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기획] 청년 여성 섭식장애 당사자, '우리의 섭식장애'를 말하다

대학생이자 섭식장애 당사자인 '우리'의 이야기를 모았다
"섭식장애는 여성 젠더, 사회 구조, 몸에 대한 불편감과 관련 있어"

*회대알리는 섭식장애 당사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최소한으로 편집했습니다. 본 기사의 내용이 일부 독자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24일, 국내 최초로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열렸다. 섭식장애 당사자들이 설립한 단체 ‘잠수함토끼콜렉티브’와 인제대학교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첫 회 인식주간은 “납작하지 않은 섭식장애”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일주일간 진행됐다. 주최 측은 공식 홍보물을 통해 “먹는 것과 자신의 몸에 불화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라며 인식주간 개최 의의를 밝혔다.
2월 24일 진행한 ‘섭식장애 당사자-내러티브 탐구’에는 다섯 명의 당사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섭식장애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연관성과 섭식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질병이라는 사실, 그리고 섭식장애가 단순히 ‘예뻐지기 위해 걸리는 병’ 이상의 중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질병이라고 이야기했다.

 

회대알리는 2023년 7월 21일부터 29일까지 섭식장애 · 다이어트 경험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에는 30명이 참여했다. 설문 응답자의 53.3%는 다이어트 경험이, 43.3%는 다이어트와 섭식장애 경험이 모두 있다고 밝혔다. 다이어트 경험 응답자의 성별 비율은 여성과 남성이 약 8:1이었고 섭식장애 경험에 응답한 이는 모두 여성이었다.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한 나이는 8세부터 20세 이상, 섭식장애를 처음 경험한 나이는 12세부터 20세 이상으로 둘 모두 폭넓은 분포를 보였다.

 

다이어트 경험 응답을 보면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한 이유(복수 응답)는 △미용 목적 체중 감량이 응답자의 93.8%로 가장 많았다. 이어 △타인의 외모 평가(43.8%) △주위의 강요(6.3%) △주위의 권유(6.3%) △건강 목적 체중 감량(6.3%) 등의 답변이 나왔다. 지금까지 다이어트를 시도한 횟수를 묻는 질문에는 △셀 수 없음과 △5번 이하라는 응답이 31.3%로 가장 많았으며 △10번 이하(25%)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62.5%가 요요 현상을, 81.3%가 다이어트 강박을 경험했다고 밝혀 다이어트의 미약한 지속성과 악영향을 엿볼 수 있었다.

 

섭식장애 경험 응답을 보면 섭식장애를 경험한 기간은 △1년 이하가 35.7%로 가장 많았으나, △10년 이상과 △5년 이상이라는 답변도 각 28.6%와 21.4%를 보이며 전체 응답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를 통해 섭식장애의 장기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섭식장애를 경험했을 당시 자신의 몸을 실제 체질량지수(BMI)보다 크다고 느낀 비율은 응답자의 64.2%로 섭식장애 당사자가 인식하는 몸과 실제 몸 사이의 괴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섭식장애의 현재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8.5%가 ‘여전히 섭식장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함으로써 섭식장애가 벗어나기 힘든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청년 여성 섭식장애 당사자의 내러티브 탐구하기
잠수함토끼콜렉티브의 박지니 씨는 “우리(섭식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기 시작하면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인식주간 행사를 기획한 이유를 밝혔다. 박지니 씨의 말처럼 인식주간 첫날 진행된 ‘섭식장애 당사자-내러티브 탐구’ 시간에는 섭식장애 당사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러한 내러티브 탐구를 이어가 보고자 회대알리는 세 명의 섭식장애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이는 모두 20대 청년 여성이자 대학생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터뷰이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섭식장애 경험

“토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단순히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몸 안에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Q. 경험한 섭식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현서: 고등학생 때 SNS를 통해 ‘물 단식’을 알게 됐어요. 물만 먹다가 죽을 것 같으면 소금만 조금 먹는 ‘초절식’이었어요. 1년 정도 살 수 있을 만큼만 먹고 많이 먹었다 싶으면 변비약이나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었어요. 친구들이랑 만나면 밥 먹고 왔다고 하거나 속이 안 좋아서 못 먹는다는 핑계를 댔고, 카페에서는 무조건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칼로리가 낮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서운 게, 배가 고프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으면 드디어 살이 빠지는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그때 썼던 일기를 봤는데 ‘몸에 힘이 없다. 이제 좀 살이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얘기가 많았어요. 몸에 힘이 나면 많이 먹었나 생각했고 그런 강박이 계속 있었어요.

