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대학알리

청년

한국x홍콩x태국—청년 운동 연대(連帶)기 ①홍콩편

 

2019년, 서울대, 숭실대, 홍대 등 많은 대학가에 ‘레논 월(LENNON WALL)*이 등장했다. 레논 월에는 홍콩 송환법(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청년들의 응원 문구가 수없이 게시됐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대학에서 레논 월을 훼손하려는 학생들과 지키려는 학생들 사이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외대의 경우 19년 11월 학교 본부가 교내 게시판에 부착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전량 수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내 단체들은 학교 당국의 대자보 무단철거를 규탄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 전개 당시에도 성공회대 등지에서 한국 청년들이 학생 모임을 조직하고 연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우리 대학가는 세계 민주화 시위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1년이 지난 현재, 홍콩과 태국 민주화 운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민주화의 열기를 주춤하게 했다. 태국 또한 왕실모독죄를 내세운 왕실과 정부의 강압적 태도와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물리적 시위는 잠시 중단됐다. 하지만 현 상황 속에서도 민주화를 외치는 타국의 목소리에 연대하는 청년들이 존재한다. 외대알리는 홍콩과 태국 민주화 시위를 알리고 연대하는 데 힘써 온 청년들을 화상 인터뷰로 만나봤다. 

 

*1980년대 체코가 공산국가였을 당시,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 청년들이 평화를 노래한 존 레논의 노랫말을 벽에 적은 것이 시초이다. 이런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홍콩에서도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중앙 정부 청사 벽에 레논 월을 설치하고 포스트잇을 붙여 저항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레논 월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때 재차 등장했다.

 

 

 

한국x홍콩 청년 운동 연대기: ‘한-홍민주동행’ 공동대표 이상현&울프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상현: 한-홍 민주동행이라는 단체의 열두 명의 공동대표 중 한 명입니다. 해당 단체에서 홍콩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울프: 트위터의 ‘블루아이드울프(@AlexOrWolf)’라는 계정에서 홍콩 시위 관련 뉴스를 번역해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운영한 지는 1년 반 조금 더 넘었는데요. 시위 초기 때부터 공유해서 저를 팔로우하는 분들의 거의 70%는 홍콩 분들인데, 요즘에는 한국분들도 팔로우를 많이 하고 계세요.

 

Q. 어떤 계기로 홍콩 민주화 운동에 연대하고 참여하게 되었나요?

 

울프: 처음에는 홍콩 시위에 대해 ‘저렇게까지 폭력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트위터에서 제가 본 정보들은 폭력적이라고 하기엔 좀 어려웠죠. 일반 시민들이 이 시위를 기획하고 목소리를 내고 거리로 나오는 과정들이 전부 평화롭게 진행되는데, 이런 상황은 뉴스에 하나도 나오질 않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이 친구들도 외국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봐왔던 화려한 홍콩의 이면에 숨어있던 우울한 감정, 시민사회에서 낼 수 없었던 목소리가 응축돼서 터져 나온 것처럼도 보였어요. 그때 세밀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어요. 시위를 도와주다 보니까 친구들도 많이 생기게 되고. “네가 이 시위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된다” 이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어요. 작은 힘이라도 필요한 상황이었던 거죠, 그 친구들한테는. 그 이후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함으로써 이 친구들한테 힘이 된다면, 나는 이 시위를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아직 시위는 끝나지 않았고,  저는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죠.

