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무엇인가. 악동뮤지션, GD, "찬혁이 하고 싶은 거 그만해", ... 이 외에도 여럿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다름 아닌 '이찬혁비디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2023년 6월 28일, 세상에 나온 <우산>이라는 12곡의 리메이크 트랙을 담은 앨범과 그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말이다.
먼저 리메이크 앨범 <우산>의 트랙과 그 원곡을 먼저 살펴보자.
[이찬혁비디오- <우산> 트랙 리스트 + 원곡] |
01. 이사(移徙) (Vocal. 신봉선) / 윤상 4집 (2002년) 02. 공항 가는 길 (Vocal. 이세영) / 마이 앤트 메리 3집 (2004년) 03. 연날리기 (Vocal. 임시완) / 9와 숫자들 1집 (2009년) 04. 춤 (Vocal. 신세휘) / 브로콜리 너마저 1집 (2008년) 05. 머물고 싶은 순간 (Vocal. 고아성) / 11월 1집 (1990년) 06.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Vocal. 설인아) / 오리온 초코파이 CM송, 강승원 (1989년) 07. 처음으로 우산을 잃어버렸어요 (Vocal. 장윤주) / 델리스파이스 5집 (2003년) 08. Romantico (Vocal. 한로로) / 테테 EP (2011년) 09. 도레미파솔라시도 (Vocal. 채령 (ITZY)) / 조원선 1집 (2009년) 10. 눈물의 왈츠 (Vocal. 고영대, 임승원) / 타바코 쥬스 (2009년) 11. 밤이 깊었네 (Vocal. 곽윤기) / 크라잉넛 3집 (2001년) 12. 쉬운 얘기 (Vocal. 이수현, 장기하) / 내 이름은 김삼순 OST, 옥수 사진관 (2005년) |
이 앨범에는 1989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쏟아진 음악 중 12곡만이 담겨있다. 이 곡들은 이찬혁 자신에게 비를 피할 자리를 내어준 곡들이고, 이들을 다듬어 만들어 낸 자신의 앨범 역시 듣는 이의 옷깃을 몰아치는 빗방울로부터 지켜주는 우산이 되어준다.
이 글을 통해 처음 이 앨범을 만난 이들은 Vocal 뒤에 붙은 이름에 눈이 갈 것이다. 1번 트랙에서 12번 트랙에 이르기까지 겹치는 것은 오직 편곡에 '이찬혁'의 이름이 쓰여 있다는 것뿐이다. 모든 트랙을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만들어 낸 앨범을 처음 보았을 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내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걱정보다는 기대에 가깝게 느껴졌다. 과연 이찬혁은 원곡 아티스트부터 리메이크 트랙에 목소리를 더한 이들까지 단 하나도 겹치는 것이 없는 앨범에서 어떤 조화를 만들어 낼지 기대를 품으며 유튜브에 올라온 [이찬혁비디오 - 우산 전곡 듣기]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풀 앨범-뮤직비디오의 힘
뮤직비디오와 함께 12곡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편안한 화면과 새로이 다듬어진 음악을 들으며 온몸의 긴장은 저절로 풀렸고 45분 51초가 지나고 검정 화면이 비치고 나서야 감탄이 나왔다. 이 앨범을 뮤직비디오 없이 음악으로만 만났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앨범의 개별 트랙은 모두 다른 원곡자의 음악을 다른 보컬의 목소리를 통해 노래하고 있다. 그렇기에 영상 없이 앨범 자체로만 감상했을 때에는 각 트랙들 간의 간격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간격을 메우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45분 51초간 이어지는 비디오는 주구장창 이찬혁의 모습을 비춘다. 외출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시작하여, 공항을 지나 너른 들판에 다다라 바삐 얼레를 풀어 한참이나 연을 날리고, 당신을 만나 한참이나 춤을 추다가 꿈에서 깨 당신 없는 들판을 떠나 버스를 타고는 한 라이브 클럽에 도착해 공연을 본다. 이때부터 카메라는 잠시, 이찬혁이 아닌 공연 중인 무대 위를, 이찬혁의 뒤에 앉은 왜인지는 몰라도 왈츠풍의 춤을 잘 출 것 같은 한 사람을 비춘다. 이내 다시 카메라가 돌아와 이찬혁을 비춘다. 잠에 들어 밤이 깊은 것을 깨닫고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을 벗 삼아 집으로 와 지친 몸을 씻고, 지난 하루를 닫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난다.
연, 춤, 왈츠 - 프로듀서로서의 이찬혁
12곡의 다르지만, 같은 음악을 들으며 꼭 코멘트 하고 싶은 세 곡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3번 트랙인 <연날리기>이다. 2009년 9와 숫자들의 1집 앨범의 11번째 트랙인 연날리기는 이찬혁의 편곡에 임시완의 목소리가 더해져 9와 숫자들의 그것과는 다른 매력으로 듣는 이들에게 다가왔다.
