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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살, 나의 길을 가기로 했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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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 (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2015~2019)”)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곤한 질문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왜 학교를 그만뒀어?”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반면 대학생들은 “왜 대학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정상’이라는 틀 안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에서 다름은 별남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르다’라는 표현엔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기운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별나다’라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을 대표하는 단어가 ‘대학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히들 서로의 생활이 달라지면 할 말이 없어지고 어색한 사이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생활이 서로 달라서 즐거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로 즐거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 E의 이야기
 E가 대학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건 15살,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흔히들 대학을 가면 인생이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것 중 하나가 수능이다. 그 하루를 위해 매일 매일을 경쟁으로 채워야 하는 3년이 무서웠다. 그러던 중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꼭 대학을 거쳐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E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E에게 거는 부모의 기대가 유독 컸다. 그들의 기대는 E가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거였고, 중학교 때는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좋은' 동네로 이사하기도 했다. E가 결정한 선택을 부모는 포기로 받아들였다. E가 식음을 전폐해도 특성화고 진학을 반대했던 부모님이 결국 허락한 이유는 E의 다짐을 받아내서였다. 그들은 조건을 걸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가라고.” 그 이야기를 들은 E는 그 순간부터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짐에 가까운 억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확신은 아직까지 그에게 유효하다.

 

 물론 당시 E가 특성화고 진학을 하게 된 건 선택보단 회피에 가까웠다. 하루 안에 결정 나는 인생이 싫었고, 경쟁이 두려워서 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E의 선택은 용감하고 다행스럽다.  특성화고에 진학한 그는 예전과 같이 시험에 얽매이지 않았다.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면 나란히 줄지어야 했던 책상 배열도 이젠 더이상 그를 압박하지 않았다. 대신 업무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혔다. 각종 숫자와 프로그램, 프로세스에 익숙해지기 위해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19살 여름, E는 한 회사의 사무직으로 일하게 됐다.

 

 

 2년여의 기간 동안 일하며 가장 크게 깨닫고 바뀌었던 건, ‘커리어우먼’, ‘멋진 여자’에 대한 환상이었다. 그 환상은 돈을 많이 벌고, 멋있는 연애를 하고, 주위에 아낌없이 물질을 나누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몇 년 간의 노동으로 그는 돈을 번다고,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멋진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꼭 멋진 여자가 될 필요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완벽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경쟁의 공포에서 비롯된 E의 선택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수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했다고 E는 말한다.  대학 대신 선택한 노동은 학교라는 공간 대신, 좀 더 자유롭고 과감한 선택의 세계를 열어줬다.

 

 ‘집-학교-학원’의 일정만 반복하던 그에게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하고, 어울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학생 땐 놀이공원을 가고 커피를 사 마시는 게 사치로 여겨졌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접하지 못했던 여유가 생긴 그는 점점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E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기까지는 여유가 필요했다. 경제적인 여유, 그리고 거기서 오는 심리적인 여유.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것.

 

 E는 ‘관계’를 다루는 법 역시 조금 일찍 알게 됐다. 종종 불편하고, 불안한 관계를 경험함으로써 얻게 된 소득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상대를 불쾌감 없이 마주하는지. 관계를 맺고 끊는 방법을 배웠다.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선 때론 들어야 할 것도, 듣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됐다. 역시 학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먼저 경험해서 얻은 것들이었다.

 

 물론 기분 좋은 경험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새 ‘공부 못하는 학생, 안 하는 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E의 ‘선택’이 E의 실력 없음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E가 (대학) 비진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이야기를 원했고, 그렇게 단정 짓길 좋아했다. E가 비진학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의무처럼 따라오는 질문도 있었다.

 

 

 “몇 살이니?”, “대학은 어디야?”, “왜 안 갔니?”,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못 했겠네.”

 

 

 그 질문들 사이에는 대학을 가지 않는 것에 대한 편견이 서려 있다. 그리고 거기엔 대학 비진학 청년들의 서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저마다의 이유는 편견에 갇혀 발화되지 못한다. 회피로, 도망으로, 뒤처진 이들의 선택으로 여겨질 뿐이다.

 

 특성화고 진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다. E의 주변에도 다양한 선택의 연유들이 있었다. 가계를 걱정해야 했던 어떤 이들은 경제적 혜택을 이유로 특성화고를 택했다.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걸 배우기 위해 온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을 다양함이라는 명제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그 선택의 뒷면에 ‘돈’이 있기 때문이다. “취직해서 돈 벌어야지”라는 생각이 누군가에겐 절대적이고 필수적이며, 또 일찍 찾아온다. 특성화고 진학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생계를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하는 절박함이 달려있다. 쉽게들 말하는 캠퍼스의 낭만은 누군가에겐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 것들이다.