 

상현: 저의 동료지만 매우 훌륭하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원래 국제 교류를 하고 있었어요. 동아시아 친구들 네트워크가 있어서, 일본·대만·중국·홍콩까지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어요. 홍콩 시위는 3월 말부터 시작이 됐는데 그때는 규모가 좀 작았어요.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한 6월 즈음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재한홍콩인분들이 연대 서명도 받고 그랬어요. 그걸 보면서 홍콩의 친구한테 연락해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던 찰나에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이 되는 걸 보면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피 흘리고 도로에 쓰러지는 걸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고, 연대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매년 7월 1일에 (홍콩에서) 중국반환기념일 행사를 하거든요. 홍콩 사람 중에는 중국 반환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기념행사를 열기보다는 정부에 비판적인 행사나 집회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또 대규모 집회에서 홍콩인들이 홍콩의 국회 격인 입법회를 점거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다행히 그날은 한 명도 체포되지 않았지만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들 등에 장총이 매달려 있는 걸 보면서 ‘이런 게 국가폭력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걸 알리고 싶어서, 이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고회를 했어요. 제가 다녀온 사진들과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배경들을 발표하고, 그 보고회에서 한국에서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사람들과 같이 집회를 기획해서 2019년 8월에 광화문에서 연대집회를 진행했어요. 이전부터 사회 연대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문제를 알리고, 연대 행동을 기획해서 사람을 모으는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Q. 홍콩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여태까지 주력해 온 활동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상현: 기존에 한국에서 홍콩 이슈만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는 없었어요. 2019년 8월 정도부터 독자적으로 기획을 해서 집회를 주최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단위에서도 각자 연대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 행동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어떤 단체라기보다는 텔레그램 방에 모여 정보를 주고받으며 집회를 기획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어요.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직접행동이 침체가 된 상황에서, (텔레그램 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논의하던 와중 홍콩 보안법이 제정이 되면서 “이거는 우리가 크게 힘을 합치지 않으면 막기 힘든 상황이다. 홍콩 시민들이 대규모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홍콩 정부가 강력한 조치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연대를 체계적이고 책임 있게 하는 단체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결성한 단체가 한-홍 민주동행입니다. 단체 대표자가 12명인 이유는, 홍콩 시위의 특징이 ‘리더 없는 시위’라고 하잖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도 평등하게 수평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거리 캠페인 위주로 활동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진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좀 더 장기적 전망과 전략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체 설립에 앞서 비전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때는 중국이나 홍콩처럼 검열이 되지 않는 한국에서라도 교류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모였어요. 사실 홍콩뿐만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중국에서 정치적인 탄압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나누고 연대망을 만들려고 했는데 언어나 시간적인 문제로 쉽지 않았어요.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는 생각에, 국회에서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에 항의를 표하는 결의안이라도 채택을 하도록 기자회견을 한다거나, 국회의원들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모았지만, 반응이 미미했어요. 정의당 류호정 의원 외에는 컨택하는 것도 힘들고 정치인들과의 연대나 국회에서의 입법 결의는 사실 진척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법 제도를 만드는 시민운동을 어떻게 기획해갈까 고민이죠.

 

그런 한편 한국도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받은 분들이 있어서, “한국 내에서 국가보안법을 이슈로 시민사회 연대를 기획해 보자”라는 취지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리 캠페인이나 직접행동은 코로나 상황 때문에 계속하기 힘들어져서, 제도화나 연대 관계를 확충하는 차원에서 고민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활동을 진행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어떤 슬프고 괴로운 일들이 있었나요.

 

울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홍대에서 첫 번째로 시위를 할 때 중국인들이 엄청 많이 왔었어요.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한 명 두 명 늘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희는 그 친구들이랑 어떠한 접촉도 하지 말자고 처음에 약속했었지만, 분위기가 격화될수록 참기 어려웠어요. 그쪽에서 계속 ‘남의 나라 사정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냐’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니까. 결국 그 무리랑 (저희 쪽) 홍콩 친구랑 시비가 붙어서 경찰까지 중재하러 왔었어요. 저희가 또 홍대에서 계속 레논 월을 조성했었어요. 그때마다 그 친구들이 나타나서 레논 월을 훼손하고 돌아가고 시비를 걸고. 그런 일이 몇 달 정도 계속됐었어요. 

