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청년 세대가 체감하는 가장 큰 사회적 갈등으로 젠더 갈등이 꼽히고 있다. 젠더 갈등은 단순히 청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이 작용하고 있으며, 정치권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 시리즈는 청년들의 관점에서 젠더 갈등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고,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노를 젓지 않는 우리들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서로가 노를 젓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 이내 노 젓기를 멈추고 뒤돌아 앉은 두 사람의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젠더 갈등은 신뢰하지 못하는 두 남녀가 타고 있는 배와 같다. 단순한 입장 충돌이 아니다. 서로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오해와 불신 속에서 점점 더 무거운 침묵과 분노로 가라앉고 있다.
청년들은 지난 어떤 세대보다 차별과 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최바올 교수의 ‘20대 청년의 젠더 갈등 인식에 대한 질적 연구 : 남녀 차이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여성들은 젠더 갈등의 이면에 남녀차별이 있다고 지각한 반면, 남성들은 그렇게 지각하지 않았다.
차별과 공정성에 대한 지각이 다를 때, 상대방이 불공정을 주장한다면 분노는 증폭될 수 있다. 청년들의 분노는 정치권 ‘갈라치기’ 전략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27일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대선 토론회 ‘여성 성기’ 발언 또한 갈라치기를 위한 정치공학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에 열광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여성계가 요구해온 주요 의제가 실종된 여성 공약을 들고나왔다. 뒤늦게 2030 여성 표심을 고려해 공약을 일부 보강했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해법을 말하고자 하지만 염증적인 갈등이 현실을 버겁게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양학부 최바올 교수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Q. 최근 정치권에서 젠더 이슈를 활용한 ‘갈라치기’ 전략이 노골적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있다. 이준석 대표의 대선 토론회 '여성 성기' 발언 및 커뮤니티 기반의 젠더담론 정치화 현상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A. (최바올 교수)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이용하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대선 토론회의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대선 후보로서 일부 집단의 표를 얻기 위해 젠더 갈등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매운 유감스러운 일이다.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발언을 정당화하려고 했으며 언어성폭력에 대한 인지와 성인지 감수성의 결여를 보였다.
이러한 전략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인 성별 갈등 현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에서는 개인의 생각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극단적인 표현이 일반적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사회적 흐름에서 정치권에서 젠더 갈등을 기존의 지역 갈등을 대체하는 선거 전략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젠더 갈등의 이면에는 누구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연구를 위해 직접 만나본 20대 남녀들은 입을 모아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나친 경쟁, 뒤쳐지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인식하는 문화, 개인주의 성향 강화가 극단적인 불안을 낳고, 이를 대처하려는 전략으로 비난할 대상을 찾은 결과 젠더 갈등이 나타났다. 젠더는 가장 쉽게 집단 특성으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Q. 갈라치기 젠더 정치와 젠더 갈등이 지속될 경우, 사회 전반에 어떠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가?
A. (이재묵 교수) 남녀간의 생각 차나 이견이 존재할 수 있는데, 혐오성 발언은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특정 젠더나 세대를 혐오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이 무너진다. 또한, 건전한 공론장을 막는다. 젠더 이슈가 있다면 노동이나 복지 등 정책의 측면에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재는 자극적인 워딩 위주로 사회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책이 사라지고 혐오 발언만 남았다.
이와 같은 문제는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야기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극단적인 의견들이 공론화 되어 사회 문제를 온건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중도의 건전한 공론장이 소외된다. 젠더 갈등을 올바르게 풀어야 되는데, 이야기를 꺼내는 경로가 막히며 결국엔 갈등이 갈등을 고조시키는 현실을 낳을 수 있다.
Q. 학문·언론·공공영역에서 젠더갈등을 풀어가기 위해 필요한 해법이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최바올 교수) 학문의 영역에서는 젠더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다양한 관점의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야 하고, 학제 간 연구도 필요하다. 심리학과 사회학적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개인과 집단의 역동이 발생하는 맥락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여성학적 관점에서 연구가 수행되는 경우가 많아 관점이 편파적 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생산된 지식을 널리 전파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학문적 관점과 다양한 연구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언론은 젠더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해결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일부 언론의 젠더 갈등을 이용하여 이익이나 관심을 얻으려는 행태는 사회의 건전성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화합과 갈등 해결을 도모하여 장기적인 발전을 고려하여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논조를 규정해야 할 것이다.
개인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다. 개인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정치, 언론, 온라인 여론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성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민단체나 교육계,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인식 변화를 위한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은 특히 온라인 맥락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집단극화를 민감하게 경계해야 한다.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권은 계속해서 젠더 갈등을 도구화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노를 뺏을 것이고, 우리의 배에 '이상한 사람이 타고있다'는 소문을 퍼뜨릴지도 모른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나온 지난 대선은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를 극단적으로 갈랐다. 이번 대선도 젠더 갈등은 여전하다. 그 너머에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야 한다'는 불안과, 인정받지 못한 고통이 만든 깊은 불신이 존재한다.
더 이상 만들어진 오해와 불신이 청년들의 배를 침몰하게 둘 수 없다. 갈등을 이끄는 목소리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말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침몰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서로가 '노를 젓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다시 마주 앉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배는 다시 나아가야 한다.
서지우 기자(04hamziw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