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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성희롱·폭력 알린 학생에 무기정학 징계...'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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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8 한국외대 미투. 2006 외대노조파업을 향하다.

<3> 보직교수의 성희롱과 폭행 알렸다가 졸업직전 무기정학 당한 학생

l 12년전, 졸업 앞두고 무기정학 당한 한국외대생. 조명훈.

2006년 7월 24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수시 논술 시험날. 한국외대 서울캠퍼스는 고3 수험생과 학부모, 방학에도 학교에 남아있는 재학생들로 북적였다. 당시 한국외대 4학년생 조명훈(영어, 99)씨는 이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유인물에는 당시 한국외대 박철 총장의 사진도 실려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학교 당국의 노조탄압을 고발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몇몇 보직교수들이 부서순회 중이던 조합원을 폭행했고 여성조합원에게 성희롱적 모욕을 했다’

<일부 보직 교수들이 부서 순회 중이던 조합원을 폭행했다는 내용과 당시 학생처장이었던 L 교수와 보직 교수들이 여성 조합원에게 성희롱적 모욕을 했다는 내용의 인쇄물>

 

조 씨는 유인물을 통해 학교 본부와 노동조합 간의 대립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성희롱 사건 등을 알렸다가 무기정학을 당했다. 외대알리는 지난 4월 14일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 2006년 노조파업, 조명훈 씨는 무엇을 알리고자 했나?

<외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조명훈 씨는 12년 전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냈다.>

“2005년도에 총장을 선출하는데,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다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교수협의회 쪽에서는 기존의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것을 고려했고, 그래서 박철 총장이 선출됐죠.

박철 총장 입장에서는 새로운 총장선출제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이 얼마나 눈엣가시였겠어요.

그러니까 취임하자마자 본격적으로 탄압을 시작했었던 거에요.”

2005년 제 9대 총장 선거를 앞두고 외대노조는 직원과 학생, 교수가 모두 참여하는 “민주적 총장선출제”를 요구한다. 같은 해 5월 이미 외대노조와 학교법인 동원육영회는 ‘차기 총장선출시 학교 구성원이 참여하는 민주적 총장선출제도를 대학 평의원회에서 마련한다'는 사항을 단체협약을 통해 합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결국 정교수들로만 구성된 교수협의회에게 총장 선출권이 부여되는 기존 관행대로 투표가 진행됐다.

박철 총장 취임 후 학교는 외대노조를 강하게 압박했다. 직원인사를 담당하는 총무처장(현 인사행정처)을 비롯해 그동안 직원들이 맡아왔던 일부 보직은 교수들로 대체됐다. 직원들의 노동권과 복지 수준 등을 결정하는 단체교섭 중에는 조합원 48명에 대해 노조 가입 자격이 없다며 노조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했다. 학교 측은 ‘‘사실상 학교 운영에 있어서 인사권과 운영권에 관여할 경우 사용자로 보아야 하기에 노조 가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학교 측은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이미 맺어져 있던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버렸다.

학교 측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한 외대노조는 결국 2006년 4월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 중 노사대립은 거셌다. 물리적 충돌은 물론이고, 여직원에 대한 보직교수의 성희롱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학교 측을 지지한 서울, 용인 양 캠퍼스의 총학생회는 ‘파업으로 인해 외대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 며  노조천막텐트를 부수는 등 파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조 씨는 이 상황을 알리고자 유인물 1500장을 배포했다.

 

| ‘교직원에 대한 패덕행위’. 그리고 무기정학

유인물을 배포하고 약 이 주 뒤 조 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학교 측이 유인물을 문제 삼았고, 이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20시간 후인 다음 날 오전 10시에 소집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조 씨는 징계위원회와 관련된 아무런 공문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전화를 걸어온 징계위원회 간사(학생지원과장)도 정확한 징계사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조 씨는 징계위원장(서울캠퍼스 학생지원처장)이었던 장 모 교수에게 전화해 징계위 ‘졸속 진행’에 항의했다. ‘소명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갖은 후 출석할 수 있도록 징계위를 학사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개강 이후로 연기해줄 것’도 요구했다. 하지만 징계위는 그대로 일정을 강행했고, 3일 뒤인 8월 11일, 무기정학을 통보한다. 조 씨는 졸업까지 고작 5학점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사진=외대알리>

“학교가 저를 징계한 시점이 방학이었거든요.

왜 그렇게 빨리 징계를 하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8월 11일이 방학이었거든요.

