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테크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세테크는 재테크에서 재물 재(財) 대신 세금 세(稅)를 붙인 용어로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절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에 서 불법적인 세금 포탈인 탈세와 구분되며 세금 납부 액수를 합법적으로 줄여 자산을 보호하거나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방식을 말한다. 영수증에 부가세, 급여명세서에 세금이 공제된 것처럼 우리와 밀접한 관계로 연결된 세금을 들여다보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세테크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연말정산, 주택청약종합저축,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해 연말정산 시 세금을 더 많이 돌려받는 것이 일종의 세테크다. 이 중 대학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택청약종합저축과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주택청약종합저축은 공공주택 청약과 민영주택 청약이 가능한 청약 종합청약 통장으로 무주택세대주 여부와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1인 1계좌로 가입할 수 있다. 매월 납입금액은 2~50만 원으로 5천 원 단위로 자유불입할 수 있지만, 공공주택 청약 시 10만 원 초과 납입한 금액은 예치금으로만 인정한다. 연봉 7천만 원 이하의 무주택세대주 근로자를 대상으로
우울증을 겪는 청년의 일기 *본 내용은 우울증을 겪는 청년들의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2021년 6월 30일 오늘 아침도 눈이 떠짐과 동시에 어김없이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자기혐오로 뒤척이며 잠 못 이루던 밤의 연장선이다. 모든 것에 대한 무기력과 권태가 날 작은 골방에 가뒀다. 옛날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내 무기력이 코로나 때문이고, 취업이 힘든 사회 때문이라며 내 주변을 탓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내가 못나서 고민을 터놓을 친구도 없는 거 같고, 능력이 없어 취업에도 계속 실패하는 것 같다. 우울감을 떨쳐내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터넷에 '우울증 증상'을 검색해서 내 상태와 대조해보는 것, '우울증 극복 방법'을 찾아보는 것뿐이다. 검색을 하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라는 흔해빠진 말을 봤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할 수 없다. 감기는 가볍게 앓고 넘어가지만 내 우울은 그렇지 않다. 감기에 걸린 사람은 주위에서 챙겨주기라도 하지... 내 우울을 챙겨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이유 없이 우는 밤이 계속 늘어간다. 극단적 생각들은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2019년, 서울대, 숭실대, 홍대 등 많은 대학가에 ‘레논 월(LENNON WALL)’*이 등장했다. 레논 월에는 홍콩 송환법(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청년들의 응원 문구가 수없이 게시됐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대학에서 레논 월을 훼손하려는 학생들과 지키려는 학생들 사이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외대의 경우 19년 11월 학교 본부가 교내 게시판에 부착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전량 수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내 단체들은 학교 당국의 대자보 무단철거를 규탄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 전개 당시에도 성공회대 등지에서 한국 청년들이 학생 모임을 조직하고 연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우리 대학가는 세계 민주화 시위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1년이 지난 현재, 홍콩과 태국 민주화 운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민주화의 열기를 주춤하게 했다. 태국 또한 왕실모독죄를 내세운 왕실과 정부의 강압적 태도와 코로나
2019년, 서울대, 숭실대, 홍대 등 많은 대학가에 ‘레논 월(LENNON WALL)’*이 등장했다. 레논 월에는 홍콩 송환법(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청년들의 응원 문구가 수없이 게시됐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대학에서 레논 월을 훼손하려는 학생들과 지키려는 학생들 사이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외대의 경우 19년 11월 학교 본부가 교내 게시판에 부착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전량 수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내 단체들은 학교 당국의 대자보 무단철거를 규탄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 전개 당시에도 성공회대 등지에서 한국 청년들이 학생 모임을 조직하고 연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우리 대학가는 세계 민주화 시위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1년이 지난 현재, 홍콩과 태국 민주화 운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민주화의 열기를 주춤하게 했다. 태국 또한 왕실모독죄를 내세운 왕실과 정부의 강압적 태도와 코로나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한국에서는 ‘위안부’를 정식 명칭으로 차용했다. 정의연과 평화나비 등의 시민 단체들은 사건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위안부’ 대신 ‘성노예’로 표기하고 있다. 본 기사 또한 시민단체의 뜻을 반영하여 ‘위안부’ 대신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명칭을 차용했다문제 해결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피해당사자를 배제한 미성숙한 접근을 취했다. 지난 1월, 12명의 피해당사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다. 일본 정부에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관한 가해 책임과 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을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승소에 대해 “곤혹스럽다”라는 견해를 밝히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과거사로 치부했다. 작년에는 이용수 씨가 시민단체가 피해자를 제외하고 시민운동을 전개했음을 폭로했다. 즉, 피해당사자를 고려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는 기존의 일차원적 해결 방안이 아닌 여성주의적, 평화주의적 관점에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때이다. PT1.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그
