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알못 주제에] 외대생으로 수능을 응시하다

1년만에 다시 보는 시험
4년만에 치르는 노마스크 수능..
킬러문항의 배제, 그러나 불수능?


[알못 주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기사를 쓰지 말자는 마음에서 기획했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잘알’보다는 ‘알못’이 되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의 취재로도 당사자와 외부인의 어려움을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알못 주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공감할 수 있도록 저희가 느낀 현장 그대로를 전달하겠습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 수능 수험표를 받기 위해 모교를 찾았다. 3개월 전 수능 접수 이후 오랜만에 찾은 고등학교가 새삼 반가웠다.

 

쉬는시간이었는지 많은 학생들이 복도에 나와있었다. 행정실이 있는 2층엔 고3 교실이 없는지 학생들의 분위기는 분명 수능 전날의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1, 2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지나서 행정실에 들어가니 세 명 정도의 졸업생이 수험표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A고 걸리면 좋겠다.”

“너 B고야?”

“나도…저기 집에서 진짜 멀다니까.아침부터 어떻게 가냐고.”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중 행정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서명을 하고 수험표를 받았다. 기자가 배정받은 고사장은 앞선 친구들이 언급한 B고. 그 학교가 어디있는지 몰라 황급히 지도 앱을 열었다. 집에서 차로 4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앞 친구의 심정이 새삼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능날 아침에 그 먼 곳을 어떻게 갈지 참 막막했다.

 

 

수험표를 받고 학교를 나오는데 새삼 거리에 붙은 수능 응원 멘트들이 보였다. 심지어 강의를 들으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응원 멘트가 흘러 나왔다.

 

“수험생 여러분들 노력하신 만큼 잘 보고 오시길 바랍니다. 날이 추우니 따뜻하게 챙겨 입고 시험보러 가세요. 떨리는 마음 잘 부여잡고 수험표도 꼭 챙겨서 잘 갔다 오시길 바랍니다.”

 

응원 한 마디에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동시에 수능이 당장 내일이라는 사실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두번의 시험에서 느꼈던 좌절감으로 인해서 수능은 상처였고, 두려운 존재였다. 그 시험을 내일 또 보러 가다니.. 수험생의 부담감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1년만에 다시 도전


 

수능 당일. 6시부터 어머니의 노크로 하루를 시작했다.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다. 긴장감 때문인지, 새벽 3시까지 잠도 안 왔다. 3시간도 못 잔 상태로 9시간의 사투를 벌이러 가야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준비물을 하나씩 챙겼다. 간식 꾸러미, 도시락, 수험표, 신분증, 개인용 필기도구까지. 어머니가 손에 도시락을 쥐어주시며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잘 보고 와!”

 

그 짧은 응원에 수능 당일의 긴장감을 한 층 덜었다.

 

아버지가 차로 시험장까지 태워주셨다. 생각보다 정체가 심해 늦을 것 같아 걱정했다. 그래도 7시40분에 고사장에 도착했다. 수험생을 태우고 온 차량들로 인해 정문 30m 앞부터 차들이 멈춰 있었다. 더 기다리기에는 늦을 것 같아 고사장 30m 앞에서 내렸다. 아버지의 부담없이 잘 보라는 그 응원 메시지가 참 든든했다.

 

수험표를 확인하니 고사실은 3층이었다. ‘좀 더 아래층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교실로 걸어 올라가면서는 그리 큰 긴장감을 느끼지 않았다. 문제는 고사실을 들어간 후부터였다.

 

학생들이 국어 예열 지문을 하나씩 읽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진짜 시험 장소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또 수능 시험장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그 교실에서 그대로 느껴졌고,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긴장감을 덜어내려고 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수능의 분위기에 압도된 것이 분명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미리 준비한 올해 9월 모의고사 지문을 읽었다. 지문이 이상하리만큼 눈에 안 들어왔다. 글씨를 읽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머리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문을 읽을수록 긴장감만 커지고 열이 올라왔다. 갑자기 너무 더워졌다. 입고 온 패딩도 벗고, 카디건도 벗었다.

