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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보다 "개인"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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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대체 뭔데
 

 
 인간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소중히 대해 주는 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내가 사회 안에 머물고 있으며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는 감각(정체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테다)은 “나를 필요로 하고 소중히 대해 주는 이”에게서 얻는다. 일차적으로 개인은 가족에게서 그런 감각을 받는다. 가족이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원천이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가족의 본질은 뽑기다. 어떤 가족에게서 자랄 건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날 때 배당되는 것이 가족인데 우리는 이를 천륜처럼 받아들인다. 가족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원천이어서지만, 그렇다고 필연으로 생각해 지나치게 의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거시적으로 바라보자. 가족이란 개념의 토대는 근대에서부터 출발했다. 미성년 자녀를 기르는 부부집단이 “가족”이라고 정의됐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일은 국가의 국민을 재생산하는 일과 같다. 자녀는 성인이 돼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체로 성장하고 그래서 가족은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셈이다. 개인은 가족을 통해 국가에 편입된다. 김민정 교수(강원대 문화인류학과)는 “애당초 국가는 근대 때부터 가족을 매개로 노동 자원을 확보했다”며 “가족을 꾸리는 일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행위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가족과 가족 내 치러지는 돌봄이 없었다면 근대는 유지될 수 없었다. 사회 역시 지금까지 발전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주의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점은 6·25 전쟁 이후부터다. 근대적 개념의 국가가 성립된 것도 그즈음부터다.

 

 해방을 맞은 건 1945년이고 정부가 수립된 건 1948년이다. 2년 뒤에 6·25가 발발했다. 체제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붕괴 위험에 직면한 거다. 당시 대중에겐 국가란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 원래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것뿐인데 기득권 몇이 이 땅에 이름을 붙이고 국민으로 명명한다고 해서 없었던 시민의식이 갑자기 생길 리 없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의 폭력을 경험한다. 단지 이 땅에 발붙이고 있다는 이유로 전쟁에 동원됐다.

 

 근대 국가가 일찍 수립된 서양은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사회보장제도를 만든다. 남성 가부장이 전쟁에 동원되며 가족해체와 빈곤을 경험한 그들은 남은 자녀들의 보호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으로 복지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체제가 만들어지고 2년 뒤에 곧바로 전쟁을 겪어서 복지나 제도를 만들 겨를이 없었다. 모든 일을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형편이 못됐다. 개인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했다. 의지할 구석은 가족이라는 사적 안전망이 전부였다. 가족단위의 각자도생이 우선이라는 의식은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개발이 촉진되고 근대화가 일어날수록 개인주의가 태동하는 게 보통이다. 오히려 한국사회는 가족주의가 더 강화됐다. 전쟁을 지나 80년대까지 국가는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에 따라 대부분 복지를 가족에게 떠넘겼다. 규모를 불려 나가고 경제성장을 하는 게 국가의 최우선이었다.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보호하고, 치료하고, 가르치는 일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의료보험제도가 있었지만, 적용이 제한적이었다.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됐는데 이마저도 시행된 건 1988년이었다.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변화에 동반돼야 하는 복지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족이 이 공백을 메웠다. 김덕영 교수는 <환원근대>에서 한국의 “선 경제개발” 전략으로 인해 가족이 근대화의 “해결사”가 됐다고 말했다.

 

 때때로 국가가 가족을 호명하는 일이 있었다. 60년대에 대가족을 “농촌 근대화의 암”으로 표현하며 핵가족만이 “진화의 상징”이라고 묘사했다. 70년대엔 정반대가 됐다. 핵가족이 한국 가족체제 붕괴의 원인이라는 구호가 나돌았다.

 

 10년 만에 구호가 바뀐 건 무엇 때문인가. 국가는 경제개발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핵가족을 예찬하며 자녀 세대의 도시 이주를 장려함으로써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개발이 가속되고 농촌의 노령화와 노인 부양 문제가 사회이슈로 떠오르자 금방 국면을 전환한 셈이다. 국가는 가족을 이용했다. 몸집을 키우는데 모든 자원을 투입했고 가족도 국가가 이용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였다. 적어도 그때까지 국가와 가족의 관계는 호혜적이지 않았다. 마땅히 국가가 지불해야 할 비용 모두 가족에게 떠넘기면서 필요시엔 가족 단위를 이용해 노동력을 충당했다.
 


