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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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계엄 선포와 탄핵 소추 사이, 성공회대는?③ 거리로 나온 대학생

성공회대 여러 구성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택시를 나눠 타고 국회 앞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매일 저녁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쓰던 기말 보고서를 내려놓고 거리로 나가기도 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회대알리는 거리로 나선 성공회대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 발의와 국가 예산 감액을 계엄 선포 이유로 들었다. 이후 국회의원과 보좌관, 기자, 계엄군, 일반 시민까지 수많은 사람이 국회로 모여들었다. 각각 계엄 해제안 결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취재, 명령 이행 등 직업적 이유가 있었다면 시민들은 달랐다. 집결을 요청받지 않았음에도 모였고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맨몸으로 장갑차와 무장한 군인을 막아섰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며 “계엄 해제”와 “독재 타도”를 외쳤다.

 

비상계엄 사태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6시간가량 이어졌지만, 그 여파는 계엄이 해제된 후에도 지속됐다. 4일 야 6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공동으로 제출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으나, 6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며 의견을 바꿨다. 여야의 의견이 충돌하고 여당 내에서도 입장이 갈리는 가운데 시민들은 4일 저녁부터 전국 곳곳에서 한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성공회대에서도 재학생, 대학원생, 동문 등 여러 구성원이 집회에 참여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앞으로 달려갔고, 3일부터 6일까지 매일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쓰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나갔고,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회로 향하기도 했다. 회대알리는 직접 거리로 나선 성공회대 구성원 6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Q.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어떤 매체로 처음 접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 당시 상황과 느낌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세요.
 

정주연(가명,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20, 3일 집회 참여): 그때 집을 구하기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의 마감일을 놓쳐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SNS에 들어갔는데 친구들 스토리가 계엄령 선포로 뒤덮여 있었어요. ‘내가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어요. 사실 믿기지 않았어요. 이게 이렇게 말 한마디에 선포되는 건가 싶었고 급격히 무서워졌죠. 갑자기 총소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가 찾아왔으니까요.

 

김해찬(사회융합자율학부 22, 3일 집회 참여): 외부 교육을 신청하고 있다가 우연히 SNS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를 보고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방 안을 서성이며 돌아다녔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내일 당장 무엇을 해야 하지?' 생각했고, 멀리 있는 가족과 각종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의 안위가 제일 걱정됐습니다. 평소에는 온갖 재난 문자 알림이 왔는데 이건 왜 오지 않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무감각에서 불안과 걱정, 분노 순으로 차츰 바뀌었던 것 같아요.

 

김현지(미콘학부 졸업,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 활동가, 3~6일 집회 참여): 친구들과 집에 있었는데 연구소 단톡방에 ‘지금 큰일이 났다’고 공지가 올라왔어요. 무슨 일인가 싶었고 속보랑 유튜브로 담화를 보고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별 생각이 안 들었어요. 드디어 이런 짓까지 하나 싶었고, 어이가 없어서 해탈한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평소에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냥 ‘큰일 났는데?’ 싶었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어요. 친구들이랑 ‘우리 어떡해야 하냐. 우리 안전한 거냐’ 얘기하면서 혼란스러웠어요.

 

강예빈(사회학부 23, 3~6일 집회 참여): 당시 집에서 화상 회의 중이었어요. 갑자기 알람이 많이 와서 보니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거예요. 일단 무서웠고, 화가 많이 났어요. 그래도 기본선은 지킬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 무너졌다고 느꼈어요.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무력감도 느꼈고요.

 

Q. 계엄령 선포 당일 국회 앞에 가게 된 상황이 궁금합니다. 군과 충돌하거나 위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결심으로 가게 되었나요?


주연: 계엄령 선포를 알고 친구들과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고 모두 무서워하며 기사와 현재 상황을 공유했어요. 유튜브 생중계를 보며 상황을 지켜봤는데,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 요구가 가결되었는데도 대통령은 감감무소식이고 군인들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국회에 국민들이 모여드는데, 여의도와 가까운 기숙사에 있음에도 가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길 것 같았어요.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단체방에 가자고 이야기했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택시를 잡았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가능했어요. 국회 앞에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국민들이 있고 또 친구들이 있으니까 괜찮았어요.

