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에서 배움의 길을 찾는 청소년들이 이번에는 '정책의 주인'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원사업을 통해 자격증을 따고 창업을 준비한 경험,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난 가족의 변화 등 구체적인 사례가 공유되며, '학교 안팎을 가르지 않는 청소년 정책'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제기됐다. 서울특별시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주관한 성과공유회 및 정책박람회 'Dear L.E.D.'가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개최됐다. 센터는 배움의 경험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청소년들을 'LED(Learning Experience Designer)'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교밖청소년이 당사자로서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지원사업을 통해 성장·변화한 우수사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 1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회사에 나선 서현철 서울특별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센터장은 "서울시에서는 매년 1만 명의 LED가 탄생한다. 도시를 밝혀줄 별 같은 친구들이 스스로 배움의 경험을 디자인하며 사회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밖청소년과 함께한 꿈드림 교사·대안교육기관 교사·멘토·인턴십 기관 관계자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들이 결코 빛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성과공유회 첫 사례 발표에 나선 송하준군은 디지털 의약품 관리 서비스 '필리오'를 소개했다. 그는 "창업동아리 지원사업을 통해 각자 맡은 기획·디자인·개발 영역에서 전문성을 검증받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고립은둔가족지원사업에 참여한 한 보호자는 "아이가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부모인 저도 세상 밖으로 던져져 소외되는 상실감을 느꼈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센터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고민을 가진 부모들과 '그 마음 나도 안다'를 나누면서 해결보다는 이해를 배웠고, 그 연대감이 저를 다시 숨 쉴 수 있게 해줬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아이가 변화가 더디면 불안하고 방 안에만 있으면 조급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을 쉼과 회복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아이의 속도와 감정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일경험 지원사업 '공중정원 기획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유하양은 "일경험 지원을 통해 공중정원을 기획하고 조경 모형을 직접 만들면서, 머릿속에만 있던 상이 실제 공간처럼 눈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조경 분야 진로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챌린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보호자는 "초등학생 자녀와 대화의 단절이 심했는데, 매주 아이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아이의 생각을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대화의 수준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유치한 프로그램까지 부모가 같이 해야 하나' 싶었지만, 막상 참여해 보니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게 됐다"며 "다른 곳은 아이만 참여시키고 부모는 밖에서 기다리는데, 이곳은 부모도 함께 참여해 아이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어 "잘못된 학생은 없고, 잘못된 부모의 교육 방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턴십 지원사업에 참여한 김가빈양은 "꼭 한 번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청소년문화공간 JU'에서 인턴십을 하며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손님이 많아 몇 마디 영어 문장을 외워 응대하면서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고 편하게 대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기업가정신 해외탐방에 선발돼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경험에 대해 "우메다 공중정원, 100년 넘은 오므라이스 가게, 오사카 엑스포 등 산업·문화·기술 공간을 직접 탐방하며 팀원들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우리가 해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창업동아리 지원사업에 참여한 '동글지대' 팀의 조이현양은 "청소년들이 필요한 지원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앱 서비스 '틴커벨'을 개발하고 있으며, '학교밖청소년 마음돌봄 데이'를 주최하는 등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자리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와 같은 청소년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활동이 더욱 뜻깊었고, 앞으로도 청소년들의 정보 사각지대를 둥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곧이어 '정책제안 토크콘서트-배움의 경로를 다시 그리다'가 진행됐다. '학교밖청소년과 함께 만드는 미래 정책'을 주제로, 전문가, 학교밖청소년 등이 함께 참여해 현장의 경험과 공공정책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정책 대화의 장을 펼쳤다. 학교밖청소년 우예인양은 "센터에게 학원비와 응시료를 지원받아 제과제빵 학원에 다녔고, 자격증도 여러개를 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턴십으로 실제 케이크 가게에서 손님에게 판매하는 경험을 쌓고, 올해는 일본 디저트 기업 탐방까지 다녀오며 '내가 가지 못한 세상이 이렇게 넓고 멋지구나, 뭐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시야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교밖청소년이 늘어난 만큼, 장학금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좋겠다"고 정책을 제안했다. 최새연 서울시 청소년육성위원은 "중학교를 마친 뒤 일반고 대신 대안학교에 진학했지만, 행정상 '학교밖청소년'으로 분류됐다"며 "청소년 관련 회의체와 의회가 많지만, 정규교육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일정과 경험에 맞춰져 있어 학교밖청소년의 고민을 진정성 있게 다루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청소년을 미성년자,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 때문에 사업도 거기에 맞춰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며 "청소년기본법에서 정한 만 9~24세 기준이 청소년 정책 전반에서 통일된 기준으로 쓰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김민승군은 "학교밖청소년이 대회나 콘퍼런스에 나가려 하면, 생활기록부 제출이나 '초·중·고 재학생만' 참가하도록 한 규정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좋은 아이템과 역량이 있어도 출전 자체를 못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처음 공고를 낼 때부터 학교밖청소년의 참가를 전제로 규정을 정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밖청소년 김재경군은 교내에서의 차별과 모욕적인 발언으로 자퇴를 선택한 뒤, 센터에서 처음 제안받은 사업이 학업지원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재 지원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마음의 병을 앓으면서도 수능에 도전할 수 있었다"며 "서울시 학업지원금과 서울런, 그리고 꿈드림 선생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김군은 "학교 안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연 1200만원 수준인데, 전국 학교밖청소년에게 돌아가는 학업지원금은 60만원 정도에 그친다"며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100만원과 인터넷 강의를 지원받지만, 여전히 교육받을 권리에서는 뒷전"이라고 짚었다. 그는 "심사와 지급까지 두 달 가까이 걸리는 구조를 고쳐 상시 심사·지급 체계를 도입하고 예산을 늘려, 카드값 결제일을 걱정하지 않고 제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학교밖청소년 한혜민양은 "학교 밖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 꿈을 쫓는 시간은 의미 있지만, 언젠가는 대학과 취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불안이 컸다"며 "학교생활기록부가 없다는 이유로 원서조차 넣어보지 못하거나, 서류 단계에서 벽을 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밖청소년이 어떤 전형과 경로로 대학에 진학했는지 통계와 성공 사례가 더 많이 공개되고, 정보가 잘 정리돼야 후배들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며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전용 학습공간과, 대학에 진학한 학교밖청소년 선배들과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소속의 김희진 학교밖청소년연구센터 센터장은 "학교밖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해오며,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와 욕구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로 탐색을 위해 주체적으로 학교를 나오는 사례와 부모의 지지가 늘었지만, 여전히 차별·낙인·제도적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청소년들이 제기한 학업지원, 입시, 경진대회 참가 문제는 연구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학교 안팎을 가르지 않고, 청소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 참석한 한 보호자는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의 공백을 짚었다. 그는 "꿈을 찾아 학교 밖으로 나온 친구들도 대견하지만, 방 안에서만 지내며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점을 정책 담당자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며 "서울 시내 여러 기관을 이용해 봤지만, 고립·은둔 상태의 청소년이 이용하기에는 공간 분위기가 거칠고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고립·은둔을 다루는 전문기관은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청소년 시기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전담 센터와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은 거의 없다"며 "방 안에만 있는 아이들의 특성상 담당자가 자주 바뀌지 않고, 12~2월 예산 공백으로 프로그램이 끊기지 않도록 안정적인 예산과 인력을 보장해 달라"고 촉구했다. 본행사가 마무리된 후 참가자들은 ▲나만의 작은 정원 만들기 ▲포토부스 ▲동물 '캐릭커쳐' ▲근로권익캠페인 ▲동아리 전시부스 ▲인턴십 영상전시 ▲멘토링전시 등에 참여했다. 주호돈 서울시 청소년정책과장은 "지금은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서울시는 청소년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현장의 참가자는 "학교밖청소년의 정책 참여권을 논하고, 전문가와 청소년이 함께 정책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학교밖청소년이라는 말은 행정상 분류일 뿐, 이들의 가능성과 인격, 미래를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니다"라며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인 삶의 주인공을 응원한다"고 했다. 취재진을 만난 학교밖청소년은 "센터는 '왜 안 나오니'가 아니라 '괜찮아, 너의 속도로 오면 돼'라고 말해주는 곳"이라며 "마음의 상처가 있는 더 많은 은둔·고립 청소년과 부모들이 센터를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학교 안팎을 넘어 모든 청소년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차별과 편견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공익저널·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차종관 기자(chajonggwan.me@gmail.com)