 

 

상현: 홍콩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사실 요구사항이 조금씩 달라요. 요구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5대 요구*라는 이름으로 정리가 되죠. 더 나아가 젊은 그룹일수록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그룹들이 정당으로 정치세력화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홍콩 보안법은 외국에서의 행위까지 처벌이 되는 굉장히 광범위한 법이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일이 한국 내 홍콩 연대 행동까지도 위협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홍콩인분들이 (연대 행동 과정에서 스스로) 그런 요구를 자제해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때 너무 안타깝고 마음 아팠습니다.

 

 또, 홍콩 보안법 발효 이후로는 ‘광복 홍콩’이라는 말 자체도 금지어가 됐어요. ‘광복 홍콩’이라고 쓰인 깃발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분열 같은 죄목으로 처벌을 받기도 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절망감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 시위대가 요구하는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1)송환법(범죄인 인도법) 공식 철회 2)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3)강경진압 등 경찰의 위법행위를 조사할 독립위원회의 출범, 4)체포된 시위자의 사면, 5)보통선거(행정장관 직선제) 보장 등의 사항이다. 

 

Q.  활동하는 과정에서 연대감을 느낀 에피소드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울프: 중국 내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한국에서 말한 단체는 저희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집회하는 도중에 중국인이 저희한테 와서 ‘너희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봤어요. 제가 알고 있는 중국인 친구도 집회할 때마다 주변에서 서성거리면서 지켜본 거예요. 중국이라는 나라가 탄압이 심하지만, 그 안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숨길 수 없는, 인간적인 열망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죠.

 

상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는데,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갈 때 보신각에 있었어요. 보신각 가기 전에는 홍대입구에서 ‘인간 띠 잇기’ 연대 집회를 했어요. 50명 정도 모여서 손을 잡고 ‘광복 홍콩’을 외치는 집회를 하고, 그러고 나서 보신각으로 가서는 종 치는 시간에 맞춰 “광복 홍콩!프리 홍콩!”을 외치며 ‘FREEHK’이 적힌 전지 사이즈의 패널을 들었어요. 거기 모인 사람은 ‘쟤네 뭐지’ 싶었겠지만 그런 것까지 했어요.  또 홍콩에 한국의 남산 같은 라이언록(Lion Rock)이라는 산이 있는데, 홍콩인들이 거기에서 밤새도록 등반을 하면서 산등성이를 잇는 시위를 했었어요. 저희도 청와대 옆 인왕산 같은 데서 (비슷한 걸) 한번 해보고 싶어요.

 

울프: 코로나 때문에 영원히 못 하지 않을까 싶은데. 

 

상현: 코로나가 우리의 계획을 훼방 놓은 게 많은데, 아무튼 그런 생각들을 했었고. 홍콩의 다양한 시위 기법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궁리해봤다는 게 나름의 보람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Q. 실제로 해보면 장관이겠어요.

 

