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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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대알리 오피니언] 학생회란 무엇인가

 

나는 2016년, 11월의 감동을 기억한다. 넘실대던 촛불의 물결 속에서 함께 휘날리던 우리 대학 깃발들을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학생회란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학생 개개인을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빛’이 되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학생들에게 학생회는 친숙하지 않은 단체가 되어버렸다. 학생회 임원 사이에서는 학우들이 학내 이슈나 연대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하는 소위 ‘학우 개새끼론’이 만연해있다. 반면에 일반학우들도 학생회를 믿지 못한다. ‘에브리타임’이나 ‘대나무숲’에서는 “학생회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성토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학생회비 납부율이 줄어드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학우들이 학생자치에 실망하고 관심을 거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실의 벽 앞에 학생 자치는 사치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학생회란 무엇인가를 자문하는 까닭은 아직 나에게 학생회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회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는 그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학생회의 사전적 정의는 ‘학생이 주체가 되어 어떤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고 실행하는 조직이나 모임’이다. 이 말에 학생회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학생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단체의 구성원이 학생이라 해서 주체적인 학생회라 부를 수 없다. 학생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학생이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학생회 임원들을 만나보면 가끔 자신들이 학교와 학생들의 중재자인 양 행동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객관적인 입장? 좋다. 다각적인 사고? 이상적이다. 하지만 학생회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학교 본부에 요구하고 교수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과 취지를 이해해줄 수는 있으나 우선순위를 간과한 행동이다. 학생회의 최우선 순위는 학생들의 권익이다. 학생회 임원들은 자신들이 ‘학생 대표’이기 전에 ‘학생’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누가,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 학생회는 학생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대의기구이다. 하지만 가치판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학생들의 목소리 또한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학생회는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선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위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기조는 이러한 가치들이 일관된 흐름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학생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학생회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가 필요하다. 선거는 조직의 기조를 학우들에게 검증받음으로써 선택받는 과정이다.

 

선택된 기조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출마할 당시 회장과 부회장이 생각하는 학생회가 있을 것이고 이에 동조한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학생회가 있을 것이다. 새롭게 들어온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학생회도 있을 것이다. 그 간격은 구성원 간 치열한 토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같은 생각은 모으고 다른 생각은 검증해가는 과정을 통해 학생회의 정체성이 완성된다. 기조가 다져진 학생회는 위기에 닥쳤을 때 표류하지 않는다.

 

요새 학우들의 편의를 우선시한다는 명목 하에 기조 없이 학교 본부의 의견에 따라, 학우들의 여론에 따라 행동하는 학생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른바 ‘가치중립’을 표방하는 학생회이다. 하지만 ‘중립’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학교 본부는 이해관계에 맞게 학우들의 권익을 제한하는 결정을 합리적으로 가공한다. 이후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중의 하나를 학생회가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수동적인 학생회는 그 선택지 안에서 고민하는데 그친다. 모든 선택을 일반 학우들에게 맡기는 것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학생회는 일반 학우들이 위임한 권리에 따라 학내 문제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사안에 대하여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은 채 선택을 학우들에게 맡겼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잘못을 학우들에게 돌리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작년, 이주기 대학구조 개편 당시 학생회들의 행동을 복기해보자. 이주기 대학구조 개편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했다는 점이었다. 공동의 목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운영위원회에서는 각자의 단과대들이 학교와 교섭하는 ‘각자도생’ 방식을 채택했다.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다. 단과대 대표들은 학교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마자 비판을 중단하였다. 이로 인해 학생 대표로 이루어진 ‘대(對) 학사구조 개편 TFT’는 힘을 잃고 붕괴했다. ‘각자도생’하려던 학생회들은 ‘각개격파’ 당하고 말았다.

 

학생회는 가치 중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가치만으로는 학생회를 운영할 수 없다. 기조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현할 만한 방식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일반학우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학생회는 기조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탄탄한 콘텐츠를 구상해야 한다. 학생사회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학생회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학생회의 힘은 학우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실천하려는 길에는 온갖 장애물이 깔려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회는 기본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학생회 기조와 정책에 어떤 식으로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학생회의 기조를 일반학우들에게 어떻게 매력적으로 설득해야 할지 고려하여 운영해야 한다.

 

‘선비의 정신’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두루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회의 길을 가시려는 분들에게 ‘이쯤하면 괜찮겠지’같은 안일함을 항상 주의하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 글 : 류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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