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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x홍콩x태국—청년 운동 연대(連帶)기 ②태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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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서울대, 숭실대, 홍대 등 많은 대학가에 ‘레논 월(LENNON WALL)’*이 등장했다. 레논 월에는 홍콩 송환법(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청년들의 응원 문구가 수없이 게시됐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대학에서 레논 월을 훼손하려는 학생들과 지키려는 학생들 사이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외대의 경우 19년 11월 학교 본부가 교내 게시판에 부착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전량 수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내 단체들은 학교 당국의 대자보 무단철거를 규탄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 전개 당시에도 성공회대 등지에서 한국 청년들이 학생 모임을 조직하고 연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우리 대학가는 세계 민주화 시위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1년이 지난 현재, 홍콩과 태국 민주화 운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민주화의 열기를 주춤하게 했다. 태국 또한 왕실모독죄를 내세운 왕실과 정부의 강압적 태도와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물리적 시위는 잠시 중단됐다. 하지만 현 상황 속에서도 민주화를 외치는 타국의 목소리에 연대하는 청년들이 존재한다. 외대알리는 홍콩과 태국 민주화 시위를 알리고 연대하는 데 힘써 온 청년들을 화상 인터뷰로 만나봤다. 

 

*1980년대 체코가 공산국가였을 당시,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 청년들이 평화를 노래한 존 레논의 노랫말을 벽에 적은 것이 시초이다. 이런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홍콩에서도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중앙 정부 청사 벽에 레논 월을 설치하고 포스트잇을 붙여 저항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레논 월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때 재차 등장했다.

 

 

한국x태국 청년 운동 연대기: SNS 활동을 통해 태국에 연대하는 익명의 청년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태국 민주화 운동에 연대하는 청년입니다. 저는 한국외대 태국어과를 졸업했고, 현재 IT 회사에 재직 중입니다. 

 

Q. 태국 민주화 운동에 연대,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태까지 주력해 온 활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작년 6월에 ‘완찰름 쌋싹씻’이라는 민주화 운동가가 콘도 앞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후 실종된 사건이 있었어요. 그 사건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게 참여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전 태국 유학 시절부터 왕실이나 군부 독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외국인으로서 그동안 겪지 못한 권위주의 국가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부조리함을 많이 느꼈어요. 예를 들어,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는 형법 112조 불경죄(왕실 모독죄)라는 것이 있어요. 최근에 왕실을 비판하는 오디오 클립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43년 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죠. 제가 함께 생활했던 대학생들도 왕실이나 정부를 비판할 때 고발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늘 느끼고 있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며 계속 부조리함을 느껴왔고, ‘내가 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해서 연대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완찰름 사건이 한국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어요. 언어의 장벽도 있겠지만, 태국 내에서 언론 통제가 있었기 때문에 외신에서도 인용 보도를 하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해요. 태국의 현 상황이 한국에도 보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완찰름이라는 한국어 위키피디아 문서를 만들었고, 그걸 바탕으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기도 했어요. 또 트위터에서 정치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주로 태국어 코멘트나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외국인의 시각에서 태국 상황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는 활동들을 했어요.

 

Q. 활동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왕실 모독 건으로 태국 정부에 고발당한 적이 있어요. 법에는 관할권이 있어서 태국 정부에서 저를 고발할 권한은 없지만, 제 생각에는 겁을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태국)형법에 따라 경찰 조사부터 시작해서 검찰 기소, 법원 심리와 판결 및 명령까지 당사자인 저 모르게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랐고, ‘만약 내가 태국인이었다면 꼼짝없이 감옥행이었겠구나’ 생각했어요. 겁을 먹었다기보다 오히려 부조리함을 절실히 느끼고 활동 의지가 더 커졌던 것 같아요.

 

또 활동하면서 언론 보도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컸어요. 제가 고발당한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관심이 좀 더 생기더라고요. 고발당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웃음) 그 이후에 정의당이나 인권단체들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긴 했지만, 다른 단체들이나 주류 정치계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한편 요즘에는 방송국이 아닌 뉴미디어를 통한 보도도 많잖아요. 이런 플랫폼에서 보도가 이루어진 것이 뿌듯했어요. 젊은 층을 대변하는 뉴미디어에서 담론이 형성됐다는 건 그들의 관심을 표현하는 증거니까요. 이런 미디어를 운영하는 한 친구가 태국 민주화운동을 더 알고 싶어 하고 피가 끓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여줬을 때 기분이 좋았죠.

