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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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진정한 의미’ 찾아 나선 ‘FC 블라퍼스’ [외대 월드컵 도전기 : 1편]

'정원 30명'...소형과 축구 동아리의 비애
'인원 한계' 극복한 네어과 축구 동아리 'FC 블라퍼스'
"우리는 항상 도전자의 입장이죠"...'좌절' 아닌 '희망'으로 월드컵 여정 도전


지난 5일 금요일,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최대 스포츠 연례행사인 ‘외대 월드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간 학내 언론 및 단체, 학우들은 이른바 ‘강팀’의 승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외대알리는 ‘강팀이 아닌 약팀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 합니다. 스포츠는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가려 왔지만, ‘승패를 뛰어넘는 스포츠만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조그마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경기에 참여하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스포츠에 담긴 중요한 가치는 과연 ‘승리’ 뿐일까요? 외대알리는 그간 ‘약팀’으로 여겨졌던 ‘네덜란드어과 축구 동아리 FC Blaffers’의 여정을 동행 취재하며 그 의미를 찾아 나섰습니다. 2024 외대 월드컵 토너먼트에 참가한 Blaffers의 여정을 직접 좇으며 그들이 스포츠를 통해 어떠한 가치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지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23일 토요일 오전 9시, 서울 한강 뚝섬유원지 축구 경기장이 오렌지색 물결로 물들었다. 주인공은 바로 네덜란드어과 축구 동아리 ‘Blaffers’(이하 블라퍼스). 블라퍼스는 3일 뒤인 26일 오후 12시 한국외대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2024 외대 월드컵 C조 예선 상경대학 국제통상학과와의 첫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첫 경기 전 마지막으로 합을 맞추기 위해 본격적인 담금질에 나선 블라퍼스였다. 신입생 포함 경기장에 모인  16명의 선수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유니폼을 갈아 입고 프랑스어학부 축구부와의 최종 평가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느 축구부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의 블라퍼스지만, 현재의 전력을 갖추기까지 힘겹고 외로운 고난 길을 걸어 왔다.


‘정원은 30명 뿐’...인원 모집부터 ‘난항 겪은’ 블라퍼스


네덜란드어 ‘Blaffers’의 의미는 바로 ‘미친개들’. 끊임없는 집념과 투지로 들판을 활보하는 이른바 ‘미친개들’의 마음과 자세로 경기에 임하겠다는 다짐을 내포한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블라퍼스가 이러한 의미를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인원’ 때문이다. 네덜란드어과의 한 해 입학 정원은 30명. 그중 축구 동아리 부원 합류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블라퍼스는 매년 초 인원 모집에 난항을 겪었다. 입학 정원 30명 중 축구를 좋아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매년 새로 들어오는 부원의 수는 5명을 채 넘기지 못했다. 취업 및 취업 준비, 졸업 등의 사유로 결원은 계속 발생하는 반면 빈자리를 충원할 인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인원 부족은 축구 동아리 운영 자체의 어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한 팀에 11명의 선발 선수가 참여해야 하는  축구 경기 규칙 아래, 블라퍼스는 11명의 선발 라인업 구성에서부터 난항을 겪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2019 서양어대학 유로 컵’. 유로 컵은 서양어대학 소속 8개 과, 학부의 모든 축구 동아리가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쟁하는 축구 대회다. 2019년 9월 유로 컵 당시 블라퍼스는 교체 선수 없이 단 ‘11명’의 선수들로 대회에 참가했다.

 

기존 인원들로는 대회 참여가 불가했다. 축구를 자주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겨우 11명을 채우며 대회 출전 조건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의 대회 기간 동안 세 번의 예선 경기를 교체 선수 없이 소화했다. 경기 중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선수들이 점차 생겨나는 어려운 상황. 선수들은 블라퍼스의 기조를 생각하며 묵묵히 마지막 경기까지 소화했다. 결과는 8개 팀 중 4등. 난항 속 선수들의 열정과 투지만으로 거둔 성적이다. 만족할 만한 성적임에도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원의 부족’은 블라퍼스가 해결해야 할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쉽게 개선되기는 힘들었다. 지난 2022년 유로 컵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에도 최종 명단 인원은 11명이었다. 첫 경기 스칸디나비아어과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둔 이후, 프랑스어학부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며칠 전. 팀원 한 명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경기 참여가 힘들다는 연락을 보냈다. 10명으로는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물색하며 축구를 조금이라도 해본 적 있는 학우를 찾아 나섰다.