상현: 2019년 9월, 중추절(추석)에 홍콩 친구랑 같이 실제로 했었어요. 근데 너무 힘들었어요. 중간에 정체 현상이 생겨서,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데 내려가지도 못했어요. 젊은 청년,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추석에 집에도 안 가고, 정상에서 중추절이라고 월병 나눠 먹으면서, 홍콩 투쟁가 부르고. 이 사람들이 추석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이런 걸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Q. 홍콩 시위에서 있었던 다양한 시위 기법들을 한국에서 실현해 보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예시가 있다면 더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울프: 2019년 10월 중순에 홍콩에 갔었는데, 그때도 시위가 격화되는 시점이었거든요. 홍콩 친구랑 저녁을 먹고 호텔까지 걸어갔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들이 막 모이더니 휴먼 체인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게릴라 시위라고 해서, 텔레그램에서 ‘몇 월 몇 시에 이렇게 하자’하면 그때 모이고 금방 해산하는 스타일의 시위를 많이 했었어요. 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몰랐죠. 제 뒤에 사람들이 쭉 늘어서더니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을 외치기 시작하는 거예요. 만약 한국에서 시위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게릴라 시위를 해도 임팩트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경찰도 이에 못지않게 탄압하는 수법이 점점 진화하는 거예요. 텔레그램에 잠입해서 감시한다든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사복경찰들이 경찰차를 호출해서 사람들을 잡아가고, 그런 걸 제 눈으로 확인을 했어요. 홍콩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잡혀가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상현: 한국에서는 그렇게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유럽이나 영국, 미국 등에서 대규모로 일어나는 ‘멸종 저항’ 시위 같은 경우에는 주요 지점을 대규모의 사람들이 점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일시적이든, 긴 기간이든, 마비를 시키는 거죠. 도로 다리라든지, 공항이라든지, 정부 청사를 막음으로써 기능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또 텔레그램 등의 통신망을 통해서 여러 집단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기획해요. 즉각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경찰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가 막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행동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수어를 활용하더라고요. 바디랭귀지를 통해서 그때그때 집회에 필요한 걸 조달해요. 예를 들어 헬멧이 필요하다 하면(머리 위로 헬멧을 쓰는 시늉을 하며), 물품이 모여 있는 곳에서부터 쭉 손에 손을 타고 전달을 해요.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달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집회를 강력하게 하기 위해서 파업을 하기도 해요. 3파 시위*라고. 경제활동을 마비시킴으로써 시위의 효과를 강하게 가지려고 하는 것도 인상 깊었어요. 학교에 가지 않고,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직장에 가는 사람들은 출근하지 않고, 자영업은 가게를 열지 않는 식으로요. 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색은 노란색이고 친중파의 색은 파란색인데, 그걸로 정치적인 성향을 구별하기도 해요. 어떤 가게가 만약 친중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그 가게는 가지 않는 식으로 소비를 통해 운동에 참여하죠.

 

*3파(罷) 시위: 3파 투쟁이라고도 부른다. 파공(罷工, 파업), 파과(罷課, 동맹휴학), 파매(罷買, 불매) 운동의 세 가지 방법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시민들 외에도 각 산업 종사자, 중고교 및 대학 등 집단 차원에서 대규모로 이뤄졌다. 

 

울프: 그걸 ‘옐로 이코노믹 서클(yellow economic circle)’이라고 해요. 

 

상현: 노란 경제*라고도 하는데. 그런 식으로 정치적인 요구를 경제 활동을 통해서 풀어가는 거죠. 단순한 불매운동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이라 생각해요. 

 

울프: 최근에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며, 경찰을 향해 레이저를 쐈던 친구가 기소됐어요. 경찰들이 무력으로 진압을 하니까 (그들의)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레이저를 비춘 거죠. 그런데 레이저 불빛이 시력을 멀게 할 정도로 세다는 이유로, 레이저가 법정에서 준군사급 무기로 판결이 난 거예요. 저는 억지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났어요. 그 후로 시위대에서 레이저에 물을 묻혀서 빛이 산란되도록 하기도 했죠. 

 

*yellow economic circle(노란 경제):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지지 여부에 따라 기업체를 구분 및 분류하여 소비하는 방식 전반을 의미한다. 노란 경제라는 말은 홍콩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란 우산'에서 유래됐다. 홍콩 시민들은 시위를 지지하는 상점은 '노란 상점'으로, 홍콩 경찰을 지지하거나 친중 성향의 상점은 '파란 상점'이라 부르며 후자에 대한 불매 운동을 펼쳤다. 시민들은 스마트폰 앱 등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거주 지역 주변 상점들의 정치적 성향을 수집 및 식별하고, 노란 상점 소비를 장려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상점을 늘리고, 시위 지지자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또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기업에 대한 지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치적 집단행동이기도 하다. 나아가 노란 경제는 2020년 홍콩 입법회 선거(현재는 2021년으로 연기됐다)에서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민주화 진영에 대한 투표를 늘리는 방법의 일환으로 추진됐다고도 볼 수 있다.