 

해찬: 언론 매체와 메신저를 찾아보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제가 소속되어 있는 정당에서 국회로 모여달라는 요청을 계속해서 했어요. 혹여나 내일 이후 세상이 바뀌어 있다면 부채감이 많이 들 것 같았고, 국가가 이 정도로 회귀한 상황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잡혀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실제 연행 결의까지 하며 가방도 지갑도 챙기지 않고 급하게 나갔습니다.

 

현지: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그 자리에 가는 것이라고 배웠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일궈온 민주주의 체제가 붕괴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회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빈: 어떤 결심을 했다기보다는 너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무언가 해야겠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들었던 무력감을 해소하고 싶기도 했고, 분노를 표출하고도 싶었고요.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는 시민이 국회로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가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어요. 

 

Q.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주연: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아닌데요. 새벽 2시쯤 구두인관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택시가 학교를 빠져나오면서 창문이 열리는 거예요. 거기 계신 학우님이 “혹시 국회 가세요? 같이 가실래요?” 하고 물어보셨어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든든해지는 경험이었어요. 어디든 언제든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리고 여의도 쪽으로 가자 차가 엄청 많았어요. 특히 택시들이 많았는데, 모두 국회로 향하는 사람들 같은 거예요. 너무 든든하지 않나요? 이 새벽에 나라를 위해 국회로 향하는 국민들이 이렇게나 많다니요.

 

해찬: 제가 11시 반쯤 도착했을 때는 제 소속 정당과 다른 단체 깃발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끝없이 연대 깃발과 플래카드가 늘어나서 뭉클했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을 무렵에는 다 같이 아침이슬을 부르며 현장을 메우기도 했는데, 2024년인 지금까지도 광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지: 제가 갔을 때는 상황이 많이 가라앉아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상태였어요. 정말 많은 국민들이 위험하단 걸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살아갈 사회와 세상에 대한 지향점을 고민하게 된 날이었어요. 저는 지금 시민 활동가로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계엄 상황에서 모인 시민들을 보며 자기반성도 하게 되었어요. 평소 시위 활동에서 보지 못했던 계층의 사람들도 너무 많이 모였거든요.

 

예빈: 가보니 중고등학생들이 용기 있는 발언을 하고 있었던 게 생각나요. 긴장감이 없진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평화로운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언제 다시 군인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불안했어요.

 

Q. 당일 국회 앞에 간다고 했을 때, 혹은 다녀온 사실을 알았을 때 가족이나 지인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주연: 부산에 있는 친오빠가 조심하라는 연락을 줘서 놀랐어요. 부모님은 아냐고 물어보고, 들어갈 때 자신에게 연락하라며 추운데 조심하라고 해줬어요. 다른 건 물어보지 않고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줘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해찬: 국회로 가기 전에는 가지 말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고 현장으로 간 이후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연락을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새벽 1시가 다 됐을 무렵에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너는 현장에 있을 것 같았다며 괜찮은지, 혼자 있지는 않은지 묻고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현지: 부모님은 아직 제가 국회 다녀온 걸 모르세요. 그럼에도 부모님으로부터 계엄 선포되자마자 제일 먼저 들은 말은 ‘집회가지 마’였어요. 일하는 곳에서는 모두 알고 고생했다고 해주셨지만, 부모님은 너무 걱정하실 것 같아 말하지 못했어요.

 

Q. 다음날(4일) 성공회대에 왔다면 학교 모습이나 학우들의 반응 등 전반적인 학교 분위기는 어땠나요? 

 

주연: 9시 수업을 갔는데 결석한 학우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교수님은 계엄령을 언급하면서 수업을 시작하셨어요. 수업을 마치고 학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다들 계엄령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씁쓸했어요. 또 대자보가 많이 붙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었어요. 

