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채식주의 이야기

“얼마 전에 오십만년 전 인간의 미라가 발견됐죠?

거기에도 수렵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연스럽지가 않아요."

 

“요샌 사상체질 때문에 채식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

던데…… 저도 체질을 알아보려고 몇군데 가봤더니

가는 데마다 다른 얘길 하더군요. 그때마다 식단을

바꿔 짜봤지만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그저 골고루 먹는 게 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이네요. 저는 아직 진짜 채식주의자와 함께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내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징그럽게 생각할지도 모를 사람과 밥을 먹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정신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는 건 어찌됐든 육식을 혐오한다는 거 아녜요? 안 그래요?”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 주의 이야기

 

  먼저 이 글은 채식주의를 하지 않는 당신에게 채식주의를 하라고 권하는 글이 아니다. 채식주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채식주의를, 그리고 채식주의자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글이다. 대부분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비판과 비난 혹은 폭력은 채식주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취재하다 만난 한 채식주의자는 자기를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채식하는 이유는 사실 생각보다 다양하다. 동물권보호, 종교적인 신념, 기호, 환경문제, 식량 문제 등을 말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채식한다고 할 때, 그 이유는 하나일 수도, 둘 이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에게 하는 질문은 단순한 경우가 많다. ‘채식주의자라면서 달걀이랑 우유 혹은 생선은 왜 먹어?’ ‘식물은 안 아파?’ ‘식물도 생명이잖아?’ 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려고 한다.

 

동물 윤리 이야기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채식주의는 윤리적 동기에 기반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동물윤리를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는 질문은 공격과 비슷하다.

 

    “식물은 생명이 아니야?”
    “식물도 아플 수 있잖아”

 

  이 문장은 그들의 동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에서 출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물권 보호는 생명보호와는 다른 의미이다.

 

  동물 윤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먼저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공장식 축산이란 단어는 생소할지라도, 소와 닭 그리고 돼지가 우유와 계란 그리고 고기를 위해 어떻게 키워지는지는 대부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이야기

 

  공장식 축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고기, 달걀, 우유를 공장의 상품처럼 얻어 내기 위한

축산법을 말한다. 가축들은 자세도 바꾸지 못하는 좁

은 환경에서 마치 기계처럼 생산만을 위해 살아가다

죽게 된다. 농장은 공장이고, 가축들은 기계인 셈이다. 이 공장식 축산은 동물 윤리뿐만 아니라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등 전염병에 취약하기도 하다. 몇 년 주기로 한 번씩 뉴스에서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한 번 공장식 축산을 검색해보자. 이미 많은 영상이 제작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식물 또한 굉장히 좁은 환경, 자연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며 유전자 변형 또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실들(공장식 축산과 도축 방법)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이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부 사람들은 앞서 말한 유튜브의 영상들을 끝까지 보기 힘들어했다. 반면 논에서 모들이 촘촘하게 자라는 것을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쾌고 감수성’에서 발생하며, 채식주의가 완벽한 생명보호 사상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이유이다.

 

쾌고 감수성 이야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반려동물을 애호한다. 귀여운 인형을 좋아하는 방식과 같은 애호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동생처럼 혹은 마치 사람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고양이와 개도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고통도 느낀다는 생각이 기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고양이와 개 혹은 다른 반려동물들을 자신의 윤리적 고려 대상에 포함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동물을 인간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해 인간을 위한 수단쯤으로 여긴다. 이는 아주 고전적인 서구 사상에서 잘 나타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은 보다 이성적인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인간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2000년이 지나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현대에 공장식 축산까지 이어진다.

 

 

  쾌고 감수성은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이 쾌고 감수성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누군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나도 아프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다들 방바닥에 떨어진 레고는 한 번 밟으면 두 번 다신 밟고 싶지 않아서 피해 다닐 것이다. 그러면 동물로 넘어와 보자. 굳이 해부학을 갖고 오지 않아도, 동물 역시 아픈 건 피하고, 맛있는 건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해부학을 갖고 온다면 더욱 명확해진다.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들은 인간과 비슷한 뇌 구조와 신경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나 가재 같은 갑각류, 오징어와 문어와 같은 두족류도 고통을 느낀다고 밝혀졌다.* 2018년 스위스는 가재를 산 채로 삶거나 굽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반면 식물은 고통을 피하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뇌도 없고, 신경도 없으며,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좇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바라기가 기분 좋으려고 해를 보는 것이라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지금까지의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나무는 열 번 찍어도 안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니, 채식주의자에게 ‘식물은 안 아파?’ ‘식물은 안 불쌍해?’는 그만 물어보자. 해바라기의 신체 너머, 해바라기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BBC, (2018) What's the kindest way to kill a lobster

 

  앞서 반려동물의 예시를 들었지만, 동물권 보호는 단순히 연민의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나아가, 종 차별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다. 동물 윤리로 가장 유명한 피터 싱어의 말을 가져왔다.