 

다년 간의 수능 노하우 중 하나는 수능 시험장을 갈 때는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고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장 온도는 원하는 그대로 조절 불가하다. 그래서 옷을 벗거나, 입어 가며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옷을 벗은 후 지문을 덮었다. 읽을 수록 긴장감만 커졌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시험 시작을 기다리는 것이 국어 지문 독해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지문을 읽으면서 책상과 의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또 다른 수능 노하우. 책상, 의자의 높이 조절을 위해 미리 챙겨 온 휴지를 바닥에 까는 것이다. 그렇게 높이 균형을 맞추자 더 이상 책상과 의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8시5분. “감독관 입실 시간입니다” 방송이 울렸다. 2분쯤 지나서 감독관들이 입실했다. 신분증과 수험표를 살피며 내 얼굴도 확인했다. 그들의 눈빛을 보니 더 긴장됐다. 다가올 국어 시험의 지문이 어떤 내용일지, 얼마나 풀 수 있을지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국어는 항상 어렵다


8시40분. 시험 시작 종이 치고 차분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국어 지문을 읽었다. 문학부터 차분하게 읽다가 고전 수필 작품을 담은 27번에서 막혔다. 선지 5번까지 모두 봤지만 정답이 없었다. 그나마 정답 같다고 생각한 선지를 마킹하고 넘어갔다. 너무 찝찝했지만 멈춰서 오래 고민하면 그만큼 뒷 문제를 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다음 지문을 읽을 때 발생하였다.

 

독서 지문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지문은 한비자, 오징, 설혜가 도교에 대해 가진 견해를 제시하는 지문이었다. 이 복합 지문의 3점 짜리 선지가 매우 까다로웠다. 1번부터 5번까지 살펴도 답이 없는 것이다. 1번부터 5번까지 다시 차분히 보자, 정답같아 보이는 선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화법과 작문 40번 문제가 정말 헷갈렸다. 이 문제 또한 아무리 차분하게 다시 봐도 정답이 확실한 선지가 없었다. 거의 찍다시피 하며 마킹을 했다.

 

정신없이 80분이 지났다. 80분간의 혈투로 매우 지쳐버렸다. 챙겨온 간식 꾸러미에서 초콜릿과 에너지 바를 꺼내 먹고 화장실로 향했다. 학생들이 국어 시험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어렵다 어려워.”

“화작 왜 이렇게 까다로워?”

“문학이 너무 어렵고 오히려 독서가 잘 읽혔어.”

“4번은 왜 이렇게 자주 나와?”

 

나만 시험이 까다롭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국어 시험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이 수학은 잘 볼 수 있기를 응원했다.

 


공포의 수학 시험… 모두가 힘들었다


수학 시험은 국어 시험의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시험 시작 후 30분정도가 지나자 교실의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자고 있었다. 수학 시험 막바지에는 교실 내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계와 감독관을 보며 ‘빨리 끝나라…’ 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국어 시험 때는 마지막 종료령이 울릴 때까지 펜을 들고 있었던 것과 달리 수학 시험 시간은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기자 또한 수학 시험이 쉽지 않았다. 수학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 수능 시험에서는 통 모르겠는 문제들이 많았다.

 

4점짜리 수열 문제와 2,3점 짜리 문제는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13번 sin, cos법칙을 활용해야 하는 문제. 14번 적분 문제도 너무 까다로웠다. 확률과 통계 4점짜리 문제도 풀이가 너무 오래 걸렸으며, 그마저도 풀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수학 시험 종료 종이 딱 울렸을 때 못푼 문제가 많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칸막이 없이 먹는 점심… 코로나 시절과 완전히 달라진 점심시간


 

수학 시험에서 느낀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11시 반부터는 배가 고파 배에서 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막상 밥을 먹으니 반도 못 먹었다. 수학 문제처럼 턱턱 걸리는 점심 밥을 꾸역꾸역 넘겼지만,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올해 수능은 4년만에 마스크 없이 치르는 시험이다. 그래서 지난 2년간의 시험장 점심시간 분위기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소란스러워졌다. 칸막이도 없이 맘 편히 밥을 먹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또 교실 내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험을 본 학생들은 3개의 책상을 합쳐 같이 밥을 먹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풍경들이 점심 시간에 많이 보였다. 새삼 코로나 19로부터 일상회복이 이뤄졌다는 것을 느꼈다.

