전대기련 중앙은 중앙상황실을, 각 지역기련은 지역상황실을 꾸려 전화·팩스로 서울과 지역 소식을 긴급 수집·정리해 보도자료·속보를 제작했다. 이 자료는 타 단체에도 제공됐다. 지역 속보로는 서대기련의 '분노의 대오', 부기련의 '부기련 신문', 조대신문·안동대신문의 속보가 있었다. 이 라인은 1992년 대선기 전국 배포물 '청년 전국신문'으로 계승됐고, 1996년 8월 통일투쟁기에는 '4천만 국민여러분께 드립니다', '진실의 소리' 등이 전대기련 또는 연대 명의로 제작·배포됐다. 공동취재의 정점은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공기단이었다. 공기단 선발 경쟁률은 높았고, 다수 기자가 혈서로 결의를 밝히거나 명동성당 단식농성에 참여했다. 같은 해 임수경씨가 전대협 대표로 평양에 참가했다. 1991년 방북취재 추진은 서대기련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보안·진행상의 문제로 전대기련이 아닌 서대기련 차원의 행사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당시 '1990년 7·7 선언'과 '1991년 12월 남북합의서 조인 예정'이라는 분위기 속에 민간 교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대기련은 범민련을 통한 간접 접촉과 팩스 교신(경희대 대학주보 주간실 발송, 통신료 200만원 이상)을 통해 북측에 서대기련·전대기련을 알리고 방북취재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중국 연수 중이던 오상훈 한대신문 편집장은 북측 대사관에 전대기련·서대기련 기관지 필맥과 노도, 주요 대학신문을 전달했다. 북측의 긍정 답변을 받은 서대기련은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을 신청했고, 통일원은 허가를 내줬다. 분단 이후 처음 판문점에서 남북 대학생이 포옹하는 장면은 한겨레신문 1면 톱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방북취재를 불허했다. 1주일 합숙까지 마친 기자단은 통일부 항의방문으로, 북측은 판문점 비판성명 낭독으로 사업을 마무리했다. 당시 실무회담 대표는 김기헌(성균관대·편집장), 지은경(한양대·문화부장), 최병섭(건국대·서대기련 조직국장)이었다. ⑥ 1992~96년 분과학교·지부체계·교육자료…'표준 작동'의 완성, 온라인 전조 1992년 1월 마석 새터에서 제1회 분과학교가 열렸다. 중앙상임위·정책위의 반대에도 분과 일꾼들의 준비로 행사 하루 전 장소가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뚫고 500여명이 참석했다. 결성 초기 전대기련은 집행부 없이 현역 편집장들이 사업을 직접 집행했고, 학술부를 시발로 문화·사회·사진·만화 등 분과가 자생했다. 1991년 여름에는 '애국기자 후보' 다수가 분과 일꾼이 될 정도로 인력이 두터워졌다. 분과학교 강사진은 오연호(후일 오마이뉴스 대표이사), 오귀환(후일 한겨레 편집국장), 김형수(민예총 사무총장), 정희상(후일 시사IN 탐사보도 전문기자) 등이었다. 1993년부터 지역 분과학교로 분산했고, 1994년 겨울부터는 총회·출범식과 결합한 2박 3일 집중교육이 관행화됐다. 교육 표준화는 1993년 대학언론교육자료집 '대학언론의 현주소' 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국언론의 기원과 역사·국가권력과 언론·대중언론관·대중언론 활동가론·대중신문론'이 포함됐고, 단위 교육 현장에서는 '파란 책'으로 불렸다. 1996년 1학기에는 '세계를 바꾸는 대중언론' 1·2학년용이 발간됐다. 1학년용은 신문사 생활(사람 관계, 수습학교, 댓거리 등)과 한국언론사·대중언론 입문을 쉬운 해설로 담았고, 2학년용은 주체·조직·지면으로 나눠 대중언론관을 심화 설명하고 언론운동사를 기술했다. 이후 필맥은 이 교재들의 단위 활용법을 별도로 해설했다. 조직 체계는 1992년부터 '기련'에서 '지부'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기련체계에서 나타난 동맥경화·이중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각 지역의 준비 정도에 따라 해마다 2~3개 기련이 지부로 전환됐고, 1996년 초 경인기련이 경인지부로 전환하며 지부체계가 완성됐다. 1992년에 제작된 '중앙상황실 통신'은 각 대학·지역·사회운동 소식, 공동기사, 공동 설문조사 결과를 묶어 정기 배포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이후 하이텔 'UNIP 동우회'가 돼 뉴스·자료 공유가 온라인으로 확장됐고, 이 경험은 2000년 대학 전문 뉴스사이트 'Unews(유뉴스)' 출범으로 이어졌다. ⑦ 1994년 이후 현장 결집…전대기련 깃발, '대학신문기자 한마당', 속보의 계승 전대협 출범식부터 1993년 한총련 1기까지 대학신문 기자들은 모교 깃발 아래 학우들과 움직였으나, 1994년 조선대에서 열린 2기 한총련 출범식부터는 전대기련 깃발 아래로 모였다. 전대기련은 한총련 출범식 현장에서 '대학신문기자 한마당'을 열었다. 본연의 임무인 공동기자단 활동은 활발하게 진행되어 조직의 위상이 강화됐다. 속보 제작은 중요한 국면마다 재가동됐다. 1992년 대선기의 전국 배포물 '청년 전국신문', 1996년 8월 통일투쟁기 '4천만 국민여러분께 드립니다', '진실의 소리'가 대표적이다. '대학언론헌장' 대학사회가 형성되어 제기능을 다하려면 대학사회에서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학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대학문화의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면 이러한 사명을 실천에 있어서는 대학의 자유가 그 전제로 되어야 하고, 대학언론은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 제한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로부터 대학을 보호해야 한다. 특히 대중화의 물결속에서 아카데미즘을 구현하고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대학의 公器(공기)인 대학언론은 그 이념과 성격을 선언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대학의 보호와 발전을 위한 공동 노력으로 다음과 같이 대학언론헌장을 채택하여 대학언론의 지표로 삼는다. 