 

제가 팔로워가 2~3만 명 정도 되는데 태국인들에게 인스타 DM도 굉장히 많이 받고, 태국 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제가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데... (웃음)

 

Q. 직접 태국 시위를 지켜보고 문제에 연대하며,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태국 민주화 운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느꼈나요?

 

태국은 한국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있어요. 태국은 (형식상) 민주 정부가 빨리 도입된 나라였고 한국은 당시 일제강점기였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90년 동안 태국이 뭘 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있죠. 또 한국처럼 민주화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도 많아요. 과거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황과 현재 태국 민주화 운동의 상황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아요.

 

차이점이 있다면 국왕의 존재인 것 같아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때부터 공화정 국가였지만, 태국은 현재도 왕실이 존재하니까요. 한국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정말 힘든 싸움을 했지만 적어도 왕실과 싸울 필요는 없었죠. 반면 태국은 왕실이 불교라는 사회 다수가 믿는 가치를 통해 변호 받고, (왕실의 정당성을) 교육으로 세뇌하고, 정치적으로는 왕실 모독죄로 반대파를 탄압하는 왕실이 군부와 결탁하고 있어요. 태국 시민들은 왕실과 군부, 두 갈래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거죠.

 

 

시위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요. 한국의 광화문 광장은 시위하기에 좋은 장소잖아요. 정부청사와 가깝고 장소도 넓고. 하지만 태국은 그런 장소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경찰 통제가 굉장히 심해서 장소가 미리 공지될 경우에는 시위대보다 많은 경찰이 미리 장소를 점거하고 있어요. 그래서 SNS를 통해 게릴라로 시위를 진행하고 있죠. 또 태국에서는 시위 장소가 미리 공지되면 교통을 끊어버려요. 그래서 태국 지하철에 보면 아이돌 홍보하는 광고들이 많았는데 그런 광고들도 거의 없어졌어요. 교통 기관들이 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민중을 탄압하는 이미지가 생겨서 그렇죠. 최근에 재밌는 현상 중에 하나가 태국 교통수단 중 ‘툭툭’이라는 것에 아이돌 광고 등을 싣는 문화가 생겼어요. 젊은 층들이 소비층으로서 교통 기관에 광고물을 게재하는 입장이었는데, 민중을 탄압하는 정부와 결탁하는 교통기관들에 대한 일종의 불매운동으로써 광고하는 곳을 옮긴 거죠.

 

Q. 태국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태국 청년들의 인식은 어떻게 나뉜다고 느끼시나요?

 

짧은 시간에 왕실이나 민주화 이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하루는 ‘의회정치로 개혁해야 한다’, 하루는 ‘공화제로 가야 한다’ 등등 시위가 이루어지는 사이에 사람들 의견이 매일매일 바뀌었죠. 최근에는 대부분의 태국 청년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고 있고, 과반수는 왕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으로 이전의 왕실을 존경하는 젊은 층도 있지만, 비율이 많이 줄었죠. 사실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불과 3~4년 전에는 왕실을 존경하는 이들이었어요.

 

소득도 높고 교육 수준도 높은 방콕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그 비율이 낮던 지방에서도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Q. 태국 청년들이 겪는 문제 중에 한국 청년들도 공감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지금의 태국 청년들은 외국문화를 많이 접하며 자랐어요. 눈높이가 현재 태국에 맞춰져 있지 않죠. 한국의 사례도 많이 접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들은 당연히 태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태국 사회에서도 똑같이 문제라고 생각하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 심각한 주거 문제, 임금 문제는 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상황이에요. 60-70만 원 정도가 태국 청년들의  평균 월급이에요. 하지만 대부분의 일자리가 있는 방콕의 물가는 서울과 다르지 않아요. 교통비는 서울보다 더 비싸기도 해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환경이죠. 

 

정부에서 태국인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많이 없어 보이는 것이 큰 문제죠. 행정 문제도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도로에 문제가 발생해도 오랫동안 방치해 놓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도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수리를 하는 편이지만 태국은 그렇지 않아요. 보수되어야 할 시설이 방치되니 다치는 사람도 많고 장애인의 통행권도 침해되죠.

