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3 (월)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알리뷰] 집으로

'리뷰를 알리다, 알리뷰'는 다양한 필진의 리뷰를 통해 콘텐츠를 추천하는 회대알리의 기획입니다. 범람하는 콘텐츠들에 휩쓸려 나의 취향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 표류 속에서 우리는 가끔 타인의 취향에 기대야 합니다.
25년 가을,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세 글을 [헤아리다] 시리즈로 묶었습니다.

 

이불 사이로 냉기가 스민다. 내일은 가을 이불을 꺼내겠다고 곱씹으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다짐이 무색하게도 유일한 온기인 나의 체온에 기대 잠든 지 어느덧 이주가 지났다.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밤공기가 완연한 가을을 알린다. 가벼운 공기만큼 마음도 산뜻하면 좋겠지만 계절이 지나갈 때면 간단한 일도 힘이 부친다. 쏟아지는 할 일을 해치우면 하루가 스쳐 지나간다. 나를 챙기는 일은 투두리스트의 마지막에서 늘 다음 날로 밀린다. 그렇게 바쁘게 걸어가다 문득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어 멈춰 선다. 걸어가는 행인들, 쏜살같은 시간 모두 나를 그대로 통과해 버릴 것 같은 이상한 괴리를 느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위태롭고 하늘이 높아지는 만큼 권태롭다.

 

누구나 그렇듯 힘이 부치면 집에 가고 싶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나의 집으로. 하지만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본가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게 도착한 집이 누군가에겐 가장 잔인한 세상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나를,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의 세계는 점차 멀어진다. 분명 틀림없는 집인데 세상과 맞서는 감각을 느낀다. 누구보다 편해야 할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부딪히면 다른 무엇보다 괴롭다. 서울의 자취방은 세계의 충돌이 없다. 나를 지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곁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날 곤두박질치는 외로움이 불쑥 찾아온다. 나를 살리는 따뜻한 손길조차 무용해진다. 밥을 먹기도 버거운 날에는 갓 지은 밥과 따뜻하게 데워진 침대가 그립다. 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돌아간 집에 날 기다리는 건 쌓인 설거지와 빨래이다.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일이 아직도 서툴고 가끔은 서럽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차가운 침대에 누우면 방에 드리운 어둠이 슬프게 다가온다. 내 자체로 온전하고, 편안하고,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언젠가 그곳을 찾을 수 있을까? 수두룩한 질문을 안은 채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낀다.

 

김윤아의 음악 ‘going home’은 갈 곳 잃은 우리에게 집이 되어준다. ‘잔인하고 두려운 세상’[1]에 이름 붙이지 못한 밤이 얼마나 많던가. 그의 목소리엔 그가 지나온 수많은 밤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노래는 그가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다짐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황무지에 서 있는 우리에게 내가 같이 있어주겠다고, 나도 그랬다고, 같이 이 황무지를 지나자고 말한다. 그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불안과 외로움을 인정한다. 그것들(불안, 외로움, 고독 같이 반갑지 않은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 살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여정을 무사히 지내라는 힘과 위로를 건넨다. ‘기나긴 하루를 살아내는 너에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다’[1] 직관적인 가사가 그의 진심을 담백하게 말하는 듯해서 그 어떤 화려한 은유보다 마음에 와닿는다. 너무나 위태로워 날 다독일 힘도 없을 때 그의 노래는 나 대신 날 사랑해 준다. 희망찬 가사와 구슬픈 목소리의 대비는 청명한 하늘이 너무 멀어서 슬퍼지는 어느 날을 닮았다. 하늘이 아득히 높아지기 시작하면 집을 찾듯 이 노래를 찾는다.

 

정상가족만이 진짜 가족인 사회에서 튕겨지는 이들이 있다. 집이라고 믿었던 곳이 더 이상 편하지 않고 맞서야 하는 세상이 된다. 당연했던 집에 대한 믿음-어쩌면 환상-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집을 잃고 방황한다. 그때 완전한 타인이 말을 건다. 이곳으로 오라고, 내가 너의 집이 되어주겠다고. 본가도 자취방도 아닌 그의 노래를 듣는 벤치에서 안식을 얻는다. 낯선 이의 애틋한 말 걸기로 인해 집은 공간이 아닌 방향성이 된다. 깨져버린 믿음은 더 이상 장소와 정상가족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집이 될 수 있는 상상력이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쫓아야 하는 불안과 언제든 대체되는 톱니바퀴가 된듯한 회의감이 함께 존재하는 사회다. 우리를 옭아매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곳이 집이다. 내가 가장 솔직하고 자유로운, 편안하고 온전한 그곳. ‘going home’을 듣는 새벽녘의 벤치, 친구가 차려준 생일상, 푸르게 흔들리는 나무, 책이나 영화 같은 아름다운 가상현실들. 우리를 보살피고 쉬게 하고 다시 세상에 나갈 힘을 얻게 하는 모든 것이 집이 된다. 누구나 집을 잃어버리는 때가 온다. 말장난 같겠지만 그때 ‘going home’은 잃어버린 집을 찾을 힘을 얻게 할 집이 되어준다. ‘우리는 누구나 비빌 언덕이 어딘지 안다’라는 말을 믿는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의 집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이미 언덕에 기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믿음이 당신에게 전해져 우리의 상상력이, 우리의 집이 더욱 커지길 바라며 이 노래를 건넨다.

 

 

 

각주

[1] 김윤아의 ‘going home’ 가사 중 일부

 

글 : 유자

편집 : 윤영우 기자, 주미림 기자

디자인 : 윤영우 기자, 정희수 기자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