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9 (목)

대학알리

오피니언

여기는 성역, 성역이다

 

 

 

“여기는 성역, 성역이다!”

축 늘어진 에스메랄다를 안고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달아나 외친다. 아무도 에스메랄다를 잡아갈 수 없다. 그렇게 콰지모도는 사랑하는 에스메랄다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가 외친 ‘성역’이 보호하는 죄인은 에스메랄다뿐이 아님을 콰지모도는 알지 못했다. 그녀를 모함하고, 결국 죽게 만들 클로드 부주교 역시 그 성역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노트르담의 성스러운 벽이 클로드 부주교의 그림자를 감출 수 있다는 것을.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향한 클로드 부주교의 섬뜩한 눈을 보고 성역의 두 얼굴을 깨닫는다. 그리고 클로드 부주교를 향해 칼을 치켜든다.

 

 

그날 새벽, 실시간으로 지옥이 무엇인지 지켜봤다. 휴대폰 너머 장면은 끔찍했다. 누군가는 바닥에서 죽어갔다. 누군가는 그들을 살리려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CPR을 했다. 누군가는 춤을 추고, 어느 가게에서는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누군가는 건물 위에서 내가 보고 있던 그 영상을 찍었다. 새벽 2시, 핸드폰을 끄고 마루로 달려나와 TV를 켰다. 라이브 자막이 표시된 뉴스에서는 마이크를 쥔 소방관이 화이트 보드를 가리키며 이태원 거리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말했다. 그때, 발표된 공식 사망자는 60명가량이었다. 

 

뉴스에서는 여과 없이 사고 현장이 송출되고, 리포터와 아나운서의 현장 보도가 번갈아 흘러나왔다. 카메라 너머 아비규환인 현장과는 달리 리포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새벽 3시, 2차 브리핑이 시작됐다. 사망자는 120명가량으로 늘어났다. 3차 브리핑이 4시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뉴스를 더 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구식 TV 모니터 너머 들리는 절규는 그날따라 귀에 생생했고, 시신들을 덮은 파란 천은 눈에 선연했다. 잠이 들기 어려웠다. 

 

생명의 끝이 미디어에 의해 자극적인 어휘로 치환되는 것이 끔찍하고, 무엇보다 그 뉴스를 소비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소셜 미디어에 ‘누구의 탓도 아닌 안타까운 사고. 이들의 죽음 뒤에 붙을 역대급 참사니, 상상을 초월하는 압사 사고니, 붙을 수식어들이 혐오스럽다’고 적었다.

 

오전에 잠에서 깨니 사망자는 154명으로 늘어 있었다. 시민들은 어제의 일에 대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누구는 시민의식이 문제라 했다. 혹은 대한민국의 왜곡된 유흥 문화를 원망했다. 누구는 여섯 명의 남자들이 ‘밀어, 밀어!’라고 했다며 그들을 비난했다. 누구는 응급차 옆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을 경멸했다. 또 누구는 여성들이 체구가 작아 사고를 많이 당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156명이라는 생명이 꺼진 뒤에 너무나 많은 의견이 따라붙었다. 이태원에서 파생된 무수한 이야기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행정 구멍’에 대한 언급을 처음 접했다. 같은 날 시위에 경찰 배치가 지나치게 많이 되었다는 말. 또 애초에 국가 원수의 용산 출퇴근에 치중된 경찰력이 불러온 예견된 사고라는 말. 그것들이 사실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 사고 앞에 이런 이야기를 이리도 빨리 꺼낼 수가 있는가. 그날의 일은 마치 ‘성역’처럼 다가왔다. ‘감히’ 수많은 인간의 죽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사건에 대해 말을 얹기 전에, 그 죽음 앞에 아무 말 없이 ‘묵념’할 것을 다짐했다.

 

같은 날 오후, 정부의 대응 소식을 접했다. 국가애도기간이 발표되고, 관공서에 조기가 걸린다 했다. 유가족들에게 전달될 지원금에 대한 소식도 보았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어느새 그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 탐탁지 않네,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연 국가애도기간을 발표할 만하네, 아니네, 그곳에 놀러 간 사람들인데 옳지 못하네 하며 열을 올렸다. 국가의 대응 이후에 사람들은 싸움을 시작했다. 그 싸움의 칼날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함을 감지했다. 국가의 수습이 공감과 사건의 해결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전날 본 영상 속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CPR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장면보다 더한 부조화였다. 소셜 미디어에 올렸던 게시물을 내렸다.

 

 

나는 곧 서서히 드러나는 참사 뒤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했다. ‘압사’를 우려한 수십 건의 신고 전화들이 빗발쳤지만, 경찰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 지난 2년간, 그리고 약 20만 명이라는 인파가 몰린 2017년의 행사에서도 사고는 없었고, 그 당시 경찰이 충분히 이태원 거리에 배치됐다는 것. 모든 것이 ’그날‘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민 동향을 분석한 경찰청의 공문을 보았다. ‘정부 책임론이 확대된다면 퇴진 운동이 일어날 우려가 있으니 대응하라’, 시민을 지키지 않았던 경찰이 정부를 보호하고 있었다.

 

뉴스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관료들도 보았다. 용산구청장은 ‘이태원 핼러윈 파티’는 주최자가 없는 현상이기에, 할 일을 다했다고 했다. 괴로움에 눈을 감아 보지 못했던 ‘행정 참사’는 이제 피부로 느껴졌다. 나라가 만든 사고. 책임을 외면하는 정부. 처음 ‘국가애도기간 선포‘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괴리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정부는 사고를 수습하겠다 했지만, 국가의 책임은 없다 했다.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대국민 사과보다 원인 파악에 주력하겠다 했다. 영정 없는 합동분향소에 유가족보다 먼저 들어가 고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사과, 재발 방지, 책임자 처벌에 주력하지 않는 이상 ‘수습’이 가능할까.

 

11월 10일이 되었다. 사고가 난 새벽, 뉴스에서 보았던 소방관이 피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엉뚱한 사람들이 피의자가 됐다. 합동분향소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고 적혀 있었다. 피의자는 존재했지만, 피해자는 없었다. 애도도 필히 중요하다. 그러나 누군가 애도를 가져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자 한다면 더 이상 ‘순결한 애도’는 성립할 수 없다. 이제 누군가가 ‘사고’라 명명하는 그날의 일은 막을 수 있었던 ‘행정 참사’임을 확신했다.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는 묵념은 방관이자, 사고 책임자가 명백한 상황에서 중립을 선언하는 생존자의 권력이었다. 그날의 일이 성역이 되는 것은, 누군가는 그 안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문득 신당역 살인사건을 상기했다. 나는 그날 한 사람의 죽음은 나라의 사법 체계의 구멍이 만든 일이라 지적했다. 또 여성 혐오를 외면했던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열을 올렸던 목소리를 상기했다. 아마 이태원 참사를 보는 나의 눈이 멀었던 것은 또 사람이 죽은 것에 무력해지고 우울해져 아무런 이성적 판단도 하지 않았던 것이려나. 국가의 과실이 개입된 이상, 한 사건은 독립적인 사고로 포장될 수 없음을 난 이미 신당역 화장실 앞에서 경험했다. 이제 나에게 애도는 침묵을 깨는 목소리다. 애도는 외면이 아니므로.

 

 

최희령 기자 cur20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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