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대학알리

웰메이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넘어

‘우영우 신드롬’ 바깥의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대학생 A는 노트북을 켜 둔 채 지역 공익 활동 공간에서 과제 중이다. 문이 열리더니 방금 전 나간 두 여자가 한 남성과 함께 들어온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은 이곳에 볼일이 있는 것 같다. ‘인터뷰’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여성은 기자, 남성은 취재원인 것 같다. 정적을 깨는 세 사람의 대화에 A는 그들을 응시한다. 그런데 남성의 말씨와 행동은 두 여성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학생 시절 같은 학급의 특별반 친구와 닮아 있었다. 그리고 A는 얼마 전 종방한 화제의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저 남성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했을까, A는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궁금증에 빠진다.

 

 

지난 8월 18일,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의 로펌 일지를 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가 16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우영우>는 신생 채널 ENA에 편성되었음에도 최고시청률 17.5%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들과 수많은 언론 보도가 <우영우>는 과연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입을 모아 평가했다.


악역과 자극적인 전개 없는 힐링 드라마
<우영우>에는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악역이 없다. 대신, 주인공과 대립하는 다소 이기적 상사와 동료가 등장하는 데에 그칠 뿐이다. 악역 중심의 자극적 갈등 구도는 시청자의 피로를 유발하기 쉽기 때문에, 당찬 변호사 우영우와 그를 둘러싼 ‘무해한’ 등장인물들의 서사에 편안함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다. 


독보적인 소수자의 서사 조명
<우영우> 는 에피소드 곳곳에 시청자에게 생소한 ‘소수자 서사’를 녹여냈고, 이를 통해 이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을 조명한다. 레즈비언 커플 서사, 영우 아버지의 미혼부 서사, 대형 로펌을 이끄는 두 명의 여성 대표, 탈북자 여성과 중소기업의 특허권 분쟁 에피소드 등은 사회적 주류 에서 소외된 존재를 조명하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존 클리셰를 뛰어넘는 설정과 각 에피소드의 주제 의식은 시청자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폐 스펙트럼’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이해의 시도
이것이 ‘드라마의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의식이자, 드라마의 의의’라고 거론되는 부분이다. 드라마가 주목한 지점은 ‘자폐 스펙트럼’이다. <우영우>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자폐에는 ‘스펙트럼’이 있고, 자폐인 간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말하는 검사에게 ‘모든 자폐인은 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주인공 영우의 대사나, 자폐를 깊게 연구했지만, 나치 부역자로서 그들을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한스 아스퍼거’에 대한 모순은 시청자에게 하여금 장애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영우 신드롬’ 이라는 신조어의 탄생은 드라마가 가진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많은 시청자와 언론 매체들이 <우영우>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에 동의한다. 본 기사는 바로 이 지점에 의문점을 던진다. ‘자폐인이 변호사가 되는 것보다, 자폐인을 둘러싼 시선이 변화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우영우>의 대사처럼, 드라마는 비장애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장애인의 현실을 바꾸는 데 성공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영우>의 시청자, 그리고 자폐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변화를 말하는 이들

인터뷰에 응한 시청자 B는 스물 한 살 대학생이다. B는 평소 <우영우>의 꾸준한 시청자로, 평소 SNS에도 드라마를 시청한 후 이에 관련된 후기나 소감 등의 포스팅을 이어 왔다. 그에게 <우영우>와, 시청 후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질문해 보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애청자이신 것 같아요. 시청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회가 가리고 감추려는 부분을 콕 집는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해요. 아무래도 미디어와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비교해 불편하고 같이 생활하기 힘들다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심어주고 있으니까요. 이 드라마는 자폐라는 장애에 대해 다루면서 조금 더 비장애인의 인식 변화를 위해 다가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 종방 후 <우영우>가 인터뷰이에게 남긴 것이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드라마가 보여준 많은 사건들이 모두 제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편견 없는 시선을 갖게 도와준 그런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어요. 
고등학교 때 지체장애인 반 친구가 있었는데,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어울리는 걸 꺼렸어요. 이준호는 우영우를 좋아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하며 우영우라는 사람 자체는 물론 우영우가 가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노력한 모습을 보였어요. 꽤나 마음에 많이 머물렀던 행동들이었고, 고등학교 때 과거의 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속에서 가장 자신과 닮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정명석 변호사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명석 변호사도 처음에는 우영우의 입사 이력서의 장애 이력을 보고 편견으로 반대가 심했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고등학교에 같은 반이었던 지체 장애인 친구를 보고 소통이 어렵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멀리하던 날들이 떠올랐어요. 근데 점차 음미체 같은 활동에서 같은 조로 활동하고 그러다보니, 친해지지는 못했어도 그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이해’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명석 변호사도 우영우의 실력을 알고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해서부터는 오히려 우영우를 공격하는 남으로부터 그를 지켜냈잖아요.