'인천 사람에게 건대는 약속 취소 사유'라는 말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천에서 건대입구나 대학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환승과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 감각은 요즘 유행하는 숏폼 브이로그에도 반영돼, 서울 약속을 위해 새벽부터 준비하는 일상이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이는 수도권과 서울이 지하철로 연결된 하나의 생활권처럼 보여도, 실제로 수도권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수도권 학생들에게 '통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서울 대학'이란 용어 자체가 사회의 경쟁 및 진로 목표로 자리잡으며, 지방 및 경기권 대학보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열망이 커졌다.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의미다. 많은 대학생들은 오늘도 새벽에 지친 몸을 일으키며 몇 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향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청년들의 하루는 길 위에서 시작해 길 위에서 끝이 난다. 실제로 대학가에서는 "경기도에서 통학하는데 왕복 네 시간이 걸려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푸념이 잇따른다. 일부 학생들은 통학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강의를 하루에 몰아 듣거나, 수강 신청 실패 시 학기 계획 전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또한 국민대학교 등 지하철 역과 거리가 먼 대학의 학생들은 지하철에서 환승한 뒤 버스를 또 이용해야만 학교에 올 수 있다. 출근길 직장인 못지않은 '지옥의 통학길'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주요 대학과 수도권 주요 지역 간의 이동시간과 거리를 예로 들면, 김포가 본가인 학생이 건국대학교를 통학하려면 환승 3회에 왕복 3시간에서 3시간 반이 걸린다. 또한 안산에 거주하는 학생이 국민대학교를 다니려면 환승 3회에 왕복 약 4시간이 소요된다. 그렇다면 왜 수도권 청년들은 긴 통학의 부담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서울 소재 대학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거주 지역이나 통학 거리 등 입지에 맞는 대학을 선택해 진학하기가 어려운 실정인데다, 대학 '기숙사 수용률'의 한계와 '서울 대학가의 높은 월세'가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2025년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전국 평균 22% 수준에 불과하고, 서울 주요 대학은 대부분 20% 안팎으로 낮아 수도권 학생들의 주거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대학은 '원거리 학생 우선 선발'을 원칙으로 두고 있어, '지방'으로 분류되지 않은 경기도권은 기숙사 선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현실에, 기숙사에 입주하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가 주변 원룸을 구해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서울 원룸의 임대료는 약 10% 이상 상승했다.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의 월세는 평균 60만 ~70만 원대로, 관리비를 포함하면 월평균 78만 원 수준이다. 대학생 평균 생활비가 약 67만 원인데, 이는 생활비 전체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또한 통계청에 따르면 부모 지원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대학생이 전체의 약 60%인데, 높은 월세 부담은 결국 공부 활동시간을 줄이고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몰리게 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억대까지 치솟은 보증금까지 고려하면 대출 접근이 제한적인 대학생들이 감당할 만한 원룸을 찾기조차 쉽지 않게 된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선 월 최대 20만원을 10개월 동안 지급하는 '청년 월세제도' (서울 기준)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 수혜자는 청년 인구의 약 2~3% 수준이다. 또한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월 10~14만 원 수준의 공공형 주택 공급인 '희망하우징'을 운영하고 있으나, 전체 대학생의 1% 내외만 입주 가능하다. 결국 이 문제의 근본에는 '서울 집중화'가 자리하고 있다. 교육과 일자리, 문화가 서울로 몰리면서 수도권 외 지역 학생들은 물론,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대학생들이 서울을 향해 아침부터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김민주 기자(mubinzu824@gmail.com)
인천 연수구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와하’라는 이름의 이 곳은 난민 및 여성 이주민들이 위기 상황이나 환경적 어려움 속에서 쉼과 회복을 찾을 수 있는 ‘오아시스’로 운영된다. ‘한국이주인권센터’의 활동가이자 ‘와하’ 커뮤니티의 실무, 책임 역할을 담당하는 박정형 씨는, 2018년 4월을 시작으로 꾸준히 이 공간을 관리하고 지켜오고 있다. Q. 센터장님 소개와 함께 ‘와하’가 어떤 곳인지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이주인권센터의 활동가 ‘박정형이라고 해요. 저희 센터는 2001년에 만들어졌어요. 처음부터 아랍/난민 무슬림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시작은 산업 연수제였죠. 저 역시도 초창기에는 산업 연수제와 관련해 이주노동자분들과 상담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2016년쯤 도움을 얻으려 무슬림 난민분들이 인천 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게 첫 만남이었어요. 센터가 원래는 부평구에 있었는데, 운영진과 협의 후 연수구로 이사했어요. 감사하게도 이전 사실이 알려진 이후 많은 아랍 여성 분들이 와서 굉장히 환영해 주셨었어요. 개소식 때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요. 정리하자면 저희 ‘와하’는 아랍/난민 무슬림 여성분들을 위한 편안한 공간이자 쉼터를 목표로, 인천 내 아랍권 커뮤니티와 그 커뮤니티의 여성분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현장에서 보셨을 때 느끼신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일자리 문제죠. 난민, 인도적 체류자분들이 주로 받는 게 G 비자 거든요. 이 비자 자체로는 취업할 수 없는데, 사업주와 고용 계약서 작성 후 출입국, 외국인청에 가 취업 허가를 받으면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출입국, 외국인청 직원분들이 난민, 인도적 체류자를 상대한 경험이 많이 없으세요. 그러다 보니 서류를 준비하고 찾아가, 근거를 설명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G 비자 카테고리 자체가 표준 비자 분류로 처리되지 않는, 여러 특수 사정의 외국인을 위한, 어떻게 보면 약간 잡다하다고 할 수 있는 비자에요. 이러다 보니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인데도 정부, 지역사회에서 취업 관련 지원이나 프로그램, 설명이 아예 부재한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사실 불법으로 일할 수밖에 없죠.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요. Q. “무슬림 여성”에 특별히 더 관심을 두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어머니 분들이 혼자 오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게, 어머니 분들이 토로하시는 고민의 내용이 남편들의 것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거예요. 여성분들은 가정의 양육, 가사노동을 담당하며 실질적인 생활을 책임지는 존재에요. 남성분들의 상담 내용은 대체로 근무처에서의 불합리한 대우 문제에요 그런데 여성분들의 이야기에서는 타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오는 근본적인 고립감, 공동체 연결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이 깊게 느껴져요. 저에게는 어쩐지 그 분들의 그런 얘기들이 굉장히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여성분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가 무슬림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무슬림은 여전히 한국 사회 내에서 소수 중 소수에요. 그래서 사실 수용의 단계까지 왔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오히려 이들의 유입 이전부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고 느끼구요. 한국 사회가 무슬림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 여성들이 소극적인 피해자이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요. 이슬람이 가진 가부장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정 내에서 여성과 남성이 가지는 발언권과 결정권에서 크기 차이가 있다는 게 느껴져요. 다만 그런 측면만을 이슬람과 무슬림의 전부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안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무슬림 여성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무슬림을 이야기할 때 오직 이슬람이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적이고, 차별적인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담론 속에서 여성들은 영원히 피해자로만 남게 돼요. 이런 식의 담론은 당사자들 삶의 실질적인 개선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 내에 살아가는 무슬림 여성들의 주체적인 존재를 지우는 일이에요. Q. 센터 내에서 이주민 아동들을 위한 공부방도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학교생활 적응에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현장을 지켜보시면서 필요하다 느끼셨던 지원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공부방이 확실한 대안은 되지 못한다고 느껴요. 센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을 진행하는 거죠.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이주 아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아이들과 학업 성취도 부분에서 격차가 생기게 돼요. 아무래도 한국 사회는 교육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수학과 과학의 비중이 크죠. 어느 시점부터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니까요. 사실 안타깝죠. 왜냐하면 정말 어린 시절부터 봐온, “아 이 친구는 정말 총명하다.” 느꼈던 아이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벽을 느껴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Q. 센터를 운영하시며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언제일까요 아주 보수적인 가정의 여성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 여성분의 남편분이 이 공간에 오는 건 예외적으로 허락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면, ‘와하’라는 공간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죠. 센터가 여성분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 보존되길 바라요. 가끔 여성분들이 와하 공간을 대여해 행사라든지, 모임을 주최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또 ‘와하’라는 공간이 여성분들께 자원이 되어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죠. Q. 센터장님께서 꿈꾸시는 이주민과 한국인이 진정으로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 문화권이 힘을 받으려면 이주민들이 성장해야 해요. 