가족의 위기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지고 실천된 시기는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부터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이 확장됐다. <모자복지법>, <영유아보육법> 등 취약계층을 위한 법안들이 입법된 것도 이때다. 사회는 안정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사회적 안전망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막 생긴 사회적 안전망의 밀도는 두껍지 못했다. 개발독재 시기를 지나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기업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기업이 주거·교육·의료 등의 복지를 노동자에게 제공했다. 정부가 기업에 복지를 의탁하는 대신 정부는 세금을 적게 거두거나 국가의 경제성장전략을 기업 중심으로 편성하여 이들의 성장을 도왔다. 정재훈 교수(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는 기업과 국가가 서로 호응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국가는 복지와 성장을 교환하며 유착관계를 형성했다. 국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거나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기업은 국가의 임무인 복지를 개인에게 공급하고 뒤에서 자본을 마련해주는 식이었다.”

 

 그리고 IMF를 맞이하며 새로운 시대에 진입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가족해체가 일어났다. 이혼과 부모-자녀의 단절을 나타내는 수치는 정점을 찍었다. 국가는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긴커녕 존립 여부가 불투명했다. 기업 또한 생존을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제 살을 깎았다. 각자도생의 단위가 개인 단위로 축소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성장이 아닌 생존하기 위한 개인화가 일어났다.

 

 IMF의 여파는 거대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고용안정의 붕괴, 성과급제 도입 등이 가속화됐다. 자급자족도 보장할 수 없는데 결혼하고 양육하고 가족을 꾸리고 돌보는 일은 어불성설이었다. 가족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것보다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거다. 이같은 사회구조에서 더는 가족이란 매개에 보호받을 수 없는 “가족 난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있는 가족을 돌봐줄 공적 자원도 부족한 판국에 `국가는 가족주의를 붙든다. IMF 이후 해체된 가족을 봉합하고자 건강가정지원센터가 개관되고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장되지만, 해당 정책은 여성이 가족과 돌봄을 전담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주택분양 및 공공임대 대출 정책 등에서 부양가족이 있거나 결혼한 사람의 경우 가산점이 추가된다. 국민건강보험에서 피부양자를 등록하면 보험료가 감면된다. 부양가족이 있음이 증명되면 소득세 공제 혜택이 따라온다. 국가는 가족중심의 사회복지를 유지하며 가족을 꾸림이 유리하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부양의무제로 대표되는 “선 부양, 후 지원”의 양상만 보더라도 국가의 가족정책이 기만임을 알 수 있다.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어야 한다.
 

 
 다시 조기현 씨가 언급했던 “돌봄의 사회화”로 돌아가자. 돌봄을 가족 내 집안 문제로 치부해 “선 부양 후 지원”의 양상으로 개입하는 건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지금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가족이 떠맡았던 돌봄을 사회가 수행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김민정 교수와 정재훈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돌봄의 사회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가족을 버려야 한다. 개인 단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거다.

 

 

 

 