 

공유하는 문제들이 많지만, 태국 청년들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한국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아요. 태국 민주화 운동가들이 민주주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한국이에요. 한국을 모델로 삼아서 태국 사회를 한국 정도로까지 발전시키겠다는 의식이 강하죠. 트위터 해시태그 중에 ‘만약 정치가 좋았다면’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통해 태국 청년들은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과 태국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제도를 비교하는 등 외국의 사례에 빗대어 태국의 상황을 비판하죠.

 

 

Q. 한국에서 태국 민주화 운동에 대한 담론이 충분히 활성화됐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슷한 민주화 역사를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현재 태국의 상황을 한국인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군부독재나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니까요. 시위 관련 담론은 좋은 담론보다는 많은 담론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떤 방향이든지요. 주류 정당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태국 민주화 상황이 세대 문제로 묶이지 않았으면 해요. 태국 내에서도 그런 담론이 있긴 했어요. 60대 이상에서는 극심한 왕당파들이 많고, 40~50대는 ‘레드 셔츠*’로 대표되는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분들이 많고, 10~20대는 사회주의 성향이 많아요. 그래서 세대 문제로 언급되긴 하지만, 실제 민주화 운동 내부로 들어가 보면 레드 셔츠들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수십 년간 민주화를 바라보신 나이 드신 분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어요. 세대 문제로 이어지면 민주화 담론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 왕실이나 군부독재에 억압돼 있던 일반 민중의 문제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한국 언론의 논조는 라마 10세의 인품 문제로 왕실 개혁이 대두됐다는 논조예요. 마치 태국인들이 라마 10세 이전의 왕실은 모두 인정하는 것처럼 비춰지니까 본질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태국은 왕실이라는 조직 자체에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으니까요.

 

*레드셔츠 : 탁신 친나왓과 잉락 친나왕 전 총리를 지지하는 친정부 세력으로 농민과 도시 빈민이 대다수를 구성한다. 이들은 2006년 탁신 총리 실각 당시 군부가 현실 정치에 개입한 것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레드셔츠를 입었다.

 

Q. 물대포, 살수차 등 시위대 진압을 위해 한국산 제품이 수출됐다는 게 알려졌습니다. 민주화 시위에 연대하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 나라에서 금지하지 않은 걸 어떻게 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실정법의 문제가 현실정치에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살수차가 인권 침해를 이유로 두 번이나 위헌 결정이 났는데, 그걸 태국에서는 사용하게 둬도 되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살수차의 인권 침해적 요소를 고려한다면 수출은 당연히 금지되는 것이 맞는데, 굳이 헌재 판결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성문법 만능주의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지는 않아요. 태국에서도 배신감을 많이 느끼는 부분이에요. 한국 언론의 보도도 많이 없고 살수차에 대한 언급도 크지 않으니 그렇겠죠.

또 비단 도의적인 문제, 민주사회의 책임을 떠나서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추후 태국이 민주화를 이뤘을 때,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이 문제도 주류정치에서 목소리가 나와야 해결이 되는 부분인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죠.

 

 

Q. 현재 청년들은 민주화 운동, 학생 운동이나 저항 시위와는 무관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청년들이 ‘지금도’ 해당 사안에 연대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한국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현재 태국의 민주화운동이 잘 알려지면 태국인만큼 분노해줄 수 있는 것이 한국 청년들 아닐까 생각해요.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태국도 타국보다 한국에 현 상황을 많이 호소하는 이유는 한국을 민주주의 모델로 삼고 있고, 한국인이라면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에요. 또 앞서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에서 연대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준다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좋은 케이스 스터디가 될 것 같아서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그 증거로 별거 아닌 일반인 청년인 제가 이렇게 큰 호응과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요. (웃음)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루어냈는지 아는 우리가 자기 재능에 맞게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시면 좋겠어요. 언어적 재능으로 연대할 수도 있고, 주위에 디자인하시는 분은 연대 포스터나 시위 포스터를 만드시고, 웹 개발하시는 분은 시위 관련 사이트를 만드시기도 해요. 보편적으로는 한국 정치계, 정부에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국제사회에 함께 호소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태국 내에서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한국X홍콩X태국 민주주의의 연결고리

 

세 명의 청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홍콩과 태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도 비슷한 결임을 알 수 있었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시위문화', '청년 문제'의 세 관점에서 한국과 홍콩, 태국의 민주주의의 연관점을 살펴봤다.