一. 대학언론은 대학인의 것이다. 대학언론의 최고 독자는 학생이므로 그것은 학생의 언론 학생을 위한 언론이어야 하며 학생에 의해 제작되어야 한다. 一. 대학언론은 대학사회를 대변하고 대학사회가 지향해야 할 창조적 이념을 제시한다. 一. 대학언론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를 꾀한다. 대학언론은 학문과 연구를 위한 아카데미즘과 함께 사회현상을 보도, 해설, 비판하는 저널리즘의 기능도 병행해야 한다. 一. 대학언론의 편집권은 학생에게 있고, 이는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一. 대학언론이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1970년 5월 27일 전국대학언론인 협회 제작물의 계보 1971년 주간 '필맥'은 20호까지 이어졌으나 10월 26일자 이후 중단됐고, 1983년 12월 '필맥'이 재창간됐다. 1986년에는 자대기련 기관지 '노도'를 창간했다. 1987년 전대기련으로 전국화된 뒤 1990년 10월 '필맥'이 준비호를 포함해 다시 창간됐다. 그리고 2003년 8월에 78호까지 발간됐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의 역사 자료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돼 있으며, 일부는 색인·검색 가능하다. 기증자 '박종진'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400여건의 오픈아카이브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분명히 배달 어플 상에는 군부대는 배달료 추가 1000원이 없었는데 가게에서 전화와서 배달료를 더 내야 한다고 하니 의아했어요. 돈을 더 내야 한다면 내겠지만 고지 받지 못한 돈을 내야 한다고 하니까 좀 불편하네요. 1000원을 더 지불해야 하는 설명 없이 1000원 더 보내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가게가 어플에 미리 이유 등을 공지했다면 주문에 참고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 수도권 지역 공군 A 병사 “제가 복무하고 있는 곳은 군부대 밀집 지역인데, 옆에 있는 아파트는 배달료가 3000원인데 반해서 저희 부대는 1000원 더 받아요. 상식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데 배달료를 더 받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충청권 지역 공군 B 병사 최근 일부 음식점에서 군부대에 배달료를 더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거 지역 배달료에 비해 군부대의 배달료다 더 높게 책정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국군 장병들의 불만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와 관련 관계자들의 미온적 대처가 불편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달료는 배달 기사 인건비 뿐만 아니라 여러 추가 비용의 총합으로 책정된다. 음식점주가 배달 플랫폼에 지불하는 비용을 포함할 경우, 배달 거래에서 발생하는 주요 비용은 크게 중개 수수료, 배달 대행 수수료, 광고 수수료, 결제 수수료로 나뉜다. 여기서 배달료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배달 대행 수수료다. 배달 대행 수수료는 배달 기사 호출 및 배달 서비스에 대한 직접적인 비용으로 배달 기사 인건비, 거리, 시간대, 날씨 등 여러 변수를 종합해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배달 대행 수수료는 고객과 업주가 일정 비율로 분담한다. 기본 배달 가능 거리를 초과하거나, 주문이 폭증하는 시간대, 배달하기기 어려운 기상 조건 등에 따라 배달료가 추가된다. 이렇듯 유동적인 할증 조건들은 배달료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며, 소비자가 배달료를 추가 지불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2021년 공군 모 부대에서 배달료 추가 지불과 관련해 군부대 소속 병사로 추정되는 리뷰 작성자는 “우리 부대는 도심 근처에 있고 주변 치킨집에서는 추가 배달료를 받지 않는데, 이 업체만 사전 고지 없이 1000원 더 보내달라고 요구했다”며 배달앱에서 업주와의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배달 대행사 ‘바로고’는 “배달 수수료는 회사에서 측정하지 않고 업주들이 개인적 상황에 따라 책정하고 있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수수료는 가게로부터 배달지까지의 거리, 기상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군부대는 접근이 힘들고 배달 장소에서 배달 받는 분과 만나는 데 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배달 수수료가 더 높게 책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군부대가 아니더라도 거리가 멀거나 고속터미널 같이 복잡한 곳, 고층 건물에 배달하는 경우 배달 수수료는 추가적으로 붙을 수밖에 없다. 