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목)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터뷰] 끝나지 않는 갈등과 무너진 일상…한국외대 중동연구소 백승훈 연구원이 진단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40호: 비틀어 보자'에 실린 기사로, 2025년 8월에 작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충돌은 단순한 테러와 보복의 연쇄가 아니다. 이 전쟁의 기저에는 중동 지역의 국가 형성과 국제 정치 개입이 얽힌 구조적 긴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백승훈 전임연구원은 중동에서 전쟁이 반복되는 이유를 “약한 국가 정체성과 외부의 지속적인 개입”이라고 설명한다. 중동 대부분의 국가는 식민지 체제를 종식하며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췄지만, 내부적으로는 부족, 종파, 지역 기반의 정치 구조가 강하게 남아 있다. 정치 체제는 독립됐지만 국민 정체성과 국가 통합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정치적 불안정성은 외부 세력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조건이다. 백 연구원은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 중동의 ‘시아파 네트워크’를 강화해 왔다”고 설명한다. 이란은 시리아, 이라크, 예멘, 레바논 등에 친이란 세력을 구축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선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를 형성했다. 이들은 단순한 정치 우방이 아니라, 군사력과 민병대를 함께 조직한 ‘대리 세력(proxy force)’으로 기능하며 지역 분쟁의 군사화를 이끌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바로 이 지형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테러 조직으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중동 내부에서는 ‘무장한 정당’이자, 지역 민중의 선택을 받은 정치 주체로 이해된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어떻게 정치 세력이 되었는가


하마스는 단순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아니다. 이들은 2005년 가자 지구에서 실시된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선거에서 승리하며 다수당이 되었고, 이후 실질적인 자치 통치력을 행사해 왔다. 당시 선거는 국제 감시단의 검증을 거친 합법적 선거였으며, 유권자들은 부패와 무능으로 평가되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Fatah, 파타)를 심판하는 의미로 하마스를 선택했다.


백 연구원은 무장 투쟁 외에 시민 사회의 지지를 얻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준 국가조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한다. 가자 지구에서는 하마스가 운영하는 병원, 학교, 구호단체가 민중의 삶을 지탱해 왔고, 실제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리 동네 정당’이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헤즈볼라도 마찬가지다.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며 무장력을 갖춘 이들은 1992년부터 레바논 의회에 진출해 왔다. 이들은 단순한 민병대가 아니라, 독자적 정당으로 선거에 출마하고 복지, 교육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정치 조직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크게 다르다. 하마스의 선거 승리는 곧바로 미국과 유럽의 원조 중단으로 이어졌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며 가자 지구를  군사·경제적으로 봉쇄했다. 선거의 결과는 곧 ‘제재’의 원인이 됐고, 주민들은 선택에 대한 대가를 집단으로 지게 됐다.

 


협상의 실패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2023년 말까지 휴전 협상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카타르, 이집트, 미국이 중재에 나섰으며, 인질 석방과 공습 중단을 조건으로 한 ‘단기 휴전’이 일부 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면적인 평화 협정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백 연구원은 협상 실패의 근본 원인을 하마스를 정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태도에서 찾는다. 그는 “하마스를 '정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 대화의 상대로 취급되지 않는 대상과는 군사적 압박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를 존재 자체로 부정하며, 군사적 제압을 통해 완전히 제거하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는 ‘불가피한 부수적 손실’로 치부된다. 협상의 부재는 전장에 남은 자들에게 더 많은 폭력을 의미한다. 피해자는 늘 협상장 밖에 있다.
 


전쟁의 소비


국내 언론은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하마스 지도자의 부인이 고급 핸드백을 들고 있는 장면을 반복 보도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보도는 하마스가 수행해 온 복지 기능이나 지역 주민과의 정치적 관계, 선거 정당의 역할을 설명하지 않았다.

 

 

백 연구원은 “하마스 리더 부인의 에르메스 백 보도는 상징적인 사례”라며, “이는 하마스에 대한 복합적 설명을 생략한 채, 단일 이미지를 통해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제적 자원이 있는 인물이 고가의 가방을 소지한 일을 문제 삼는 것은, 막대한 유산을 가졌던 독립운동가를 맥락 없이 비난하는 것과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쟁 관련 보도에서 시청률을 우선하는 방송 환경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동에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도 시청률과 연동되는 방식으로 다뤄진다. 이는 싸움 구경이나 불구경을 보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자극적인 장면을 반복하는 경향은 여러 방송사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의 인식


백 연구원은 한국 사회 내 중동 지역 전쟁에 대한 인식이 특정 문화·종교적 코드와 연결되며 감정적인 거리감을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슬람’, ‘히잡’이라는 단어 자체가 공감을 유도하기보다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예멘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입국한 난민들에 대한 국내 여론을 예로 들며, “히잡을 착용한 채 입국했다는 이유만으로 ‘탈레반이 들어온다’는 식의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외형적으로는 국내 이주민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왜 우리가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식의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백 연구원은 이와 같은 인식 구조가 여론 형성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혐오와 반감을 유발하는 키워드는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반응을 이끌어낸다. 젠더 이슈에서 군 복무나 출산이 반응을 유도하는 것처럼, 히잡, 예배, 할랄 음식 등의 중동 관련 키워드들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조는 피해자를 둘러싼 공감 형성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총성과 침묵 사이


피해자 개인의 목소리가 전쟁 보도에서 소외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백 연구원은 “하마스, 이스라엘, 헤즈볼라와 같은 조직은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발신하지만, 가자 지구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목소리는 언론에 실리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방송 보도의 전반적인 환경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동 전문가로 소개되는 출연자들이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이 방송의 일상적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시청률 위주의 방송 운영이 언론이 다루는 정보의 성격까지 바꾸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한국 독자들은 전쟁 뉴스를 접하고 일시적인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는 인간 본성에 기인한 무관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보도보다는 개별 인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더 깊은 울림을 주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여전히 스트레이트 기사 중심의 거시적 접근에 머무르는 경향이 짙어, 전쟁의 참상을 먼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는 스트레이트 보도와 르포르타주를 병행하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처럼 정치적·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 외교적 압력이나 국내 종교·이념 세력의 반발로 인해 언론이 기계적 중립에 머무르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로 국제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기획보도를 시도했던 사례들조차 이러한 한계에 부딪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가 중동 전쟁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해, 표면적인 관심이나 단순한 정보 소비를 넘어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수적이다. 백 연구원은 “전쟁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애초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팔 분쟁과 같은 장기적 갈등을 다룰 때는 각 진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한 뒤, 그 위에서 기자나 보도자의 해석과 입장을 덧붙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어느 한쪽 진영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싸우기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허부현 기자(beee0804@naver.com)
김명휘 기자(kimjack7@naver.com)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