처음 전곡 듣기 영상에서 이 곡을 만났을 때, 이 목소리가 정말 내가 아는 그 임시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로 활동을 시작해 이제는 탁월한 배우로 성장한 임시완의 노래 부르는 목소리를 들어 본 경험은 전무했다. 어딘가 젊은 날 김창완의 목소리와 비슷한 구석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네의 놀이인 연날리기의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다음은 이 앨범의 4번 트랙이자 타이틀 곡인 <춤>이다. 2000-10년대 한국 인디 밴드를 대표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 앨범의 첫 트랙이자 타이틀 곡인 춤은 원곡에서는 남성 보컬 윤덕원의 목소리로 불리지만, 이찬혁비디오의 <우산>에서는 여성 보컬 신세휘 밴드 '웨스'의 보컬이자,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의 목소리로 다시 불린다.
이찬혁의 편곡을 통해 조금 늘어진 템포 역시 원곡과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1절이 끝나고 2절로 넘어가는 연주 구간의 색소폰 소리는 늘어진 마음을 다시금 늘어뜨리는 이 곡의 킬링벌스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12곡의 뮤직비디오 영상 중 유일하게 둘 이상의 인물이 합을 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로 시작하는 노랫말처럼 줄곧 혼자였던 영상 속 이찬혁은 당신을 만나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1절이 지나는 동안 누리게 된다. "눈을 뜨면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끝마치는 노랫말처럼 2절의 노랫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찬혁은 다시금 혼자 남겨지게 된다. 이내 자신이 취한 것이 '춤'이 아닌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꿈을 꾸려 춤에 취해봐도 당신은 이미 떠나고 없다.
마지막은 10번 트랙인 <눈물의 왈츠>이다. 2009년 타바코 쥬스의 1집 앨범의 마지막 11번째 트랙이자 히든트랙이었던 눈물의 왈츠는 단순하고 경쾌한 멜로디에 보컬 권기욱의 독보적인 목소리가 빛을 발하는 음악이다. 처음 타바코 쥬스라는 이름을 만나고, 검색을 하다 보니 정말 재밌는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흥적으로 방에서 녹음한 음원 <눈물의 왈츠>를 말하는 것이다 을 사용하는 것과 자신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에서 보여주는 날 것의 모습까지. 그리고 보컬 권기욱은 자신들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에 종종 댓글을 달며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곤 한다.
이찬혁이 다시금 빚어낸 <눈물의 왈츠>는 가장 '깔끔한 소리'로 <눈물의 왈츠>를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다. 다소 거친 원곡의 사운드를 차분하게 다듬어 음악이 가진 차분함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했다. 이 차분함에는 목소리를 더한 고영대와 임승원의 몫 역시 크다. 처음 트랙 리스트를 보고 처음으로 들어 보는 이름이었던 이 둘은 크리에이터 혹은 유튜버로 우리에게 익숙한 '와디의 신발장(고영대)' 과 '원의 독백(임승원)'이다. 필자는 이들의 영상 한 두 개 정도를 알고 있는 게 전부였기에,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다듬어 새로이 빚어내고, 목소리를 더할 이들을 과감히 선택하는 안목까지. 이찬혁이 엄청난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인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여기에 더해 이찬혁은 '이찬혁비디오'의 퍼포머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자 노력한다. 12개의 트랙에 대부분 출연하여 꾸준히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이전에 '이찬혁비디오' 채널과 솔로 활동을 통해 보여주던 '무언(無言)'의 독창성과는 다른 '유성(有聲)'의 안락함을 전해준다.
아티스트 이찬혁은 어디로 가는가
서두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이 글을 읽고, <우산>의 트랙과 뮤직비디오를 들여다본 시점에서 당신은 '이찬혁'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여전히 이찬혁이 하고 싶은 걸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부디 이 글이 그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다시금 이찬혁이라는 아티스트에게 빠졌다. 음악적 역량부터 시작하여, 이를 단순히 음악으로써 보여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찬혁의 내일이 더욱이 기대가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묵묵히 자신의 얼레를 감는" 이찬혁의 연날리기를 응원하고, 오래도록 보고 싶다.
필자 후기 - 더 나은 해석자를 꿈꾸며
글을 쓰는 동안 '더 잘'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언어로 풀어낼 길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고, 조사가 부족한 지점을 만났을 때는 필자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족한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나름의 마무리를 짓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쓰기는 적어도 실패한 글쓰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족함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이 글을 봐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변명을 남긴다.
글 = 그림
편집 = 권동원 기자
디자인 = 장채영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