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나눔관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과제로 한창 바쁠 시기에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우들이 찾아주었다. 데크 뿐만 아니라 자연드림 카페 앞 테이블, 데크 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은 입학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간담회는 영상 상영으로 시작했다. 앉아있는 참가자들은 참사 당시의 모습과 추모행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후 유가족 두 분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인 용혜인 씨를 모시고 간담회와 질문이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이야기의 농도는 짙어졌고, 현장의 분위기는 무거워지는 듯 보였다.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유가족 분들도 눈물을 지으며 말을 잇기도 하셨고, 거기에 응하듯 몇몇 학우들도 함께 눈물을 보였다. 다음은 간담회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권기봉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개인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 창현 아버지: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대리운전 사업을 조그맣게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광우병 때문에 서울시청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때에도 저는 그냥 뉴스만 보고 말았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엔 그 전에 참석하지 못한
476개의 참사를 기억하며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2주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목이 메어온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기사 들어가는 말에도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7월 7일> 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그냥 꿈에서 깬 것뿐이야." 라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한 소절만 더 들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노래를 멈추기도 했다. 세월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도 있었고 교사도 있었다.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이들, 인천에서 제주도로 화물을 운송하는 운수 노동자들, 배 안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도 있었다. 제주도로 가는 그 배 안에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하나의 참사가 아니라, 그 날 일어난 476개의 참사다. 그 476개의 참사 중 163개의 참사는 ‘생존’이 되었고, 304개의 참사는 ‘사망’ 이 되었다. 나머지 9개의 참사는 ‘실종’ 혹은 &l
[4월의 종이배] 화인 [4월의 종이배]#.1 안산 합동분향소 [4월의 종이배] #.2 단원고등학교 기억교실 [4월의 종이배] #.3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4월의 종이배]476개의 참사를 기억하며
회대알리 세월호 취재팀이 세월호 2주기 특집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장성렬 팀장과 권기봉, 김주환, 송채연, 이지우 네 명의 신입기자들은지난 3월 20일(일) 경기도 안산으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회대알리 기자로서의 첫 취재입니다. 임예현 권기봉 기자가 지난 3월 31일(목) 우리 학교 자연드림 앞 나무데크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취재하고 정리했습니다.2014년 4월 16일 밤, ‘전원 구조’ 라는 말도 안 되는 오보를 무심히 뒤로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쏘아 올린 조명탄들이 빛을 내며 하늘로 올랐다. 하지만 결국 삼백 하고도 네 개의 빛들도 하늘로 올라 별이 되었다. 그 빛들이 하늘로 오르며 낸 상처들이 불에 데인 것 같은 화인(火印)으로 남았다. 낙인은 사월이 두 번 돌아오고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상처를 지우고 싶다며, 지워야 한다며 날 선 손톱으로 박박 긁어내려는, 심지어 도려내려는 이들이 있다. 2015년 4월 18일. 유가족들은 경찰 차벽에 포위된 채 광화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 마치 성을 쌓는 것 마냥 차벽을 설치하고 펜스를 쳐서 길을 막았다. 시민들이 길을 지나가
회대알리 세월호 취재팀이 세월호 2주기 특집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장성렬 팀장과 권기봉, 김주환, 송채연, 이지우 네 명의 신입기자들은지난 3월 20일(일) 경기도 안산으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회대알리 기자로서의 첫 취재입니다. 임예현 권기봉 기자가 지난 3월 31일(목) 우리 학교 자연드림 앞 나무데크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취재하고 정리했습니다. 세월호, 사고 아닌 참사 2014년 4월의 교실은 곧 있을 수학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반 전체가 다 같이 모여 말 한마디씩 더하다 보면 교실은 금세 왁자지껄해지기 일쑤였다. 16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면,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뒤집혔다.”는 친구의 한마디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도 2년이 지났다.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안산에 있는 세월호 합동 분향소를 방문했다. 넓은 공원의 끄트머리 즈음에 분향소가 덩그러니 위치해 있었고, 그 앞을 지키는 경찰들은 어쩐지 위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분향소 내부로 들어가자 희생자들의 영정과 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접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