 

Q. 경찰들이 진압을 위해 시민들에게 행사한 폭력을 생각하면, 그건 정말 미약한 도구일 텐데…

 

울프: 그렇죠.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국가 수호보다는 시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니까요. 근데 그 레이저도 사실은 타오바오에서 산 거예요. 타오바오에서 그 레이저를 산 사람들은 준군사급 무기를 사게 되는 거죠. (웃음)

 

 

Q. 앞에서 언급하신 것 외에도, 한국의 민주화 시위와 홍콩의 민주화 시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울프: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국가가 시민에게 행사하는 폭력의 수위가 높고, 폭력을 이길 수는 없어도 시민들은 꾸준히 저항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차이점이라고 하면 글쎄요.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면서부터 (지금의 홍콩이) 저희의 민주화운동 시대를 역행해서, 거의 일제강점기와 비슷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돼요. 지금 홍콩에서는 뭐만 해도 잡혀가니까. 몇 시간 전에 기사를 읽었는데 홍콩 시민의 중증도 우울증 수치가 최고치를 찍었대요.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우울감, 공포감, 스트레스가 굉장한 거죠. 이 정도면 민주화 운동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상현: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건 외부 세력이 침략한 게 아니라, 국내에서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서 국민을 경찰폭력으로 짓밟고 학살을 한 사건이었잖아요. 홍콩도 마찬가지예요. 국민들이 국가 체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적 요구를 한다고 해서 강력한 폭력을 통해서 짓밟고 있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서로를 적대 세력으로 보는 거죠. 한 국가 안에 이견을 가진 집단 간의 분쟁이라고 보지 않고, 내전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5·18민주화운동에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 중 지금까지도 트라우마 센터에 치료를 받으러 다니시는 분이 계시는데, (홍콩은) 대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려는 건지 고민과 우려가 많이 돼요.

 

(보통) 과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홍콩의 민주화 운동과 비교를 하는데, 저는 오히려 현재와 비교가 됐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국가가 지정하는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대하잖아요.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하면 경찰이 투입돼서 테이저 건 쏘면서 진압을 하고. 2000년대 용산 참사를 봐도 철거민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하고 있는데, 경찰들이 진압하러 들어가서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로 인해 사람이 죽었는데도, 지금까지도 제대로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잖아요. 저는 이게 규모의 문제일 뿐이지 너무나 유사한 점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그런 권력 체계가 지금까지도 멀쩡하게 이 사회를 다스릴 수 있을까. 이런 참을 수 없는 상황들을 홍콩에서는 더욱 광범위하게 느끼고 있겠다고 생각해요. 

 

 또 홍콩 사람들도 한국처럼 과로사회예요. 노동하는 것에 비해 임금 수준은 굉장히 낮아요. 한국도 주거권이 정말 열악하지만, 홍콩은 이것보다 더 심한 상황이거든요. 닭장 아파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야 하는데, 그에 비해 많은 용지들이 부호들의 골프장으로 사용되기도 해요.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거든요. (홍콩과 한국이) 불평등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이 유사하다고 느껴요.

 

Q. 한국과 홍콩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 정서가 비슷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만큼 한국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담론들이 잘 활성화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언론에서 홍콩 시위를 바라보는 관점도 천차만별이잖아요.

 

울프: 한국 사람들 중에 ‘혐중’인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한복이나 김치가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사건 등이 있었잖아요. 거기에서 비롯된 혐중 정서를 가지고 ‘난 중국이 싫어, 그러니까 홍콩 지지해.’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이런 식으로 (중국에 대한 반동 기제로) 홍콩을 지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보고요. 혐중이라는 접근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중국에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말해줄 수 있어야지 무조건 ‘너희는 잘못했어’라고 하면 답이 없는 거죠.

 혐중이라는 단어에 갇혀서 생각하다 보면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체된 사고를 하게 돼요. 이런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하면 홍콩은 당연히 자유 진영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데 홍콩 안에서도 시위를 지지하는 세력 중에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어요. 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가치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이슈를 바라볼 때 좌파·우파를 벗어나면 좋겠어요.