배달 시간이 오래 걸리면 배달 기사 분들의 배달 가능 건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면서 “콜이 잡히지 않아 배달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업주들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군부대에 배달료를 의도적으로 더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업주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추가 배달 수수료를 받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군부대 배달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배달료를 올리거나 다른 가게에서 일부 올려받는다는 점을 이용해 덩달아 배달료를 올리는 등의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명확히 파악되지 않아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서울에 있는 모 군부대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박민우(가명) 씨는 “요즘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업주들이 군부대는 콜이 잘 잡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추가 요금을 얹어 배달 기사를 부른 후 군부대에 청구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의도적으로 돈을 더 받기 위해 배달료를 추가하는 업주는 많진 않겠지만, 있다면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추가조사한 결과, 앞선 2021년 치킨집 배달료 추가 지불 논란이 벌어졌던 수도권 지역 외에도 충청권, 경상권 등에서 군부대 배달료 추가 지불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군에서 장교로 복무 중인 C 씨는 “병사들에게 음식을 주문해줄 때 배달료가 부담돼 차로 운전해 직접 음식을 받아온다”며 “1000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배달보다 직접 음식을 수령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부대에 배달료를 고의로 더 받는 가게가 있다면 국방부나 관련 부처에서 조사를 통해 문제를 바로잡아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제와 관련해 국방부는 “해당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유보했다. 최민혁 기자(fhtsgy71@gmail.com)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기리며 이태원 참사 이후 세 째 10월 29일이 되었다. 별이 된 159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3년의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온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참사 3년 만에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인파 관리 소홀로 지목됐다. 23일 발표된 정부 합동감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이태원에 인파가 몰려들 것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경찰과 용산구청은 이태원이 아닌 대통령실 주변 집회 관리에만 집중했다.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대통령실 이전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놀러 온 2·30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늦었지만 조금이나마 드러나고 있는 진실을 환영한다. 명확한 진상규명만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반복되는 참사의 경험은 청년 세대에게 상흔을 남겼다.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10대에는 세월호에서, 20대에는 이태원에서 또래 청년을 잃었다. 2022년 뉴시스 조사에 따르면 1995~1999년생 응답자의 97.3%가 본인이 참사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가 더 안전해졌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57.3%가 아니라고 답했다. 정부와 권력기관의 무능과 무책임이 또다시 반복되면서 청년들에게는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감각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사회적 참사를 둘러싼 혐오발언은 침묵과 방관을 먹고 자란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2차 가해는 여전히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심각하다. 작년 이태원 참사 2주기 무렵 대학별로 유가족과 함께하는 간담회를 열었을 때,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학교에서 이런 걸 왜 하느냐’, ‘사고당한 건데 진상 규명이 뭐 있느냐’라는 댓글이 달렸다. 심지어 같은 학교에 희생자가 있는 경우에도 혐오는 멈추지 않았다. 참사 이후 대학 캠퍼스에 추모할 공간도, 기억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참사 이후 3년이 지났지만, 대학은 아직도 참사의 상흔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청년과 대학생은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인 동시에 반복의 고리를 끊어내고 안전 사회를 건설할 책임이 있는 사회 구성원이다. 사회적 참사를 ‘사회적’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특정 개인의 부도덕만이 아닌, 구조적인 부정의가 중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참사가 끝나지 않는다. 함께 행동함으로써 생명을 경시하는 부정의한 구조를 바꾸어내야만 사회적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과 사회에서는 일회성 행사와 잠깐의 추모, 그마저도 대부분은 ‘불편한 이야기’라며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청년이 침묵하면 청년을 죽게 만든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로 동료 시민을 잃은 청년들이, 희생자를 향한 혐오댓글에 불편함을 느끼는 대학생들이 참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사회적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정치적 과제를 책임 있게 요구할 때, 비로소 진실과 정의가 도래할 것이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남혜윤(basicincome_youth@naver.com)
