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OO가 부모님을 찾아가 죽일까봐 두렵고 제게도 찾아올 것이 두렵습니다. 그리고 처벌 의사가 있습니다. (고(故) 김은진, 지난 3월 경찰서에서 쓴 피해자 진술조서 중)”
지난 5월,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전 연인에게 스토킹당하다 피살된 30대 여성 고(故) 김은진씨가 경찰에 제출한 100쪽짜리 진술서다. 4년 넘게 이어진 데이트 폭력, 9차례의 신고, 600쪽의 고소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다.
7월에는 인천 부평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1년 전부터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남편에게 원하는 돈을 주고 이혼할 때까지 기다리라”였다. 결국 접근금지 처분이 해제된 직후,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다.
8월, 울산에서 2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흉기로 피습을 당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의 큰 수술을 받고 회복중에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88,394건의 교제폭력 신고가 접수되고 13,075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스토킹 피해접수는 13,269건으로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70% 이상 증가했다. 2023년 발생한 전체 살인사건 중 28.7%는 애인,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이었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은 언제나 ‘징조’를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고에도 충분한 보호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집행 건수는 매년 늘고 있지만, 1심 선고까지 피해자를 보호하기에는 그 기간과 제재수단이 미흡하다.
피해자의 구조 신호가 쉽게 묵살되는 문제도 반복된다. 화성 스토킹 살인사건의 경우,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되지 않거나, 피해자 보호를 요청했음에도 ‘스마트워치 반납부터 빨리 하라’는 식의 대처만이 돌아왔다.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고작 정직 1개월 징계에 그쳤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을 규정하는 법률도 여전히 미비하다. 현행 법률 중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을 규율하는 유일한 법은 가정폭력처벌법이다. 그러나 가정폭력처벌법은 여전히 ‘가정 유지’를 기조로 하여, 가정 폭력을 가족간의 ‘사적인 갈등’ 정도로 치부하는 낡은 관행을 확산시켜왔다. 스토킹처벌법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폭넓게 다루기보다는, 스토킹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사후 보완하는 정도로 만들어져왔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근본적인 전환이 절실하다.
오늘(25일)은 UN이 정한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이다. 여성 폭력 추방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이자 당연한 약속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으로 죽고 다치는 이들이 있다. 그 누구도 연인 관계에서, 가족 관계에서, 가까운 이에게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상식과 합의를 법으로 새겨야만 한다.
친밀관계폭력처벌법은 법의 패러다임을 ‘가정 유지’가 아닌 피해자 보호로 바꾸고, 피해자 보호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며, 경찰의 대응 의무를 강화하도록 한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무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호받도록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한 것이다.
“제 가족의 죽음은 국가가 위협을 알고도 제 때 개입하지 못한 구조적 실패의 결과였습니다.”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처절한 절규에 이제는 국가가,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더 이상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친밀관계폭력의 고리를 끊어내자.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장 윤김진서(basicincome_youth@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