학교에 학생들이 없는 시기에 빨리 처리 하고 싶었던 거죠. 조금만 지나면 개강하고 그러니까.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학교는 학생징계규정 제11조와 제13조를 근거로 조 씨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제11조 (교직원에 대한 패덕행위)교직원에 대하여 학생의 신분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모역, 폭행 등의 패덕행위를 한 학생은 무기정학 이상의 징계처분을 한다.

제13조 (기타) 그 밖의 교육목적에 위반된 행위로써 학생의 본분에 어긋난 행위를 한 자, 그리고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이게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해당징계위원회에서 징계처분을 한다.

 

해당 징계사유의 적용 근거는 조 씨가 유인물을 만들고 배포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음에도 자신의 행동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 전 총장은 동시에 조 씨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조 씨가 학교 측의 고소 사실을 알 게 된 것은 한 달 후 경찰의 조사 출두 명령을 받으면서였다.

 

| 나를 옹호해 준 교수님은 없었다.

조 씨에게 내려진 무기정학징계에 많은 학생들이 반발했다. ‘조명훈 학우 징계철회 대책위원회’가 세워졌고 징계철회 서명에는 1000여 명이 동참했다. 학교 밖 시민단체와 사회인사들도 징계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조 씨를 지지해주는 외대 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학교는 조 씨가 속한 영어과 교수들을 통해 조 씨를 회유하려 하기도 했다. 조 씨에게 보직교수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사과하라는 압박 전화였다.

“‘’사과하라’는 말이 너무 서운했습니다.

징계위원회에 참석해 저를 방어해 주는 저희 과 교수님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직 교수나 총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제가 몸담고 있었던 영어과 교수 한 사람도 제 목소리를 들으려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그건 좀 서글픕니다.”

조 씨는 학교를 상대로 무기정학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시작했다. 학교 측은 대형로펌 태평양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조 씨의 변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가 맡았다.

<조명훈 씨는 당시 유인물과 소송기록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사진=외대알리>

 

ㅣ법원, “학교가 징계권을 남용했다”

2007년 5월. 법원은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사실이지만 "무기정학 징계처분은 징계 사유에 비해 가혹한 제재로서 징계권을 남용한 것"이라 판단했다.

“해당 유인물에 기재되어 있는 폭행 및 성희롱 관련 부분은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또한 한국외대의 구성원으로서 한국외대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던 조명훈으로서는 학교 교직원들이 총파업하여 학교당국과 장기간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능히 파업에 대해 의견을 개진 및 표명할 수 있다고도 보인다.”

-서울북부지법 재판부 판결문 중-

그러나 학교 측은 항소했다. “학교가 받는 심각한 명예훼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 합동처장단의 입장이었다.

<학교가 제기한 항소심 재판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학생자치탄압반대와 부당징계철회를 위한 학생·시민사회연대)>

 

|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2심 법원도 조명훈 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도 유인물 배포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범위 내의 것으로서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 며, “징계 사유가 된다 해도 무기정학 처분은 징계권을 남용한 것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 법원은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화해권고결정: 법률적 소송으로 의견 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때 판사가 직권으로 양측에게 조정안을 제시하며 중재하는 판결)

조정은 2차까지 이어졌다. 양 측이 1차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씨는 1차 조정안에 있는 한 항목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원고(조명훈)은 앞으로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학교와 교수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이 항목이 그대로 인정되면, 이후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 결국 2차 조정에서 해당 조정안이 삭제됐고, 무기정학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도 선고됐다. 햇수로 3년 만에 조 씨는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교 측은 "일단 법원 결정에 따라 조씨에 대한 무기정학 처분을 해제하고 복학을 허락했다"고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 “지금도 부모님이 가끔 말씀하세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학교를 상대로 싸우면서 힘들었던 것은 비단 조 씨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사건은 조 씨의 부모님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과도 같았다.

"지금도 부모님이 가끔 말씀하세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그렇게까지 힘들어하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학교가 저를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거예요.

그런데 (당시) 자료를 보니까 아버님이 경찰에 가셔서 저 대신 진술서를 쓰신 것이 있더라고요.

참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제 주변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 거잖아요.”

그럼에도 조 씨는 당시를 힘들었지만 인생에서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를 포함해서 당시 노동자 파업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살지 않았나.

현실은 굉장히 씁쓸하지만.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모여서 사회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소욱 기자 (jane9709@naver.com)

인보근 기자 (coriendo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