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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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알리 오피니언] 총장의 편지, 아직 듣지 못한 말

지난 20일과 21일 양 일에 걸쳐 학교 측은 외대 구성원들에게 김인철 총장 명의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메일에는 최근 잇달은 교내 미투 사건들에 대한 학교 측의 대책이 쓰여있습니다. 주된 내용을 요약하면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과 피해자에 대한 학교 차원의 보호 강화, 그리고 선정적인 보도 자제 요청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면 몇 가지 의아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학교 측은 최근 제기된 모든 문제에 대해 신속 공정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필요한 추후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앞선 두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과정에 의문이 듭니다. 한국일보의 18일자 기사를 참고하면, 학교 측은 고 이모 교수 미투 의혹과 관련해 15일 별도의 조사팀을 꾸려 진상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어서 16일 고 이 모 교수와 면담을 진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7일 이 모 교수가 사망하자 학교 측은 "우리대학은 최근 고인을 향해 제기된 모든 의혹 관련 조사를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복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해당 사건을 자살로 보고, 검찰과 수사종결로 협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학생들은 검경의 수사종결과는 별개로 학내 차원의 진상규명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모든 직위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서정민 교수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이 모 교수 의혹에 대한 조사중단 선언과 서 교수의 사퇴의사 역시 언론 기사를 통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측의 진상규명 의지가 진심인지 학내 구성원들이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재발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제도 마련과 2차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전문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총장이 본인 명의의 글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다만, 그동안 학교는 학내에서 성범죄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왔습니다. 언론보도로 인한 여론조성이 되지 않는 이상, 조용히 묻어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6년에도 논란에 휩싸인 고 이 모 교수의 교직원 노조 성희롱 사건은 진조위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생활도서관 대자보에 쓰여있던 사건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해당 사건은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조위가 열렸지만 그동안 소극적으로 대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상황을 다룬 모 언론의 비판보도 이후 해당 대자보는 누군가 게시판에서 제거해버린 상태입니다. 징계위언회의 규정에 따르면 징계위원회의 징계결과도 당사자에게만, 즉 가해자에게만 전달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학교가 실질적인 개선안을 내놓고 이행할지 역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에도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습니다.현재 언론은 소위 우라까이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언론사에서 미투 보도를 하면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도, 팩트체크를 하지도 않고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죠. 그렇기에 미투 운동을 황색 저널리즘으로 오염시키는 언론에 대한 경고는 합당합니다. 그러나 총장이 쓴 글의 전체적인 맥락상 어떻게든 학교의 추문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총장의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미투 고발을 하려는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압박되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글입니다.

최근 외대에서 일어난 미투 운동은 빙산의 일각일 것입니다. 오랜시간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피해자들이 여럿일 것입니다. 총장의 편지에 담긴 약속들이 하루 빨리 이행됐으면 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아직 학교는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With You. 지금 그리고 언젠가 총장의 학생이었을 피해자들에게 그들의 용기를 지지한다는 말. 총장과 학교로부터 이 한마디 듣게 될 날이 오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요?

인보근(thinkerbell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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