 

상현: 홍콩 시위를 통해서 던져진 질문들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아까 울프 님이 냉전 이데올로기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미 의회를 통과한 홍콩인권법에는 홍콩의 자치 정도를 1년마다 평가해서 경제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잖아요. 이 법안이 실제로 홍콩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탄압과 폭력을 막기에는 무력해요.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미국이 홍콩인권법을 통해 중국을 압박한다는 등 미-중 패권경쟁 구도를 만들기도 해요. 이런 언론플레이가 과연 타당한지, 사람들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물론 (홍콩인권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죠. 인권탄압에 대해 조치를 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바이든이 당선됐을 때 많은 홍콩 시민들이 실망하기도 했어요. 바이든이 트럼프만큼 강력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이랑 친화적인 노선을 걸을 거라는 거죠. 국제 관계가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각자의 이권은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옳은 길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홍콩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가치판단을 하기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요. 이 사회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면, 자유 혹은 평등 중에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잖아요. 둘 다 보장되는 새로운 체계를 상상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얘기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해외 인권 침해에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나 난민법, 북한인권법 같은 인권에 관련한 각개의 법은 있지만, 그 근거가 되는 포괄적인 상위법이 없어요. 국제인권규범을 국내에 도입하는 국내법 제도도 미비하고요. 또 정치적 난민 이슈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해요. 홍콩 사람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다른 국가로 이주하려 할 때 한국을 난민 인정 신청 대상 국가로 고려할 수도 있을 텐데, 한국은 난민 인정을 잘 안 하기도 하고, 정착했을 때 이주민들이 잘살기 힘든 국가기도 하잖아요. 다름에 대한 관용 수준이나 보장책이 거의 없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안전망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또 로힝야족 같이 학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 등 국제 인권을 (보장하는 법을)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하고 시민단체의 연대 활동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지금까지 고민하지 않던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그 힘이 크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되면서 더 강해지면 좋겠어요.

 

Q. 홍콩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 안의 결이 다르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렇다면 시위에 참여하는 세력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인지, 홍콩 청년들이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인식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울프: 홍콩 안에서도 좌우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한국 사람 입장에서 ‘좌’면 진보적이고 ‘우’면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홍콩 안에도 그런 게 있긴 있어요. 진보적인 진영, 동성애자나 소수민족 등을 포용하면서 다양한 차별을 타파해가는 사회 그룹이 있고, ‘우’라고 하면 트럼프를 지지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최근에 이 사람들이 충돌한 적이 있어요. 트럼프가 난민을 배척하고 아메리카 퍼스트를 말하잖아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인가’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트럼프가 홍콩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지지하는 걸 이해는 하지만, “그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죠. 한편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는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지해야 한다”고 말해서 부딪치는 일이 있었어요. 홍콩 내에서 시위는 계속돼야 하는데 여기서 분열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약간의 걱정이 들었고요.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들을 흔히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콩저(홍콩 돼지)'라고. 한자로 하면 홍저(紅猪)라고 쓰더라고요. 아예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있긴 있어요. “너희가 뭘 하던 관심이 없고 내 살길을 찾아야겠어. 나는 이 상황에 그냥 만족해. 내 안위가 우선이야”라는 사람도 있는데. 대체로 제 주변 친구들은 한 명이라도 이 운동을 지지해야 우리의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네가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홍콩이 이렇게 된 거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치지 않으면 홍콩에 미래는 없다.” 고 많이 말하더라고요. 이거에 대해서는 한국 청년들도 반성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게다가 투표도 안 하잖아요. 이런 (홍콩의) 상황과 비슷한 시기가 닥치고 나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늦는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홍콩 청년들이) 한국 청년들한테도 이런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상현: 2019년 홍콩 시위를 전후해서 ‘홍콩 본토파’라는 그룹이 굉장히 지지를 많이 얻어 세력이 커지고 있었어요. 지금은 탄압을 많이 당해서 외국으로 정치 난민을 가거나 거의 해체된 상황이긴 해요. 본토파라는 그룹의 성공을 ‘지역주의(localism)’라고 칭하더라고요. 지역 이기주의랑은 조금 달라요. ‘홍콩 시민들의 일은 홍콩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게 하자’, 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 이유는 홍콩 시민들의 이익을 지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정치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중국계 자본이 아무 규제 없이 홍콩의 부를 독식할 수 있게 한다던가,  중국에서 싹쓸이 쇼핑을 와서 홍콩의 생필품들을 쓸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던가, 중국 본토 사람들이 홍콩에 와서 정착할 때 혜택을 주는 바람에 홍콩의 주거난이 심화되기도 했죠.  그래서 홍콩인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지역의 사안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식으로 정치세력화가 되고 있어요. 

