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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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뷰] 사랑하는 당신에게 ‘부적격’이 되겠다는 선언

'리뷰를 알리다, 알리뷰'는 다양한 필진의 리뷰를 통해 콘텐츠를 추천하는 회대알리의 기획입니다. 범람하는 콘텐츠들에 자꾸만 휩쓸려 나의 취향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 표류 속에서 우리는 가끔 타인의 취향에 기대야 합니다.

 

영화_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애써 해석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납득이 되는 문장이 있다. 우린 서글프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악당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동요에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될 때, 대개 그런 순간들이 나를 최악으로 만든다. 그리고선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상황을 논리적인 말로 전할 순 없었을까?ˮ, “상처 줬던 단어보다 조금 더 유한 파편들을 선택할 순 없었을까?ˮ 그러니까... 감정보다 이성이 선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게 우리 관계의 가장 큰 문제야. 느끼는 걸 전부 설명해야 하잖아. 그냥 감정 자체로 두고 싶은 것도 있어.” 이렇게 말하는 율리에는 적합한 애인으로서 완전히 실격이다!

 

 

프롤로그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1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섹션의 주제가 바뀔 때마다 소제목을 띄워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관객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율리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녀는 삶의 결정적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선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하곤 한다.

 

율리에가 의대를 선택한 건 최고의 성적을 인정받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의대 외과에 입학하자마자 심리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바꿨던 탓은, 그 일이 그녀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심리학을 공부하다가도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은 사진 찍는 일이 그녀와 더 잘 맞는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율리에의 이 모든 변심은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순식간에 일어난다.

 

‘안정된 행복ʼ이라는 것이 최고의 덕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특이한’ 그녀의 선택은 사회가 규정해 준 여성의 챕터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보인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자신답게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건 그녀에게 인생의 조연이 되는 것 같은 불안을 심어주곤 했다.

 

 

악셀의 등장

 

율리에가 만난 남성들은 그녀에게 성인이 되도록 요구한다. 악셀은 아이를, 에이빈드는 무난한 현실을 원하는데 이 둘의 욕망은 모두 율리에를 향한다. 여기서 그녀는 마치 다 맞춘 퍼즐의 마지막 피스로 취급된다. 그러나 율리에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지, 당신에게 적격한 애인이 되겠다고 말한 적 없다. 두 애인의 언어는 아빠의 언어이고, 곧 비겁한 버거움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을 하고, 최악이 된 인간은 율리에 뿐만이 아니다. 악셀과 에이빈드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최악이 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우선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를 내 입맛에 맞게 동화하려는 이기심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하라는 요구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신의 식대로 완전하라는 강요는 권력, 위계, 지배 같은 ‘최악의 언어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율리에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동화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공존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The worst'에서, '누구나'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제목의 개봉은, 원제인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와는 다른 뉘앙스에 대중의 아쉬운 반응이 잇따랐다. 하지만 나는 이 변화가 오히려 반갑다. 원제가 가리키는 ‘The worst’의 대상이 특정한 Only one이라면, 한국어 제목은 불특정한 Anyone으로 확장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영화를 처음 마주할 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인지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아도 되고, 율리에를 ‘가장 나쁜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은 채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한 사람에서 누구나로 시선을 옮긴 이 전환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글 : 라진

편집 : 윤영우 기자, 이혜성 기자

디자인 : 윤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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