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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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성지 순례 왔습니다” 서강대 숨은 명소, 노고산 성지

[편집자의 말] ‘성지’라고 하면 흔히 메카 혹은 예루살렘을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알고 있나요? 서강대(이하 ‘본교’) 캠퍼스 안에도 ‘성지’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사에서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몰랐을 본교의 명소, ‘노고산 성지’를 소개합니다.
 

 

노고산 성지는 정문과 가브리엘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정표에도 분명 적혀 있으나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고, 다들 강의를 들으러 가기 바쁜 탓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노고산 성지는 지난 2018년,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국제 순례지로 선포된 천주교 서울 순례길 코스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 천주교 포교에 앞장섰던 이들을 모셔 놓은 뜻깊은 공간인 것이다.

 

그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선교사였던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는 선교를 위해 1836년과 이듬해 바다를 건너 조선 땅에 닿았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험한 산길을 다니며 포교했던 이들의 노력으로 조선의 천주교 신자는 1년 만에 9천 명으로 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도 이때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마카오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현재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한 자리에 설치된 것을 생각하면, 세 선교사가 한국 천주교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조선 정부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세 명의 선교사는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했다. 당시 대역죄인으로 간주된 이들의 시신은 시장 바닥에 버려진 채 수습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순교 20일 후, 이를 보다 못한 교우들이 목숨 걸고 이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잠시 안치한 곳이 바로 노고산이다. 이후 세 선교사의 유해는 삼성산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명동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됐다.

 

이외에도 노고산은 기해박해 당시 순교한 이호영 베드로와 최경환 프란치스코, 그리고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전장운 요한과 정의배 마르코 등 네 선교사의 유해가 잠시 안치됐던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서소문, 당고개 등 형장과 가까워 시신을 임시로 매장하기에 적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노고산 성지는 지난 2009년 6월 25일, 노고산에 묻혔던 순교자들의 정신을 받들고자 본교가 가브리엘관 앞 소나무밭에 세 프랑스 선교사의 순교비를 세우며 조성됐다. 현재 노고산 성지의 관리는 본교 교목처가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고산 성지 순례객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교목처의 여명모 신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지순례를 장려하는 한국 천주교의 방침과 책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출판 이후 일어난 성지순례 붐에 힘입어 순례객의 수가 늘었다”고 전했다. 한편, “캠퍼스 안에 위치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근처에 절두산과 새남터 등 큰 규모의 성지가 위치해 있어 노고산 성지는 ‘잠시 들렀다 가는 곳’ 정도로 인식돼 구체적인 통계는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렇듯 순례객의 자발적인 방문과 더불어 노고산 성지에서는 정기적으로 미사가 이뤄진다. 여 신부에 따르면, 성지 기념 성당인 본교의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노고산 성지 신심 미사’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라틴어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미사에 참석하는 평균 인원은 2~30명. 재학생의 경우 시간 등의 제약으로 참여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여 신부는 노고산 성지의 의의에 대해 “잘리고 찢긴 순교자들의 유해를 품어 안은 증거의 땅이자, 이로써 성인들이 천국의 문을 열고 주님 품 안에 안긴 안식의 땅”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하기 바빠 무심코 지나쳤던 소나무밭이 사실은 조선시대 순교자들의 독실한 믿음과 희생을 품은 역사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 기사를 통해 노고산 성지의 존재와 의의를 알게 되었다면, 개강 후에 편하게 둘러보거나 신심미사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역사와 신앙이 어우러진 이곳에 멈춰 잠시나마 그 숭고함을 느껴보자.

 

 

김민제 기자 (matt030917@gmail.com)

박지민 기자 (jimin51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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