이주민들이 기존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 세상이 건강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에요. 성공하는 이주민들의 사례가 많아져야 해요.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한국 사회를 경험하며 살아온 이주민들의 성공 사례가 필요해요. 이주 아동들은 부모님 나라(본국)와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진 존재에요. 이 아이들이 성장한다면 지금 제가 하는 활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저는 그때가 너무 기대돼요.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게 될 독자 분들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최근 이주민 혐오증이 심해지고 있어요. 시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 혐오를 조직적으로 표현하는 세력도 증가하고 있고요. 하지만 돈과 상품이 이동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이러한 이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주민들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끔 생각해요. 종종 이주민들을 불쌍한 사람이여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이런 분들은 기대와 다르게 실제 이주민들이 ‘불쌍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면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끼시죠. 이주민분들을 돕는 이유는 그분들이 불쌍해서가 아니에요. 정의와 연대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이주민들은 같은 사회 구성원이지만 제도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위치에 놓여있고. 차별적인 상황을 경험하고 있어요.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닌, 사회가 같은 구성원에게 동등한 권리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는 것이에요. 한국 사회 난민의 역사는 1970년대 베트남 피난민의 수용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1992년 12월 3일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2001년에 최초의 난민을 인정한 바 있다. 그 후 2011년 12월 29일 난민법안이 국회 본회에서 통과되었고,2013년 7월부터 난민법이 제정돼 시행되기 시작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었어요. 참고할 수 있는 선행 사례, 예시 자체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가정 구성원들의 기초적인 생활과 정착을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사자분들과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때그때의 요구사항과 필요를 보충해 나가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박정형 활동가가 어려움에도 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동기는 아랍/난민 무슬림 여성들에게 가진 깊은 애정, 그리고 정의와 연대를 향한 신념이었다. 아직 변화는 완성되지 않았다. 박정형 활동가의 ‘와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신수민 기자(necrotixm@gmail.com
대학 내 인권 단체들의 존립 위기 원인으로 대학사회 내 ‘백래시’와 ‘학생 사회 내 의사결정 구조’가 지목된다. ‘백래시’란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뜻하는 용어로, 페미니즘 등 진보적 사회 의제에 반대하는 경향을 지칭할 때 쓰인다. 인권 기구 폐지 담론에 페미니즘, 퀴어 등 진보적 의제에 대한 주류 사회의 반발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송지현 전 중앙대 성평등 위원장은 올해 일어난 대학가의 인권 기구 폐지에서 나타난 ‘백래시’가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는 점을 짚었다. 송 전 위원장이 활동했던 중앙대 성평위는 2014년 중앙대학교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뒤 총학생회 산하에 설치된 기구다. 중앙대 성평위 폐지는 지난 2021년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위원회 폐지 연서명 게시글에서 시작됐다. 이어 10월 8일 총학생회 운영위원회에 성평위 폐지 안건이 올라왔고, 출석 인원 101명 중 59명의 찬성으로 성평위 폐지가 결정됐다. 회의에서 반성폭력위원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등 대안기구 설치가 제안됐지만 모두 부결됐다. 송 전 중앙대 성평등위원장은 지난 2021년 중앙대에서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된 이후 다수 매체에서 학내 인권 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해왔다.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송 전 위원장은 지난 9월 한국여성학회가 주관한 <성평등 민주주의 포럼: 함께 만드는 성평등 민주주의>에서 “총여-성평위-여가부 폐지 이데올로기를 넘어”라는 주제로 발제하며,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벗어난 성평등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 전 위원장은 고려대 여위와 성평위, 성균관대 정정헌이 폐지된 과정이 중앙대 성평위 폐지 과정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대학가에서 연달아 벌어진 인권기구 폐지의 근본적 원인은 '백래시'와 '대학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짚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Q. 중앙대 성평위 폐지와 올해 발생한 고려대 소인위-여위 통폐합, 성균관대 ‘정정헌’ 준강등 사건의 유사점은? “공통점은 ‘단체가 학생 사회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고 소수만을 대변하는 기구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것이 폐지 근거로 제기됐다는 점이다. 또 총학생회, 동아리 연합회 등 권위를 가진 학생회나 단체에서 특정 단체를 대상으로 공격적으로 추궁했다는 점, 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사전에 전제하고 나서 단체의 활동 목적이나 존재 의의를 물어본다는 점, 활동 목적성을 근거로 대며 ‘단체의 존재 의미가 학생 사회 전체를 대변할 수 없지 않느냐’하는 질문들을 던진다는 점이 유사하다. 중앙대 성평위 또한 ‘페미니즘을 기조로 활동한다는 점’과 ‘여성을 우선시하는 기구의 존재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Q. 대학가 인권기구 중징계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지? “우선 다수주의에 입각한 학생 사회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다. 총학생회, 동아리 연합회 등 주요 학생 기관의 의사 결정은 주로 다수주의에 기반한 표결로 이뤄진다. 하지만 학생 사회의 다수가 누군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생각했을 때 누군지 생각해 봤을 때, 그 다수는 페미니즘, 성소수자 인권, 기후 위기 등의 진보적인 의제들에 동의하지 않는 주류인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현재의 대학 사회의 구조 자체가 인권 기구들에게 억압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총학생회는 7,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세력이었던 총학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인데 그 당시의 (조직) 구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당시 대학 내 진보적 정치 세력으로 기능했던 총학의 역할은 지금의 특별기구, 인권기구가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구들이 총학 위주의 다수결 투표로 인준, 사업 결정, 회계권, 인사권 등 중대한 권한들을 할당받는 구조가 문제적이다.” Q. 학내 공감대가 사라지고 있음에도 인권 기구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사회 내에서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단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 등 모두의 공동 대응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일에 대응할 기구가 필요하다. 인권 기구들이 대학 사회의 공동체적인 삶을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Q 이러한 사건들을 대학 내 ‘탈정치화’라고 봐도 되겠는가? “‘탈정치화’는 아니다. 탈정치화는 ‘억압 세력들이 정치에서 벗어나는 과정’인데, 해당 사건들은 ‘공격적인 정치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보수적인 의제들의 정치화 과정’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Q 학내 인권 기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까? “(다소 이상적이긴 하지만)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총여나 성평위 등의 대학사회 내 구조적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억압을 받고 있는 기구들이 대학을 넘어 대학사회 구조 자체에 저항하는 공동 대응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수영 기자 (suyoung8649@gmail.com)
대학 내 인권 특별기구들이 연이어 징계를 받으며 존립 위기에 놓이고 있다. 올해 4월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이 중앙동아리로 강등된 데 이어, 6월에는 고려대 소인위·여위의 신설 합병 징계가 잇달아 결정됐다.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소인위)와 여학생위원회(여위)는 6월 1일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에서 통폐합과 감사 실시 안건이 논의된 뒤 신설합병 징계를 받았다. 두 기구는 새 조직인 ‘여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로 통합됐고, 정기 전체대표자회의 인준을 거쳐 2학기부터 단일 기구로 출범했다. 신설합병 징계는 기존 특별기구가 모두 소멸하고 새 기구가 이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통폐합 결정이다. 이에 두 단체는 징계 재심의를 요구하는 이의제기서를 두 차례 제출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또한 두 기구는 학내외 구성원 1,067명의 연서명을 받아 ‘여위·소인위 징계성 통폐합 및 감사위원회 설치 규탄’ 입장을 총학생회에 전달했지만, 총학생회 ‘바다’는 연서명 일부를 허위 사실로 규정하고 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총학생회는 이에 대한 추가 대응 방침도 밝혔다. 중운위가 ‘신설합병’이라는 중징계를 결정한 주요 사유는 ‘활동 목적의 불분명성’이다. 특히 “외부 연대 활동이 기구의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여위는 기후정의행동의 ‘다이인(Die-in) 퍼포먼스’에 참여한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전학대회 학생 대표자들은 해당 활동이 여성 인권 신장이라는 여위의 설립 목적과 무관하다며 재인준을 반대했다. 소인위는 ‘노동절 전야제 공동 주최’가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중운위는 두 기구 모두 ‘학내 사업 수행이 미비했다’고 결론 내리고 합병 수준의 징계를 의결했다. 학내 특별기구에 ‘합병’ 징계가 내려진 것은 이례적이다. 소인위와 여위 대표자는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행사들은 매년 활동 계획에 포함됐고, 이전까지 중운위에서 문제 없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기존에 문제시되지 않았던 활동들이 올해 전학 대회에서 징계 사유로 지목된 것이다.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도 ‘활동 인원 미비’를 이유로 중앙동아리에서 강등됐다. 정정헌은 이후 활동 인원 명부 등 추가 자료를 제출했으나, 성균관대 동아리연합회는 “사진상 활동 인원이 부족해 보인다”는 이유를 들며 준강등 처분을 유지했다. 대학 인권 단체에 중징계가 이어지면서, 학내 소수자 인권 보호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려대 여위는 총여학생회의 후신으로 약 30년 동안 여성 인권 보장을 담당해왔으며,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사실상 유일한 여성 자치 기구로 활동해왔다. 소수자인권위원회는 2016년 학내 인권 침해 사건을 계기로 신설된 이후 소수자 권리 증진을 담당해왔다. 여위와 소인위는 기본 기조부터 서로 다르다. 여위는 ‘여성주의’에, 소인위는 ‘상호교차성’에 기반해 사업을 진행해왔다. 사업 내용도 구분된다. 소인위는 ‘인권 가이드 배포’, ‘배리어 프리 사업’, ‘비건 간식 사업’을, 여위는 ‘생리대 배치’, ‘성폭력 대응 창구 운영’ 등을 추진해왔다. 두 기구가 사실상 통합되면서, 각자 맡아온 별도의 기능을 대체할 조직은 사라지게 됐다. ‘민주적 학생사회를 위한 고려대 공대위’는 지난 6월 기자회견을 통해 “여위와 소인위의 신설합병 결정은 대학을 거점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고, 여성·소수자 담론을 이어오던 특별기구의 자율적 활동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치”라며, “민주적 학생사회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백래시의 맥락을 지닌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잇따른 징계가 단순한 운영 문제를 넘어, 대학 사회 전반의 인권 담론이 후퇴하는 신호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학이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축해 온 제도가 약화되는 가운데, 학생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김수영 기자 (suyoung8649@gmail.com)