존 스튜어트 밀이 강조했듯 기회 균등은 사회 정의의 근간이다. 그러나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3년 소득이동통계'는 우리 사회 청년층의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가 위기에 놓였음을 시사하며,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심각한 정치·사회적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15~39세 청년층은 2023년 기준 23%가 소득 상향 이동을 경험해 중장년층보다 높은 역동성을 보였으나,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청년층의 소득 하향 이동 비율이 17.4%로 중장년층 대비 높아 청년 10명 중 2명 가까이가 경제적 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소득 하위 20%(1분위) 청년의 '탈출률'이 38.4%로 전년 대비 1.7%p 감소했다는 점이다. 반면 2~4분위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상향 이동을 더 많이 경험했는데, 이는 소득 하위층이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층 내부의 양극화가 뚜렷하게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의 배신은 청년들의 정책적 효능감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소득 하위 청년의 고착화를 막고 하향 이동 위험에 노출된 청년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임이다. 이 점에서 '청년미래적금'은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 청년도약계좌는 5년 만기라는 긴 기간과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최고금리 수혜자가 사실상 0명에 가까울 정도로 문턱이 높았고, 특히 소득 불안정성이 높은 청년층에게 장기 만기 부담은 중도 해지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렇게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토대로 청년미래적금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자산 형성 지원을 강화했다. 구체적으로는 중소기업 신규 취업자, 소상공인 등 소득 기반이 취약하고 지원 필요성이 큰 청년층을 보다 넓은 범위로 포함하고, 5년 만기와 같은 긴 만기 부담을 해소하여 청년들이 자산 형성 목표를 달성하기 용이하도록 정책을 설계했다. 정부의 매칭 지원은 소득 1분위 청년에게 경제적 자립의 초기 자본을 제공하여 탈출 자본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청년들의 자발적인 노동과 저축을 전제로 지원하는 방식은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사회적 믿음을 회복하고, 청년을 능동적인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정책적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 청년미래적금은 단순히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 정책을 넘어, 자산 형성을 통한 소득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 통합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기존 청년도약계좌 사용자를 위한 환승 대책 마련과 동시에, 청년미래적금은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국가적 책무로서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당 대학생위원장 김수원(toyswith31@naver.com)
지난달 23일부터 24일까지 국회에서 '2025 국회입법박람회'가 개최됐다. 이번 박람회는 '국민참여로 열린 길, 입법으로 여는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기후위기 극복, 지방소멸 대응, 민생경제 활성화 등 시대적 과제를 주제로 국민과 국회, 정부, 지자체가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국민이 직접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국회에 전달할 수 있는 첫 국민참여형 입법 축제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국민 참여의 장 속에서, 청년의 자리는 얼마나 마련돼 있었을까 이번 국회입법박람회는 평소 정치에서 비교적 소외된 청년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 또한 진행하였다. 청년은 정치적 대표성이 취약한 집단이다. 국회의 세대별 의석 비율과 투표율을 봐도 청년 세대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현재 제 22대 국회의 40대 이하 청년 정치인은 44명으로 지난 21대 국회 청년 의석수인 41명보다 조금 늘었지만, 20대와 30대 정치인은 지난 국회보다 1명(지역구 8명, 비례 4명)이 더 줄었다. 그렇기에 입법박람회와 같은 공개된 정치의 장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일은 세대 간 균형을 맞추는 출발점이 된다. 또한 국회의 역할은 단기적 현안을 해결하는 제 그치지 않는다. 사회 구조를 바꾸고 지속 가능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진정한 입법의 본질이다. 청년 문제는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입법의 장에서 청년 의제를 다루는 것은 곧 국가의 미래를 논의하는 일과 같다. 