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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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막장드라마

성공회대학교 막장드라마

:어쩌다 프라임사업을 하지 않으면 망할 지경까지 왔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지켜본 학교의 이야기다. 또한 지난 5년, 혹은 그보다 조금 거슬러 올라간 시점부터 지금까지 성공회대가 겪어온 위기의 역사이다.

※이 기사에는 기자의 개인적인 소회와 견해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비민주와 무책임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여름, 양권석 전 총장(신학과 교수)의 임기가 끝났다. 재단 이사회에서 구성한 '총장후보 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는 새 총장 선출을 위해 분명히 교수회에서 후보를 추천받기로 했다. 교수회는 무기명 투표로 이재정 전 총장(현 경기도 교육감)을 단일후보로 추천했다. 그러나 총추위는 교수회가 추천한 후보를 일방적으로 배제했다. 이유는 "선배 사제인 이재정 신부를 후배 사제와 경쟁시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다"고. 개가 웃을 이유였다. 9월, 이정구 현 총장이 취임했다. 당시 교수회 의장 정해구 교수(사회과학부)는 항의의 뜻으로 의장직을 사퇴했다.

2012년 9월 28일 이정구 총장의 취임식 당시 침묵시위를 진행한 학생들이 이사회의 비민주적인 총장 선출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김서정 기자 mouloud@skhu.kr

학교를 이끌어갈 총장을 선출하는데 성공회 성직자만 총장이 될 수 있고 교수들만 의견을 낼 수 있는 것도 비민주적이다. 제27대 총학생회 ‘우리’는 여러 차례 재단에 공문을 보냈고 이정구 총장의 취임식에서 침묵시위도 했지만 재단이 교수들 의견도 묵살하는 판에 학생들 의견 따위야 알 게 뭐였겠나.

 

재단은 비민주적인 동시에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나는 입학 이래로 재단이 학교에 법정부담금을 다 주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법적으로 재단이 학교에 줘야만 하는 돈인데도 그렇다. 만약 재단이 이 돈을 다 낼 수 없다면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학교 회계에서 충당할 수 있다. 재단은 내가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꼬박 5년간 언제나 항상 그렇게 해왔다.

 

사실 재단이 학교에 재정적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은 지난 2009년부터 계속 있어왔다. 재단이 학교에 주는 돈에는 법정부담금과 경상전입금 등 여러 명목이 있는데 이걸 다 합쳐서 '재단전입금'이라고 한다. 2009년 학교는 자체평가보고서를 통해 우리 학교의 재단전입금 규모가 전국 사립대학 하위 25%와 평균 사이라고 지적했다. 재단이 전입금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것도. 이 보고서는 2007년과 2008년의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재단은 2007년부터 꼬박 10년간 재정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재단도 땅 파서 돈 나오는 거 아니니까,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저 옆 동네 가톨릭대학교에서 병원과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그래서 재단은 2013년 3월 학내 카페 깐투치오와 자연드림을 인수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커피를 팔겠다고 나섰다.

 

우리 학교 건물은 전부 하나의 지번주소를 사용하고 있어서 특정 건물이나 공간의 전기, 수도, 가스 요금을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재단의 사업장을 운영하는데 소요된 전기, 수도, 가스 요금도 모두 학교의 몫이었다. 요약하면, 학교를 운영해야 할 재단이 법에서 학교에 주라고 정한 돈을 벌기 위해서 학교 안에서 학교의 돈을 쓰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고 했다. 이게 뭔 개소리야?

 

결국 5월에 다시 깐투치오와 자연드림을 토해내긴 했지만, 재단이 이렇게 학교에 무능과 무책임의 콤보 엿을 먹인 대가는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같은 해 8월 29일, 성공회대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됐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학교 안 망한 게 용하긴 하다. 그해 우리 학교가 정부 지원 사업 등으로 받은 돈은 27억 5,000만 원이었다. 일단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 되면 벗어날 때까지 기존에 수주한 정부·지자체의 용역이나 사업 지원금도 전혀 받을 수 없고 필요한 경비는 전부 대학이 부담해야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출하던 돈을 학교가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재정적 타격은 27억 5,000만 원이 아니라 55억 원이라고 계산해야 맞다. 거기다 지표관리를 위해 긴급 등록금 심의위원회를 열어 등록금을 5만 원 인하했다. 14학번 신입생들이 못 받게 된 국가장학금 2유형의 장학금도 학교 재정으로 지급했다.