 

 E의 선택은 일상의 차이로 이어졌다. 과제와 시험, 교수, 축제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E의 나이는 그런 이야기들을 소비해야 한다고 여겼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만을 당연한 듯 생산했다. 미디어에서 20대를 상대로 소비되는 내용은 대학에 관한 것들이었다. E는 그때 일상의 거리감과 괴리를 느꼈다.

 

 구직할 때마다 당연한 듯이 적혀있는 “대졸”이라는 문구 역시 거리감을 제공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E는 대학 진학 대신 실무로 경력을 채웠다. 그의 경험이 학력과 동등하게 인정받길 바라는 마땅한 기대와 함께. 하지만 그가 대학을 가지 않는 대신 쌓았던 경험과 경력은 ‘대졸’이라는 두 글자 앞에선 효력을 상실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내 능력이 학력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다. 이력서에서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학력과 경력은 사실 같은 부피와 압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르게 존재하는 무게 사이에 능력과 노력과 성공에 대한 맹신이 있다. 운도 실력이 된다는 문법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높은 취업률을 보장한다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일자리엔 어려움이 존재한다. 실무 경력이 있음에도 대학졸업자보다 적은 자리가 주어지고, 낮은 대우를 받는 건 일상이다. 그들의 일자리는 대학졸업자보다 안전하지 못하며, 안정감을 찾기도 어렵다. 학교에서는 회계와 포토샵, 무역 영어 등의 사무직 업무를 배우지만 이 배움이 반드시 사무직 취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그들의 자리는 자르기 쉬운, 가벼운, 그리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E는 일했고, 일한다. 회사 사무직, 호텔 아르바이트, 키즈카페, 쇼핑몰. 많은 곳을 거쳤다. 이런 경험들로 자신의 호와 불호, 취미와 적성을 알아가고 있다.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 E는 즐겁다. 쇼핑몰 업무는 E가 여러 사무직과 아르바이트를 거쳐 찾게 된 그의 적성이었다. 다양한 직장을 거치며 그는 자신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더 잘 적응한다는 걸 알게 됐다. 위계질서와 수직구조로 얽힌 딱딱함의 결정체는 그에게 회의감의 결정체가 됐고,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러 쇼핑몰을 거치다 보니 다른 곳에도 시선이 갔다. 얼마 전까진 바텐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공부했다. E는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한계짓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일상을 어떤 노동으로 채워나갈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수정하고 있다. 그의 궤도는 그렇게 진행 중이다.

 

 

 처음 대학을 가지 않기로 다짐했던 15살, E는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닐까, 이대로 무너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다수가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했고, 그래서 미지의 세계 같았다. 하지만 자신만의 궤도를 구축해나가는 생에서 그는 한 발 일찍 내디딘 것뿐이다. 두려움은 즐거움, 유연함, 여유로 변했고 그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에 안도하고 만족한다. E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으므로, 세상이 틀렸다고 말해도 그에게는 정답이므로.

 

 대학은 E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은 도구였을 뿐이다.

 

 


# 에필로그
 우리의 선택에 주어지는 무게들이 있습니다. 때론 우리에게 주어지는 질문을 통해 그 무게를 체감하곤 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들 속에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정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다른 선택은 선택이 아닌 포기가 되고, 그들의 질문은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로 끝납니다. 사실 그 질문이 원하는 건 이유가 아니라 변명입니다. 누군가의 선택과 이유를 핑계와 변명으로 받아들이는 권리가 타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권리가 아니라 권력 아닐까요.
 

 마침표로 끝나는 질문들에 때론 위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질문들은 내 선택과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습니다. 그 거리감은 결국 난 아무것도 일궈놓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말한 ‘정상’적인 궤도 밖의 삶도 가치가 있습니다. 이곳에도 만족과 안도, 기쁨과  성취가 존재합니다.
 

 서로의 선택에 똑같은 짐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똑같은 안전과 안정이 보장되면 좋겠습니다. 너와 나의 선택이 핑계나 변명, 포기와 회피로, 정상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주어진 삶과 숨을 감당하는 것, 그거면 됐다고 듣고 또 말하고 싶습니다.

 


# 추신, 나의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저는 어릴 때부터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스무 살은 '대학생'이었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아니 대학생이 되면 모두 부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멋지게 자신을 꾸미면서, 방학 땐 취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날 제 착각의 밑바탕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누구나 대학에 가는 줄 알았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와는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이 옆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많은 설명이 요구되는 순간들을 목격했습니다. 버거운 질문을 감당하는 친구들을 보며 속상하고, 분노했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그들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이야기도, 애매한 거리에서  조심스러웠던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S와 J, 그리고 E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의 풍부한 삶에서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의 무게를 배웠습니다. 

 

 이 기획이 누군가의 누락되고 흩어진 목소리를 발견하는 조그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쌓여 결국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의 제목처럼, 그 누구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편: https://www.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151
2편: https://www.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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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진 기자

모순된 제 마음을 결국 당신의 삶과 숨을 보듬어가는 동력으로 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