유사대학생이라는 이름의 ‘상징’ 인터넷 커뮤니티나 내가 다니는 학교의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공간인 ‘에브리타임’에는 이른바 ‘유사 대학생’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게 뭐냐고? 그러니까, 너는 대학생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지방대생’이니까 우리 ‘대학생’ 보다는 결여되어 있는 존재인 ‘유사 대학생’이 어울린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보통 명문대 내지 서울권에 속해있는 ‘대학생’들은 학교의 이름이 가지는 ‘상징’이 그 대학생들의 능력과 역량을 보장해준다. 그러니까, 굳이 구차하게 부연설명을 하나하나 달면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아도 진중한 학문적 관심이라든가, 그사람의 뛰어난 지적 능력이라든가, 열심히 살아온 과거라든가, 혹은 열정적인 삶의 ‘개척자’라든가 하는 올바른 청년모델의 담지자로서, 진정한 ‘대학생’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사 대학생’들은 본질적으로 부족한 존재로서 묘사된다. 그들은 학교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상징’이 전자와는 정반대로 기능하는데, 보통 그들은 능력과 역량이 부족한 존재, 너무나 게으르고 학문적 관심이 없는 존재, 꿈과 희망이 수동적이고 지적 역량이 부족한 존재로 사회 속에서 현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사 대학생들’은
# 프롤로그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 (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2015~2019)”)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곤한 질문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왜 학교를 그만뒀어?”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반면 대학생들은 “왜 대학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정상’이라는 틀 안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에서 다름은 별남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피로사회> 한병철 저.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과 지속되는 일상의 무기력함, 피로는 더 이상 우리에게 ‘특별히’ 신경 써서 교정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최우선 과제로서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흔한 노력의 산물이며 ‘성장통’이라는 신화 속에서 정당화되고 일상화된다. 이러한 개인들의 일상은 흔히 아르바이트, 직장 생활, 학교생활 등등 여러 가지 개별적인 과정들에 의해 진행 되지만 그들은 모두 ‘피로’하다. 하지만 이러한 피로함을 그저 노력이라든가 열정이라든가 하는 긍정성의 언어들로 충분히 포섭하고 이해하며 더 나아가 개개인들의 신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적신호’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일까? 그저 답은 ‘아픔과 자기파괴를 동력으로 삼고 노력하는 것’에 있는 것일까? 수많은 자기계발담론들 혹은 어른들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조언들은 보통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나도,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분명 좁아지는 취업시장의 문제로, 태생적인 가난과 물질적 빈곤으로, 학력이라는 상징자본으로 위치 지어지는 ‘위계’로, 다양한 정체성에서 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들은 사회가 제공한 ‘자유로운 환경에서 마음껏 경쟁하라!’라는 명령아래 수없이 경합하
처음 ‘우울증’이란 단어를 마주한 건 10살 때였다. 학교에서 우울증 검사를 했는데, 반에서 내 우울 지수가 가장 높게 나왔다며 담임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는 엄마도 나도 그저 사춘기가 일찍 찾아온 거라 여겼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10살의 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게 맞다. 매일 어떻게 죽을지 생각했다. 당시 내가 사는 집은 아파트 4층이었고, 낮았다. 그래서 그때의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숨을 쉬지 않는 거였다. 방에 혼자 앉아 코와 입을 막고 숨쉬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아무리 숨구멍을 꽁꽁 막는다고 해도 인간의 자가 호흡 능력은 유효했다. 그래서 죽지 못했다. 22살이 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기까지 꽤 많은 의사를 거쳤다. 네 번째 의사를 만나서야 확실하게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버티라고 하는데, 저는 도무지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지 않아요. 매 순간이 지겹고 끔찍했어요. 그저 꾸역꾸역 버틴 거예요.” 의사가 답했다. “만성이라 그래요.”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 정서가 PTSD, 그러니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만성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 프롤로그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 (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2015~2019)”)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곤한 질문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왜 학교를 그만뒀어?”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반면 대학생들은 “왜 대학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정상’이라는 틀 안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에서 다름은 별남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 프롤로그 저는 어릴 때부터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스무 살은 '대학생'이었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아니 대학생이 되면 모두 부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멋지게 자신을 꾸미면서, 방학 땐 취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날 제 착각의 밑바탕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누구나 대학에 가는 줄 알았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2015~2019)”)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
인생은 B와 D 사이에 C라고 한다. 무엇이든 고민하고 도전해봐도 좋을 시기, 우리 대학생들은 최고의 C를 찾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한 해가 다르게 심해지는 취업난은 이따금씩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입시에 모든 것을 쏟아붓던 시절, 우리를 보며 ‘좋을 때’라고 말하던 그들의 씁쓸한 웃음을 기억한다. “입시도 힘들지만 취업 준비는 더 힘들고, 취업하고 나서는 더 힘들다.” 그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그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땅이 꺼져라 쉬는 한숨으로 그들을 이해한다. 대학교는 이제 단순한 학문 기관을 넘어서 학생들이 새로운 사회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외대 양 캠퍼스의 진로취업센터에서는 학생들이 진로상담부터 취업 준비까지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바쁜 학기 생활 중에 일정을 잡아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언젠간 방문하리라’ 다짐하지만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채, 어느덧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망설이게 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 가급적 저학년 때부터 방문하길 권장하지만, 진로취업센터의 나영규 차장님은 학생들이 부담 없이 언제든 방문해주길 바라고 있다.