 

 조금 우려스러운 건, 그들 중 일부분은 배타적이기도 해요. 어떤 상황에서는 집회에서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홍콩의 본토주의에 대한 한국 연구 결과를 봐도 이런 것들이 배외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홍콩 내 건강한 담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건강한 논의가 되기 전에 (국가) 폭력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반작용도 심한 것 같아요. 강력한 폭력에 이쪽도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게 되잖아요. 저는 그런 것들이 너무 슬프고 우려가 돼요.

 

 제가 시위 초기에 홍콩에 가서 홍콩인들과 얘기를 할 때, 자기는 홍콩인이라는 정체성, ‘Hongkonger(중국 본토의 문화와 구별되는 홍콩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표현)’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좀 국뽕 같다고. 그리고 홍콩인들에 비해 사회적인 매너가 숙지가 안 된 것 같은 중국인들을 경멸하는 감정에 대한 거부감도 포함해서, 홍콩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자율성을 박탈하는 것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면서,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긍정하게 됐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정치적인 가능성을 많이 봤는데, (시위가) 폭력으로 점철되기 시작하면서 논의가 힘들어진 부분이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홍콩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으로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대중 정서라는 게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배외주의(排外主義): 한 사회집단에서 다른 사회집단을 배척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쇼비니즘(chauvinism), 폐쇄주의 등으로도 부른다.

 

 

Q.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홍콩과 비슷한 위기들이 찾아올 가능성은 언제나 도래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의 청년들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을 내 일이라고 직접 느끼는 상황이 별로 없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청년들이 연대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울프: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대학생 모임' 같은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들이에요. 문제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대다수라는 거죠. 이 친구들이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영원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잖아요. 자기의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뉴스도 잘 안 볼 테고, 정치적인 이슈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도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투표나 정당의 정책 등에도 관심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투표를 안 하게 되고 투표율도 떨어지고, 그러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크죠. 홍콩의 이슈를 바라볼 때, ‘만약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마 느낌이 확 달라질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예를 들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명동 같은 큰 역에서 경찰이 들이닥쳐서 나를 때린다든지,  국가가 나한테 행할 수 있는 불합리한 것들은 사회 곳곳에 언제나 존재한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이런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지 않으면 나도 언젠가 당할 수 있다’는 태도가 필요해요.

 

상현: 저는 울프 님이 말해주신 것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청년들의 조직 운동이 그래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 홍콩 연대 집회 중에서 규모가 꽤 컸던 게 2019년 11월 23일에 있었던 한국 청년 대학생 연대 집회였어요. 그때 주최 측 추산 300명 정도 참여했는데, 거기에는 원래 단체활동을 하던 청년 대학생들이 많았어요. 한국에 다양한 사회 운동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에, 청년 운동가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 홍콩이 겪는 문제를 한국도 비슷하게 겪고 있거든요. 홍콩 시민들은 주거난·생계 문제 등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정치적인 권력을 획득해서 바꿔야 하는데,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이잖아요. 한국도 비슷해요. 정치적 의사가 있는 청년들이 열심히 활동하지만 사실 안 바뀌잖아요. 계속 거대 양당이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이나 화가 나는 마음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또 홍콩은 다른 해외 이슈보다 언론들이 많이 다뤘어요. 그렇다 보니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역사와 연결지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홍콩이 국제도시다 보니 영어로 소통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한국에서 연대 활동을 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바로 고맙다고 얘기들을 많이 하면서 마음들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연대하는 게 눈에 보이면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던 것 같아요. 국경을 넘어서 친밀감이 느껴지는 상황도 있고.