 

나은: 어렸을 때 통통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때는 먹는 걸 좋아했고 통통한 것도 좋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들이랑 사이가 틀어지면서 친구들이 날 싫어하는 게 내가 뚱뚱해서는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중학생 때 장염을 겪으면서 토하거나 설사하면 살이 안 찐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후 계속 먹고 토하거나, 토하지 못하겠으면 설사약을 먹었어요. 섭식장애 증상의 기복이 심한 편이고, 체중에 대한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원래 52kg만 돼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40kg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지윤: 고등학생 때 남들에 비해 통통하고 못난 몸이고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잘 알던 공동체를 벗어나 대학에 들어오면서 더 신경을 쓰게 됐고요. 당시 스스로가 사람들이 말하는 ‘돼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때 사진을 보면 건강해 보여요. 체중도 지금보다 15kg 덜 나갔어요.
제가 채식주의자인데 당시 룸메이트가 비건이어서 같이 비건식을 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울할 때마다 고기라는 음식을 먹고 싶은 거예요. 고기를 먹으면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걸 알면서 먹은 거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자해였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1년 이상 폭식이랑 구토를 했어요. 친구가 오기 전에 몰래 고기를 먹고 나서 치우고 토해내고 냄새 빼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몰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빠를 때는 배달을 15분 기다린 후 5분 만에 다 먹어버리고 바로 토하고 치운 적도 있어요.
먹기 전에는 이걸 당장 먹어야 한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정신질환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단순히 먹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몸 안에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어떨 때는 채워 놓고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먹은 적도 있어요.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면서 나를 괴롭혔던 것 같아요.

 

Q. 섭식장애를 겪으면서 일상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나은: 저는 음식점에 갈 때 화장실이 잘 되어 있는지를 꼭 확인해요. 먹었을 때 토하기 힘든 음식은 잘 먹지 않고, 토한다고 해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남아 있는 거랑 낮은 음식이 남아 있는 건 다를 거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어요. 또 나중에는 많이 먹지 않으면 잘 토하지 못하는 시기가 오거든요.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해서 음식값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 ‘내가 화장실 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오래 걸리면 토하고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너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요. 사람들이 말랐는데 진짜 많이 먹는다, 먹고 토한다고 생각할까 봐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계속 거짓말을 하게 돼요. 아까 점심을 많이 못 먹었다거나 바빠서 밥때를 놓쳐서 지금 먹는 거라는 식으로요.

 

지윤: 구토를 많이 한 사람은 입 안에 느낌이 이상한 게 있다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얼굴도 변형이 온 것 같고요. 당시에는 밖에 나가는 걸 피하다 보니까 비타민 수치가 비타민 주사를 맞아야 할 만큼 낮아졌어요. 학교 다니는 데도 문제가 있었어요. 학기 마지막쯤에는 발표 날 아침에 코피를 쏟고 누워 있다가 못 간 적도 있어요. 4.3이던 학점이 3.5로 내려갈 만큼 학업에 충실할 수 없었어요. 몰래 먹고 토하고 있어서 친구들한테 죄책감도 들었고요. 몸에 많은 문제가 생겨서 지금도 자주 배가 아프고, 조금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조금만 덜 먹으면 속이 쓰려요.

 

 

다이어트와의 연관성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섭식장애를 겪었을까?’ 의문이 들어요.“


Q. 다이어트와 섭식장애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윤: 네. 처음에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일반식’과 ‘클린식’을 나누고, 채식과 해로운 음식인 육식을 구분하고, ‘다이어트’와 ‘비 다이어트’를 구분하다가 문제가 커진 것 같아요.

