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9 (일)

대학알리

“우리는 선생님을 지키지 못했다”, 서이초 추모현장에 다녀오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이하 서이초)에서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서이초에서 1학년 담임교사로 처음 교편을 잡은 초임 교사다.


이틀 뒤인 지난달 20일 오후 서이초 앞에서 숨진 교사를 기리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특정 교원 단체 주관이 아닌,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자리다. 이 자리엔 현직 교사뿐만 아니라, 교육대학, 사범대학생과 일반 시민들도 함께했다.


추모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서이초로 향했다. 대학알리의 기자이자, 교사를 꿈꿨던 사범대생이었기에 아이들을 사랑했던 한 초임 선생님의 마지막에 함께하고 싶었다. 


오후 5시, 학교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서이초 정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길게 이어진 추모 행렬과 근조화환이었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추모제로 교사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교문 앞 추모 공간이 가득 차자, 추모객들은 경찰과 학교 측에 별도의 추모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대치했다.


긴 시간 교문 밖에서 추모 순서를 기다리던 추모객들은 “학교 안에 추모 공간도 안 만드는 것이냐”, “조용히 추모만 하고 가겠다”고 소리쳤다. 이날 오후 4시 50분쯤, 교내 방송을 통해 학교는 “정문에 추모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니, 분향소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오후 6시가 되자 교문이 열렸다. 학교는 정문 안에 급히 책상 3개를 준비해 추모객들을 맞이했다. 검은 옷을 입고, 하얀 국화를 들고 온 추모객들은 차분하게 질서를 지키며 포스트잇에 고인을 애도하는 추모 편지를 남기고 헌화했다. 40분 뒤엔 후문이 추모객들을 위해 개방되기도 했다.


하얀 탁자로 이루어진 분향소엔 두 눈을 감은 채 애써 울음을 참는 사람과 손을 모은 채 묵념하는 사람이 있었다. 추모하는 모습을 달라도, 마음만은 같았다.

 

 

추모객들의 남긴 포스트잇은 학교 정문과 체육관 벽을 가득 메웠다. 학교 정문과 바닥에는 수많은 포스트잇과 꽃이 놓여 있었다. 서이초 정문, 체육관 벽에 가득 메워진 포스트잇엔 고인을 애도하는 내용,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 무너진 교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문에 놓인 꽃에 붙여진 포스트잇 속 추모 메시지들을 읽고 있었다. 그중 한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어쩌자고 나는 그 예쁜 아이들에게, 예비 교사들에게 교사의 긍지와 보람을 말했을까요
그들은 지금쯤 교직을 권한 나를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요

 

 

교사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교사가 되겠다는 나를 응원해 주셨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 “교사는 힘든 자리지만, 아이들과 함께함으로써 계속할 힘과 자부심을 느낄 거야”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하지만, 최근에 선생님을 만나 뵀을 때, 선생님의 응원은 “교사가 아니어도,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너에게 교사가 되라고 권한 것을 후회한다”는 대답으로 바뀌었다.


‘선생님마저, 선생님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너져 가고 있는 ‘선생님’의 위치와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 포스트잇을 쓴 선생님도, 나에게 교직을 권했던 선생님과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한편, 체육관 벽엔 수많은 추모객이 자리했다. 각자가 준비한 국화와 포스트잇에 추모 메시지를 담아 담아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작은 조명들을 체육관 벽 한편에 놓기도 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가득해졌지만, 한 선생님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한 추모의 열기는 뜨겁기만 했다.

 

 

그날, 서이초 추모 현장에서 많은 현직 교사와 예비 교사,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10년 차 교사 A씨는 “10년을 근무하며, 교권 추락을 체감했다”며, “선생님들 모두가 겪은 일이라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고 참여 계기를 밝혔다. 나아가,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업무경감, 교권 신장을 위한 공교육 시스템 전반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경기도교육청 소속 학교에 재직 중인 B씨를 만났다. B씨는 “교권 보호를 위한 법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교권 침해에 관해서 “교사 누구나 한 번씩은 겪었을 것이다”라며, “학생 인권을 지키는 것만큼, 교사 인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B씨의 동료 교사 C씨는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문제에 관해서 이 길은 갈 수 없겠다.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도, “같이 좀 관심을 두고 인식을 개선해 교사를 다시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밝혔다.


모든 인터뷰를 기사에 담을 수 없었지만, “교사들이 마음 편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함께해서 예비 교사들이 교직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된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달 22일부터 현재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현직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5주째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아동복지법 등의 관련 법령의 개정을 통해 '교원의 생활지도는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점'을 법에 명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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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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