 

우리 부부는 한 번도 개, 고양이 또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좋아한 적은 없다. 우리는 동물들을 ‘애호하지’(love) 않았다. 우리는 그저 동물들이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 -마치 지금 여주인이 만든 샌드위치에 자신의 살이 들어가 있는 돼지처럼-으로 대우받지 않고 고통과 쾌락을 느낄 능력이 있는 존재로 대우받길 원했다. (…) 지금까지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자들은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성향을 지닌 ‘동물 애호가’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그와 같은 묘사는 심각한 정치적ㆍ도덕적 논의로부터 인간 아닌 존재들의 처우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배제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싱어(1999) 9-11쪽. 최훈(2011) 여성주의와 채식주의 p.213. 재인용.

 

  싱어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논의할 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선을 긋고 이성적인 접근을 옹호하고 있다. 그는 그 여성이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햄 샌드위치를 먹는다고 지적함으로써 동물 문제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위선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동물 윤리는 동물이 불쌍하다는 감성적인 판단이 아닌, 동물을 인간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 자체로 대우받았으면 하는 이성적인 판단이다.

*최훈(2011) 여성주의와 채식주의 p.213.

 

환경문제 이야기

 

  채식하는 동기는 동물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거대 규모의 가축 시스템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소와 같이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 동물의 경우, 특성상 소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한다. 소 한 마리는 방귀나 트림을 통해 한 해 평균 70~120kg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그런데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3배나 더 큰 물질이다. 따라서 한 해 100kg을 배출하는 소는 2,300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과 같다. 탄소 2,300kg은 가솔린 1000ℓ를 태울 때 나오는 탄소의 양이다. 가솔린 1000ℓ는 연비가 8ℓ인 차(100km당 가솔린 8ℓ를 소비하는 차)가 1만2500km를 달릴 수 있는 거리다. 전 세계에서 사육되는 소는 15억 마리에 이른다.* 이 소들이 내뿜는 메탄가스가 환경오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곽노필(2016) 채식위주로 바꾸면 온실가스 70%까지 감축, 한겨례

 

  메탄가스 뿐만 아니라 분뇨 역시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2017년 환경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1일 분뇨발생량이 150,000㎥인데, 이는 1L 생수병 일억 오천만 개 분량이다. 많은 양이 비료 혹은 연료로 만들어지거나 정화처리 되지만, 기존의 양이 워낙 거대하기에 악취 문제나 분뇨 유출 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클 수밖에 없다.

 

식량문제 이야기

 

  식량문제 역시 채식을 하는 동기 중의 하나이다. 1,700Kcal의 식량을 사용해서 얻는 육류와 낙농의 칼로리는 500Kcal밖에 안된다.* 이런 비효율적인 식량 사용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채식이 유의미하게 식량문제에 변화를 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논쟁거리이다. 자유주의적 식량 안보론에선, 기아와 빈곤이 식량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문제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EIU 식량 안보 지수에 따르면, 저개발 국가일수록 소득이 오를 때 식량안보지수도 크게 상승한다고 나타나 있다. 반면 소득 $25,000을 넘어서면 지수는 80에서 유지된다. 즉,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식량안보 역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선 순전히 식량의 양을 늘리기 위한 채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유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EIU 식량 안보 지수 산출 방식의 지표 비중은 대단히 자의적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다른 분야들도 그렇지만 식량 문제는 특히 완전경쟁의 자유시장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식량은 공급과 수요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심한 품목이다.*** 예를 들면, 기상 이변의 영향으로 가격 폭등 혹은 폭락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경우가 그렇다.

*- p163, Mike Berners-Lee & Duncan Clark (2013).
** -유종선(2013)자유주의 식량안보론의 비판적 고찰, 257-277.
*** -FAO,2011,Price Volatility in Food and Agricultural Market. 9쪽.

 

  이와 더불어 밀, 옥수수 같은 몇몇 곡물들은 일부 국가에 편중 생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FAO 통계에 따르면 옥수수는 미국을 비롯한 5개의 국가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미국이 6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독점 상황에서, 개인 소득 증가가 식량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수 있다.

