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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 인권의식' - 6월 5일 성소수자 모임 아스가르드의 장례식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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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 인권의식' - 6월 5일 성소수자 모임 아스가르드의 장례식 퍼포먼스

"기해년 칠월 경오삭 스무이레날 정유, 성공회대 성소수자 모임 아스가르드는 삼가 고하옵니다. 해가 바뀌어 회대의 인권의식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아 지난날을 생각하니 그 청정함이 그립습니다. 요즘, 몹쓸 짓을 하는 인간들이 회대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을 너그러이 살피시어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깨닫고 성소수자 혐오를, 나아가 모든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멈출 수 있게 도와주소서. 삼가 맑은 술과 좋은 쌀로 정성을 다하여 제를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사진=이지원 기자

 느티아래에 난데없는 축문이 울려퍼졌다. 장례식이지만 죽은 사람은 없다. 향을 피웠지만 들이마시는 이들은 지상의 사람들이다. 기해년 칠월 경오삭 스무이레날, 2019년 6월 5일 수요일. 성공회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아스가르드는 ‘장례식 퍼포먼스: 님들의 인권의식’을 열었다. 말그대로 장례식을 치뤘다. 영정에 들어간 이는 다름 아닌 ‘인권’, 두 글자였다.

사진=강성진 기자

사진=이지원 기자

 장례는 오전 11시 50분, 오후 2시 40분, 4시 10분, 5시 40분, 하루에 네 번 치러졌다. 수업이 끝나 다들 느티아래를 지나는 시간이었다. 무지개색 병풍을 뒤에 둔 ‘인권’의 영정이 보였다. 벤치를 차례상 삼아 차례주, 쌀과 향이 올라갔다. 절을 올릴 은박돗자리 위에는 아스가르드의 깃발이 올라가있었다. 돗자리 오른쪽에는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혐오표현, 왼쪽에는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돋보이는 행사 기획 의도 현판이 보였다.

 

사진=강성진 기자

 한복을 입은 한 회원이 축문을 낭독하며 행사가 시작되었다. 돗자리 위로 ‘조문객’이 된 학우들이 인권의 영정에 절을 올렸다. 두 번 반, 그리고 향을 피웠다. 어느새 향 연기가 느티나래 인근을 메웠다. 마지막 순서였던 오후 5시 40분 시간대에는 학우들이 모여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았다. 선두에 선 상주의 양손에는 인권의 영정이, 바로 오른편에 선 사람의 양손에는 아스가르드의 깃발이 들려있었다.

 

박경태 사회과학부 교수도 향을 하나 꽂았다. 사진=강성진 기자

 장례식이라는 기성의 행사 양식을 빌어왔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철저히 기성의 것이 아니었다. ‘장례식’의 고리타분함을 메시지를 통해 전복시켰다. 장례식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목을 끌었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의견 공유와 의제 설정을 넘을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었다.

 

사진=강성진 기자

 아스가르드 측은 이 행사에 대해 “처음엔 농담으로 제안되었다. 학내에서 백래시 문제가 항상 주기적으로 대두됐다.”며 운을 뗐다. 한 회원이 병풍에는 무엇이 있고 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쌀을 비롯하여 제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얘기하며 구체화 되었다고 한다.

 

사진=강성진 기자

 에브리타임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혐오 표현은 익명성이라는 방패에 기댄 발언이라 대답했다. 학내에 공유되고 있는 인권의식과 평등의식에 기대어 혐오가 담긴 글이 나왔고, 아스가르드는 이것이 망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글 첫 문단의 추문을 보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 어떤 것을 바라는지 나와있으며, 배제하겠다는 말이 아닌 성공회대 안의 구성원이자 일원인 소수자들을 없애거나 지우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아스가르드 측은 온라인 커뮤니티 및 익명 게시판에서의 혐오 표현은 백래시가 아닌 린치라 답했다. 행동에 대한 반발인 ‘백래시’가 아닌 발언권에 대한 공격인 ‘린치’라는 것이다. 아스가르드는 여태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가시화사키거나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활동 또한 아직 들어오지 않은 성소수자들에 초점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의 혐오 표현은 이들의 활동이 아닌 발언권을 억압하는 공격이라 아스가르드 측은 일컫었다. 익명 커뮤니티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섞인 모습을 특징적 모습을 거론하며 공격이 이루어졌는데,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다.

 

 망자를 보내는 의식은 결코 분명치 않다. 망자를 보내는 의식은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망자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의 의식이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허나 이 장례식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권의식의 회복이다. 파격적인 형태를 차용했으나 행사의 당사자들은 그 파격성에 휩쓸리지 않는다. 마지막 시간대 행진의 발걸음은 결코 무겁다고만 할 수 없었으며, 이들이 이야기한 소수자 인권 운동은 어딘가에 휩쓸리는게 마땅한 일 또한 아니다.

 이 장례식은 무얼 보내려 했는가. 영정에 들어간 ‘인권’이라는 두 글자는 자신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거기있는게 아니다. 누군가를 향해 “당신이 나를 떠나보내려 한다.”는 항변일 수도 있다.

 

취재=강누리 기자, 강성진 기자, 안다은 기자, 양희윤 기자, 우지민 기자, 이지원 기자
글=강성진 기자, 안다은 기자, 양희윤 기자, 우지민 기자
사진=강성진 기자, 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