 

해찬: 5일에 갔는데 예상대로 시국 선언 대자보가 학교 곳곳에 많이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2년 새 학풍이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아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는데, 이번 일에 연대하는 모습을 보고 지금 의지할 수 있는 건 수많은 학우와 성숙한 시민들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빈: 학교는 생각보다 평온해서 의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대자보를 보고는 관심을 가지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금의 계엄 사태가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고 다시 느끼게 되었고요. 

 

Q. 7일에 ‘범국민촛불대행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집회에 나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빈: 3일 국회로 가게 된 계기와 비슷해요. 집회가 필요하고, 사람도 많아야 할 것 같았어요.

 

현지: 저는 4일부터 6일까지 모두 나갔고 7일도 나가요. 실천하는 게 제일 최선이고 제가 있을 곳은 거리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나갈 거예요.

 

정수아(사회학부 22,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4, 6일 집회 참여): 요 며칠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흘려보내며 일상을 살고 있지만 잘 안돼요. 지금 제가 듣고 있는 과목이 전부 보고서 과제라 글을 계속 써야 하는데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아요. 해야할 게 산더미지만 그렇다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섰어요. 

 

차민선(사회학부 23, 6일 집회 참여): 7일 3차 총궐기범국민대회 참석을 계획하고 6일에 성공회대 퇴진 촛불 오픈채팅방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채팅방을 통해 6일에도 촛불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시험도 그날 2시가 마지막이었기에 고민이 되더라고요. 집으로 돌아가면 시험 끝났다는 핑계로 침대에 누워있을 것 같아 '어차피 보낼 시간이라면 후회 없게, 어디에 힘이라도 되어 보자' 하며 무작정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Q. 원래 정치·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을 지속해 왔나요? 만약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이번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나요?

 

예빈: 활동을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속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정도예요.

 

수아: 청년기후긴급행동과 성공회대학교 공기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이에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강령 중 ‘우리는 다양한 아픔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아픔을 외면하기보다 직면하고자 하고, 아픔을 극복하기보다 더 많은 아픔들을 품으며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 아픈 몸들이 세상과 불화할 때 세상은 역동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저는 아픔을 극복하기보다 더 많은 아픔을 품으며 함께 살아가고자 하고, 서로의 아픔에 반응하며 그 기원을 찾아 엮어내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제외되는 존재들이 없도록 계속해서 돌아보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한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민선: 성공회대 동아리 '어흥'에서 원자폭탄 피해 관련 토론회 진행이나 대자보 작성 등을 해봤지만 주도적으로 집회에 참석한 적은 없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들고 있었고 그 영향으로 정치에 무관심해졌어요. 혼자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힘들더라고요. 계엄 소식도 당일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알았습니다. 국회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주저했고,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제가 한심했고요. 더 이상 후회할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순간이 와도 저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살면서 처음으로 집회에 나갔습니다.

 

 

Q. 4일부터 6일까지 참여했던 집회 분위기는 어땠나요?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나요?

 

