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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의 논리가 작동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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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자 고등학교를 나왔다. 영어 선생님은 여성이었다. 떠드는 소리가 수업 보다 커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화낼만한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았다. 닦달과 훈계의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는 체념한 듯 보였다. 우리는 그를 만만한 부류로 간주했다.  
 

 <보스를 지켜라>란 드라마가 방영됐던 때였다. 줄이면 ‘보지’가 됐다. A는 수업 종이 치고 영어 선생님이 들어올 무렵에 굳이 그 드라마의 줄임말을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며 킬킬거렸다. 희롱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받겠다 싶으면 그저 드라마 제목을 말한 것뿐이라는 변명을 쏟아낼 거였다. 영어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했다. 내가 처음 보는 종류의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모멸에 익숙해진 이가 짓는 냉소의 표정인 듯싶다. A는 그런 종류의 희롱을 만만하다고 간주되는 여자선생님 앞에서만 구사했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가 A주변을 에워싸서 이번 농담의 수위를 평가했다. 그들에겐 농담이었고 평가대상이었다. 폭력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한 학기 지나고 영어 선생님을 볼 수 없었다. 계약을 온전히 채우지 않고 학교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대에서 B선임병은 종종 자기가 잔 여자의 몸을 묘사했다. 자세와 풍경, 어떻게 성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다. 성매매의 경험도 말했는데 어디서 얼마를 지불하면 괜찮은 매매를 할 수 있는지 따위의 말이 조언이랍시고 발화됐다. B가 그런 말을 하면 부럽다고 말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많은 여자와 잤고 다양한 성관계를 경험한 B는 거기서 여자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 정도로 치부됐다.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B는 자기 증명을 위해 여성을 이야깃거리로 동원했다. B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부럽다고 반응한 병사들은 그 증명을 대단한 권위로 만들어준 셈이었다. 문제의식을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라며 닦달하고 보채는 이들은 많았다.
 

 고등학교에서, 군대에서 여타 남성 집단의 세계에서 이런 말들이 나올 때, 나는 가만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음을 강요당하면 웃었다. 그만해 달라고, 듣기 거북하다고, 윤리의식도 없냐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게 실은 무서웠다. 가만있음을 처세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 집단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장난 같은 발언에 유난스럽게 매달리는 예민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들어가면서 학우, 선임병, 동기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여자를 어떻게 지배했느냐가 과시의 수단으로 통용되는 세계였다. 지금, 이런 의식들이 다 역겨운 변명과 합리화의 일종이라는 걸 안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쓴 우에노 치즈코는 이 같은 남성문화를 ‘호모소셜’이라고 호명한다. 호모소셜에서 여성은 남성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한 도구다. 여성을 어떻게 소유하고 지배하느냐에 의해 집단 내부에서의 입지가 가름된다. 소유하고 지배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야 하고, 그런 욕망을 실천한 이에게 동조해야 한다. 전시강간의 대부분이 다수의 남성에 의해 이뤄지는 이유는 성욕 때문이 아니라 집단의 결속을 위해서다. 같은 동족 남성에게 남성으로써의 지위를 확인받기 위해서다. 남성으로써의 권위가 세워지는 건 오직 여성을 통해서다. 호모소셜에서 상대에게 가장 모욕적인 표현은 ‘여자 같다’는 말이다. 
 

 집단 성 착취 영상 거래 사건이 일어났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 영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거래됐다. 피해자들은 몸에 칼로 이름을 새기고 목줄을 차고 볼펜 같은 것들을 자기 성기에 넣었다. 피해규모는 추정할 수 없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56개의 n번방에 입장한 이들을 단순 합계 수치로 치환하면 대략 26만명이다. 이것도 예상 가능한 범주 내의 수치일 뿐이다. 지금도 57번 58번의 n번방이 만들어지며 성착취 영상이 유포된다. 
 

 조주빈이 체포되며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이 본격적으로 공론화 될 때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는 ‘텔레그램 폐지’가 등장했다. 호기심 혹은 누군가의 권유로 n번방에 입장해 성착취 영상을 공유하고 본 것뿐인데 자기에게도 수사의 화살이 겨냥될지 묻는 글들이 게재됐다. 누군가는 저 26만이라는 수치가 과학적 집계가 되지 않은 수치라며 모든 남성을 범죄자로 규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피해자들이 가해의 여지를 제공했다며 자기 딸에겐 n번방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단속할 것이라는 글을 실었다. 누군가는 해당 사건에 동참한 모든 이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국민청원 글을 게재한 연예인에게 “페미 묻었다”며 조롱했다. 농담을 가장한 희롱에 웃었던 이들이 떠오른다. 과시를 가장한 폭력에 부럽다고 호응한 이들이 떠오른다. 양상은 달라도 맥락은 같다. 폭력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하는 부류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부류다. 

 

 정말 호기심 때문에 미성년자의 성착취 영상을 구매했는지. 왜 가해자에게 이입하는지. 왜 무섭다는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그런지. 어쩌면 ‘왜’를 따지는 작업이 무상한 것일 테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그게 문제라고 언급하는 이들을 배제하고 낙인찍으면서 여성을 착취하고 희롱하는 작업을 통해 자기의 남성다움을 증명했다. 호모소셜은 그렇게 작동했다. 그런 이들이 피해자의 행적을 지적하고 같은 남성에게 관대하다. 이들이야말로 n번방 류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끊임없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기원이다. 조력자다. 공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