한양대학교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가 불명확한 기준으로 중앙특별위원회(이하 중특위) 기구 3곳에 중징계를 선고해 갑작스럽게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 대상 기구들이 당혹감을 겪고 있다. 지난달 14일 한양대학교 총학생회는 중특위 소속 성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성소위), 장애학생인권위원회(이하 장인위), 법제위원회(이하 법제위)의 징계 공고를 게재했다. 공통적인 징계 사유는 '자금사용 증빙자료 미비'였고, 장인위는 '임시인준사업의 정식인준 누락'이, 법제위는 '자금 초과 지출'과 '사업 비대상자의 혜택 수령'이 추가됐다. 성소위와 장인위는 경고 1회·사과문 게재·금학기 총학생회비 배분액 50% 삭감, 법제위는 경고 1회·사과문 게재·금학기 총학생회비 배분액 100% 삭감 처분이 내려졌다. 1년 내 2번 이상의 경고를 받은 기구는 중운위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 해산 또는 합병을 제의할 수 있다. 이는 중특위에 부과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징계가 내려진 것으로 사실상 '최고 수준'의 제재다. 하지만 중운위의 '자금사용 증빙자료 미비' 기준이 불명확한 데다가 예년과도 크게 달라져 과도한 처분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금사용 증빙자료 미비' 항목이 근거한 총학생회칙은 자금운영세칙 제2장 제5조(증빙 원칙)다. 증빙 원칙 제1·2호는 거래 상대에 따라 카드전표·현금영수증·세금계산서 또는 인적사항을 증빙자료에 구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제3·4호는 제1·2호의 예외규정으로 3만 원 이상의 거래는 이체영수증과 거래내역서를 모두 구비함으로써, 3만 원 이하는 간이영수증으로 갈음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중운위가 예외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해 제1·2호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며 혼란이 발생했다. 지난 9월 전학대회는 성소위·장인위·법제위의 지난 학기 자금사용 증빙자료 일부가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골자로 사업 사후 인준을 부결했다. 총학생회장은 "증빙자료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 (총)학생회칙에 증빙자료가 다 명시돼 있다"라며 회칙에 따른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중운위는 '(자금사용 증빙의) 심각성과 중요도를 알고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는 데 의견을 모았고 경고·사과문·총학생회비 배분액 삭감을 모두 포함한 중징계를 선고했다. 이에 성소위와 장인위는 증빙 원칙 제3·4호에 맞춰 유효성이 미인정된 사항에 대한 추가 증빙자료를 제출하고 지난달 7일 열린 중운위 회의에 참석해 소명 절차를 진행했다. 성소위는 거래액에 따라 이체영수증과 거래내역서 또는 간이영수증을 제출했고 장인위는 모든 거래액이 3만 원을 넘겨 이체영수증과 거래내역서가 함께 필요했으나 거래내역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운위는 두 기구 모두에게 재차 '보다 상세한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장인위의 소명 차례 때는 ‘거래내역서’의 누락을 지적하는 대신 김기환 중앙집행위원장은 "바람직한 사례는 매출 전표다", 이재준 사범대학교 정학생회장은 "카드 전표, 현금영수증, 세금계산서가 당연히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등 증빙 원칙 제1·2호 상 명시된 서류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 이어졌다. 홍혁민 장인위 위원장이 증빙 원칙 제1·2호 준수가 어려운 상황이 있음을 호소하며 예외규정의 효력 인정을 요구하자 이재준 사범대학교 정학생회장은 "지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한 기구의 장으로서 과연 하실 만한 말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날이 선 반응을 보였다. 정문서 총학생회장은 "회칙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지난 몇 년간 문제없이 잘 진행되어 왔다. 회칙 해석에 대한 (협의를) 요청하거나 미리 파악을 한 다음 자료를 구비해야 했다"라고 했다. 반면 지난해 전학대회는 간이영수증, 수기로 작성된 견적서, 은행 앱 조회 내역 등 간소화된 서류도 증빙자료로써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증빙 원칙 제3·4호 상 명시된 '이체영수증'과 '거래내역서'는 '카드 전표'처럼 표준 형식이 있는 서류가 아니므로 다양한 해석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학대회와 중운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등 모호한 기준을 사용해 제3·4호에 대한 논의를 일축했고, 협의 부족의 책임을 집행 기구인 중특위 기구에 일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소위와 장인위는 지난해 전학대회를 바탕으로 자금거래 증빙자료를 준비했는데 이번 학기 들어 유효성 인정 기준이 많이 달라진 데다가 파악하기 어려워 징계를 피하기 힘들었다는 입장이다. 징계 대상 기구의 향후 운영이 위축될 우려도 제기된다. 중특위는 총학생회와 중항집행위원회가 관장하기 어려운 특수한 기능을 전담하는 기구로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경우 대체하기 어렵다. 홍혁민 장인위 위원장은 "예산을 항상 아껴 사용하고 회계 잔고가 0에 가깝게 운영을 하고 있다. 2학기 사업은 운영할 수 있겠으나 갑자기 필요한 사업이 생기거나 다음 학기를 꾸릴 때 지장이 갈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준서 성소위 위원장도 "학생 실태 조사같이 장기적으로 큰 사업을 기획하고 있는 경우 중간에 예산을 못 받게 되면 지장이 생긴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편 총학생회는 여러 차례 해당 사안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전학대회와 중운위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응답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안재현 기자 (screamsoloo@gmail.com)
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대학문화유니온 주관의 '2025 대학생 RUN'이 개최됐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느려도 괜찮아, 함께 달리자!'로,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 하루만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MZ세대가 이끌고 있는 러닝 문화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취미가 아니다. '기부 런' 등의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달리기는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선한 문화가 됐다. 이날도 600여명의 참가자들이 대학생의 상징인 '과잠'을 입고 문화비축기지 산책로를 찾아 3㎞·5㎞ 코스를 달리기 위해 모였다. 행사에 앞서 수도권 13개 대학에 '러닝캡틴'을 두고 4500여명에게 홍보한 덕분이다. 접수 부스에서 배번호와 반다나를 지급받은 참여자들은 운동장에 모여 행사 의료팀장의 안내사항을 전달받았다. 이해지 기획단장은 개회식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에세이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라며 매일 꾸준히 달리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고, 이러한 꾸준함이 자신에게는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며 "오늘 함께 멋진 우리를 마주하자"고 외쳤다. 김삼렬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은 "일제 시대에도, 군사 독재 시대에도 학생들은 들고 일어나 나라를 되찾았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여러분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광희 RunOn(러논) 대표의 주도로 스트레칭을 마친 참가자들은 달리기에 나섰다. 코스 곳곳에는 치어풀이 마련됐다. 행사 취지에 맞게 "독립운동가분들의 헌신으로 이룬 나라, 그들의 뜻을 이어 달립니다", "경쟁으로 지친 마음, 달리면서 모두 날리자" 외에도 개별 동아리의 의제를 담은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코스를 완주한 참가자들은 기념품으로 완주메달, 카라비너,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이어 취업·기후위기·세대갈등 등을 다루는 체험부스에 몰려 이벤트 및 연서명에 참여했다. 취재진을 만난 참가자 류민선(22)씨는 "러닝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다. 독립유공자를 돕자는 좋은 취지여서 참여하게 됐다"며 "기록이 아닌 완주에 의미를 두고 뛴 것도 마음에 들었고, 서로간의 연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김모(23)씨는 "끝까지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최측이 각자의 속도와 안전을 강조해줘서 따듯했다"고 전했다. 곁에 있던 이모(21)씨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뛰며 연결되는 것 같았다. 유공자 분들을 위한 기부까지 이뤄져 보람차다"고 덧붙였다. 클로징 콘서트에는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팀 '호레이', 치어리딩팀 '유니스', JTBC 프로그램 '싱어게인4'에 2호 가수로 등장해 '치고 달려라'를 부른 밴드 '타카피'가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현장에 부스를 차린 독립유공자유족회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우리를 돕겠다고 해서 감사하고 기특하다. 독립유공자가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데, 이런 행사가 있는 덕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대학생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살펴 바른 나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달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는 희망이 있다"고 웃어보였다. 또 다른 독립유공자유족회 관계자는 "기부금을 통해 어려운 분들에게 긴급생계비를 지원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지 기획단장은 기자회견에서 "MZ세대 문화로 자리 잡은 러닝을 통해 경쟁과 갈등으로 지친 대학사회에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확산하고자 행사를 기획했다"며 "경쟁·갈등·혐오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대학생들이 연결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행사가 처음인데도 흔쾌히 도와주신 독립유공자유족회와 마이피클, RunOn(러논), 소이조이(한국오스카제약), 천호앤케어, 첫번째펭귄부스에 감사하다. 덕분에 대학생 주도로 의미있는 행사를 열 수 있었다"고 전했다. 대학문화유니온은 '2025 새내기 교양대학(UFLA)'을 계기로 간호·정치외교·기후·경제·문학·미디어 등 7개 분야의 동아리가 모여 지난 8월 발족한 연합체다. 대화와 소통의 대학문화를 창조하고, 대학가에서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다. 단체는 내년 2월 새내기 교양대학을 준비할 예정이다. 대학생 RUN도 또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취재: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차종관, 임주영 *이 기사는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대학언론 대상 공유자료로도 배포됩니다.
