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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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수기 공모전 대상작] 해발 1330m에서 얻은 버림의 가치

[편집자의 말] 가대알리는 지난 8월 산티아고 순례길 수기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마치 함께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생생한 글솜씨로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 주신 두 편의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여정 31일 중 산티아고 순례길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11일에 불과했지만, 목표이자 목적이었던 순례길에서의 일정은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팀은 프랑스길 폰페라다를 시작으로 총 215km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종점을 찍는 루트였다. 출국 전 사전 조사를 통해 확인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점은 ‘얻은 것이 많았다.’, ‘인생을 배웠다.’ ‘삶의 터닝포인트였다.’와 같이 일생의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겪고 나면 후기를 남긴 사람들과 동일한 소감을 나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순례길은 오히려 얻고 오는 것보다 버리고 온 것이 많았으며, 이러한 정리로 인한 ‘버림의 가치’를 깨닫고 깔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인생에서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자 사소한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

 

11일간의 여정 하루하루가 모두 인상 깊고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3일차 vega de valcarce(베가 데 발카세르)-O’ cebreiro(오 세브레이로) 일정이었다. 오 세브레이로는 해발 1330m 고도로 순례길 코스 중 가장 신비로운 장소로도 유명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만족감을 충족해줬다. 본격적으로 레온(León) 지방과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순례자들에겐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균적으로 25km 이상을 걷도록 일정을 잡아놨던 것과 달리, 해당 루트는 언덕이 약 80도에 다다르는 경사를 끊임없이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다소 짧은 9.8km로 설정했다. 일생이 운동과 함께였던 사람이었기에 체력적 한계를 즐기는 본인으로서는 등산하는 것처럼 간단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약 10kg 정도의 가방을 등에 메고 직각에 가까운 경사를 오르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자연과 경쟁하는 느낌이었으며, 가방으로 인해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점차 가까워지는 빛은 강력한 쾌감의 동기가 되어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비의 연속이었지만 정상에 다다라 뜨문뜨문 보이는 순례자들, 고도가 높아질수록 달라지는 경치는 지금까지 겪었던 감정 중 가장 큰 성취감이었다. 날씨가 도와준 덕분에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과 초록의 내음을 가득 느낄 수 있는 황홀한 풍경도 여정의 눈을 한층 즐겁게 해줬다.

 

산티아고 순례길 특성상 목적지에 짧게 머물기 때문에 우리는 ‘안개의 마을’로도 불리는 오 세브레이로의 진풍경을 눈에 담고자 마을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산의 정상보다도 더 높은 곳에 도착하자 몽환적인 운무와 운해를 눈에 담을 수 있었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자연과 깊이 교감했다. 시각을 가득 채우는 경관은 다양하게 요동치는 감정들을 완연히 잠재워줬으며 복합적인 생각들은 신선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탄생 이후 처음 보는 장관은 순례길에서 꼭 가치 있는 배움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필자에게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강박처럼 다가왔던 배움의 가치는 버림의 가치로 승화되었으며, 순간과 살아있음을 생경하게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배움은 의지대로 행하면 이어진다는 교만한 생각도 버리게 됐다. 오히려 버림은 주어진 순간과 상황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가치였고, 그 속에서 스며드는 새로운 삶의 관점은 또 다른 철학이었다. 또한 배워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 한 가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과 충만함을 선물해주었다. 다른 여러 감정을 차치하고 온전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즐겨야겠다는 다짐으로 변화하게 하는 새로운 시각은 남은 순례길의 여정에서도 적용됐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체험, 매 순간을 온전히 음미함, 함께하는 순례자들과의 교류, 본 적 없는 미관과 전망, 그리고 이를 고스란히 향유하는 스스로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결국 순례길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필자의 삶에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자산이 되어 새로이 새겨졌으며, 완주한 이후에도 지속될 여정에 가장 빛나는 가치가 되었다.

 

 

국제학부 김소언 학우


편집인: 김단비 부편집국장 (국어국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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