 

 홍콩 친구들이 미디어 활용을 잘했기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시위 현장을 영상으로 접하면서, 이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언어를 넘어서 전달이 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소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홍콩 민주화 운동에 연대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한국 청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안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울프: 젊은 세대라고 하면 문화 교류에 관심이 많을 거예요. (홍콩에) 케이팝이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고, 역으로 (한국에) 중국 드라마라든지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잖아요. 서로 문화적인 교류를 하다 보면 친분을 쌓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아요. 지금 중국에서 발생한 이슈들에 대해서 홍콩 친구들도 한국 사람들 계정에 김치는 너희 거다, 한국 거다, 하고 거들기도 해요. 한편 중화권 드라마 좋아하는 친구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중화권 스타가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포스터를 올렸다고 해서 나 이 드라마 안 본다, 덕질 그만둔다 이런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진지하게 정치적으로 접근을 하는 것보다 친밀감을 바탕으로 해서 사소한 것들부터 접하다 보면, 다가오는 현실의 문제도 보일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대에 대한 생각들도 바뀌지 않을까 해요. 한편으로는 홍콩 친구들은 도움의 손길이 당장 절실하기 때문에, 정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한국에서 지지 활동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 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어요. 어쨌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고, 뉴스를 찾아보는 식으로 조금씩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봐요. 

 

상현: 재작년 11월에 홍콩의 시위를 이끄는 리더 그룹 중 하나인 ‘민간인권전선’이라는 곳의 부의장을 맡은 얀 호 라이라는 분이 내한을 해서 같이 연대 집회도 하고 간담회도 했었어요. 그때도 각계각층의 교류와 연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었어요. 예를 들어 한국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같은 변호사 그룹과 홍콩의 변호사 그룹이라든지, 홍콩과 한국의 대학생들이라든지. 홍콩 시위에서 대학 안에 최루탄을 투여하고 총 들고 들어가는 걸 보고 한국 대학생들이 엄청 충격을 받았거든요. 이런 광경을 21세기에 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한 거죠. 상식적인 판단 자체가 정지되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인간성을 파괴하는 국가폭력 속에서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포럼을 개최한다든지. 이런 교류가 계속되면 좋겠어요.

 

 저도 가끔 모르는 홍콩분들한테 연락이 와요. 어느 대학인데 인터뷰를 하고 싶다, 한국에서 홍콩에 연대하는 마음들은 어떤가, 어떤 동향으로 연대 활동이 이뤄지고 있느냐, 이런 것을 질문하기도 하는데 거기서부터 교류가 시작되고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가능할 것 같고.

 

 아까 말씀하신 문화적 교류도 좋아요. 홍콩 친구들이 한류를 좋아하는데,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전정국 씨가 얼마 전 화보집에서 홍콩 시위를 연상시키는 노란 우산을 들고 등장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거든요. 또 한-홍 민주동행에서는 장국영 영화제를 했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은 못 하고, (영화를) 각자 보고 온라인으로 모여서 토크를 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단순히 감상만 나누는 게 아니고 그 당시의 홍콩 상황이나 중국 체제 등 영화에 얽힌 배경들을 얘기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참가자들이 지속적으로 이런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관심 있는 것에서부터 확장해 나가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시은 기자 ohno2828@gmail.com

이지민 기자 starwave0224@gmail.com

 

*'한국x홍콩x태국—청년 운동 연대(連帶)기 ②태국편'으로 이어집니다.

 

**해당 기사는 지면 '외대알리 35호: 변화를 주도하는 청년들'에 실린 기사로, 1월에 작성되었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