 

나은: 섭식장애는 사람들이 먼일로 여기지만 다이어트는 아니잖아요. 다이어트를 하다 생기는 많은 문제가 무색하게 누구나 접할 수 있어요. 다이어트 자체가 나를 계속 검열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식단은 어떻게 할지, 몸무게가 몇 킬로를 넘어가지는 않는지, 어느 시간에 몇 칼로리를 먹었는지 계속 생각하고 계산해야 해요. 음식을 조절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겨요. 아예 안 먹거나 보상행위로 폭식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당연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다이어트는 한 번 발 들이는 순간 계속 반복되고 빠져나오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 위험성은 아무도 경고해 주지 않아요.

 

Q. ‘말랐다’라는 말도 칭찬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나은: 말랐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랑 밥 먹는 게 불편하고 전부 불안해져요. ‘이 사람은 내가 말랐는데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겠지? 살이 쪄도 바로 알아채고 살이 쪘다고 얘기하면 어떡하지? 더 이상 말랐다는 말을 못 들으면 어떡하지?’ 이렇게 모든 걸 신경 쓰게 돼요.

 

Q.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외모는 스펙이 되고 다이어트는 자기관리라는 말로 포장되곤 하잖아요. 면접을 위해 성형이나 시술을 받는 일도 있고요. 이런 사회에 살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윤: 한국에서는 남들에 비해 예쁘거나 마르면 그게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면접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요. 전에 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사장님이 계속 저한테 전보다 살이 쪘다는 거예요. ‘서비스직인데 살이 찌면 어떡하냐’라는 타박처럼 느껴졌고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 댓글을 보면 ‘비만은 자기 관리 실패다’, ‘게을러서 그렇다’ 이런 말이 엄청 많잖아요. 그 얘기에 동의하고 싶지 않은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싶고 영향을 받아요. 요새 외국에 나오고 나서 한국처럼 외모가 스펙이 아닌 곳도 있다는 걸 깨닫는 중이에요.

 

나은: 한국에서는 성형하면 성형한 외모라서 별로고 너무 마르면 너무 말라서 별로라고 해요. 왜 외모가 스펙이 되어야 하죠? 쌓아야 할 스펙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챙기면서도 예뻐야 하고, 반대로 예쁘지 않으면 스펙을 하나 잃는 거라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아요.

 

Q. 다이어트는 자본이랑도 밀접한 문제 같아요. 무분별한 다이어트 광고가 대표적 예시고, 식욕억제제 디에타민의 경우 마약성 의약품임에도 엄격한 기준 없이 처방하는 데다 병원마다 가격이 몇만 원까지 차이 나더라고요.
나은: 다이어트 광고가 TV에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마른 연예인들을 모델로 기용하고 부작용은 얘기해 주지 않아요. 약으로 한순간에 빠진 살은 쉽게 돌아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지윤: 아무 규제가 없으니까 어린이도 다 구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섭식장애가 더 양산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사람들이 돈 때문에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을 더 늘리고 싶은 건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약에 의존하게끔 만들어서요.
또 섭식장애를 20대 청년들이 많이 겪는 데에는 환경적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엌이 없는 기숙사에 사는 사람도 많고, 식자재를 사서 요리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마음의 힘도 없으니까 사 먹는 음식에 기대게 되면서 살이 찌고. 살이 찌니까 몸에 신경 쓰게 되고 건강도 안 좋아지고요. 우리가 환경적으로 가난하니까 몸을 더 학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미디어

“’뚱뚱한’ 여자 아이돌을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하고 마른 몸매를 이상적으로 제시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Q. 주변이나 미디어에서 섭식장애라는 화제가 다뤄지는 양상은 어떤가요?
현서: 기사를 보면서 자극적으로 다뤄진다고 느꼈어요. ‘프로아나’*가 사회적 이슈였을 때 ‘여성 청소년들이 마른 걸 신봉하며 굶고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사 먹는다’라고 자극적으로만 보도했던 게 생각나요. 어떤 기사도 그 이유를 묻거나 궁금해하지는 않았어요.
*프로아나(pro-ana)는 ‘찬성한다’라는 뜻의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의 합성어로, 거식증의 몸과 증상을 동경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Q. 한동안 ‘소식좌’가 유행했잖아요.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컸어요. 프로아나라는 여성 청소년 집단은 괴이하게 비쳤는데 프로아나랑 다른 게 없어 보였고요.
현서: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걸 원하잖아요. ‘굶어서 뺐다’가 아니라 ‘원래 안 먹고 안 찌는 체질’이라는 게 유행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소식좌라는 말이 나오고 방송에서 사람들이 김밥 한 알을 나눠 먹는 것도 봤어요.

