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 (수)

대학알리

[금서를 禁하다] ‘아이들은 섹스에 대해 알면 안된다?’

[금서를 禁하다]
도서 퇴출 이유, ‘낯 뜨거운 표현 있어서’
우리의 몸은 금기가 아니다

국가나 자본, 종교 등 지배세력에 의해 금지된 책들을 금(禁)한다는 의미의 [금서를 禁하다]는 해로운 걸작,

불온서적 등을 다룹니다.

금지된 책이 왜 금지됐는지 그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둘러봅니다. 

 


 

작년 7월, 충남 공공도서관에서 ‘10대를 위한 빨간책’을 비롯한 성교육·성평등 주제 어린이책들이 퇴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5월부터 빗발친 ‘꿈키움성장연구소’의 ‘고시 위배 도서 폐기 요청’ 때문이었다. 

 

'동성애, 성전환, 조기 성애화, 낙태 등을 정당화하거나 이를 반대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긴 도서는 마땅히 폐기 처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략)'
출처=지난해 5월 ‘꿈키움성장연구소’가 보낸 공문.

 

해당 단체가 도서관으로 보낸 공문에는 총 4개 항목에 걸쳐 관내 ‘문제 도서’들을 폐기 처분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빨리 도서를 빼라며 매일 같이 걸려 오는 민원 전화도 있었다. 퇴출을 주장한 이들 중에는 지민규 국민의 힘 도의원과 김태흠 충남지사도 있었다. 지 의원은 “성행위 방법·성적 표현 등으로 과도한 성적자극이 우려”된다며, 김 지사는 “7종 도서를 살펴봤는데 낯 뜨거운 표현이 있었다”고 퇴출 이유를 밝혔다.

 

 

퇴출 도서 목록 중 하나였던 ‘걸스 토크’의 작가 이다는 당시 SNS를 통해 “금서 지정 사유가 놀랍게도 ‘콘돔 사용 권장’이더라. 대체 무슨 못할 말을 했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심정을 밝혔다. ‘걸스 토크’가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보수 단체의 주장에 대해선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관계는 후회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책”이라고 반박했다.

 

‘섹스’, ‘성기’ = 낯뜨거운 표현?

 

23년 여름을 기점으로 금서가 된 ‘10대를 위한 빨간책’은 지 의원과 김 지사가 지적한 점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책의 첫 챕터 제목부터 ‘섹스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이다. 책은 ‘성기’와 ‘섹스’, ‘고환’ 같은 용어를 적나라하게 사용하고 있다. 책의 뒤표지에는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보이는 속옷이 대화를 나눈다. “잘 지내?” “별로”

 

그럼 이제 ‘10대를 위한 빨간책’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를 납득하면 될까. 남녀의 섹스 행위에 대한 묘사와 솔직한 감상을 ‘낯 뜨겁다고’ 이해하면 되는 걸까. 왜 우리는 이토록 섹스라는 단어와 행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섹스’ 교육은 안 괜찮고, ‘섹스’ 콘텐츠는 괜찮나요?

 

성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단어라도 꺼내면 ‘어딜 그런 상스러운 말을’ 하며 쉬쉬하지만,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성욕을 주체 못해서’라며 범죄 동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불법 음란물을 감상하거나 이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관음하는 일에 대해선 ‘한창 성욕이 끓을 때니까’라며 용인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놈의 성욕을 다룬 책은 도서관에서 퇴출다. 청소년들은 혼란에 빠진다. 도서관에서 책으로 접하는 섹스는 안 되고, 집에서 나 혼자 자위하며 보는 섹스는 괜찮은가. 여성과 남성의 교접을 묘사한 삽화는 보면 안 되지만, 여성의 몸을 과하게 왜곡한 19금 웹툰 광고는 아무 데서나 맞닥뜨려도 괜찮은가.

 

성교육 강사 강덕임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은 성기가 크게 부각되는 음란물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성기 중심적 사고를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음란물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접근을 막기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강 씨는 대신 "성교육을 통해 음란물과 현실은 다르다는 판단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과 <10대를 위한 빨간책>: ‘사랑은 정말 아름다워!’

 

‘10대를 위한 빨간책’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적나라한 성교육’이다. 이 도서는 섹스, 낙태, 피임, 성욕, 동성애, 성병, 성폭행 등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성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다. 딱히 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지도, 급진적인 사상을 전파하지도 않는다. 기존의 성교육이 해오던 말을 더 적나라하게, 이해하기 쉽게 늘어놓았을 뿐이다. 청소년들이 왜곡된 성 지식을 습득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 역할을 할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과도한 성적 자극이 우려되고’, ‘낯 뜨거운’ 이야기 끝에 책에서 도달한 결론은 그 옛날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워!’

: ‘10대를 위한 빨간책’ 142p

 

 

 

섹스, 인생에 한 번은 맞닥뜨리게 되는

 

‘우리는 모두 성적 존재다’

: ‘10대를 위한 빨간책’ 표지

 

아이는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면 접하는 게 많아진다. 내가 이성을 좋아하는지 동성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물론 다 안 좋아할 수도 있다. 맘에 드는 누군가와 어딘지 위험한 분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알고리즘에 (드디어) 시청할 수 있는 19금 성인 영화가 뜨기도 한다. 모텔에 들렀다가 옆방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수도 있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커플을 보며 이 나라가 진짜 초저출산 국가가 맞느냐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의 기본 전제로 깔린 것이 ‘섹스’란 사실이다.

 

 

‘성관계가 없다면 임신도 없고, 출생도 없고, 자식도 없고, 그러니까 삶도 없겠죠.’
: ‘10대를 위한 빨간책’ 17p

 

섹스의 중요성은 당장 뉴스만 틀어도 알 수 있다. 정부에서 매일 권하는 게 그거 아닌가. ‘10대를 위한 빨간책’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섹스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며, 필요한 일이고, 그러니까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그러나 어른들은 여기서 ‘제대로 알면 안 된다’는 명목하에 도서를 퇴출해 버렸다. 양지를 막는다고 터가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음지에 사람이 몰릴 뿐이다. 청소년의 조기 성애화를 그토록 걱정하는 이들도, 음지의 ‘섹스’와 ‘성기’를 접하며 자란 청소년들이 성인이 돼 맞닥뜨릴 상황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는다.

 

한국의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각종 SNS에서 별도의 인증을 거치지 않고 음란 동영상을 자유롭게 시청하고 제작할 수 있다. 굳이 마음을 먹지 않아도, 인터넷만 돌아다니면 여성의 가슴이나 남성의 성기가 비현실적으로 부각된 음란물을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다. 


어른들은 이를 막을 수 없다. 아이들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동시에 그만큼 많은 위험에 노출됐다. 이미 알게 된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닌, 제대로 쥐고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 

 

최세희 기자(darang1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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