이에 본보는 박람회에서 진행된 청년 관련 논의 현장을 취재했다. 여러 강연과 토론 속에서 청년들의 현실과 제안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24일 열린 강연 '지방 청년이 겪는 수도권 바깥에서 먹고 살기'에선 양승훈 경남대 교수가 지방 청년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짚고, 정책적 해법을 제시했다. 양 교수는 "지방 청년 대부분의 삶은 일자리와 생존 문제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특히 "남성과 여성 청년의 현실은 뚜렷하게 다르다"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 청년의 현실은 뚜렷하게 다른데, "남성 청년은 지방에서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 등에 주로 종사하는 반면, 여성 청년은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장시간 근무와 위험한 환경, 불안정한 고용 구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지역 사회 내 남성 과잉으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다고 역설했다. 또한 수도권 외 지역 일자리 상위 10-15%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정규직이 차지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하청, 비정규직, 단순 노동으로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담론이 극소수 사례를 부각할 뿐, 대부분 청년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고 말했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로컬(local)'과 '크리에이터(creator)'의 합성어로, 지역의 특색을 살린 콘텐츠와 서비스를 개발해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2010년대 골목길, 도시재생 트렌드와 맞물려 등장했으며, 기존 소상공인과 구분되는 창의적 창업가로 인식된다. 실제 지방 청년 정책은 청년센터 설치, 창업 지원, 소규모 문화 사업 등 이벤트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안정적 일자리와 주거 문제 해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 일자리와 주거 및 복지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지방 청년의 수도권 유출과 지역 소멸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 청년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대신,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다층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정부 및 지자체의 책임 있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김민주 기자(mubinzu@gmail.com)
홍대 앞 거리 문화는 단순히 상업화나 관광 조성 이전부터 이미 다층적인 예술 활동과 자생적 실험이 버무려진 공간이었다. 1980~90년대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설치미술, 퍼포먼스, 벽화, 인디음악, 그래피티 등을 선보이면서 ‘대안 예술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클럽 문화, 라이브 클럽 공연, 스트리트 댄스, 버스킹 문화 등이 어우러지며 지금의 홍대 인디 문화 생태계가 구축되었다.언니네 이발관, Delispice, 교감, 노브레인, 장기하와 얼굴들 등 수많은 밴드와 음악인이 홍대 클러버(클럽을 찾는 사람들)와 라이브 클럽 문화를 통해 성장해 갔고, 이들은 거리와 클럽 공간을 무대로 삼아 ‘홍대 음악’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클럽 공연장 무대에서 실험적 사운드를 시도하던 이 시절이야말로, 홍대 앞 거리와 공간이 예술가들에게 ‘가능성의 땅’이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의 홍대 앞 거리는 그래피티, 거리 미술, 벽화 프로젝트 등 상업적 장식이 아닌 도시와 삶, 저항과 표현이 교차하던 지점이었다. 수많은 청년 예술가들이 스프레이 캔을 들고 벽에 메시지를 쓰고, 거리에 그림을 그리며 이 공간을 ‘자발적 갤러리’로 바꾸곤 했다. 이처럼 홍대 문화는 ‘누군가가 디자인한 무대’가 아니라, 예술가와 주민, 상인, 방문객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쌓아 올린 공공성과 실험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시 주도하에 시작된 '레드로드' 프로젝트는 홍대만의 다채로운 정체성을 '레드(Red)'라는 단색으로 뒤덮고, 행정 편의적인 권역으로 나누며 그 본질을 흔들고 있다. 사용자가 외면하는 공공디자인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 확보와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조성한 레드로드.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 상인, 예술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소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실제 사용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홍익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여성 A 씨는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관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관광차 홍대를 방문한 대구 출신 20대 남성 B씨 역시 "권역을 나눈 기준을 모르겠고, 방문하는 입장에서 동선이나 목적지 설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더욱이, 마포구는 레드로드 조성과 함께 KT&G 상상마당 주변 예술 활동 공간 등 기존에 다양한 문화가 혼재했던 복합문화거리를 일률적인 ‘붉은색’으로 뒤덮으며 사실상 그 문화의 한 측면을 지워버렸다. 