아산나눔재단이 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마루180에서 소셜 섹터 관계자와 비영리스타트업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비영리스타트업 콘퍼런스 2025'를 개최했다. 비영리스타트업 콘퍼런스는 국내 소셜 섹터의 최신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아산나눔재단의 사회혁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아산 비영리스타트업'에 참여 중인 성장트랙 기관들이 수행해 온 사회혁신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올해 행사는 '뉴 필란트로피, 변화의 지렛대'라는 주제로 비영리스타트업들과 함께 비영리 생태계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포럼 수준의 라인업으로 구성해 개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엄윤미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비영리스타트업은 규모가 작은 조직인 만큼 지속가능성과 문제해결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필란트로피 활동가들이 협력해 더 큰 사회적 시너지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봉진 "기부는 하면서 배운다…스타트업처럼 시작하라" 첫 순서로 무대에 오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의 키노트 스피치는 행사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달궜다. 김봉진 창업자는 배달 앱 '배달의민족' 성공 후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대표적 필란트로피스트다. 김 창업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방식의 필란트로피를 강조했다. 그는 "2018년에 100억 원 기부를 처음 선언했다. 어떻게 할지도 모르고 일단 선언부터 했다. 먼저 질러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게 스타트업 정신이지 않나"라고 털어놨다. '기부도 해봐야 배우고, 직접 부딪혀야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아울러 김 창업자는 자신의 필란트로피 여정을 소개하며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는 기부'를 강조했다. 단순 자선이 아닌 사회 구조를 바꾸는 필란트로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부도 사업처럼 작게 시작해 검증하고, 필요하면 과감히 피보팅(전환)하며, 공식이 잡히면 대규모로 확장하는 스타트업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산나눔재단의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프로그램 소개가 진행됐다. 재단은 2021년부터 해당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혁신적인 초기 비영리 조직들을 발굴·성장 지원해왔다. 강은선 아산나눔재단 사회혁신팀 매니저는 비영리스타트업을 "기업가정신·기술·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초기 비영리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올해도 도전 트랙(초기 팀)과 성장 트랙(스케일업 팀)으로 나눠 총 8개 팀을 선발했다.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팀으로 첫 발표에 나선 장한우리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대표는 "2023년에 우유팩 70만 개를 모아 국가 재활용률을 0.04% 올렸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으로 국가 통계를 바꿨다는 게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에는 제주를 여행하는 렌터카 이용자들이 여행 중 커피박을 수거하는 '커피박 줍서예' 캠페인을 진행했다. 동시에 도내 커피박 재활용 체계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작은 자원순환 운동이 지역의 탄소중립 노력으로까지 확대된 셈이다. 박수빈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는 "이동약자가 이동할 때 겪는 심리적 장벽을 '부수는' 팀"이라고 단체를 소개했다. 계단뿌셔클럽은 수만 곳의 장소 정보를 모았지만 서비스 실제 사용자 수는 기대만큼 늘지 않는 문제를 겪었다. 박 공동대표는 "원인을 분석한 끝에, 앱에 데이터만 쌓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당사자들이 직접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설명했다. 그는 "서비스 UX에 변화를 줬다. 방문 리뷰 기능을 객관식으로 간소화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고, 리뷰 작성 시 '칭찬 팝업'을 띄워 이용자들이 성취감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자 단기간에 핵심 사용자 60여명을 확보하며 커뮤니티가 활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수영 자원(ZAONE) 대표는 "기업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 부산물, 재고, 자투리와 같은 휴면자원을 아이들의 교육 재료로 전환하고 있다"고 단체를 소개했다. 휴면자원이란 흔히 폐자원으로 분류되지만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서 잠들어 있는 자원을 뜻한다. 자원은 여러 제조기업과 협력해 쓰이지 못한 자투리 자원들을 수거하고, 이를 장난감·과학교구 키트 등으로 제작해 학교나 지역아동센터 등에 제공해왔다. 버려질 뻔한 재료가 아이들의 놀이로 되살아나고, 동시에 폐기물을 줄이는 자원 순환의 선순환을 만든 셈이다. 이 대표는 객석에 "사회 문제는 깊어지는데 왜 해결은 느릴까요?"라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여러 지표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가파르게 심화되고 있지만, 비영리 조직들의 전통적인 대응 방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자원은 현장에서 검증된 해결책이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는 비선형 확산 구조를 모색했다. 작은 시범사업들이 '운동'으로 번져가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전략적 기부를 말하다" - 뉴 필란트로피 패널 토크 2부에서는 국내 필란트로피 분야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패널 토크가 펼쳐졌다. 각자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뉴 필란트로피'의 철학과 실천 과제를 논의했다. 모더레이터로 나선 박성종 아산나눔재단 사회혁신팀장은 "'필란트로피'란 그리스어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뜻하며 자선(체리티)과 달리 사회 문제 해결과 삶의 질 개선을 추구하는 실천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의 필란트로피는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패널로 참석한 연사들이 작은 자원을 지렛대 삼아 큰 변화를 만들어가는 필란트로피스트들이다"라고 소개했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2014년에 처음 '비영리스타트업'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는 모두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일반명사가 될 정도로 비영리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프로그램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며 "사람·조직·인프라 같은 기반을 잘 조성해야 비영리 생태계가 더욱 건강하고 풍성해진다"고 강조했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누구나 사회·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투자나 금융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유망 조직들을 돕고자 2022년에 자선자본을 활용한 필란트로피 지원 사업을 본격화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3년간 8개의 비영리 조직을 선발해 매년 1억원씩 최대 3년간 지원하고,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조직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도움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송인 봉앤설이니셔티브 사무국장은 "김봉진·설보민 부부의 뜻으로 설립된 봉앤설이니셔티브가 스타트업 DNA를 바탕으로 매우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조직 내에 기부자가 있어 함께 기획하고 즉각 피드백을 주고받는 짧은 의사결정 구조와, 재단·사단법인이 아닌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조직을 설립한 덕분에 하고 싶은 필란트로피 활동을 기동성 있게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육심나 카카오임팩트 사무국장은 "사회혁신가 약 3만명과 연결하는 지원 사업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이 임팩트의 크기를 키우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역량이 있는 혁신가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기술이 부족한 혁신가들도 많기 때문에, 카카오임팩트는 개발자 등 기술 전문가와 사회혁신가를 연결해주어 임팩트를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한 참석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실험을 이어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우유팩을 모으고, 계단을 기록하고, 버려진 자원을 되살리는 일 하나하나는 소소한 행동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연결될 때 사회 구조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참가 소회를 전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chajonggwan.me@gmail.com)
서울대 학생사회에서 학내 자치언론을 지원해온 ‘자치언론기금(자언기)'을 해산할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총학생회 회계감사위원회가 자언기 운영을 두고 “장기간 회·세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며 기금 장의 해임과 기구 해산을 요구했고, 이에 자언기 소속 언론들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 감사”라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자언기는 학내 자치언론에 인쇄비·취재비 등을 지원하는 총학생회 산하기구로, 현재 장애 인권 문집 <디스에이블>, 시사·기획 월간지 <서울대저널>, 문예지 <스누퀼>, 성소수자 언론 <퀴어플라이> 등 4개 언론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언기 재원은 학생회비에서 배분되지만, 각 언론은 편집권과 재정 운용에서 총학생회로부터 독립된 주체라는 인식이 학생사회에서 오랫동안 공유돼 왔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 9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제기된 자언기 예·결산 문제였다. 당시 자언기가 심사한 산하 언론의 회식비·다과비 집행을 두고 총학생회 집행부와 단과대 학생회 일부가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총학생회운영위원회(총운위)는 자언기 전반에 대한 특별감사위원회(감사위) 설치 안건을 통과시켰다. 감사위는 약 두 달간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소명을 받는 과정을 거쳐, 11월 초 '자치언론기금 운영에 관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위는 △최근 3개 학기 동안 자언기가 준회원 모집 공고를 하지 않아 신규 언론의 진입 기회를 구조적으로 제한한 점 △자언기 위원회 구성을 총운위 인준 없이 운영해 온 점 △정회원 언론들이 사비 지출 환급을 총운위에 보고하지 않은 점 △증빙 서류에 사업 진행일·담당자·세부 내역이 빠지는 등 「재정운용세칙」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위반 사항으로 적시했다. 보고서는 "장기간 회칙과 세칙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며 "기금 운영의 투명성·공정성·책임성이 중대하게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감사위는 특히 "자치언론기금이 목적과 맞지 않는 사용 내역을 구별하고 감사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학생회칙 제54조를 근거로 자언기 장의 해임과 기구 해산을 총운위·전학대회에 요구했다. 학생회칙에 따르면, 산하기구의 장은 회칙 위반으로 운영 파행의 정도가 중대한 경우 해임될 수 있고, 동일한 사유가 지속될 경우 해당 기구는 전학대회 의결을 거쳐 해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언기 소속 자치언론들은 18일 공동 성명을 내고 "학생회비의 투명한 집행이라는 감사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감사위가 자치언론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집행기구와 동일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반박했다. 성명은 "자치언론은 총학생회 집행기구가 아니며, 「재정운용세칙」 적용 대상도 아니다"라며 "이를 자의적으로 확대 적용해 자치언론의 재정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취재·편집 활동의 특수성도 쟁점이다. 감사위는 취재비·다과비·도서구입비 등에 대해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사업에 사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는데, 자치언론들은 이를 "취재원 보호 원칙을 침해하는 요구"라고 봤다. 자언기 측은 의견서에서 "익명 취재가 필수적인 민감한 사안에서 취재원과 동선, 세부 내역을 학생회에 보고하라는 것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글만 쓰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자료 제출 기한과 감사 방식 역시 논쟁거리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위는 10월 5일 추석 연휴 중 자언기에 수십 쪽 분량의 자료를 요구하며 사흘 뒤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했고, 자언기가 기한 내 회신하지 못하자 활동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자치언론 측은 "연휴 기간을 포함한 촉박한 일정과 반복된 추가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소명했지만, 감사보고서는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개선 의지가 없다'고 단정했다"고 반발했다. 무엇보다 자치언론들이 문제 삼는 것은 '처분 수위'다. 서울대저널은 별도 의견서에서 "현재 방식이 최소 3년 이상 유지돼 왔고 전학대회나 총운위에서 공식 문제제기가 없었는데, 명확한 지침 없이 관행을 유지해 온 구성원에게 갑자기 최고 수준의 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신뢰보호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치언론기금 운영세칙에 언론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 사용 기준을 신설하고, 자언기·총운위·자치언론이 함께 의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자언기가 해산되면 학내 자치언론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치언론의 현실을 반영한 재정 운용 지침의 부재에 있는 만큼, 기준 마련과 소통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언기 해산 여부는 향후 총운위와 전학대회 논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기에, 학생사회 내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대 사례는 최근 대학가에서 반복되는 자치언론 압박 양상과도 맞물려 있다. 동덕여대 교지편집위원회 〈목화〉는 지난 5년 동안 이사장 비리 의혹과 대학 본부의 공학전환 추진을 비판했다가 세 차례 검열을 당했으며, 2025년에는 학교가 "독립된 언론인 만큼 자체 재원을 확보하라"며 교지편집비 지급을 사실상 중단해 폐간 위기에 몰렸다. 이에 대해 대학언론인들은 "검열에 이어 돈줄까지 죄는 전형적인 언론 통제"라고 비판해왔다. 서울과학기술대 교지편집위원회 <러비>는 지난해 교지 계좌 관리 문제를 둘러싼 특별감사와 학내 여론 악화 속에서 폐간 수순을 밟고 있다. 여성주의 교지는 더 직접적인 존폐 압박을 받는다. 건국대·홍익대·동국대·연세대 등에서 총여학생회가 해산된 이후, 이들과 맞물려 운영돼 온 여성주의 교지들은 "페미니즘 편향" "남성 역차별" 등을 이유로 폐간 요구와 혐오 공격에 시달려왔다. 최근에는 1971년부터 이어져 온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이 중앙동아리 재등록 심사에서 탈락했고, 관계자는 "인권 동아리 전반의 존속 어려움과 맞물린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원지현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은 "서울대 자언기 사안은 학생사회 내부 권력이 자치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제하려 하는지 묻는 시험대"라며 "감사를 통한 해산 압박보다는 자치언론의 특수성을 인정한 별도 기준과 상호 협의를 통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치언론들을 '감시·규제의 대상'이 아닌, 함께 규칙을 만들어갈 학생자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며 "서울대 학생사회의 결정이 전국 대학 학생사회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chajonggwan.me@gmail.com)