 

밥을 먹고 가글을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은 만남의 장소인지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 많이 찍었어. 특히 13번의 5번? 3번? 여튼 둘 중 하나 골랐는데..”

“나 가채점표 있어. 봐줄까?”

“아냐… 휴…”

 

수학 시험을 망쳤는지 깊은 한숨을 남긴 한 학생을 화장실에서 봤다. 그의 한숨에 내 마음도 저렸다. 한 문제에 인생 다 산 듯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학생의 모습에서, 지난 재수 생활때의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학생이 더 안쓰러웠다.

 

점심 이후 영어 시험 전까지의 분위기는 학생들마다 천차만별이었다. 몇몇은 영어/탐구 과목의 수능특강, 기출 문제를 살피면서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이미 시험이 끝난 듯 친구들과 떠들면서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학생들도 있었다. 또 이미 망쳤다며 한탄하는 수험생들도 보였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한 학생이 있었다. 기자 자리 기준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앉은 친구였다. 그는 수필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한 것 같았다. ‘작년 점심시간에 나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면, 지난해의 영어 듣기에서 당황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영어 시험 직전에 친구들 3-4명이 모여서 다같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수험생들에게서 볼 수 있는 훈훈한 모습이었다. 수능이란 팍팍한 경쟁 체계에서는 보기 힘든,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광경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영어도 까다로웠다. 불수능의 연속


 

1시7분. 영어 시험 예비령이 울렸다. 정확히 듣기 시험은 1시10분부터 시작했다. 10번까지는 놓친 문제없이 잘 들었다. 11번에서 갑자기 막혔다. 두 개의 선지 중에서 어떤 것이 답일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겨우 하나를 골랐다.

 

듣기를 마치고 21번 지문부터 차분히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영어 지문이 정말 안 읽혔다. 21-24번, 30-34번까지의 독해 핵심 지문들이 한 번에 술술 읽히지 않았다. 풀긴 했지만 정확한 근거로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그나마 정답인 것 같은 것을 선택해서 찝찝했다.

 

찝찝함을 가진 채 70분의 영어 시험을 끝마쳤다. 화장실에 가다가 교실 앞 문쪽에 앉은 친구가 시험이 끝나고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학생은 31,32번 문제를 정확히 선택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다시 교실에 들어왔을 때는 손톱을 물면서 계속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사유든지 영어 시험 점수가 꽤 중요했던 모양이다.

 

2년 전, 영어 과목을 생각보다 못보고 좌절했던 기자 본인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서 그 학생의 심정이 더욱 이해가 갔다.

 


긴 혈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30분의 휴식 시간 이후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한국사, 탐구 시험을 응시했쳤다. 한국사, 탐구 모두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국어, 수학, 영어 시험보다는 심적으로 편했다.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짜내 시험을 쳤다.

 

오후 4시 37분. 드디어 모든 시험이 종료됐다. 너무 지쳐 시험이 끝나고도 밝게 웃을 수 없었다. 그저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출했던 핸드폰을 건네받고 조금의 대기 시간을 보낸 뒤, 고사장을 떠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이 끝났다는 후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담감에서 벗어났다는 들뜬 모습이 주로 보였다. 교문 밖에는 부모님들이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안아주는 부모님부터, 잘했다며 토닥여주시는 부모님들까지. 흐린 비오는 날의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따뜻한 광경이었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수능 준비 기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수험생들은 수능을 치러 간다. 그들의 몇 년 간의 노력은 단 하루만에 결정된다. 수능 시험은 참 잔인한 시험이라는 것을, 시험을 응시하며 다시 한 번 느꼈다.

 

기자 본인도 수험생 당시 문제 하나하나에 따라 피가 말리고, 점수 1점에 안절부절 못 한 채 살았다. 단 한 순간도 맘 편히 있지 못했던 수험생 기간. 수능을 보고 한 번도 환하게 웃은 적이 없기에, 그때의 기억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서 시험장에서 좌절하고 한숨 쉬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고, 같이 아파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가 보였다.

 

이번 시험은 킬러 문항이 배제된 첫 수능 시험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2년 전 시험 못지않은 불수능이었다. 불수능에 크게 좌절한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 학생들에게 응원의 시를 남긴다.

 

 

가장 넒은 길

양광모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이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정현채 기자(good30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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