 

이사회는 이 난리통을 넘기기 위해 1인당 1억 5,000만 원씩 모금했다. 재단이 책임을 다한 게 아니고 이사회 구성원들의 희생이었다. 게다가 학교재정에 ‘빵꾸’ 난 금액을 다 때울 정도의 금액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나는 재단 쪽이 학교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걸 그때 처음 봤다. 물론 그 감사와 호감은 얼마 안 가 와장창 깨졌지만.

 

카프병원 인수 실패, 쪽팔린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 위치한 카프성모병원 전경. 사진=ⓒ카프성모병원 홈페이지

2014년 1월, 학교가 병원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산의 ‘카프(KARF)병원’이라는 알콜 중독 전문병원이다. 지금은 ‘카프성모병원’이 되어 가톨릭대가 운영하고 있다. 재단이 깽판 놓지만 않았으면 그 병원은 지금쯤 가톨릭대가 아니라 성공회대가 운영하고 있었을 것이다.

 

2013 10월부터 2014년 6월까지 8개월이나 지속된 길고 복잡한 사업적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 다루는 일은 어렵다. 핵심만 요약한다면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카프병원은 주류회사가 모인 주류협회가 매년 50억 원씩 출연한 돈으로 한국주류문화센터(KARF) 재단이 운영해왔다. 그러나 2010년부터 주류협회가 카프병원에 운영기금을 주지 않았다. 병원이 거의 문 닫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알콜 중독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문제다. 세상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그나마 위안을 주는 술을 끊기란 지독하게 어렵다. 술밖엔 의지할 게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병원은 계속 운영되어야 했다. 2014년 1월 성공회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카프병원 인수자로 지목되었고 카프병원 측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성공회대라면 알콜 중독 치료 사업의 공공성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이 일은 성공회대에도 새로운 기회였다. 단순히 병원의 부동산 가치가 600억 원 이상, 최고 1,000억 원까지 호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선 단순하게는 병원 운영과 관련해서 보건 의료 분야에 특성화된 학과를 설치하거나 재단의 수익용 자산을 확충해 편입생 정원을 늘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시민사회와 거버넌스를 이루며 학교에 새로운 자원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였다. 카프병원 인수를 통해 당장 얼마간 등록금 수입이 늘어나는 것부터 장기적인 대학 개혁과 새로운 자원을 끌어들이는 일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사실 재단 입장에선 카프병원 인수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재단 측에서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카프 병원은 매년 15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였다. 교수회는 재단이 기금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으로 운영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는 수고와 부담을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했다. 주류협회가 앞으로의 운영 책임을 털어내는 대가로 재단에 주기로 한 1년 치 운영비 50억 원의 자금도 있었다.

 

신약성경에도 나오지 않나. “너희 중 가장 못한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아, 톨스토이 단편에 나오는 말이었던가...? 여하간 알콜중독 환자들에게 회복과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곧 예수의 정신이 아니라고는 말 못할 것이다. 거기다 이 일을 통해 학교와 학생들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면 이 또한 기독교 정신의 실천이 아니라고 말 못 하리라.

 

하지만 놀랍게도 재단은 어떤 재정적 부담이나 책임도 모두 거부했고, 그러면서도 병원 운영에 대한 지배구조는 철저하게 틀어쥐기를 원했다. 당시 재단 이사이자 대한성공회 교무원장이었던 김광준 신부는 재정적 계획이나 적자 상태를 개선할 계획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원을 인수하면 성공회 교단에서 8명의 임직원을 파견하고 그 연봉으로 3억 2,000만 원을 추가 지출할 계획부터 세웠다.

