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학생·청년들 사이에서 '텍스트 힙' 열풍이 거세졌다. '텍스트 힙'은 '텍스트(Text)'와 세련되고 개성 있다는 뜻의 은어 '힙(Hip)'이 합쳐진 신조어로 '읽는 것은 멋지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문화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텍스트 힙은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 책을 읽거나 꾸미는 모습,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24년 1월 1일부터 12월 25일까지 북커버 판매량은 전년대비 195.1%로 크게 증가했고, 인덱스·라벨 스티커와 북마크·책갈피가 각각 93.3%, 42.8% 증가했다.
독서 vs 숏폼
대학생 독자들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시청(OTT 서비스, 숏폼 영상)에 비해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글을 읽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독서의 장점이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연세대학교(이하 연세대) 재학생 A씨는 "독서와 주로 대비되는 유튜브의 쇼츠나 인스타그램의 릴스는 참 힙하지 않다"며, "(쇼츠나 릴스와 같은) 숏폼은 내용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사회 흐름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독서는 본질적으로 힙하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는 릴스나 쇼츠 같은 짧은 영상이 주는 자극에 익숙하다. 그러나 집중력 저하 문제가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위기 의식이 커졌다. 지난해 4월 국내 출간되어 인기를 끈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미국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 시간도 3분에 불과하다. 책의 저자 요한 하리는 집중력을 망가뜨리는 원인을 스크린 중독, 사라진 독서 시간 등 13가지로 설명한다.
이 책은 현재까지 국내에서만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는데, 국내 베스트셀러 기준인 1만 권을 훌쩍 넘는 수치다. 사회적으로 집중력 저하에 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대중들이 독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A씨는 "인스타그램만 하고 있다가 친구 스토리에 올라온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 사진을 보면 이래선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책 읽는 나' 멋저 보여... 그게 잘못인가?
일각에서는 텍스트 힙이 'SNS 과시용', '보여주기식'이라며 비판을 제기한다. 이에 대학생 연합 독서 동아리 '북엔드' 임원진 B씨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유입되면 좋은 트렌드"라며 텍스트 힙 열풍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텍스트 힙을 비판하는 시각보다 "이렇게라도 읽는 게 어디냐"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독서 행위가 힙한 게 아니라 독서할 만한 카페가 힙한 것이라는 의견도 등장했다. 이에 "독서가 추구미"라고 밝힌 경희대학교(이하 경희대) 재학생 C씨는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도 든다"며, "인스타 매거진에서 독서 장소를 많이 추천해주는데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느느 사람들이 책과 커피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사진 찍으러 왔다가 볼 수도 있고 진정성이 없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책을 펼침으로써 한 자라도 더 읽으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지속적 독서 위해 함께 읽는 게 중요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한양대학교(이하 한양대)에서 1년, 안양대학교에서 4년 동안 독서 교과 수업을 진행했다. 한양대에서는 지난 2013년에 '책 읽는 한양 운동본부'로 활동하며 독서인증제와 같은 프로그램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대학알리와의 인터뷰에서 텍스트 힙에 대해 "워낼 문화는 허영심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너희는 안 읽는데, 나는 읽어", 쉽고 자극적인 쾌락에 익숙한 비독자와 달리 자신의 양질의 취미를 가진 독자라는 구별짓기인 셈이다. 그는 워낙 책을 안 읽으니 읽는 사람이 돋보이는 것이라며 낮은 독서율을 지적했다.
그는 함께 읽는 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독자에서 독자로 전환될 가능성은 함께 읽을 때 가장 크게 나타는데,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참여하는 독서 모임이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공공도서관 독서동아리, 독립서점 독서모임 같은 단체들이 활발해지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선 A씨 역시 "독서를 함께 할 사람들이 많으면 독서에 대한 의지도 함께 다잡을 수 있다"며, "실제로 모임을 했을 때 독서를 제일 많이 했었다"고 밝히며 독서 모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출판계에서 텍스트 힙이 어떻게 거품이 되지 않고 정착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발성으로 유행하고 사라지는 독서 문화는 위험하다며 "예컨데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민주주의 관련 책을 얼마나 더 많이 읽는지가 중요한데, 확장이 되는 게 아니라 한강 작품만 많이 읽는 것이 문제"라고도 주장했다. 책을 읽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확장이 안 되니 아쉬운 부분이라는 뜻이다. 그는 20년 이내 대한민국에서 100만 권 독자를 가질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다시 안 나올 것이라며, 모두가 독서 문화 확산·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면학 분위기에서 나아가 편안한 독서 환경 조성 필요해
C씨는 "캠퍼스에 편하게 누워서 책을 읽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학교 도서관은 딱딱한 책상과 무거운 열람실 때문에 독서보다도 면학 분위기"라며 "우리 학교 캠퍼스는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데 밖에서도 누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서울 야외도서관의 '책읽는 서울광장'을 예로 들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이를 대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해방으로서 독서를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독서의 중요한 역할로 '정서적 위로'를 꼽으며, 이것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은 위안을 주는 책이 유행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행정법 책을 읽다가 말랑말랑한 에세이와 소설을 읽고, 나중에 가면 철학 책을 읽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도서관은 연구를 지원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이전에 중요한 구성원인 학생들에게 교과 외적인 독서를 지원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가 현재 공공의 영역이 많이 축소되어 집이 더 좋은 시설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여럿이 쓰는 공간이 훨씬 좋아야 하고, 이용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등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독서는 힙하다'는 의미의 '텍스트 힙'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소셜미디어 과시용으로 책을 읽는 것일지라도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는 게 공통적 견해다. 그러나 유행은 언젠가 변화하고, 또 사라지기 마련이기에 독서가 단순 유행으로 취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마지막으로 "챗GPT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해 대학생, 청년 세대의 사회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코딩이 아니라 독서, 작문, 물리학, 생물학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학문을 익힘으로써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해야 한다"며 대학생들에게 꾸준히 독서할 것을 강조했다.
정수연 기자(jsyeon1013@gmail.com)
*본 기사는 대학알리 지면 VOL.1 <알리가 본 세상>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