지난 2021년, 외동아들인 A씨(당시 22세)는 대학을 휴학한 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8개월간 홀로 간병했다. 약 8개월간 입원치료로 청구된 병원비만 1,500만 원, 결국 월세가 밀리고 전화와 가스, 인터넷이 차례차례 끊겼다. 더 이상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 테니, 그전에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힘겨운 간병과 경제적 어려움에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결국 아버지를 방 안에 방치했고, 아버지는 끝내 숨졌다. 2021년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로 국가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간병청년 강도영(가명) 사건'이다. 현재 강도영 씨와 같은 영케어러는 정부 추산 약 1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1일 평균 간병비는 12만7천원, 한 달이면 381만원. 연봉 5,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실수령액 전액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무려 18만 명의 청년들이 홀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운 좋게 돌봄을 함께할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24시간 계속되는 돌봄에 지쳐가고, 그로 인해 학교, 직장 등의 일상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는 수많은 가족들이 돌봄 앞에서 좌절하게 만든다. 실제 간병 경험자의 61.2%가 간병 부담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바 있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위험이 되는 돌봄 공백 해소를 위한 대응을 사회・국가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은 1990년 커뮤니티케어법을 제정하여 지방정부에 지역 내 포괄적 케어서비스 제공 책임을 부여했고, 일본은 2013년부터 '병원・시설에서 지역・재택으로'를 목표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도입했다. 스웨덴은 1950년대 재가 돌봄서비스를 도입하고, 2001년 사회서비스법을 개정해 지역의 책임과 재량을 확대하는 등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이제껏 돌봄 제공의 책임을 민간 시설에 위임하고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 결과, 87%의 노인들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하지만, 간병 부담을 개인과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요양 시설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마저도 비용 문제로 열악한 시설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강도영 씨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8개월, 그가 내려야 했던 참혹한 선택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었다. 돌봄을 개인과 그 가정에 떠넘긴 국가의 실패였다. 18만 명 영케어러를 비롯한 돌봄 가정의 일상을 복원하고, 강도영 씨와 같은 안타까운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돌봄 체계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돌봄은 그 필요에 따라 어떤 내용을, 어디를 통해, 어떻게 제공받을지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폭 넓은 다양성을 띠는 서비스다. 단적인 예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의 돌봄 모델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과 같은 곳에 적용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영국, 일본, 스웨덴이 지방정부에 돌봄의 책임과 권한을 대폭 부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돌봄 확대의 출발점은 강도영 씨와 같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가장 가까운 곳,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돌봄의 확대는 당장 지원이 필요한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과 청년에게도 새로운 활력과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가 필수 일자리의 고용주로 역할하는 국가일자리보장모델을 활용해 지역의 돌봄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면, 강도영 씨처럼 혼자 간병을 떠안아야 했던 청년들에게는 실질적 지원을,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를 동시에 제공하여 개인과 지역 전체의 성장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 일본 나가야마는 지역 돌봄 체계를 확대하는 과정이 지역 재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역 돌봄 확대는 인력 확충 외에도 지역의료인력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화, 지역 보건·의료체계 확립 등 돌봄까지 이어지는 통합적 지원을 위해 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맞아 각종 지역 공약들이 준비되는 지금, 정치권은 '돌봄'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강도영 이후 대한민국, ‘돌봄’에 대한 정치의 책임있는 자세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공백 없는 돌봄'을 향한 지역의 첫걸음으로 만들길 바란다. 양윤찬 사회민주당 청년위원회(준) 운영위원(99nahcnooy@gmail.com)
2025년 11월 4일 이민자, 무슬림, 사회주의자인 34세의 젊은 정치인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1892년 이후 최연소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맘다니의 승리는 무엇 덕분일까. 선명한 민주사회주의 이념 덕분일까, 아니면 고물가에 지친 뉴욕 시민에게 생활 밀착형 민생 공약이 먹혀들었기 덕분일까.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공약을 통해 확보한 청년층 중심의 자원봉사자와 유권자들이었다. 맘다니의 주요 공약 가운데 ‘비현실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임대료 동결, 버스 요금 폐지, 소상공인 부담 완화 같은 공약은 언뜻 보면 거대한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급진적 정책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의 실제 설계는 철저히 뉴욕 시장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무상 아이돌봄, 최저임금 인상처럼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한 것들도 있다. (현재 뉴욕 주지사와 주 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맘다니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불리는 뉴욕 시장의 권한이 정확히 어디까지 미치는지 세밀하게 짚은 뒤, 그 안에서 ‘시장이 당선 직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 임기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공약을 구성했다. 유권자들에게는 이것이 신뢰로 이어졌다. ‘당선되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주면서 상대 후보가 ‘비현실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일 여지를 좁힌 것이다. 실제로 맘다니 공약을 비판한 이들조차 ‘실현 불가능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실현되면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대중이 열광하는 공약이라면 이런 비판은 선거 결과를 뒤집을 힘을 갖기 어렵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많은 사람들이 맘다니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올리는 ‘임대료 동결’ 공약이다. 뉴욕시에는 이미 전체 임대주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100만 채의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가 존재하고, 이들의 임대료 인상률은 매년 ‘임대료 가이드라인 위원회’(RGB)가 정한다. 시장은 이 9명의 위원 전원을 임명하며, 위원회는 임대료를 동결할 수 있는 재량을 가진다. 맘다니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새로운 법은 하나도 필요 없고, 제도는 이미 있고, 뉴욕 시장이 권한을 쥐고 있는데도 에릭 애덤스 현 시장이 그 권한을 쓰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맘다니의 ‘임대료 동결’은 ‘뉴욕의 모든 집세를 동결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활용해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를 동결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계획이다. 무료 버스 공약도 같은 맥락에 있다. 맘다니의 공약 이름은 Free buses(무료 버스)가 아니라 Fast, fare free buses(빠른 무료 버스)다. 사람들이 흔히 기억하는 것은 ‘버스 무료화’이지만 맘다니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사실 ‘FAST’, 즉 더 빠르고 편리한 버스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행정 조치였다. 버스 요금 무료화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 증세를 하는 문제는 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버스를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버스 전용차로를 확장하고, 버스 우선 신호를 늘리고,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한 전용 하역 구역을 만들고, 카메라 단속을 강화하는 일들은 굳이 주 의회의 입법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시장과 시정부가 가진 행정 권한만으로 추진 가능한 일이다. 이미 뉴욕시에는 일정 규모의 버스 전용차로를 확보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있다. 그동안 시장과 시정부가 이를 소극적으로 집행해 왔을 뿐이다. 맘다니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있는 법을 제대로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맘다니의 유튜브 선거 영상 ‘We owe 34th Street a dedicated Busway. So where is it?’는 이런 접근법을 압축한 것이다. 1분 44초짜리 영상에서 그는 이미 다른 구역에서 성공한 버스 전용차로 사례를 먼저 보여주며 자신이 제안하는 정책이 ‘실험’이 아니라 검증된 모델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이어 연방 교통부와 주민이 선출한 커뮤니티 보드가 이미 34번가 버스 전용차로를 권고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제안이 전문가와 주민 의견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 다음에는 왜 이 권고가 아직도 실행되지 않았는지를 짚는다. 에릭 애덤스 현직 시장이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현직 시장의 무능을 겨냥한 정치적 쟁점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으로 맘다니는 자신이 시장이 되면 어떤 절차로 이 정책을 채택하고, 언제까지 실행하겠는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짧은 영상 하나에 성공 사례, 정당성, 책임 소재, 실행 계획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건조한 정책 설명이 아니라 생생한 정치 서사다. 이미 성공한 사례, 권고했지만 묵살당한 전문가와 주민, 실행하지 않은 현 시장, 그리고 당선되면 실행할 후보라는 네 요소만으로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 속에서 뉴욕 시민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누구를 시장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을 유튜브 알고리즘에 맞는 길이와 리듬으로 편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Small Business, Big Priority’ 영상도 같은 문법을 따른다. 여기서 맘다니는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추상적인 구호를 반복하지 않는다. 과태료와 각종 행정 수수료를 절반으로 줄이고,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1:1 법률·재정 컨설팅 같은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내건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결국 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 상점 물가를 낮추는 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뉴욕의 작은 식당과 가게들을 진짜로 옥죄는 문제는 ‘경기가 안 좋아서’가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허가 서류, 알아듣기 힘든 행정 언어, 언제 끝날지 모를 인허가 지연 속에서 임대료와 인건비가 새어나가는 구조다. 맘다니는 바로 이 현실을 겨냥해, 관료주의와 허가 비용, 과태료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곧 ‘장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한다. 실제 골목 상인들이 느끼는 짜증과 불안을 언어로 정확히 포착해, 그것을 자신의 핵심 메시지인 생활비 문제와 일관되게 연결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 구조가 있었기에 맘다니 캠페인은 대규모 자원봉사자 군단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중 특히 주목할 만한 이들은 Z세대 자원봉사자들이다. 