 

Q. 미디어에서 비추는 여성의 모습 중 문제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현서: 미디어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성이 무척 말랐잖아요.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게 돼요. 보여주는 게 표준화되어 있으니까 문제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성들이 강박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나은: 저는 한 번도 '뚱뚱한' 여자 아이돌을 본 적이 없어요. 아이돌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데 그 나이대면 섭취해야 할 영양 성분도 있을 거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살이 찐 게 아니라면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중 먹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여성 연예인이 점점 더 말라가고 있고 그 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마르기만 하면 안 되고 라인이 있어야 하고, 골반도 적당히 있어야 하고, 운동을 해서 탄탄한 몸이어야 하고요. 말랐지만 먹는 건 있어야 하고, 몸매가 ‘어린애’ 같으면 안 되고, 뼈가 다 보여도 안 돼요. “살짝 말랐다. 너무 말랐다. 딱 보기 좋다” 심지어 “내 팔로 걸어 다니는 것 같네” 같은 평가까지 아무렇지 않게 오가요. 마른 게 왜 선망의 대상이 됐는지 궁금해요.

 

지윤: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는 여성이 그럼에도 말랐다는 것에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먹방을 하는 마른 여성들이 계속 미디어에 나오는데 저는 그런 영상을 보면 ‘저 사람도 먹고 토할까?’ 생각해요. 음식을 과하게 먹는 걸 문화로 소비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에요. 또 음식이 좋아서 많이 먹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몸을 할 수도 있는 건데 여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말라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어요.


섭식장애의 여성화

“여자아이들이 저한테 말랐다고 하면 슬퍼요.”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하나의 표본이 되면 어떡하지?’ 생각해요”


Q. 섭식장애가 젠더화된 질병이라고 생각하나요?
현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외모 강박을 가지고 있고, 섭식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이어트는 한 번씩 경험해 봤다고 생각해요.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보다 외양에 민감해지게 되고 다이어트를 더 쉽게 접하지 않았나···. 여성인 친구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해야 해. 굶어야 해. 나 너무 살쪘어. 나 다리가 너무 굵은 것 같아’ 이런 말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오가요.

 

나은: 여성은 점점 왜소해지는 것 같고 반면 남성은 거대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남성 중에도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남성이 몸을 만들 때는 먹어도 되잖아요. 여성이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굶어야 해요. 저는 저체중을 지향하는 남성을 본 적이 없는데 여성은 평균 체중보다 더 마르기를 원해요. 옷 가게만 가도 남성 옷은 크고 여성 옷은 진짜 작아요. 스스로 말랐다고 생각했을 때도 제가 라지나 미디엄 사이즈를 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지윤: 섭식장애는 보이는 것에 민감해지는 병이니까 확실히 젠더화 되어 있다고 느껴요. 실제 비만율과 상관없이 사회가 여성에게 보이는 몸에 더 신경을 쓰게끔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디어를 봤을 때 몸의 다양성이 훨씬 적은 것도 여성이고요. 여성의 몸이 마르지 않으면 그 몸을 더럽다고 여기거나 웃긴다고 여겨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내 몸을 희화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계는 잘 모르지만 아직 섭식장애를 겪는 남성을 만난 적이 없어요. 만약 섭식장애를 겪는 남성이 있다면 저는 그것 또한 젠더화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 사람이 헤게모니 남성성에 부합하지 못했거나 ‘여성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섭식장애를 겪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Q.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괴리된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섭식장애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아요.
지윤: 맞아요. 문제를 인지하고 나면 더 죄책감이 드는 것 같아요. ‘나는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고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왜 내 몸은 내가 컨트롤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해요.