 

  어찌 됐든 이런 신념을 가지고 채식을 하는 사람 앞에서 무의미한 일을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채식을 하는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식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채식 ‘역시’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채식주의의 유형

 

  종교나 기호 역시 채식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신념의 변화가 생겼다고 곧바로 모든 육류를 끊을 수 있을까? 그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채식의 방법이 나누어져 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신념에 맞는 채식을 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나 윤리적 문제를 알았지만, 채식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채식의 단계는 단순히 채식주의냐 비채식주의냐의 이분법으로 갈라서 설명할 수 없다. 만약 열 명이 일주일에 3일만 채식을 하기로 했다면 -이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ism)에 해당한다.- 열 명 중 다섯 명이 완전 채식주의자가 된 것과 같은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인프라적 어려움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채식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독일은 채식 식품부터 생활용품까지 파는 채식 슈퍼마켓이 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각국의 채식협회가 발행하는 인증 마크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어 제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채식주의자들은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비건 식품을 찾아보기도 힘들고 영양성분을 하나씩 따져보고 사야만 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일반 식당에서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없다. 대부분의 식당은 메뉴에 비건 표시를 잘 하지 않는다. 비건 표시가 된 음식이라도 사이드 메뉴나 조미료에 동물성 식품이 들어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인터뷰에서 만난 인터뷰이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토로했다.

 

“(학교 주변)비건 커리 자체만 비건이고 같이 나오는 샐러드에는 치즈가 들어가 있더라고요.. (중략) 안 들어가 있을 것 같아서 시켰는데 뭐가 들어가 있고. 팬케이크라고 그래서 저거 밀가루만 나오는 거겠지 했는데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어서. 그래서 물어보고 시키는 편이에요.”


“식당가서 음식에 동물성 식품이 들어가는지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사실 좀 지치는 일이고 즐겁지 않은 일이에요. 일단 확실히 폭이 좁고….”

 

  최근 국내에도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나면서 채식 식당(완전 비건 식당+채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 기준,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 식당 수를 350~400개로 추정한다. 그러나 채식 식당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채식 식당이 수도권 지역에 밀집되어 있기에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채식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 서울 지역만 보았을 때도 홍대, 이태원, 신촌, 강남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채식 식당이 집중되어 있어 채식 인프라 불균형이 심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학생식당에서 비건식을 제공해주는 학교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점차 학생식당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존 학생식당에서 비건식을 제공하고 있는 동국대와 서울대 그리고 락토-오보단계 채식을 제공하는 삼육대를 시작으로 올해 1학기 국민대 총학생회도 학생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학식 외에도 새내기 배움터나 시험기간 간식사업에서 채식에 대한 학생사회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새내기 배움터를 가기 전 학생회가 채식주의자 실태 조사를 하고 수요에 맞게 비건 식단을 제공한다. 또한, 시험기간 간식사업에서는 채식 간식 옵션을 도입하여 채식주의자 학생들도 마음 편히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우리가 만난 인터뷰이도 학생회에 속해있으며 비건 간식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인터뷰이는 비건 간식의 제공으로 다른 학우들도 채식에 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모두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가는데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시선의 어려움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남들의 부정적인 시선이다. 이제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채식이지만 여전히 채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채식주의에 대한 편견으로 육식을 강요하기도 하고, 다수가 지지하는 의견에 편승해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인터뷰에서 만난 직장인 인터뷰이는 과거에 식사 자리에서 경험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부정적인 시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식사 자리가 있어요. (웃음) 그분 창의력이 대장이야. 지금은 식사 자리에서 동물 윤리 얘기는 절대 안 꺼내는데 그때는 채식에 대한 마음이 커서 케이지 안에 돼지나 닭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빽빽하게 있다는 걸 얘기하니까 “그럼 벼는 어떡해? 걔네들은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데? 걔네들도 잔인하게 길러지고 있는 거네?” 또 이런 얘기도 했어요. 천혜향이 귤이랑 오렌지를 교배시킨 거예요. “그럼 천혜향은 돼지의 머리에 소의 몸통이 연결되어 있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 그럼 우리는 과일에게 제일 심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거야.” 그때 그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었어요.”

 

  실제로도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채식주의자들을 향한 공격적인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까탈스러운 사람, 혹은 잘난 척이나 착한 척하는 사람들로 낙인찍는다. ‘너 솔직히 고기 먹고 싶지?’, ‘힙해지려고 채식주의자 하는 거지?’, ‘채식주의는 건강에 해롭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거야.’라는 말로 상처를 준다. 채식주의에 관한 기사나 영상에는 ‘오늘 저녁엔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댓글을 다는 등 채식에 대한 신념을 조롱한다. 인터뷰이는 ‘너 하나 고기 안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냐.’라는 말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자기 생각에 따라 채식을 실천하려는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나와의 다름을 거부하거나 다름을 같음으로 바꾸기 위해 설득하고 강요한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만연한 것은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를 향한 혐오는 정당화될 수 없다.

