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5 (수)

대학알리

발간되지 않은 이야기들

[발간되지 않은 이야기들]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 중앙동아리 지위 강등

정정헌, 1·2학기 연속 재등록 부결
회칙에 없는 ‘사진상 인원 미비’로 부적격 판정
“학내 인권 동아리 전반 존속 어려움” 호소

대학은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오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의 중앙동아리 강등 사건과, 이를 다룬 성균지 기사 삭제는 대학 공론장의 축소를 보여준다. 정정헌 재등록 거부 사태는 대학 학내 특별기구의 위기를 반증하는 동시에, 학생 자치 활동의 의의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탈정치화되는 대학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 본 기사는 성균지 113호 『잔상』에 게재되지 못한 기사 「학생-자치-기구, 위기의 스펙트럼 속 우리 대학의 좌표」를 참고했다. 해당 기사는 교지 발간 전 학생처와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학내 타 단체와의 갈등 우려’를 이유로 제외되었다. 본보는 미발행 기사가 다룬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정정헌’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재등록 거절, 그리고 부결
 

지난 4월 14일, 성균관대학교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는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정정헌’의 중앙동아리 재등록을 거절했다. 성균관대 중앙동아리는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매 학기 동연의 심사를 받는다. 동연은 제출 서류를 검토하여 재등록 부적격 안건을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이하 전동대회)에 상정할 수 있다.


정정헌의 중앙동아리 재등록 부적격 안건은 4월 15일 전동대회에 부쳐졌다. 참석자 55명 중 찬성 18명, 반대 26명, 기권 11명으로 안건은 부결되었고, 정정헌은 중앙동아리에서 준중앙동아리로 강등되었다.
 

 

불명확한 ‘인원 미비’ 기준
 

본보는 정정헌 편집장 초은(필명)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경위를 확인했다. 정정헌은 재등록 서류 제출 후 동연 회장으로부터 ‘2024년 활동 인원 미비’를 사유로 소명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정정헌이 어떤 점이 미흡한지, 어떤 자료를 추가로 준비해야 하는지 문의하자 동연 측은 “활동 인원 미비는 첨부된 사진상 인원 미비를 의미한다”며 “명부 제출로는 충분하지 않고, 더 많은 인원이 나온 사진을 첨부하라”고 답했다.

 

초은은 이 사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성균관대 동아리연합회칙에 따르면 활동 인원 증빙은 정회원 명부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회칙상 재등록 요청 동아리는 ▲ 등록원서 ▲ 직전 연도의 활동 보고서 ▲ 향후 1년간의 활동 계획서 ▲ 향후 1년간의 예산 계획서 ▲ 20인 이상 서명한 회원 명부 ▲ (회칙 변경 시) 동아리 회칙을 제출해야 한다.

 

이후 성대신문(제1744호)은 중앙동아리 재등록 절차의 명확성과 투명성 문제를 지적하며, 심사 기준의 일관성이 부재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동연 회칙에는 제출 서류만 명시되어 있고, 부적격 판단 기준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사진상 인원 미비’ 기준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초은에 따르면, 당시 소명 후 받은 동연의 ‘검토 보고서’에는 사진 속 부원의 얼굴과 활동 내용상 이름을 대조하여 “A는 자주 등장하고”, “B는 학부생이 아니다.” 등의 설명이 적혀있었다.

 

정정헌은 필명을 사용해 집필 활동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동아리다. 초은은 “사진과 이름을 대조했다는 점에서 당황스러웠다”며 “사진을 통한 판단이 다른 동아리에도 적용된 기준인지, 활동사진의 구체적 기준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2학기 재심사, 또다시 부결
 

지난 1학기 부결 소식 이후 정정헌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부결 사실을 외부에 알리자는 의견과 2학기 재심사 준비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초은은 “2025년 4월 당시 대학가 페미니즘 백래시 이슈가 많아, 정정헌 문제가 외부로 퍼질 경우 추후 재심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부원이 ‘동아리방’에 관한 만큼은 의견을 같이했다. 중앙동아리 자격을 잃으면 학생회관 편집실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2학기 재심사를 준비하기로 결론 내렸다.