 

나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데 왜 외모를 꾸미는 것과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걸까 생각해요. ‘나는 잘못된 건가?’라는 물음을 많이 던져요.
저는 어린이 센터에서 일해서 어린이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나를 스탠더드 체형으로 생각하고 닮아가려고 하면 어떡하지?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하나의 표본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많이 해요. 여자아이들이 저한테 말랐다고 할 때마다 슬퍼요. 아이들이 “선생님처럼 마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물어볼 때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먹어도 돼”라고 하면 “선생님처럼 마르려면 먹으면 안 되잖아요.” 이런 말이 돌아와요. 기껏해야 초등학생이거든요. 반면 남자아이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건 들어본 적 없어요. 오히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랐다, 뚱뚱하다, 돼지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 봐요.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걱정스러워요. 거대한 기억은 전 생애에 걸쳐 사람을 지배하게 되잖아요. 초등학생 때 말 한마디가 지금의 저를 만든 것처럼요.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몸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요.

 

Q. 저도 어릴 때부터 다이어트를 해서인지 여자아이들이 미디어에 영향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은: ‘통통한’ 여자아이들을 보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요. ‘마르지 않아도 돼. 있는 그대로도 아름다워. 그리고 굳이 아름답지 않아도 돼.’ 이런 말들이 와닿지 않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고 얘기하지만 와닿지 않는 것처럼요.

 

Q. 한국 사회에서 청년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려움에는 어떤 게 있나요?
현서: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 관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취업하거나 애인을 만들려면 무조건 머리를 기르고 살을 빼고 화장해야 하고. ‘그렇게 먹으면 살찐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살이 찔 수도 있고, 다양한 체형이 있는 건데 한국에서 여성의 표준 체형은 당연하게 40~50kg 정도의 몸으로 생각되는 것 같아요.

 

나은: 살해 위협이나 스토킹이 아니고 모르는 남자들이 와서 말 거는 것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거든요. 그런 일은 좀처럼 공감받지 못해요. 오히려 ‘네가 예뻐서 그런 건데 왜 기분이 나쁘냐’라는 말을 듣기도 해요. 또 한국 사회에서는 내 무서움을 이해받을 수 있으려면 연약하고 예뻐 보이는 등 조건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지윤: 너무 많아서 어떻게 말할지 고민되는데요. 요새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소수자라는 걸 알잖아요. 그 사실에 대한 절망감이 있고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바뀌지 않을 거라고 세상이 주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기득권이나 강자들이 바뀌지 않게끔 노력하는 게 잘 보이기도 하고요. 무얼 하든 태클이 걸리는 게 화나요.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분명히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네가 의지박약이고 게을러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내가 여자라서 이렇게 얘기해도 다들 안 들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섭식장애의 중층적 의미

“어쩌면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도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몸을 통제하는 게 아닐까?“


Q. 섭식장애를 여성 억압의 결과나 사회 구조적 질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나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자해와 다르지 않다고는 생각했어요. 똑같이 나를 학대하는 거잖아요. 억압된 존재가 자신을 해치는 방식으로 억압을 표출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아나 계정을 보면 굶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성취감이라고 얘기해요. 사실 그걸 성취한다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닌데 성취감이라고 포장하고 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이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과 다른 통제잖아요. 나를 해치는 방식으로 통제하며 스스로를 옥죄는 거라고 생각해요.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자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어쩌면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도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먹는 방식을 통제하는 게 아닐까요. 몸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Q.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는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네 몸이지’라는 내용이 있어요. 채식을 하다가 종래에는 섭취를 거부하는 여동생을 보며 언니가 하는 말이에요. 자신을 굶기거나 혹은 폭식하는 여성의 자기 학대적인 섭식장애가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몸뿐’이라서 나타나는 결과라면 이 책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현서: 사회적으로 여러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 가장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게 몸이다 보니 사회가 여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나은: 막연하게 사회라고밖에 못 하겠어요. 이전부터 쌓여왔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인 맥락이 합쳐져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자본과도 얽혀 있고요. 그 모든 걸 생각하다 보면 무엇을 탓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럴수록 스스로한테서 문제를 찾게 되니까 내가 살기 위해 원망할 존재를 만들어 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사실 한 명의 문제가 아니고, 또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어요. 저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섭식장애가 없는 존재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섭식장애뿐 아니라 우울증, 불안, 과거에 겪었던 모든 일들 없이 내가 나일 수 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때는 그 삶을 만족하면서 살았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했을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경험한 일을 부정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으니까 받아들이고 사는 거예요. 물론 계속 먹고 토하면서 살겠다는 게 아니고요. ‘나는 그럴 수 있고 너도 그럴 수 있고 우리는 다 그럴 수 있다. 누구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요.

