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이면 대학가는 학생회 선거 시즌을 맞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총학생회 선거는 후보자가 나오지 않거나 투표율이 기준에 미달해 당선자가 무효가 되는 ‘공백 상태’가 반복돼 왔다. 이 공백을 틈타 특정 정치 성향을 표방하는 대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총학생회에 출마하여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학생자치가 약화된 자리를 누군가가 반드시 채우게 마련인데, 지금 그 자리를 가장 민첩하게 점령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정치 대학생 그룹들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인천대학교다.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섰던 A씨는 과거 국민의힘 대학생위원장을 지냈고 인천 지역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을 주도해온 인물이었다. A씨는 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가 누적되며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실시된 총학생회 투표는 결국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다. 학생자치가 약화된 대학에서 특정 정치적 성향의 후보가 선거관리 규정을 위반하며 선거를 밀어붙이려 했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충북대학교의 사례는 더 심각하다. 학내 극우 폭력 사태에 연루됐던 B씨가 오히려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사회가 오랫동안 공백을 겪은 사이, 극우적 행동을 주도한 인물이 선거제도만 통과하면 학생대표가 될 수 있는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또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합법’이라고 주장해온 일부 대학생 단체는 매주 집회를 열고 전국 캠퍼스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자보를 부착하는 등 조직적인 캠퍼스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12.3 계엄 당시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적 저항을 ‘폭도’라 규정하며 기존 학생사회를 적대시하고, 캠퍼스 공간을 정치적으로 점유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한때 대학은 사회 민주화와 진보적 담론을 이끌었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12.3 계엄 사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의 의지는 ‘빛의 혁명’으로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만큼 강력했지만, 대학가에서는 역설적으로 일부 정치 세력이 다시 위세를 키우고 있다. 국회에서는 내란 특검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음에도 정작 대학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성향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과 맞서 논쟁하고 학생사회를 이끌 ‘대안 세력의 부재’에 있다. 각 학교에는 꾸준히 활동해온 학생활동가들이 있지만, 조직적·전국적 영향력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래된 학생자치의 침체로 인해 변화의 의지를 가진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결과다.
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학생자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대학은 사회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해왔고, 수많은 사회개혁의 출발점이었다. 특정 세력이 대학에서 조직력을 키우고 학생사회를 점령하려 한다면, 이는 향후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 충돌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오늘은 ‘빛의 혁명’ 1주년이다. 1년 전 시민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국가 권력을 바로잡았다. 그 힘은 지금도 살아 있다. 이제는 그 에너지가 캠퍼스에서 다시 타올라야 한다. 학생사회를 되살리고 특정 세력의 선동적 주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건강한 대안 세력이 필요하다. 지역과 세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지킨 그 힘을 대학에서 다시 확인해야 할 때다.
광장에서 시작된 사회대개혁의 흐름을 이제 대학에서 완성하자. 캠퍼스를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되살리는 것이 우리가 빛의 혁명 1주년을 맞아 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최재봉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준) 운영위원(jbong9966@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