현지: 집회 분위기는 4, 5일과 6일이 달랐어요. 4, 5일은 집회에서 불나비와 민중가요가 많이 나왔는데 6일은 에스파의 위플래쉬가 나왔어요. 4, 5일은 어느 정도 집회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분들이 많았다면 6일에 접어들면서는 집회 구성원이 더욱 다양해졌어요. 친구들이랑 아이돌 응원봉 들고 온 분들도 많았고 초등학생 6학년이 단상에서 발언하기도 했고요. 또 6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너무 커서 행진도 못 하고 집회 중에 스피커도 계속 추가되었는데, 이렇게 그동안 집회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예빈: 기존에 있었던 윤석열 퇴진 집회는 그리 활발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는데요. 계엄 사태 이후 3일간 있었던 집회는 새롭고 다양한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더욱 활발하고 활기찬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수아: 마이크를 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발언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 ‘개돼지’와 같은 대상화와 혐오가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매번 있던 일이니 예상했어야 하는데 복잡한 마음을 안고 달려간 자리에서 듣게 되어 그런지 속상한 마음이 컸어요. 그들(비인간 동물)이 대상화되고 또 다른 혐오가 생산됨으로써 그들이 겪는 일상 속 폭력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며 불쑥 찾아온 이런 두려움도 그들에겐 당연한 현실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 시국에 가장 중요하고 마음을 모아야 하는 의제가 이것(탄핵)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제들이 모두 주변화되진 않길 바라요. 비인간뿐만 아니라 비상계엄 터진 후 덮인 많은 투쟁거리가 있잖아요. 그걸 잊지 않고 함께 계속해서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민선: 날이 추운데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모금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게 되어 제가 앉아 있던 앞자리에서부터 맨 뒷자리까지 걸어갔는데,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인상 깊었습니다.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회의감에 빠져 있었는데,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껏 느끼다 왔어요.

 

Q.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이 상황을 바라보는 학우들의 의견이 궁금해요.

 

주연: 내란을 일으킨 자들의 시대착오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해요. 국민들을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길래 밤에 갑자기 계엄령 선포를 하는 것일까 하는 분노가 일었어요. 이후에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탄핵에 반대했잖아요.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인데 이들이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라니 너무 절망스러워요.

 

해찬: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모르는 대통령실에 분노했어요. 아직 이 사회 곳곳에는 독재 시절 살았던 사람들, 민주 항쟁 운동을 했던 투사들과 그 유가족들이 남아있는데 그분들에게는 우리 청년 세대보다 더 큰 트라우마로 다가갔으리라 생각해요. 또 앞으로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 미디어 등에서 남용되지 않을지, 정쟁의 한 요소로 사용될 것 같아 그 부분에 대한 우려도 생깁니다. 

 

현지: 아직은 이번 계엄에 대해서 정확히 정리하지 못했어요. 45년 전 계엄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계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을 못 했잖아요. ‘이게 될 수 있구나’를 느낀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저는 진보는 항상 변화하고 있고, 내가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해도 멀리서 보면 세상은 언제나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왜 이런 믿음을 갖는 게 어렵고 사람들이 냉소주의에 빠지는지 조금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예빈: 윤석열이라는 사람 자체가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윤석열은 계엄 선포 이전에도 사회적 참사나 재난 대응에 미흡했고 역사 왜곡과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등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켜왔어요.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행적이 지금 사태로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민선: 무엇이 가장 문제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계엄 선포를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저는 고향이 제주여서 어렸을 때부터 제주의 역사를 자세하게 배워왔어요. 교과서에는 실려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한국사 선생님들께서 꼭 몇 주씩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민이기에 제게 4.3사건은 여전히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계엄 선포는 이 역사를 아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습니다. 또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배운 사람이 그러면 안 되고요. 대통령을 떠나 대한민국 국민인 사람이 또다시 역사를 그것도 사적인 사유로 되풀이하겠다고 한 것에 많이 분노했어요.

 

 

Q. 마지막으로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주연: 저는 영화 <서울의 봄>을 계엄 사태가 있고 5일에 봤어요. 그런데 너무 이 상황과 비슷한 거예요. 국민들이 정치를 미온적으로 다룬다면 이런 일은 또 생길 수도 있겠죠. 정치는 국회에서만 이뤄진다는 생각을 지우고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해요.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뽑았다는 자들, 이준석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 윤석열을 뽑았다는 자들. 그들의 투표에 힘입어 세상이 여기까지 왔어요. 계엄령을 내릴 줄은 몰랐겠죠. 하지만 언제까지 몰랐다는 핑계로 뒷걸음질을 칠 수 있을까요? 못하면 탄핵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한 나라를 책임질 자리를 그렇게 쉽게 생각한다면, 국민이 우리나라를 쉽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라가 바로 설까요? 국민으로서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정치는 국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옆에 있으니까요.