 

채식주의와 건강

 

  채식주의자들에게 부족한 영양소라고 흔히 알려진 것은 크게 단백질과 비타민 b12이다. 하지만 이 영양소 모두 식물성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면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단백질이 동물성 식품에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체내에서 필수 아미노산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필수 아미노산을 만들 수 있는 건 식물과 미생물들인데 그것을 동물이 먹기 때문에 단백질이 합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성 식품만으로 하루 단백질량을 다 채울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성인의 하루 단백질 섭취량은 체중 1kg당 0.8g이다. 하루에 현미밥을 3공기를 먹는다고 하면 약 19g 정도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몸무게를 50kg라 가정했을 때, 벌써 밥만으로 절반의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채식을 통한 단백질 섭취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곡물 단백질과 콩 단백질을 혼합해서 먹으면 상호 보충이 가능하기 때문에, 완전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정고미라, 채식과 에코페미니즘 (2001)

 

  비타민 b12는 토양 속에 있는 미생물이다. 흔히 고기, 달걀, 유제품에서 b12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동물들이 세균과 흙이 묻은 음식들과 물을 그대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성 음식에서만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미역, 파래와 같은 해조류에 b12가 풍부하며 된장과 같은 발효식품이나 버섯 종류에서도 b12를 섭취할 수 있다. 또한,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미생물로 만든 b12 비타민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해서 비타민 b12가 모자란다고 말할 수 없다.

 

 채식은 가치 실현 방법 중 하나

 

  앞서 말한 듯이, 채식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유형이 있고 종교, 건강, 환경 보호, 동물 윤리 등 채식을 하는 이유 역시 다양하다. 그렇기에 채식주의자들은 채식 외에도 저마다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채식은 그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이고, 그 방법이 식생활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흔히 환경 보호를 위해 분리수거를 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자고 말한다. 또, 매연 발생을 줄이기 위해 자가용 사용을 자제하기도 한다. 이 행위들은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환경보호라는 공통된 목표에서 만난다. 같은 맥락으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축을 사육하고 방목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이기 위해 가축을 소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방식이 채식이다. 다른 예로,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양모, 오리털, 가죽 등 동물로부터 얻은 소재를 거부한다. 이러한 소재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대체로 동물 학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물권에 대해서는 아직도 꾸준한 담론이 벌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담론을 통해 동물권 보호와 채식주의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류 생산 과정에서의 동물 학대 논란에 뒤따라 생겨난 RDS 인증을 살펴보자. RDS는 ‘책임 있는 다운 기준(Responsible Down Standard)’의 약자로, 오리와 거위의 사육, 도축, 다운 생산 과정에서 동물 학대를 하지 않았음을 인증한다. RDS 인증을 받은 제품은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는 방법 대신 식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축된 동물들의 털을 재활용한다. 따라서 RDS 인증은 동물권 보호를 위한 방법이지만 채식주의와는 일맥상통하지 않는다. 다만 공유하는 교집합이 있을 뿐이다.

 

  환경 보호를 위해서 정부에서는 차량 2부제를 비롯한 각종 정책을 실시한다. 또 동물권 보호라는 가치에 대해서 사회는 점점 합의를 이루고, 동물보호법 및 그 시행규칙이 2010년 이후에 세 차례 개정될 만큼 관심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 목표들을 구체화하는 방식의 일환인 채식에는 굉장히 엄격하다. 구글에 ‘채식주의’를 검색해보면 관련 검색어 목록에 ‘채식주의 정신병’이 나온다. 카페에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는 사람에게 정신에 이상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300원 할인해준다. 채식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잣대는 과연 합리적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주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채식주의를 실천하지 않으니까.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거나 채식주의를 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육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채식주의자의 동기나 신념을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 된다.

 

  인터뷰에서 만난 한 인터뷰이는 채식을 삶의 연결로 보았다. 채식하면서 세상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왔는지 주목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심의 태도는 다시 채식으로 이어지며, 지속적인 연결을 통해 채식은 비로소 삶의 근본적인 태도로 자리 잡게 된다.

 

정성호 기자 tjdgh5424@naver.com
박원희 기자 bagooooni@gmail.com
이지원 기자 jione05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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