모두가 알지만 드러나지 않는 공간 게시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배제를 집방 열풍이 보여주고 있다. '집방'은 '먹방', '쿡방'과 더불어 하나의 주요 방송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일상의 많은 것들이 변하면서, 또 다시 ‘집’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집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들은 당대의 집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다. 내집 리모델링, 1인 가구를 위한 멋진 자취방, 집에서 대부분의 활동을 수행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집 정리까지. 가구 재배치로 넓어진 자취방 투어, 홈카페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인기 컨텐츠다. 이렇게 “집”은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그 열풍은 여전하다. 한편으로는 기묘하다. 좋은 삶, 멋지고 쿨한 삶을 비춰온 가운데 정작 현실은 없었기에. 아름다운 집, 상향평준화된 이미지에 포섭된 방은 넘치도록 쏟아진다. 반면 어떤 공간은 집에 대한 욕망보다 더 자명한 현실로서 있어왔는데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화면에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없다. 환상과 낭만으로 교차하는 집보다 더 가까이에 존재했을 거주공간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다만 불쌍한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 빈약한 이해는 소확행, 케렌시아, 자기계발서
작년 9월, 본격적인 가을을 앞두고 태풍 링링, 타파 그리고 미탁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13호 태풍 링링은 수도권과 충청·호남·제주지역, 17호 타파는 영남 및 제주지역, 18호 미탁은 호남·영남·제주지역을 강타했다. 세 태풍 모두 강력했지만, 어쩐 일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유독 한 태풍에 쏠려있었다. 각 태풍이 기상청에 의해 한반도가 영향권으로 관측된 시기부터 벗어난 시간까지, N 포털 사이트에 각각 ‘태풍 링링’, ‘태풍 타파’, ‘태풍 미탁’으로 검색하고, 게재된 기사 수를 확인해보았다. 그 결과, 링링은 17,669건(9월 2일~8일), 타파는 8,764건(9월 19일~23일), 미탁은 12,130건(9월 28일~10월 3일)이었다. 태풍 규모와 검색 기간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검색어 역시 한 가지기 때문에 이 수치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타파가 북상했을 때, 링링에 비해 잠잠한 언론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불만을 표하여 ‘서울 공화국’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위로 올랐다. 서울 공화국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따위의 모든 부분이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된 현상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출처 : 우리말 샘) 이런 신조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미성년자도,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회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어른들은 말한다. 젊은 게 좋은 거라고, 아무 걱정 없을 때라고. 그 속 좋은 말에 대한 내 대답은 그저 허탈한 웃음뿐이었다.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었던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인 K 양(22)은 개강 이후 인천 본가를 떠나 교내 기숙사에 거주 중이다. 요즘 그녀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돈.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의 생활은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배우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배우고,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방학을 맞아 떠나는 배낭여행을 꿈꿨으며, 학창 시절 공부를 핑계로 가지 못했던 기타 학원에 가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핸드폰을 켜고 아르바이트생 구인 광고 목록을 뒤지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K 양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을 직접 만나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속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난한 대학생? “어쩌겠어, 나에게 허락된 천국은 알바 천국 하나뿐인데.” “나한테 시급 없이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