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일)

대학알리

기후·생태

[트렌드 마이너리티] 어느 채식주의자의 고백

“이제는 육식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20대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가 초읽기에 접어드는 가운데 채식 식단에 관한 공약이 한차례 대중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웰빙식(食)이라는 인식에서 나아가 채식 식단은 최근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상정되고 있다. 특히 글래스고 기후 합의 이후 선진국들을 위시한 다양한 국가들이 NDC를 설정한 이후 채식 식단에 대한 논의도 대중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공공기관에 월 1회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우유와 두유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안한 데 이어, 이번 대선에서는 △공공기관에 월 4회 채식 식단 제공 △학교 급식에서의 채식 식단 확대 △우유와 두유 선택권 보장 등을 전격 발표한 바 있다. 다른 후보들도 '육류 소비 축소'의 기조를 토대로 ‘채식 식단’ 확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채식 식단 확대를 둘러싼 갑론을박

 

  한편 이러한 정치인들의 행보와는 달리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에브리타임' 내 채식 식단 및 비건(완전 채식주의)에 관한 게시물 속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와 관련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중 단순히 “고기가 좋아서”(육류 애호)와 같은 단견도 있었지만, 과학적 통계를 바탕으로 채식 식단이 초래할 영양학적 불균형을 낱낱이 분석한 이들도 있었다.

 

  관련 정책의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이어졌다. 사회초년생 이정현(가명·26) 씨는 ‘공공기관 내 채식 식단 확대’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20대, 넓게는 MZ세대에서 채식 식단을 먹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밖에서 사 먹거나 집에서 직접 도시락을 싸 오는 경우가 많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채식 문화를 실천하는 것에 긍정적 이거나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커뮤니티 내에서도 “개인의 자유”라는 댓글이나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와 같은 평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이씨 역시 “오히려 또래 동기들이나 젊은 사원 사이에서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는 경우가 있어도 그렇게 꺼려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밝히며 “오히려 채식 식단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상사들도 있었고 가볍게 토론을 하는 등 배타적인 분위기는 아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900여명의 응답자들 가운데 간헐적 채식(Flexitarian)을 실천하는 비율은 27.4%로 관용적 태도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62.8%는 채식주의를 통해 “건강 관리”를 실현하고 있다고 답하며 채식 식단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는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육식의 종말>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저서에 따르면 10대 사망 원인들의 약 70%는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의 과다한 섭취 때문”이며 “이중 곡물 사료로 사육한 쇠고기와 다른 동물성 지방 제품들의 과다한 소비”가 심장병과 같은 질병을 야기한다. 이를 인용하여 시민단체들은 채식 식단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홍보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해 왔다.

 

대학생 채식주의자가 말하는 채식주의(비거니즘)

 

① 비거니즘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지난 29일 이화여대 비거니즘 동아리 '솔찬'의 두 운영진 주하 씨와 박규리 씨는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비거니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특히 규리 씨는 “비건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비건을 하면) 먹을 게 아주 없어지거나 특별할 것 같다”는 의혹에 휩싸인다고 호소했다. 이어 주하 씨는 “비거니즘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운동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두 운영진은 특히 채식에 대한 반론 중 △채식을 장려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외부효과 및 부작용과 △영양학적 불균형에 대해 반박했다. 주하 씨는 “축산업에서는 많은 곡물을 투입하고 있고 토지를 개간하거나 나무를 베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 부분에서는) 채식은 오히려 친환경적이다”는 말을 남겼다. 이어 3년째 채식 식단을 유지하는 데에는 건강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고 답하며 건강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규리 씨 또한 “지나친 육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강조하면서도 “채식이 무조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정보를 분석해서 자신에게 맞는 건강 식단을 챙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리했다.

 

  나아가 채식 식단에 대한 반대 의견 중 “채식 식단 역시 식물을 죽이는 것이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한차례 일갈했다. 규리 씨는 “예전에 라디오에서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논문을 인용하여 채식 식단을 비판한 적이 있었지만 추후 팩트체크를 해보니 제대로 자료를 읽어보거나 찾아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는 “채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이 꼬투리를 잡는 듯한 느낌‘이라 피력했다. 주하 씨는 프루테리언(오로지 땅에 떨어진 과일만 식용)의 예시를 들며 ”채식주의자들은 이런 문제를 일반인보다 더 고려한다. 아보카도(재배 과정에서 꿀벌을 이용)를 두고 커뮤니티 내에서 토론하는 등 (일반인들이 이상으로)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한다“고 역설했다.