 

Q.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개최한 박지니 씨는 섭식장애에 대해 “몸을 축소시키고 싶어 하고 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 어떤 불편감”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일종의 몸에 대한 디아스포라를 겪는다는 거예요. 이처럼 스스로가 해석하는 섭식장애가 궁금해요.
지윤: 저도 이게 맞는 말 같아요. 내 몸을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보다 몸에 이질감이 들고 이 몸을 떠나고 싶었어요. 어떤 때는 뭔가 분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회 속에서 내 몸이 이방인처럼 느껴지고요. 그리고 섭식장애 증상인 구토와 폭식 자체는 그런 몸을 부정하는 일종의 자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내 몸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최후의 발악 같은 느낌이에요.  

 

Q. 섭식장애가 사회 구조적 질병이라면 이 사회에서 섭식장애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어떤 의미로 읽힐 수 있을까요?
나은: 사회의 억압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섭식장애를 안고 남들처럼 일상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야 더 사회의 메시지가 될 것 같아서요.
제가 약해지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약한 게 결국 제일 강한 거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강하기만 해서 약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강함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다 약해져 봤기 때문에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섭식장애와 자신의 삶을 분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음식 섭취, 외모, 체중 등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가능할까요?
현서: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다는 생각을 못 해요. 칼로리를 신경 쓰고 몸에 대한 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에요. ‘저 사람 말랐다’ 같은 생각을 안 하고 싶은데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요. 잘못된 것을 알고 벗어나려 하지만 지하철만 타도 성형 광고가 보이고, SNS에도 다이어트 관련된 게 계속 뜨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당연하게 사회 모든 곳에 있으니까요.

 

지윤: 저는 외국에 오고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생기면서 이전보다 컨트롤이 돼요. 그렇지만 아직 혼자 먹을 때마다 토해야 할까 생각이 들고, 라면 한 봉지 먹을 거 두세 봉지 먹으려 하고 그래요. 여기서 살거나 지금 같은 마음을 굳건히 지키면서 한국에서 산다면 천천히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회가 저를 가만히 둘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는 노력하겠지만 금방 바뀌는 시스템이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섭식장애로부터 조금 멀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멀었다고 느껴요.

 

나은: 이번 학기 때 정말 분리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못 먹어서 몸이 하얗게 떠 있었고, 링거를 계속 맞아야 하거나 아니면 쓰러지는 수준까지 갔어요. 수업을 듣는 것도 어려웠어요.
섭식장애나 강박을 포함해서 외모, 먹는 시간, 먹는 양, 칼로리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해요. 섭식장애에는 완치가 없고 증상이 조금 나아질 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그 말에 동의해요. 저는 늘 괜찮아졌다가 심해졌다가 하거든요. 한 번 시작된 이상 완치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 삶이 언젠가는 오기를 막연하게 바라고 있어요. 그런 시절도 있었지 회상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현서: 섭식장애를 겪었을 때는 당장 살을 빼는 게 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를 포함한 모두가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걸 경험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더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윤: 여성의 몸이 아예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회에서 보이는 여성의 몸이 다양해지기만 하더라도 우리가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한국 사회가 그런 면에서 다양성을 갖춘다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냥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요. 섭식장애가 정신질환 중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제일 높다고 들었어요. 건강도 좋지 않고 이런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요. 저는 옛날에 죽겠다고 했을 때 말리는 사람들이 미웠거든요. 그렇지만 살아있으면 뭐라도 되고, 살아있어야 뭐라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섭식장애가 있으면 무기력하고 불쌍하게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니거든요. 요즘 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기대되고 먹고 토할 거지만 먹을 음식들도 기대되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모습이든, 먹고 토해서 위장이 망가지고 침샘이 붓고 식도가 다 녹고 치아가 부식되고 턱이 사각형이든 토 냄새가 나든 안압이 심해서 눈이 맨날 충혈돼 있든 간에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냥 살자. 조금 나아지든 안 나아지든, 미안한 일도 만들고 고마운 일도 만들면서 그냥 그렇게요.

 

 

취재, 글=유지은 기자(ujieun0231@gmail.com)

디자인=강성진 기자(helden0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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