 

재단이 카프병원을 독립법인으로 남겨두는 것을 거부하자 카프병원 노조는 ‘그러면 병원을 수익용 자산 명목으로 인수하라’고 양보했다. 이번엔 재단이 운영위원회 구성에서 학교와 재단 쪽이 과반을 차지하지 않았다고 합의를 거부했다. 계속 양보해왔던 카프병원 노조도 병원을 재단 마음대로 좌우하겠다는 이 계획만큼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학교법인 성공회대학교는 대학과 그 구성원을 위해서도, 중독의 늪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낮은 자’들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성공회대는 성공회대의 카프병원 인수를 위해 애썼던 40여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신망을 잃었고, 재정적 개선과 대학 개혁의 기회도 잃었으며, 거버넌스를 통해 열린 대학을 만든다는 비전도 잃었다. 내가 교회는 안 다녀도 미션스쿨은 11년째 다니고 있는데, 진심으로 예수 보기에 부끄러운 행각이었다.

 

임성한도 안 쓸 막장드라마

서울시의회 인근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사진=ⓒ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홈페이지

사건의 후폭풍은 장난이 아니었다. 교수회는 성공회대학교의 미래를 주제로 성공회 서울 대성당에서 열린 성직자 세미나까지 찾아와 재단과 총장을 성토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각 교구의 평사제들은 학교의 자세한 사정을 처음 접하고 충격 받았다. 그날 동래교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신부님이 재단과 교단을 격하게 성토했던 기억이 난다. 교회와 성도들이 사랑과 신뢰로 없는 돈 쪼개 기부하고 후원해온 성공회대학교다. 진보가 어쩌고 빨갱이들 어쩌고 이런 거 잘 모르고 그저 학교를 믿고 사랑하고 잘 되길 빌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뉴스에서 이 학교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 한다. 재단과 교단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말씀하시는 신부님 표정이 누구라도 때려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재단의 방치와 무책임으로 학교 꼬라지가 이런 임성한도 안 쓸 막장드라마가 되어있었다니 당연히 충격이셨겠지. 그 학교 다니는 나도 어이가 털리는데. 서울대교구 주교이자 성공회대 재단 이사장인 김근상 주교는 개회 식순까지만 자리를 지키다가 비판이 쏟아지기도 전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교수회는 학교가 종합대학 인가를 받은 뒤 20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행동에 나서 재단과 총장에게 책임을 묻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서 총장 불신임 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압도적인 불신임이었다. 여기까지 와서야 재단은 교수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사회 구성원 중 3인을 개방이사로 전환했다. 재정 확충, 사회적 신망, 학교의 비전,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 학교법인 성공회대학교 이사회는 숫자로는 셀 수조차 없는 가치들을 잃고서야 겨우 눈곱만큼 더 민주적인 이사회가 됐다.

 

배드엔딩: 프라임 사업

2011년 이후 학교가 공시해둔 자체평가보고서에는 재단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사라졌다. 그냥 학교가 수입원을 다양하게 확보해야한다고 말한다. 학교의 모든 '높으신 분들'은 재단이 학교에 재정적 책임을 다할 거라는 기대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거다. 지난 10년간 재단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프라임 사업 리포트 PART 2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2013년의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와 현재 교육부가 시행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내려갈 놈은 내려간다’의 전형이다. 압도적인 재정을 자랑하는 국공립 대학교는 저기 지표 순위 꼭대기에서 놀 때 우리 학교처럼 재적인원 규모가 2,000명 정도 되는 67개 학교는 남보다 배는 노력해도 지표를 올릴 수 없어 바닥에서 박박 기어야 한다.

 

카프병원 인수 실패 후 1년 8개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후 3년, 재단에 '재정적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할 것을 포기한 지 5년, 학교의 운영 주체인 재단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지 7년. 성공회대에 위기를 넘기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단 건 거짓말이다.

 

재단이 학교를 방치한 대가로 학생들은 '프라임 사업'이라는 일대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학교가 위기에 빠진 건 학기마다 꼬박꼬박 등록금 내온 학생들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도박 수준의 위험한 모험은 학생들이 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왜 이런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이 기사가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 쓰고 나니 후련하다. 그리고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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