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5 (월)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성소수자부터 장애인, 외국인까지…우리는 ‘총학생회’입니다

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끄는 대학사회

성공회대학교 제36대 총학생회 학생회장 후보자는 정책토론회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맞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총학생회 선거는 무산되었지만, 대학사회 내에서 이 같은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2015년 서울대에서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당선된 김보미 학생회장을 시작으로 카이스트, 연세대, 계원예대에서도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임원이 선출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포항공대 대학원에서는 외국인이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중앙대에서는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총학생회 산하 장애인권위원회를 설립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대학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 속에는 소수자의 모습이 많이 지워진 듯하다. 현재 국회 구성을 보면 성소수자나 외국인은 찾아볼 수 없고, 장애인은 4명(1.3%)에 그친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소수자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과 대표자의 역량은 다른 영역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학생회장이었던 김보미 활동가는 성소수자 인권 증진 단체 ‘다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표자는 공동체를 대표해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정체성에 부가적인 자격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고 운을 띄웠다. 선거 당시에도 ‘일 잘하는 학생회’를 기조로 삼기도 했다. “소수자가 대표자가 된다면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이슈들을 발굴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목소리를 더 다양하게 대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서 소수자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포항공대 대학원 소우라브 사르카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는 ‘외국인 총학생회장’이라는 이름에 큰 의미가 없음을 강조했다. “스스로를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에만 가두지 않는다”며 “나에게 가장 큰 정체성은 포스텍(포항공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학생회장으로서 중요했던 건 외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는 대학원생의 연구 과정을 뒷받침하고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공동체에 반영되는 당사자의 목소리

 

한국사회에서는 소수자가 공동체를 이끄는 경험은 많지 않지만, 대학사회에서는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장애인권위원회 정승원 위원장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로, 중앙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를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를 주장하며 인권을 직접 지키기 위해 장애학생회 ‘We,하다’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장애학생회가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되면서 장애인 학우의 인권을 보장하는 공식 학생자치기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후에 총학생회 산하 장애인권위원회로 발전시켰다.

 

 

정승원 위원장은 중앙대학교 배리어 프리 환경 조성을 위해 안내견 스티커 제작 및 점자 스티커 부착, 키오스크 장애인 접근성 문제 세미나, 비대면 수업 시 장애 학생이 겪는 차별 가시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중에서도 장애인 당사자가 겪을 수 있는 차별을 발견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중앙대학교 장애인 학우는 20명”이라며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애 학생이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더 넓고, 쉽다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문이 좁고 차별적”이라고 말했다. 중앙대학교는 장애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학과가 제한적이라 원하는 과에 자유롭게 지원할 수 없다. 특히 장애 학생들은 ‘정원 외 몇 명 이내’로 규정되어 있는데 ‘정원 외’가 붙으면 1명만 뽑아도 되고 추가합격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는 입학정책팀과 꾸준히 협상하고 교육부와의 만남을 가진 결과, 내년부터 충원을 시작하고 지원 가능한 학과도 늘리는 성과를 냈다.

 

소수자 대상화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같은 공동체에서 소수자로 분리하고 소수자를 대상화하는 문제였다. ‘소수자’에 작용하는 '스테레오타입(특정 집단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고정된 생각)'이 그들의 주체적 능력을 왜곡해 대표자 자격미달 사유를 무의식적으로 갖게 한다.

 

장애인 인권운동가였던 스텔라 영(1982~2014)은 호주의 언론인이자 방송인이었다. 희귀유전질환으로 키가 1m도 되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불쌍하게 여기고 감동을 주는 존재로 등장시켜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문제를 보고 ‘감동 포르노(inspiration porno)’라고 비판했다. 장애인은 특별하거나 안타까운 존재가 아님에도,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영감 얻는 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성적 지향성, 인종, 장애 여부에 해당하는 소수자는 아니지만, 평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성공회대 소원경(경영학과 15) 학우는 감동 포르노를 언급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 집단에도 동정과 연민의 태도를 갖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이어 “소수자를 소수자라고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덧붙였다.

 

소수자를 대표하는 당사자들의 활동은 여전히 중요

 

총학생회 활동을 해온 세 사람은 어떤 사회를 꿈꾸느냐는 질문에 "다양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답했다. 이들은 소수자를 소수자라는 정체성에만 가두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반영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개선과 대표자의 다양성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보미 활동가는 소수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공동체를 이끄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수자가 대표로 선출되면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구나, 분명 이 공동체 안에 있구나’를 환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승원 위원장은 “1%가량의 장애인 국회의원 비율을 극단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수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과 소수자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조직을 키우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방의진 기자(qkd0412@naver.com)

취재=김지수, 길시은, 최민서, 방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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