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3 (수)

대학알리

수능창시자 “이런 시험,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리뷰] EIDF2025 초청 다큐멘터리 <수능 창시자; 한국 교육의 프랑켄슈타인>

 

8월 3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는 제22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뉴 코리안 웨이브’ 섹션 초청작 <수능 창시자; 한국 교육의 프랑켄슈타인>이 상영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기원과 변질을 다룬다. 수십 명의 수험생·학부모·교사·2030 관객들은 뇌우에도 불구하고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

 

 

수능은 처음부터 이랬을까. 1985년 논의 착수, 1990년 실험평가, 1993년 첫 수능. ‘대학 수학(修學)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점검하는 자격 시험’로 설계되었던 수능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성적으로 줄 세우기 시험’으로 굳어졌다. 다큐멘터리는 학력고사 시절 ‘모든 과목을 외워 치르는 선발’의 폐해를 먼저 소환했다. 이후 1980년대 말 민주화의 압력 속에서 도출된 국가 고사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언어·수리 등 기초 능력을 확인한 후, 대학별고사로 학생을 선발하는 모델이 어떻게 제안되었는지도 보여준다.

 

당시 수능의 레퍼런스는 미국 SAT였다. 수능연구팀은 ‘평소에 좋은 문제를 축적해 시험 직전 일부를 뽑아 쓰는 문제은행 시스템’을 제안했다. 적절한 양의 문제만 비축된다면, 연중 여러 차례 시험을 치르고 최고점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자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한 연구진은 "400점 만점에 250점이 넘으면 대학은 더 보지 않아야 한다"며 수능의 핵심이 어디까지나 ‘자격’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의 과목을 수능에 넣기 위한 과학·사회계의 정치 싸움이 시작됐다. 평가가 곧 교실의 시간을 배분하고 학문 생태계의 존립을 가르는 구조 때문이었다. 학생의 학습권과 교과의 생존권을 지키려 "우리 영역도 평가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론의 동요 속에서 타협안이 도출됐고, 편제가 늘어나자 수능은 다시 선발 시험의 프레임으로 회귀했다.

 

사교육 시장은 변화에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며 판을 넓혔다. 한때 교실을 휩쓸었던 독서 열풍과 탈암기식 수업의 가능성은 이 충돌 속에서 속도를 잃었다. 제도 변경의 혼란, 학계의 반발, 행정의 보수성, 미디어의 압박, 대학의 이해관계가 뒤엉키면서 수능의 본질이 훼손된 것이다.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카메라 앞에 선 ‘수능창시자’ 박도순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고등학교에서 암기한 것은 3년이 지나면 70%를 잊는다. 그걸로 사람을 줄 세우는 게 무슨 논리냐", "처음 제안해 만든 시험이지만, 이런 정도의 시험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이 직설을 반복·변주하며 ‘창시자의 의도’와 ‘사회가 생산한 결과’ 사이의 골을 비춘다.

 

편집은 누군가를 악역으로 세우는 대신, 구조적 원인을 추적한다. 한 사람의 회한을 비추되, 질문의 대상을 사회 전체로 늘려 잡는다. 여기서 부제 ‘프랑켄슈타인’의 뜻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흔히 프랑켄슈타인을 괴물로 오인하지만, 실제로는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감독은 창시자를 ‘비난의 표적’으로 세우지 않는다. 창조물이 괴물이 된 사정을 추적하면, 결국 그 괴물을 키운 것은 창시자의 의도가 아니라 사회의 타협과 욕망의 합이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요소들은 콘텐츠의 재미를 더했다. 저작권 문제로 실제 뉴스 화면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재연·모션그래픽·애니메이션을 적극 활용했다. 수능연구팀 회의실과 수험생 재연 장면은 ‘정무적 판단’이 이상을 어떻게 휘게 만드는지를 연기자의 몸짓과 시선으로 보여줬다. 타임라인 등 모션그래픽은 제도 변화의 흐름을 관객이 짧은 시간에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상영 직후 열린 GV에서 백진우 감독은 <수능창시자>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그는 고교 졸업 직후 교육운동가로서 시민단체 ‘프로젝트 위기’를 8년간 운영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제도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그 메시지를 다큐멘터리에 반영하고자 했다.

 

감독의 개인사도 작품의 관점에 영향을 줬다. 백진우 감독은 "학창시절 엄청 열심히 공부하던 모범생이었지만, 왜 공부는 이렇게 재미없을까"라는 물음을 오래 품었다고 했다. 대학에 와서는 ‘시험공부 안 하기 프로젝트’를 했다. 벼락치기 대신 평소 수업을 충실히 듣고, 논술형 시험에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적어 교수와 소통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좋은 공부’에 대한 관점이 생기자 수능의 창시와 변질을 더욱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GV에 참여한 익명의 고3 학생은 "수능이 초기 의도와 다르게 많이 변질된 게 안타깝다. 스토리에 공감이 많이 됐고, 수능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줄어들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취재진을 만난 백진우 감독은 "교육이 문제라며 우선 좋은 대학에 가서 힘 있는 사람이 돼 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싶다. 이 작품은 그러한 힘이 있었던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 취업을 준비 중이다. 교육을 넘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좋은 소재를 찾으면 후속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OTT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작품의 배급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답했다.

 

 

<수능창시자>는 △복잡한 제도사를 다양한 기법을 통해 알기 쉬운 이야기로 전환했다는 점 △개인의 의도와 사회의 결과 사이의 책임 윤리를 질문했다는 점 △해법을 내려 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했다는 점 △한국 사회가 수능에 대한 토론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는 점 등에서 저널리즘적 가치가 뛰어나다.

 

작품은 교육 문제를 수능으로 해결하려는 접근 자체가 문제라고 직설하며, 정책과 제도라는 껍데기를 벗겨내고, 합의·욕망·타협이 얽힌 사회적 책임을 호출한다. <수능창시자>를 통해 대한민국이 수능 제도를 다시 돌아보고, 단순히 ‘시험을 통과하는 사회’가 아니라 ‘배움을 축적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품 정보]

〈수능 창시자; 한국 교육의 프랑켄슈타인〉(2025, 78분)

감독: 백진우 / 제작·그래픽: 김민솔 / 제작지원: EIDF·KOCCA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chajonggwan.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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