 

  대중들의 인식과는 달리 대학 내 시선에 대해서는 사뭇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주변 친구들은 호의적인 편이다”고 화답했다. 규리 씨에 따르면 비건 옵션이 제공되는 식당으로 약속을 잡거나 비건식을 시도해보는 등 주변 친구들은 대체로 채식 식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일부 모임에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두 운영진 모두  일부 모임 및 회식에서 비건임을 밝히지 못하거나 불참했던 아픔을 공유했다.

 

② 대학가 주변 늘어가는 채식 수요… “육식 위주의 체계 바뀌어야”

 

  대학 시설 및 인프라와 관련해서는 두 운영진 모두 긍정적인 발언을 남겼다. 주하 씨는 “학식에서도 채식이 제공되었고 비건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다”고 답하며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학내 식당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학교 생협 내 채식 김밥이 없어지는 등의 소요는 있었지만 여전히 감자 라면이나 두유는 취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이어 규리 씨는 “학교 앞에도 다양한 비건 식당이 있어 선택지가 다양한 편이고 두유 옵션이 있는 카페도 많다. 동아리에서 비건 지향인들을 위해 학교 주변 비건 (옵션) 식당 지도를 만들 정도”라고 알렸다. 이를 통해 해당 학교 내외 채식 식단과 관련된 제반사항을 일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한국채식연합이 조사한 결과, 현재 비건 메뉴 옵션이 있는 대학은 서울대를 포함해 연세대, 중앙대, 동국대, 경북대 등이 있다. 서울대 재학생 A씨에 따르면 비건 외에 일반 학생들도 식당 내 채식 메뉴를 시도하는 등 채식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이었고 대학 측에서도 충분히 이를 반영하고 있었다.

 

  한편 높아진 채식 수요에 힘입어 대학가 주변 채식 식당 내 대체육 도입을 낙관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대 부근 채식 식당 '초식곳간' 김광민 대표는 지난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체육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체육은 (기존 육류 고기와) 꽤 많이 흡사한 수준까지 따라왔다”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받아들였듯이 대체육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고 답했다. 이어 “사실 우리나라 대체육 스타트업은 꽤 많은 투자를 받고 있다”고 덧붙이며 “특히 소고기와 치킨 분야 스타트업은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다.

 

  현지 취재 결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대체육과 간편식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대 부근 편의점 CU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채식 삼각김밥이) 보통 아침에 재고가 들어오는데 저녁쯤이면 다 팔려 있다”고 말하며 “한 번에 다량으로 사 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안내했다. 실제로 대학가 근처 5~6개의 편의점에서 비건 식품 판매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해당 품목의 재고들은 전부 매진된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대학가에서의 채식 열풍에도 불구하고 솔찬의 두 운영진은 여전히 우려를 표출했다. 특히 두 운영진 모두 최근 대선 공약과 관련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주하 씨는 “변화의 시작으로는 좋지만 얼마나 제대로 제공되는가와 같은 실질적인 부분이 중요한 문제”라는 데 이어 규리 씨는 “의무적인 변화가 긍정적이긴 하지만 영양 성분을 따로 표기하여 알러지나 채식주의자에게 실효적인 정보가 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두 운영진은 채식 식단에 대한 제도·문화적 개선을 촉구했다. 규리 씨는 “한국에서는 육식 기반 식단에 대한 접근성이 문제”라고 거론하며 “감성·이성적으로 육식에 더 친근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이 육식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관련 정보도 다양한 편”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우유를 예시로 들어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우유는 (건강에) 유익하다는 정보를 듣는 한편 채식에 대한 정보는 그만큼 제공되지 않는다”며 육식 위주로 편향된 체계를 비판했다. 주하 씨 또한 “어디에서나 쉽게 채식을 시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채식 옵션의 확대와 함께 육식 지향적 시각에 바탕을 둔 현 교육 체제상의 문제를 꼬집었다.

 

오정우 기자

ouj05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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