 한국이 복지시스템에서 “선 부양”을 상정하는 건 모든 개인에게 가족이 있음을 전제하는 태도다. 정말 모두에게 가족이 있는가. 1인 가구는 증폭하고 결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을 이루기 쉽지 않은 시대다. 사회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삶의 형태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이라고 할 수 없을 만한 관계에서 가족보다 더한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개인도 많아진다. 제도는 이 같은 사회적 역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정상가족”이란 개념을 해체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김민정 교수는 가족을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나마 지금의 제도는 가족의 유형을 세분화하여 정상성을 이탈하려는 노력이 보이는데 이마저도 나는 반대한다. 가족의 유형을 나눠서 정책을 펼치는 건 가족을 위계화하는 효과를 야기한다. 결국, 또 다른 ‘정상’을 만드는 셈이다.” 어떤 가족은 정책에 포함되고 어떤 가족은 포함되지 못한다. 내 가족이 비정상이라고 말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 대 가족보다 국가 대 개인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이란 매개를 통해 개인을 동원할 수 없는 때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혹자는 이 같은 현실에서 복지가 제 기능을 하려면 분류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을 거치며 세금과 복지제도가 정비된 역사가 길지 않다. 자원 역시 많지 않다. 가족이란 매개가 필수고 가족 단위의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정재훈 교수는 이 같은 논리에 반박한다. “18년도 통계청 인구 총조사를 보면 1인 가구는 6백만 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가구의 30%가 1인 가구다. 그나마도 집계되지 않은 홀몸노인과 비혼, 별거, 청년들의 수치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흐름이 축소될 거라 보는 이는 없다. 앞으로 더 늘 거다. 이미 있는 가족도 흩어지고 해체되는 마당에 나는 그 같은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가능한 개인 단위의 정책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은 개인 단위 정책의 예시다. 2014년 처음 입법이 논의된 생활동반자 법은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에게만 인정됐던 사회복지혜택 등을 비롯한 법적 권리를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도 보장하는 제도다. 이성과의 혼인,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 말고도 친밀한 관계의 개인들을 국가가 인정한다면 고립과 돌봄 공백 같은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가족 난민의 숫자 또한 줄어드리라 예상할 수 있다.

 

 가족이 정체성의 원천이어서 중요하다면 정체성은 가족 이외의 타인에게서 또한 형성될 수 있다. 정체성의 기반은 친밀감이기 때문에. 가족이 절대적 관계가 될 수 없음이 계속 증언되는 시점이다. 우리는 친밀한 관계를 누릴 권리가 있고 그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을 권리도 있다. 김민정 교수는 “붕괴하는 가족제도에서 개인이 고립되지 않으려면 생활공동체 실험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이라는 매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아니어도 결국 “개인”이 중요하다. 기존의 가족제도가 개인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돌봄 공백이 생기고 개인이 고립될 가능성은 더 올라간다. 가족개념을 변화해야 하고 가족 말고 국가 대 개인을 곧바로 매개 지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아니다. 이런 변화에 직면해 있다.

 

 더불어 돌봄을 논의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세대는 중장년층이다. 그나마 있는 정책도 중장년층을 돌봄 당사자로 상정하고 기획된다.

 

 청년의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 인구수는 증가한다. 미래의 돌봄 주체가 청년이 될게 자명한 상황에서 지금의 정책은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 청년에게 부과되는 짐의 규모가 더 늘어나리란 예상은 당연하다. 이를테면 연금수급연령에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순간 그나마 쌓았던 금액 역시 금방 고갈된다. 정재훈 교수는 “미래의 청년, 지금의 청년들이 이 부담을 다 떠맡는다. 다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지금이라도 연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논의 등을 청년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이 돌봄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
 


내 이야기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증언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신념도 갖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용기 있는 증언이 관습적인 인식에 제동을 걸고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는 걸 수없이 목격했다. 조기현 씨는 인터뷰에서 “한 사회의 빈틈을 내 경험을 발화해서 메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 이야기에서부터 타인의 이야기까지 구태여 동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발화만으로 사회가 변화할 수 없다. 그다음을 모색해야 한다. 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 움직임에 대한 답을 이 기사로 풀었다.

 

 아빠는 지금 TV를 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아빠라고 발음하고 싶지 않다. 아빠가 있는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눈을 마주치는 게 싫어 거리를 우회한다.

 

 자기가 이룬 가정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했던 아빠를 원망한 적이 많다. 아빠 역시 아빠가 처음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포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 그것이 오롯이 아빠의 책임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았다.

 

내가 뒤틀리고 비겁한지 자문하는 것도 더는 하지 않을테다.

 

 이 글을 읽고 당신들이 자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으면 좋겠다. 사회가 어떻게 변하면 좋겠는지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실천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걸 바란다.

 

 

 

참고문헌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이매진, 2017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인북, 2020

전영수, <각자도생 사회>,  블랙피쉬, 2019

야마다 마사히로, <가족 난민>, 그린비, 2019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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