 

대체 전력으로 발탁된 윤준열(네덜란드어 19’) 학우는 축구보다는 농구에 더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축구부 활동을 거의 이어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결국 그는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출전의 이유를 밝혔다. “평소에 축구를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직접 하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크게 느끼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 과 축구부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상황을 들었고, 학과의 일원으로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기에 출전을 결정했어요.”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으로 열심히 경기에 임했지만, 그가 마주한 결과는 패배였다. 블라퍼스는 프랑스어학부 축구부에 3-0으로 완패하며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인원 한계’ 극복한 블라퍼스, 비결은 ‘편안한 분위기’


 

 

그러나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2024 외대 월드컵 네덜란드어과 대표 선수 최종 명단은 총 ‘20명’. 선발 선수 11명을 제외하고도 9명의 교체 선수를 가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을 갖췄다. 대회 주최 측에서 명시한 팀 당 최대 참여 인원 21명에 임박하는 수준이다. 과연 어떠한 요소들이 팀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을까.

 

“신입생 중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운 좋게 많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블라퍼스의 주장 최현빈(네덜란드어 21’) 학우는 변화의 주요 원인을 ‘분위기’에서 찾았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선배, 후배, 동기들끼리 함께 축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해서 만들다 보니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누구나 함께 즐겁게 공을 찰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자연스레 참여가 많아졌고 ‘재미있게,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죠.”

 

블라퍼스는 차근히 분위기를 형성해 갔다. 지난 몇 년 동안 고학번, 기졸업자 선배들은 편안한 환경에서 후배들과 함께 축구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점점 후배들에게 전파됐고, 후배들은 그들의 후배를 위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갔다.

 

결국 선배와 후배, 동기들이 조금씩 축구 모임에 참여하며 편안하고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들에게 축구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매개체’로 점차 자리 잡혀 나갔다. 결국 블라퍼스는 ‘하나’가 됐고 그 규모는 점점 확대되며 자연스레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여전히 갈 길 멀지만…‘좌절’ 아닌 ‘도전’ 바라본 블라퍼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진행한 평가전에서 블라퍼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확장된 팀 규모 덕에 지난 2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꾸준히 연습 경기를 진행해 왔지만, 조직력과 체력 수준을 끌어 올리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프랑스어학부 축구부를 상대로 맞이한 블라퍼스는 힘겨운 경기를 이어 나갔다. 약속된 공격 전개, 수비 전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가장 기본적인 패스 연결조차 매끄럽지 못했다.

 

 

첫 번째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한데 모여 자신들의 경기력을 복기했다. 2년 전 주장을 맡았던 변준규 (네덜란드어 18’) 학우는 “그래도 한 달 전에 비해서는 많이 성장했어. 많이 연습해서 이 정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 같아”라고 선수들을 독려하며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주장 최현빈 학우는 “화요일 경기가 마지막이니까 방금 멤버 그대로 한 번 더 합을 맞춰보면서 다시 얘기해 보자”며 팀의 조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블라퍼스의 주전 공격수 김현제(네덜란드어 21) 학우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했다. “우리 실수로 허용한 실점을 빼고 봐도 상대 팀과의 득실 차가 크지 않고, 경기력 면에서 우리가 원했던 과정(내려앉은 상황에서 뒤에서부터 역습 전개하는 방식)이 점점 나왔으니까 너무 기죽지 말자”.

 

두 번째, 세 번째 경기를 진행할수록 선수들의 표정은 점점 풀려 갔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플레이에 묻어 나왔다. 끈기와 목표를 가진 채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지만, 그들이 맞이한 결과는 3경기 0승 3패. 세 번의 패배를 마주하며 월드컵 전 최종 평가전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해서 맞춰보자, 우리는 전개가 부족하니까 수비라인을 많이 내려서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이 괜찮을 것 같아”, “수비에 집중하고 역습하는 방식으로 하면 득점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올 것 같으니까 계속 이렇게 운영해 보자”. 선수들은 패배를 안타까워하기보다 앞선 경기를 지속해서 분석하며 팀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저희는 항상 도전자의 입장이죠.” 주장 최현빈 학우의 말 한마디에는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블라퍼스는 강팀 국제통상학과 축구부와의 대결에 지레 겁먹지 않았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팀의 기조처럼, 그들은 두려움을 잊은 채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박진우 기자(ggj053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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