 

국가폭력의 상흔 속 피어난 민주주의

 

먼저, 한국과 태국, 홍콩은 모두 국가 폭력에 대해 저항했던 기억을 역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불합리한 국가의 관행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냈던 경험은 곧 국경을 넘어선 공감과 연대로 이어진다.

 

홍콩의 경우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 이전에도 2014년 우산혁명, 2016년 어묵혁명* 등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되어 왔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 그리고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홍콩 경찰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 대형 시위로 나타난 것이다. 태국의 민주화 운동 역사 역시 짧지 않다. 학생들의 저항 끝에 군부의 후퇴를 이뤄낸 1973년 10월 14일(10월 혁명)은 태국 민주화 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다. 1992년 5월 항쟁 역시 시민사회가 군부의 영향력을 억제할 수 있는 새 헌법을 마련하는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흔히 한국에서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과거의 일로 기억된다. 하지만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불씨는 2008년, 2016년의 범국민적인 촛불시위 외에도 노동 부문 등 각종 운동과 투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1980년대, 군부 세력은 언론을 통제하고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21세기 들어서도 그러한 관행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2009년 용산 참사에서는 경찰이 농성하던 철거민들을 과잉진압하고, 사건 이후 언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책임자들을 처벌은커녕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못했다. 2015년 고(故)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쐈던 경찰의 폭력적인 행태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가의 권력체계가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은 역사 속에서 ‘영광의 상처’로 기억되기엔 너무나 큰 상흔을 남겼다. 국가폭력과 마주한 이들의 일생은 트라우마에 점철되기도 한다. 공권력이 야기하는 사회 전체의 불안과 공포는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진다. 이러한 역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되풀이돼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2016년 어묵혁명: 경찰이 어묵 노점상을 단속하자, 우산 혁명 이후 경찰에 반감이 높아진 홍콩 시민들이 대거 결합해서 벌인 시위를 의미한다. 이후 홍콩의 커리 어묵은 중국 지배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부여받기도 했다. 

 

세계로 퍼져나간 K-시위문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졌을 때, 과거의 유행가는 우리의 기억에 새로이 각인됐다. 당시 이화여대를 가득 메웠던 노랫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태국 시위 현장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재현됐다. 이외에도 한국의 전통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개사 되어 보급되기도 했다. ‘민주화 시위’와 ‘케이팝’의 조화를 해외에서도 볼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언론들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 연대’를 확인하는 순간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K-시위문화’의 수출에 마냥 뿌듯해할 때는 아니다. 작년 10월에는 태국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국내 업체가 만든 물대포와 차벽 등의 시위 진압 장비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해당 업체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태국 외에도 베트남, 파키스탄, 이란 등 여러 나라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경찰 진압 장비를 홍보하는 국제치안산업박람회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한국에서 생산된 장비가 ‘K-캅(Cop)’이라는 이름으로 인권탄압에 사용되는 행태를 비판했다.

 

이는 ‘비폭력 민주화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는 한국 시민들의 자부심과는 지극히 모순된 상황이다. 한국 역시 각종 시위 현장에서 강경 진압으로 인한 사상자들을 다수 배출했음에도, 관련 규정은 여전히 미비하다. 작년 10월에도 농성 중인 구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수협이 물대포를 동원했다. 2017년에는 대학 측이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업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변형한 ‘물호스’를 직사하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로 5년이 흘렀지만, 경찰의 물대포 사용 기준을 제한하는 내부 지침은 여전히 개정중이다. 한국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태국의 현 상황에 한국 사회 역시 책임이 있다는 걸 통감해야 한다.

 

청년들의 수난은 국경을 넘어

 

구직난, 주거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생활고. 청년들은 사회로 제대로 나오기도 전부터 온갖 불평등을 감내해야만 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는 여건도 마땅치 않다. 태국의 경우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젊은 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미래전진당(Future Forward Party)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됐다. 홍콩 당국은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파 후보 12명을 부적격 처리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분노는 홍콩과 태국의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거리로 나오게 했다. 한국 역시 586세대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인들이 거대 양당을 독식하며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청년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이러한 세력 다툼에 밀려 빛을 발하기 어렵다.