맘다니에게 투표할 수 있는 연령도 아직 되지 않은 16세의 아키 벤야민은 맘다니의 당선을 위해 거리를 누빈 100명의 고등학생 자원봉사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공동체의 느낌, 그리고 가깝게 느껴지는 이슈를 위해 단결하는 것”을 위해 자원봉사단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생존경쟁, 실업, COVID-19를 겪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갈망하던 청년층에게 맘다니의 선거 캠페인이 공동체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비롯해 맘다니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다양한 연령대, 문화, 인종, 언어의 10만 4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은 단순히 ‘좋은 사람 한번 밀어보자’는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아니라 ‘맘다니의 캠페인이 왜 가능한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는지’ 철저하게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민주당 뉴욕시장 경선 기간에만 가정 방문, 전화 등 직접 접촉 활동에 참여한 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160만 번 문을 두드렸고, 24만 7천 건의 대화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 경선 투표자 전체의 약 4분의 1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이렇게 맘다니의 캠페인은 수많은 유권자들, 특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청년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냈다.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2021년 선거에 비해 가장 많이 투표율이 늘어난 연령대는 40대 이하 유권자였고, 이들은 부모 세대까지 맘다니에게 표를 던지도록 설득했다. 그 결과 CBS 출구조사에 따르면 18세부터 44세 유권자들은 70%가, 처음으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66%가 맘다니에게 표를 던졌다. 맘다니 캠페인의 중심에는 늘 같은 질문, ‘당선되면, 어떤 권한으로, 언제까지,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가 놓여 있었다. 이는 진보 정치가 자주 빠지는 함정인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출마한 자리가 가진 권한 구조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오류를 극복한 것이다. 맘다니는 뉴욕 시장의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추상적인 단어인 맘다니와 그가 속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의 ‘민주사회주의’는 ‘맘다니에 투표하면 내 월세가 얼마나 줄고, 내 출근 시간이 얼마나 짧아지는지’와 연결되면서 뉴욕 시민들에게 비로소 설득력을 얻었다. 맘다니의 승리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선거는 당선 후 주어진 권한과 현실 정치 지형을 감안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싸움이다. 비현실적인 공약은 하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공약은 당선된 자리가 가진 법적, 행정적 권한 안에서, 임기 안에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좋은 캠페인 콘텐츠는 건조한 정책 요약이 아니라 정치 드라마여야 한다. 성공 사례, 정당성, 책임 소재, 실행 계획, 감정적 호소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자원봉사, 조직, 대중 접촉은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정치의 핵심이다. 대중을 만나고, 듣고, 언어를 다듬고, 메시지를 시험하는 과정 속에서만 ‘대중에게서 나와 다시 대중에게로 돌아가는’ 진짜 민생 공약이 만들어진다. 결국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나는 이 대안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왜 다른 후보는 못하고, 나만 할 수 있는가?” 기존 정치가 ‘대안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대안은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며, 당장 실행할 수 있다.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기존 정치가 그 대안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그 대안이 기득권의 이해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맘다니는 이 두 지점을 모두 정면으로 겨눴다. 이제 진보정치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을 넘어 대안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 준비위원장 이준해(junhae.lee1107@gmail.com)
대학언론에 ‘위기’라는 꼬리표가 달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 대학언론은 오늘도 위기다. 위기론의 지속은 ‘무엇이’ 위기인지, ‘얼마나’ 위기인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조차 희박하게 만든다. [대학언론 대담]은 방향 전환의 시도다. 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대학언론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 그들이 느끼는 뿌듯함, 그들이 느끼는 문제점, 그들이 떠올린 해결책을 듣는다. 정답은 없다. 명확한 해결 방안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많은 대학언론인들은 이야기한다. 대학언론은 존재해야 한다고, 대학언론은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왜’와 ‘어떻게’다. 대학언론은 왜 이어져야 하는가? 대학언론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 대학언론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부산대학교 언론사 <채널PNU>에서 지난 7월 1일자로 부대신문 편집국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는 교육학과 21학번 정윤서입니다. Q. <채널PNU>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부산대언론사 <채널PNU>는 1954년 창간한 부대신문, 1963년 개국한 부대방송국 PUBS, 1972년 창간한 효원헤럴드(영자신문)가 2022년 3월 통합하여 출범한 부산대학교 학생 미디어입니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한 세 조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로 마련됐습니다. 현재 <채널PNU>는 하나의 통합 뉴스룸으로서 ‘One Source Multi Use’를 바탕으로 보도부와 제작부가 협업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유기적으로, 하나의 조직처럼 운영되고 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처럼 부대신문과 효원헤럴드를 발행하고 부대방송을 송출하고 있어 차이를 못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보도부는 취재팀과 소통팀으로 구성되며 취재팀은 학내 소식과 지역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취재해 보도하고, 소통팀은 <채널PNU>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홍보물도 함께 제작합니다. 제작부는 영상제작팀, 영문뉴스팀, 방송뉴스팀, 양산제작팀, 밀양제작팀으로 구성되어, 각각 영상 기획·제작, 외국인 유학생을 주요 독자로 한 영문 기사 작성, 영상기사 제작, 오디오 프로그램 제작 등을 맡고 있습니다. Q. 세 언론사를 <채널PNU>로 통합한 뒤 변화한 점이 있다면. 세 매체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예산과 인력 등 자원이 결합됐고, 그 덕에 조직 규모 자체가 커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육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화됐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수습기자 때 취재, 영상 제작 등의 교육을 모두 받을 수 있어서, 하나의 언론사 안에서 PD와 기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강점입니다. 실제로 여러 역할로 활동하는 기자들도 있고요. 이렇게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이 가능한 구조는 다른 대학언론과 비교했을 때 정말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 매체의 특성과 작업 방식, 일하는 리듬 자체가 워낙 달라서 협업 과정에서 조율해야 할 일들이 많고, 그 과정에 적지 않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어요. 가끔 대학언론이지만 기성 미디어만큼 조율에 조율을 거듭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죠. 외부적인 측면에서의 고민도 있어요. 세 매체가 하나로 통합되다 보니 <채널PNU>가 학내 유일한 권력 감시 기구가 되어서, 그만큼 외부 견제나 압박이 한 곳으로 쏠리는 구조가 되기도 해요. 취재를 하거나 비판 보도를 해야 할 때 언론사가 하나밖에 없는 셈이니, 집중된 타겟이 된다는 부담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채널PNU>가 가진 교육적·구조적 강점은 분명하다고 보면서도, 통합 체제가 안고 가야 할 내부 조율과 외부 부담이라는 현실도 같이 감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Q. 언제 처음 대학언론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지. 2024년 3월에 수습기자로 들어와서 지금 2년 차 활동 중입니다.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언론·방송 쪽에 관심이 많았고 기자나 PD 같은 진로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입시가 생각만큼 잘 풀리진 않아서 우선 다른 진로를 택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공에만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대학언론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실제로 해 보니 제 성향과도 아직까지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 활동이 제 대학 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는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Q. 현재 대학언론이 마주한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동안 예산 부족, 인력 부족, 편집권 침해 등 대다수 대학언론이 직면한 다양한 위기들을 직접 취재하면서 ‘대학언론의 위기’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대학언론이 학내 부속 기구로서 존재하는 구조적인 한계나 독자 외면 및 감소 문제 역시 분명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뚜렷하게 체감하는 위기는 ‘기자 개인의 태도 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이전과 달리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난마저 가중되다보니 많은 대학생이 어떤 활동을 선택할 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얼마나 명확한 결과나 보상이 주어지는지를 먼저 계산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 기준에서 보면, 대학언론 활동은 비교적 시간이 많이 들고 즉각적인 성과를 얻기 어려운 활동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활동을 하더라도 학생 기자로서의 책임감이나 사명감보다는, 활동이 나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학언론 기자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유의미한 일이라는 인식이 분명했던 것 같고, 그만큼 사명감도 강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지금은 이 활동이 단순한 ‘스펙’면에서 나에게 얼마나 이로운지를 따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런 분위기가 결국에는 대학언론의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어렵게 하는 등 좋지 않은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것이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청년들이 도전할 여유조차 갖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지. 앞선 답변과도 이어지는데요, 저는 대학언론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청년들이 처한 사회 환경에 있다고 봅니다. 도전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지고 ‘실패하면 어쩌지’,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불안이 선택을 가로막는 구조입니다. 특히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는, 대학언론처럼 꾸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활동이 쉽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효율이나 성과 중심의 선택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기준으로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사회적 시선 역시 절실합니다. Q. 대학언론의 위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결국 청년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돌파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조금 늦거나 실패하더라도 경험 자체를 가치 있게 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청년들 자신도 1~2년 늦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대학언론은 그런 의미에서 성과보다 가치를 좇는 경험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알기 힘든, 지금처럼 경쟁이 과열되는 시대에는 그 역할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Q. 최근 <채널PNU>가 개최한 특별기획 세미나 ‘함께 쓰는 80년의 역사’도 비슷한 맥락인지. 이번 세미나는 부산대 언론사가 지금까지 발행한 콘텐츠들의 기록과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자리였습니다. 2022년 통합 당시 조직은 새롭게 정비되었지만, 기존 발행물들이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대학언론의 기록물로서의 중요성을 되짚고, 그 가치를 되살리고자 이번 세미나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Q. 위기에도 여전히 대학언론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대학언론은 단순히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학내의 유일한 권력 감시자이자, 캠퍼스 사회를 기록하는 중요한 주체입니다. 학내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이 존재하지만, 이를 외부 언론이 세심하게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그 안에서 대학언론은 캠퍼스 안팎의 현안을 밀도 있게 취재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됩니다. 대학언론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경제적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입니다. 광고나 수익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문제의식과 공적 책임감에 기반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의 상업 언론 환경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예민한 사안일지라도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런 역할을 대학언론이 가장 앞장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언론은 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기억을 만드는 언론’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되돌아봤을 때, 지금 우리가 경험한 대학 사회의 풍경과 고민, 그리고 청년의 언어가 고스란히 담긴 아카이브가 되어 줄 수 있죠. 지금은 많은 사람이 대학언론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대이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시기일수록 더더욱 대학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아도, 누군가는 공적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까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관심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학생들의 이야기를 가장 밀접하게 담아내는 건 대학언론이니까요. 많은 참여나 관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채널PNU>는 자극적인 사건이 있을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늘 현장을 누비며 학내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의 순간들에도 학우분들의 관심이 함께한다면, 저희에겐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언론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채널PNU>는 언론사 간 통합을 통해 코로나19 당시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많은 대학언론은 통합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되거나 내부 갈등을 빚는 등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즉각적인 보상과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 대학언론은 느리지만 꾸준하다. 천천히, 함께, 멈추지 않고, 그렇게 산을 넘는다. 김태섭 기자(taesub01@naver.com)