또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이 또한 정명석 변호사라고 생각해요. 아예 처음부터 편견이 없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편견이 있던 사람이었더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 자체를 알아가기 시작해서부터는 그 사람 자체를 장애인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이해하기 시작하고, 이해는 연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영우> 드라마의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에피소드별로 다양한 주제를 접하는 시청자가 우영우의 시선에서, 일반인의 시선에서, 판사의 시선에서, 당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성폭행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나는 사랑이라고 해도 남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아닌 게 되는 것인가요.” 비장애인들의 사랑과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사랑은 사회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장애인의 시선보다는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게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편견인 것 같아요. 이처럼 매번 에피소드를 접할 때 마다 감독이 주고자 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었고, 고정된 시각이 아닌 다양한 시각과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장애인을 바라볼 수 있는 동기를 얻었다고 하고 싶어요. 가볍게 볼 수 있던 ‘장애인 차별’ 대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존의 제 생각도 바꿀 수 있었고, 상대의 시선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럴수록 편견의 위험성은을 파악하고, 고쳐나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거든요.


드라마 시청 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셨나요? 
인식은 180도 변화했어요. 하지만 아직 인식의 변화에 그쳤을 뿐이지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워요. 따로 장애인을 돕는 단체나 봉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 시간을 내서 앞으로 알아가고 참여할 생각이에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봉사나 놀이 봉사, 시설에서의 주기적인 봉사와 같은 활동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천천히 한 단계씩 나아가려고 해요.

 

 

대표하지만, 대변하지 않는 존재의 이야기
본 기사가 자폐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상황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비장애인 시청자에서 더 나아가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성인 자폐인 자치모임의 공동 조정자를 맡고 있는 장지용 작가와 인터뷰할 기회를 마련했다.

 

 

장지용 작가는 ‘32세 칼럼니스트’로만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일자리를 거쳐 현재는 장애 인식 개선 강사에 지원하는 한편, 끊임없이 구직을 위해 노력하는 ‘취준생’이다. 인터뷰 전 가벼운 소개 차 그에게 지난 직장 생활과 근황에 대해 들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직장 방랑 생활을 해 왔고, 이제는 정착할 곳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는 사무직을 희망하고 있으나, 총무나 hr 직무도 선호합니다. 홍보도 관심이 있고요. 카카오 자회사에서 it 보조, 엔지니어였고, 사회적 기업, 정부기관에서 일한 경험 있습니다. 보통은 계약직을 전전했고요” 


<우영우>가 주인공 우영우의 직장(로펌)생활을 중심으로 다뤄지는 만큼, 그의 직장 생활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면서 직장과 취업시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부당한 경험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자폐인들을 선뜻 고용하는 회사는 드물어요. 대기업과 공공분야는 자폐인들의 고용에 미지근한 실정입니다. 특별채용은 구실만 있는 상황이고요. 그렇지만 특별채용도 없으면 비장애인들과 함께 경쟁을 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낭떠러지인 거죠. 자폐인이 공무원이 된 사례는 겨우 두세명 밖에 되지 않고, 저도 공공기관/공기업 채용시험에서 장애인전형으로 응시해도 자폐인이라서 불합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영우 변호사도 6개월이나 구직 실패를 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이어서 ‘작가’로서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글은 자연히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릴 때 글쓰기 과외 선생님을 붙여 주셨어요.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다만. 보통 자폐인이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존재’에 대한 글을 씁니다” 그가 공동 조정자로 있는 자폐인 자치단체의 조직명 ‘estas’도 비슷한 맥락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에스페란토(한 언어학자가 만든 인공 언어)’에서 온 말로, 자폐인들이 사회 속에서 늘 살아가고 있다는 것.