단색으로 공간을 덧칠하는 행위는 단순히 거리의 외관을 바꾸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다양하고 자생적인 문화적 층위를 무시하고 획일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디자인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행정 주도 방식은 실제 거리 위에서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수상 실적, 그 이면의 진실 홍대 레드로드 프로젝트는 2023년 '아시아도시경관상' 본상, 2024년 '지방정부 정책대상' 우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글로벌 도시브랜드 대상' 등을 수상하며 정책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마포구는 레드로드 조성 이후 방문객 수가 급증했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 및 관광 재개 시점과 맞물린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과 2024년 동안 홍대 지역의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각각 15%와 18%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적인 관광 회복 추세와 일치하는 수치로, 레드로드의 직접적인 효과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마포구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레드로드 조성 이후 상업 시설의 매출은 평균 5% 증가했으나, 이는 홍대 지역 전체의 상업 활동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이어졌다. 방문객 수의 증가를 온전히 레드로드 프로젝트와 온전히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이다. 기표에만 머무른 도시 디자인, '의미'가 빠졌다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 전공 이현성 교수는 현대 도시 문제와 같이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하나의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를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하나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레드로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에 머물러 있던 홍대 문화를 행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 디자인에서 가장 잘못된 것 중 하나는, 장소가 품고 있는 고유한 의미(기의)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랜드마크, 상징색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기표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태도"라고 지적했다. 현대 도시 디자인이 마주한 문제의 본질을 레드로드 프로젝트에 적용한 분석이다. 이어서 그는 "레드로드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빨간색'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행위들을 받아낼 수 있는 플랫폼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었다"라며, "사람들이 걷기 불편해도 홍대 거리를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 예측 불가능한 만남과 경험, 즉 '사회적 기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인데, 현재의 레드로드에는 이러한 고민이 부족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결국, 행정적 성과와 시각적 통일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홍대라는 '도시'가 가진 복합적인 의미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답'이 아닌 '과정'을 디자인해야 홍대 레드로드는 우리 사회의 공공디자인이 '사악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남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정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공공디자인은 단번에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때로는 갈등하고, 또 함께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판'을 짜는 것에 가깝다. 단순히 거리를 붉게 칠하고 구역을 나누는 행정 조치 대신 지역 예술가와 상인,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작은 실험들을 꾸준히 시도하며 점진적으로 공간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화려한 수상 실적이나 단기적인 방문객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홍대 거리의 미래는 또 다른 색으로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과정'을 디자인하는 데에 달려있다. 강현지 기자(hyunji0212@g.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