 

 재벌이나 고위공직자들의 비리가 사회에 ‘공정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도 세 나라는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자녀들이 입시, 채용 등의 분야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많은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태국에서는 레드불(RedBull) 창업주의 손자가 경찰관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뒤 해외로 도피했지만,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2021년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다. 또 태국 현 국왕인 라마 10세가 국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방관하듯이 호의호식하는 행태는 태국 청년들이 왕정 체제에 더욱 의구심을 갖게 했다. 

 

 재벌과 고위공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부의 세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제 우리들이 겪는 불평등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와 국가 전체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변화의 시작일뿐이다.

 

이처럼 한국 청년들이 홍콩과 태국 시위에 연대하는 것은 타국의 민주화에 대한 지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유사한 사회 문제를 경험하는 주체로서 그들에게 공감하고,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되돌아볼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문제점을 견지하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점 역시 필연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이 연대는 또 다른 사회문제에 대한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

 

‘진영논리’와 ‘세대 담론’의 프레임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도 홍콩, 태국 민주화 시위에 대한 여러 담론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좌우 진영논리’와 ‘세대 담론’으로 타국의 민주화운동을 판단하려는 시도를 상당수 엿볼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언론이 특정 사안을 다룰 때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방식이다. 타국의 민주화 운동을 단순히 한국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가둠으로써 그 속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수많은 민주화 운동 역사 속에서 정의롭고 자유로운 국가에 대한 열망은 좌우 진영 혹은 세대와 관계없이 같았다. 각자가 꿈꾸는 국가나 체제의 형태는 달랐을지라도,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국가의 억압과 통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마음은 동일했다.

 

현재 홍콩과 태국은 진영과 세대를 넘어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하나 되고 있다. 모든 의제를 진영논리와 세대 담론의 프레임 안에서 판단하기보다는, 현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우선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그들은 왜 빼앗겼는가?’ ‘그들이 요구하는 민주화의 요소들은, 사실 우리 사회에도 결여된 것이 아닌가?’ 문제의식 없는 연대는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답습하게 할 뿐이다. ‘혐중’ ‘반미’와 같은 단순한 정서에서 벗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요구사항을 살피며, 그들이 외치는 민주화의 핵심을 통찰해야 한다. 

 

 

국제 연대로의 한 걸음

 

지난 여름 홍콩 보안법이 통과되며 국제 사회는 홍콩에 대한 연대의 발언을 이어갔다. 쥐스탱 트뤼드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중국 수교 50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중국의 강압 외교와 싸우겠다고 말했다. 미국·영국· 호주·대만 등은 홍콩인들의 이주를 돕는 여러 정책들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한령*을 겪으며 국제 역학적 한계를 경험한 것을 감안해도, 우리 사회가 국제 연대를 향해 걸어온 발자국은 희미하다. 결코 멀지 않은 타국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에 한국사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성찰할 때이다.

 

국가적 대응에 한계가 있다면,  우리들이 움직이고 목소리를 낼 때이다. 지금 세계 각지는 민주화의 위기를 겪고 있다. 홍콩과 태국에 이어 2021년, 미얀마에서 쿠데타 항의 시위 소식이 들려왔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 접속하는 것이 차단되고, 인터넷마저 끊기는 일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다.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 온 역사가 길어 미얀마 내부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국제 사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세계 각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뉴스부터 찾아보자. 자신의 SNS에 해당 시위와 관련된 해시태그가 포함된 글을 올려 주변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좋다. 넷플릭스, 왓챠와 같은 OTT 서비스에도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많다.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홍콩과 태국에 연대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국제 연대’야말로 코로나19가 가린, 한국 사회의 남은 현안들을 직시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불공정함과 불평등함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을 넘어,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홍콩과 태국의 청년들은 이를 절감했기에 거리로 뛰쳐나왔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순간들을 목도하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의 변화를, 국경 너머의 청년들과도 모색해보자.

 

*한한령 : 2016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에서 제작한 콘텐츠 또는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광고 등의 송출을 금지하도록 명한 한류 금지령이다. 이와 함께 비공식적인 행정명령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불이익 유도도 함께 행해졌다.

 

 

조시은 기자 ohno2828@gmail.com

이지민 기자 starwave0224@gmail.com

 

 

 

*해당 기사는 지면 '외대알리 35호: 변화를 주도하는 청년들'에 실린 기사로, 1월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