본격적으로 드라마에 집중하여 질문을 이어갔다. 그 역시 <우영우>를 흥미롭게 시청했다고 말했다. 종방 후, 작가님께 드라마가 남긴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대중이 인식하는 ‘자폐 서사’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제 자폐인 서사에 하나의 본보기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특히 자폐인 서사에서 최초로 당사자를 성인임을 전제로 깔고 시작한 첫 번째 대중적 작품이라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그동안 자폐성 장애를 어린이∙청소년만의 서사로만 생각했었던 것을 극복하고 이제야 자폐 성인의 서사도 대중매체에서 조명하니까요”


그렇다면 그는 서사에 등장하는 자폐인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우영우>에서 그려지는 자폐인 캐릭터의 모습이 실제 자폐인의 삶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졌는지 자폐 당사자의 시선이 궁금했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자폐인의 여러 특성을 각 부분에서 오려붙였기 때문에 특성이 일반화되지 않도록 약간 주의하려고 애쓴 구석은 있습니다. 다만 좋은 지점은 자폐인을 천재적인 능력자로만 보거나, 아예 못 하는 사람 양극단의 이미지의 중용을 지키려는 시도만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문제점인 것은 너무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일까요”


답변에서 아쉬움의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가 문제로 짚은 ‘차이’에 대해 더 자세한 답을 듣고 싶었다. “‘우영우’와 같은 아주 고지능의 자폐인은 정말 손에 꼽습니다. 일반적인 이미지의 ‘소통이 어려운 자폐인들’도 있고요. 다양한 면을 짚으려고 한 시도만은 높이 사나, 그 스펙트럼의 사이, ‘경계인이자 자폐인'들이 소외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현실과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기도 합니다. 월급과 고용 같은 부분에서요. 저 자신의 이야기를 했어도 판타지에요. 그런 비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호응은 아쉽습니다” 


비록 <우영우> 가 자폐인의 삶을 나름대로 재현해내긴 했지만, 실제 삶과 동떨어진 판타지 라는 것. 그 ‘아쉬움’에 초점을 맞추자, 경계에 있는 자폐인들과, 비장애인의 이해가 양극화되는 것을 더 잘 볼 수 있었다. “장애인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면서, 아까 말했듯 중용을 지키려고 했지만, 역시 결과적으로는 어중간한 사람들이 소외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계의 영역의 많은 자폐인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장애인들은 그 사이의 사람들을 인식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드문 클래스의 자폐인을 가져와서 장애인을 대표하려고 한 것이 모순이죠. 비장애인들이 호응한 것은 그러한 드문 클래스의 몇 되지 않는 일반인에 가까운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분도 딱 한 분이세요”


 그의 말에서, ‘우영우’라는 캐릭터의 모순을 알 수 있었다. ‘우영우’는 자폐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결코 자폐인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비장애인에 가까운’ 사회성과 능력을 가진 ‘우영우’를 보며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호응하는 것. 그는 그 호응마저 현실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여기는 ‘대학알리’이니 대학생의 이야기를 좀 할게요. 두 분 대학생이신데, 자폐인 대학생을 본 적이 있나요? 자폐 대학생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수준입니다. 어렵게 높은 지능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존재 자체가 불투명해요. 주목받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지원 정책이 있다 하더라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고요. 또 사회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노력이 없으면 비장애인 학생들과 어울리고 연대하기 어려워요"


그는 앞서 ‘우영우’라는 캐릭터에 자폐인의 서사 전부를 투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영우’라는 캐릭터는 장애가 있는 이들의 대변인, 혹은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는 것일까. “상징적이라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죠. 성인, 그리고 여성 자폐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나왔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를 대표할 수는 없죠. 우영우를 이해할지라도 자폐인을, 장애인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영우의 서사를 이해함으로써 장애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말한 ‘의의’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던 셈이다.