 

성균관대 동연은 중앙동아리가 준중앙동아리로 강등된 경우, 재심사를 통해 중앙동아리 지위를 회복할 기회를 우선 부여한다. 회칙에 따르면 재심사에는 기존 서류에 더해 ‘30인 이상 서명한 회원 명부’를 제출해야 한다.

 

초은은 1학기 부결 사유였던 ‘사진상 인원 미비’를 반박하기 위해 활동사진을 추가 제출했다고 밝혔다. 다만 ‘사진상 활동 인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정헌의 전체 활동 인원은 30명이 넘지만, 여성 인권을 공부하고 교지를 출판하는 동아리 특성상 휴학생, 졸업 유예생, 대학원생까지 다양하게 구성된다. 따라서 학부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수기 명부 작성이 불리한 상황이다. 정정헌은 정회원 자격이 있는 부원 위주로 명부를 우선 작성해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정헌은 동연으로부터 다시 소명 요청을 받아 필명-실명 대조표를 제출했다. 초은은 “실질 참여 인원 증빙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동연은 ‘재등록 승인’ 안건으로 전동대회에 의결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9월 30일 개최된 2학기 전동대회에서도 정정헌의 재심사는 부결되었다. 회의 참여 인원 대부분이 기권과 반대표를 던졌고, 찬성표는 과반에서 3표가 모자랐다. 재심사가 부결되면 당해 학기를 포함해 2개 학기 이내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름·활동·인원으로 동아리 승격을 요청할 수 없다.
 

 

“인권 동아리 전반의 존속 어려움”
 

초은은 “이번 부결은 단순히 특정 회차 감사의 판단이나 운영위원회의 백래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학내 인권 동아리들이 겪어온 사회적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어 “사회 전반에서 인권 담론의 무게가 달라지고 대학 내 학생 자치 기반이 약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학내에서 페미니즘이나 성 소수자 의제 등 인권 담론이 이전보다 더 많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는 것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정정헌은 이번 부결이 개별 동아리의 운영 문제만이 아니라, 학내 인권 동아리 전반이 맞닥뜨린 ‘존속의 어려움’이라는 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학 사회가 인권 동아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변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속을 이어가야 할지 질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대응을 묻자, 초은은 “정정헌 동아리 자체의 존립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며 “준중앙동아리라고 해도 계속 글을 쓸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편집실 사용 권한과 동아리 활동 지원금을 잃게 되어 활동 방식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선 2026년 2학기 중앙동아리 재등록 절차 전까지 한 학기 동안 동아리방 유지 자격을 요청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방법을 사용한 타 동아리 선례가 존재하고, 공간 확보 및 승격 시도 자체가 유의미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한, 학내 유일 여성주의 교지로서 '학생 사회 반페미니즘 기조 실태'를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미 재심사가 끝났기에 동연과의 관계와 무관하게 적극적 공론화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학생 자치,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정헌 사례는 학생 사회를 이루는 자치적 결정이 개개인의 판단에 의존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남긴다. 미발행된 성균지 기사 「학생-자치-기구」는 “우리 대학 학생 자치와 제도가 학생 사회와 제대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묻는다.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는 학생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단과대학, 학과 등 특정 단위에서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들만을 위주로 학내 주요 의결이 이루어지는 것은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남긴다.

 

현행 제도에서는 특정 안건 논의 시 소외되는 이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공백을 채우는 것이 정정헌과 같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특별기구’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특별기구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다룬다.


[참고 자료]
이예원. (2025년 9월 2일). 학생-자치-기구, 위기의 스펙트럼 속 우리 대학의 좌표. 성균지 113호(미발행)

 

정예림. (2025년 6월 9일). 중앙동아리 재등록 절차, 명확성과 투명성 확보됐나. 성대신문 제1744호


성균관대학교 동아리연합회칙
 

 

박서연 기자(syeone3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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