 

해찬: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도록 우리는 이 사태를 끝까지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책임이 있습니다. 후세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광장에 뛰쳐나가는 일 없이 (계엄을) 역사와 교과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함께 해 주는 학우분들께 고맙다는 말과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험난하고 서슬 퍼런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버겁지만, 학교와 광장에서 학우분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항상 행동으로 움직이는 분들께는 몸조리를 꼭 잘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여건이 안 되어 마음으로 함께하는 분들께는 너무 많은 부채감을 느끼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연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새 학기가 왔을 때 우리가 모두 조금은 안전한 세상에서 숨 쉴 수 있길 바랍니다.

 

현지: 이번에 총학생회장단 시국 선언문이 나왔잖아요. 저는 이 선언문이 지금 총학 회장단만의 선언이 아니고 38, 39대 등 그 이전부터 같이 지낸 학생들의 분노가 함께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우리는 인권과 평화의 성공회대인으로서 항상 분노의 최전선에 있었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항상 있어 왔어요. 정말로 우리가 필요한 지금, 함께 거리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예빈: 이제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가 열릴 예정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하고 있지만 이전 박근혜 탄핵 집회보다는 여전히 규모가 작은 것 같아요. 대학생이면서 미래를 살아갈 청년 세대로서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데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또 2차 계엄 얘기가 나오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회 분위기는 생각보다 그리 험악하지 않아요. 이 집회가 함께할 수 있는 장이 된다면 더 아름답게 서로를 지키며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수아: 국회 앞에서 외치던 구호 뒤로 묘한 공허함이 남는 분들이 많을 거라 예상해요. 왜일까요? 물론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우린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여전히 기후 위기로부터 삶을 위협받고 있고, 생명을 학살하는 행위는 정당화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정치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죠. 우리는 탄핵을 외침과 동시에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미약하더라도 끊임없이 발화해야 해요. 우리의 목표가 그저 탄핵만이 되지 않길 바라요.
우리가 외치는 구호를 경계하세요. 그 구호 안에 또 다른 혐오가 숨어있진 않은지 생각해보세요. 인간중심 담론에서 벗어나 열린 구호를 외칠 수 있기를, 비시민도 함께 살 수 있는 국가가 되기를, 국민이 우선인 사회 그 너머를 생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덮어지는 수많은 투쟁거리를 잊지 않고 계속 함께 외칩시다. 특히 시린 겨울이에요. 몸과 마음을 잘 챙기며 투쟁합시다. 감사합니다.

 

민선: 집회에 대한 부담이 적어지면 좋겠습니다. 혼자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분이 가 보셨으면 좋겠고, 깜깜한 밤에도 환하게 보이는 수십 개, 수백 개의 촛불과 그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느꼈습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기 내어 항상 자리를 지키는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날이 추운데 따뜻하게 계시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혼란을 야기한 윤 대통령은 여전히 국군통수권자이며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규탄하며 7일 광화문에서 열릴 예정이있던 3차 총궐기범국민대회는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 


7일 오후 3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대로에서 시민단체와 노조가 이끄는 ‘범국민촛불대행진’이 열린다. 대학생 및 청년들 또한 1시 반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 모여 ‘윤석열 퇴진 대학생 시국대회’를 진행한 후 촛불대행진에 합류할 예정이다. 성공회대학교에서도 ‘12.7 퇴진 촛불 성공회대 참가단’을 꾸려 대학생 시국대회와 촛불대행진에 모두 참여한다. 

 

 

 

취재 = 유지은, 윤영우, 이선영, 이혜성 기자

글, 디자인 = 유지은 기자

사진 = 윤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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