<우영우>를 화제의 정상에 올려놓은 건, 시청자들의 몫이 컸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 보내는 시청자들의 찬사가 대단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우영우>의 선한 영향력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생각이 변화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앞선 시청자 인터뷰를 포함하여, 가장 많이 보았던 후기는, 자폐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자폐인 당사자에게 이러한 비장애인들의 ‘이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등장인물 ‘우영우’를 보고, 장애인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성급합니다. 시청자들이 말하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당사자인 제가 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아쉬움과 그 간극이 큽니다. 비장애인들이 아무리 이해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들만큼이나 현실을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잘 알게 되었다는 의미의 이해도 불가하고, 특히나 ‘시혜적인 의미의 이해’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위험하다는 말로 부족해요. 장애 인식 개선 강의를 하면서도, ‘장애에 대한 이해’는 고민이 많아요. 특히나 내 유형이 아닌 타 장애 유형에 대한 이해는 저조차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는 ‘봉사활동과 후원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실천하려 한다’는 다짐에 대해서도 말을 얹었다. “아까 인식의 발판이 의의라고 한 것은, 인식은 장애인의 이해에 정말 초기 과정이지만, 인식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겨우 주목받는 것도 어려우니까요, 장애 유형은 고사하고 ‘주목’ 자체에 대한 의의는 좋았다. 대중적 인식을 만든 것 자체만이 의의라는 말입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요, 봉사활동이나 장애 단체 후원보다도,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대상’보다, 존재 간의 경계 없이 대하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편견을 사라지게 한 드라마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지금 당장 답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님의 질문은 과제 그 자체라고 말을 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막은 내렸지만 자폐인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지 않았잖아요. 이 드라마가 편견이 없어지고 사회에서 현실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데에 도움을 준 것 같냐고 묻는다면, 지금 당장 확답을 할 수 없습니다. 네. 이건 앞으로 지속적으로 오래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죠. 진부한 말이지만, 작은 발걸음이지만 위대한 걸음이라고 하죠. ‘우영우 신드롬’은 이제야 우리의 존재를 승인받은 것, 거기까지입니다. 사회 속 장애인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 대한 엄청난 인기와 그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자폐인의 존재의 인식’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암, 정신 질환에 이어, 자폐증과 발달 장애는 곧 사망 선고입니다. 사회적 죽음을 암시하죠. 그래서 존재의 인식은 사소하지만 대단한 겁니다. 존재를 인정해 달라. 이것이 작으면서도 큰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의미의, 제가 속한 에스타스도 자폐인 자치 단체의 최초였습니다”


 

 

'웰메이드 드라마'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지용 작가와의 인터뷰가 수렴하는 지점은, 많은 이들이 사랑한 ‘당차고, 역경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사랑스러운 주인공’, '우영우'의 역설이었다. 그리고 자폐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많은 메시지를 담아낸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그 작품으로 인해 소외되는 자폐인은 필연적이라는 모순이었다. 물론, <우영우>가 만들어낸 자폐인 서사의 본보기만은 모두가 승인하는 의의이다. 하지만 ‘그 의의’의 성립은, 비장애인들의 주류 문화에 자폐인 서사의 편입이 상당히 어렵다는 전제 하에만 가능했다. <우영우>가 만든 성과를 '작은 발걸음과 큰 도약'에 빗댄다면, 그 본질은 작은 발걸음에 두어야 마땅한 듯 했다.


장지용 작가의 인터뷰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경계의 자폐인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자폐인들의 생활과 삶. 드라마에서는 보지 못한 처절함이 묻어났다. 시청자들이 한결같이 전했던 사고의 전환, 고정관념의 변화, 자폐인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은 과연 뜻 깊었다. 그 말이 장애 당사자에게 온전히 와 닿기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비장애인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자폐인이 울타리 안의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이 그 울타리를 넘으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나를 포함하여, ‘비장애인’이기에 알 기회도, 알 수도 없는 부분들이었다. 결코 어떠한 의식의 부족이나 무지가 아닌, 사회적 죽음을 피해간 비장애인이이라는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한계, 불가침의 속성을 가진 생과 사의 속성, 더도 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틈에는, 간극을 이해해야만 자폐인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자리 잡았다. 이것 또한 모순이다. 


k방송사에서는 지난달, ‘우영우’의 현실판 변호사라는 헤일리 모스를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 영상에서, 헤일리는 ‘우영우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의 자폐를 수용하고 그녀를 지지하는 모습은 판타지이다.’ 라고 말하며, 이 환상이 현실이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의 감명 깊은 후기들은 하나하나 소중하다. 하지만 이 말들이 모여 가진 영향력이 과연 ‘우영우 신드롬‘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우영우>는 여전히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사회에 가져왔다는 ‘변화’는 여전히 과제다. 성공한 명작 <우영우>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자폐인에 집중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우영우 신드롬’의 정의를 재차 내려 볼 때이다.

 

 

취재: 최희령, 심하연

보도: 최희령

사진: 심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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