‘인공지능(AI) 전선’에 뛰어든 대학들의 커리큘럼이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인문계(대학입시 기준, 인문·사회 계열) 학생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인문계 학생도 AI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탄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학가, 너나없이 AI 교육 도입 중 많은 대학이 ‘AI 인재 확보’를 외치며 경쟁적으로 교육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첨단분야 학과를 서울 소재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이 증원하면서(89명) AI 중심 학과인 ‘의료인공지능공학과’와 ‘지능형네트워크융합학과’를 신설했다. 중앙대학교도 AI 학과와 산업보안학과의 정원을 늘리면서 의료 AI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점진적인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단국대학교는 ‘AI 캠퍼스’ 조성을 위해 단과대별 ‘AI-PD(Program Director)교수’를 배치했다. 인문계 학생의 좁은 취업길, 여전히 ‘문송합니다’ AI 중심으로 교육 과정이 재편되는 시대에 인문계 학생들은 여전히 취업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를 보면 인문계 취업률은 ▲인문계열 61.5% ▲사회계열 69.4%로 나왔다. 전체 대졸 평균 취업률 70.3%보다 낮은 수치다. 산업 전반에서 기술 기반 직무가 확대되면서 인문계가 기존의 강점만으로는 노동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워진 구조적 문제가 반영된 결과다. 이에 인문계 학생들은 대학원 진학이나 복수 전공 등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는 A 씨는 “인문계열 단일 전공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울 것 같다”며 “학사로는 부족할 것 같아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동국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 중인 B 씨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신입사원 623명 중 문과는 4명에 불과했던 점을 지적하면서 “사기업이 인문계열 인재를 잘 뽑지 않아, 전문직(로스쿨)이 살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문계열은 이제 AI 관련 복수전공이나 최소 상경 계열(경영·경제) 복수전공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균형·실용적인 교육과정 개편 요구돼… 인문계 학생도 ‘AI 핵심 인재’로 인문계 학생이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기존의 분리된 교육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문·이과 학생 교육은 균형적이라 보기 어렵다”며 “인문계열 학생 취업난의 근본 원인은 ‘인문은 이론, 이공은 실습’ 중심으로 구분된 교육제도와 산업 구조의 부조화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실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인턴십과 현장 중심 교육훈련을 확대하고, 통합적 산학협력 모델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직무 경험을 일찍부터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인문계 학생들이 ‘기술을 해석하는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융합 교육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인문계열생이 다양한 산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나가야 한다”며 “지금 인문계열 전공 학생에게 필요한 역량은 문제 정의력, 분석적 사고와 데이터·AI 리터러시”라고 밝혔다. 대학 총장들 “AI 활용에 인문학적 능력 필요해” 대학 총장들도 AI 중심 커리큘럼에는 인문학적 능력과 문제의식이 필수적이라 보고 있다.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은 지난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I는 본질적으로 기술에 불과하기에 인문학을 결합하지 않으면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며 “교육 과정 전반에 AI 활용을 필수적으로 도입하되,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질문 능력을 결합하는 플랜을 만들 것”이라 밝혔다. 이향숙 이화여자대학교 총장도 “AI 시대에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사회계열의 깊이 있는 통찰과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8월 한국대학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체계적인 인문·AI 융합 커리큘럼 도입 과제로 남아 다만 대학의 AI 융합 교육이 빠르게 확산하는 만큼, 실제 교육 인프라와 커리큘럼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Language & AI학부’와 ‘Social Science & AI학부’ 도입으로 AI 융합 교육을 작년부터 선보인 한국외국어대학교는 현재 교육 인프라와 커리큘럼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Language & AI학부 2학년 C 씨는 “학부 내 실습실이 부족한 상태”라며 “현재 전용 강의실이 단 1개뿐이라 신입생이 추가로 입학하면 학습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Social Science & AI학부 2학년 D 씨 역시 “현재 전공 커리큘럼이 불명확하고 전공 강의 수가 부족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외대 서울캠 총학생회혁신위 역시 “두 학부 모두 3·4학년 커리큘럼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았으며, 특히 Social Science & AI학부의 경우 1학년 1학기 전공 필수 과목이 부재해 신입생들이 교양과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난 7월 정책 해커톤에서 비판했다. AI 인재 양성을 둘러싼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술의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인문학의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 대학이 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문계 학생이 AI 시대의 핵심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교육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외대알리 강승주 기자 (math.sang.ju@gmail.com) 대학알리 고아름 기자 (areumsecond@gmail.com)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2026년 만 8세 이하까지 확대하여 임기 내 12세 이하까지 늘려 나가고, 저소득층 청년을 위해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생애주기별로 촘촘하게 지원하는 기본사회 정책을 환영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본사회’를 달성하기까지 갈 길은 멀다. 기본 중에 기본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특히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매월 3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기본소득과 조건없이 모든 청년이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기반이 되어줄 청년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 소득불평등이 출생불평등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혼 및 출산을 희망하는 청년에게는 돌봄을 분담해줄 ‘아이를 같이 키워주는 국가’가 필요하다. 영유아 집중 지원에 머무는 아동수당만으로는 지대한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더욱이 학령기 아동의 막대한 교육비 지출을 보완하기 위해 아동의 생애 전 시기를 촘촘하게 보장하는 아동기본소득이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동기본소득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공동체를 꾸리고자 하는 청년에게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출산과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동·청소년의 권리로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생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체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모두가 주역이라고 하지만 AI의 확산으로 청년고용은 위축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줄어든 청년층 일자리 21.1만개 가운데 20.8만개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특히, AI는 경력이 적은 청년층의 업무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했다. 국가 주도의 인공지능 인재 양성은 중요한 과제이나, 국가 주도의 일자리가 언제나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일 수는 없다. 핵심은 AI 발전에 따른 이익을 공유해 소득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빅데이터는 모든 사람이 생산에 참여하는 사회공통자산이다. 임금 노동을 해야만 시민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견해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생성에 기여하는 모두를 공유자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청년세대 삶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경기청년기본소득과 부산 청년 기본소득 프로젝트의 경우 청년기본소득은 구직이나 이직을 하려 할 때에도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제공하여 다음 일자리를 찾거나 자기계발에 집중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주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부의 혼란을 마무리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염원 속에서 출발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모든 구성원의 존엄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본소득이다. 노키즈존으로 물리적으로마저 아동을 소외시키는 세계에 아동기본소득은 아동의 삶의 튼튼한 울타리가 되는 동시에 돌봄의 사회화 그 자체로 기능할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청년에게 청년기본소득은 실패할 수 있고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 개혁의 시계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지금, 기본소득 있는 기본사회를 상상해 볼 때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원지영(basicincome_youth@naver.com)
요즘 기업들은 앞다투어 ‘ESG 경영’을 외친다. 환경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ESG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아는 재무제표보다 훨씬 불확실한 숫자들이 들어 있다. 이제 ESG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회계장부가 되고 있다. ESG 보고서의 중심에는 ‘스코프(Scope)’라는 개념이 있다. Scope 1은 기업이 직접적으로 배출, Scope 2는 기업에서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지는 않지만 전기나 스팀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간접 배출, 그리고 Scope 3은 협력사와 소비자까지 포함한 전체 공급망 배출이다. 이 중 Scope 3은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연결회계가 감사되지 않은 추정치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협력업체 데이터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평균값이나 모델링으로 Scope 3을 계산한다. 결국 ESG 보고서는 ‘감사받지 않은 회계장부’가 되고, 기업은 그 불확실한 숫자 속에서 “탄소를 줄였다”고 주장한다. ESG의 평가는 실제 감축 노력보다 보고 방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는 ‘성과가 보고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보고서가 성과를 만드는’ 구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하나의 ESG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외부 검증을 받고, 컨설팅을 받는 데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어간다. 결국 대기업만이 ‘ESG 장부’를 낼 수 있고, 중소기업은 애초에 회계 참여조차 어려운 구조가 된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비용 불평등을 낳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ESG를 기업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다. 정부 역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회계 기준과 공시체계를 제시해야 한다. 현재 ESG 평가 기준은 기관마다 달라 비교가 어렵고, Scope 3 산정 방법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정부가 산업별 표준 산정 모델을 만들고, 감사 가능한 데이터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ESG인 척’ 하는 보고서가 아닌, 진짜 ‘ESG 보고서’로 인정받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Scope 3처럼 측정이 어렵고 불확실한 영역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개하려는 태도, 그리고 ‘얼마나 진정성 있게 변화하느냐’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초록색 로고나 친환경 슬로건보다 중요한 것은 숫자 속의 진실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용기다. 우리는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마케팅의 수단이 아닌 책임의 언어가 되길 바란다. 그린워싱을 구별할 줄 아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측정 기준을 세울수록, 기업은 더 이상 숫자 뒤에 숨을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지속가능성은 정직함과 투명성에서 시작된다.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대학생위원장 임규이(ij061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