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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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변화를 위한 도전, 마을미디어에 끝은 없다

서울시의 일방적인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폐지
그럼에도 마을미디어를 이어 가려는 사람들

이 기사는 2023년 3월에 발행한 회대알리 16호 지면에 수록한 기사입니다. 

 

2022년 회대알리는 서울시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10년을 맞아 마을미디어에 관한 취재를 준비해왔다. 이전에도 회대알리 기자들이 구로구에서 활동하는 '구로마을TV'를 취재해 기사를 발행하고, 해당 마을미디어에 출연하기도 했다. 마을미디어의 10년 활동을 되짚어 보고 대학과 지역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대학은 지역 사회에 기반하고, 대학 역시 또 하나의 사회다. 회대알리가 마을미디어의 역할을 인지하고 연대하며, 나아가 대학이 마을미디어와 지역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그러던 중 11월 서울시 행정사무감사가 열렸다. 여기서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폐지가 공식화됐다. 어떤 협의도 없이 급작스럽게 발표된 폐지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미 마을미디어 사업을 이어갈 의지가 없었다.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 바로 세우기'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했다"라고 발언한 이후 마을공동체, 마을미디어, 공공미디어 등 시민사회와 관련된 사업을 향한 노골적인 폄하와 압박이 이어졌다. 2022년에는 예산을 전년도 대비 50% 삭감하기도 했다. 결국 2023년 서울시 예산안에서 마을미디어의 자리는 없었다.

 

마을미디어란 무엇인가? 마을미디어의 성과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은 2012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2013년부터 정식 사업으로 거듭났다. 2019년 3월에는 오랜 염원이었던 [서울시 마을미디어 활성화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2020년부터는 사단법인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이하 '미디액트')가 민간 위탁을 받아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를 설립해 사업을 운영했다.

 

 

마을미디어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시범사업 시작 당시 5곳에 불과했던 서울 지역의 마을미디어는 2022년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등록 기준 61곳으로 늘어났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발행한 '2020-2022 서울마을미디어 성과 인포그래픽'에 따르면 사업 예산은 계속 줄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콘텐츠 제작 수, 조회 수, 구독자 수는 계속 상승하는 등 마을미디어의 성장과 활동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홈페이지는 마을미디어를 '주민들이 소유하고 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미디어'로 소개한다. 마을미디어는 풀뿌리 미디어로, 말 그대로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일궈가는 미디어이다. 만들어진 콘텐츠나 정보를 있는 그대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디어 생산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이를 두고 시민들이 미디어를 소유하고 직접 일궈감으로써 “스스로 주체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말한다.

 

마을미디어 이전에도 시민이 미디어에 참여할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정은경 서울시마을미디어지원센터장은 "(이전 방법들이) 기존 미디어에 시민이 "객"으로 참여하는 데 그쳤다면, 마을미디어는 시민이 직접 자기 채널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마을미디어를 통해 일상의 공론장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더해 "저널리즘이라는 게 꼭 기성 언론사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만의 것은 아니다"라며, "각자가 살아가거나 활동하고 있는 마을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인 시민들이 직접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마을미디어의 의의를 설명했다.

 

마을미디어는 주류 매체가 다루지 않는 지역의 이야기와 소수자, 재난 등 다양한 의제를 전한다. 또한 시민이 소유하고, 시민이 직접 만들어가는 미디어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마을미디어, 특히 서울시 마을미디어가 만들어온 콘텐츠나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이 스스로 주인됨을 실현해가는 계기이자 과정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마을미디어는 수치화되는 성과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서울시의 사업 폐지 이유

 

2022년 11월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마을미디어 사업이) 불순할 수가 있다. 본래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지원금이나 세금 축내는 낭비되는 사업"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자리에서 최원석 서울시 홍보기획관은 “10년 정도 했기 때문에 서울시가 충분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며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후 서울시는 또 다른 이유로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제시했다. 서울시 홍보기획관 담당자들은 언론사 인터뷰 등을 통해 서울시의 역할이 종료되었다는 말을 반복하며,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1인 미디어가 주류가 되어가는 현재 '마을'미디어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충분한 마중물?

서울시는 10년간 총 92억을 지원해왔다며 '충분한 마중물'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김서중 교수는 “마을미디어에 대해 수치화할 수 있는 '충분한 마중물'이란 있을 수 없다. 마을미디어의 의의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정도 지원했으니 충분하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사고"라 평가했다. 더욱이 서울시는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예산을 꾸준히 감액해왔고, 협의나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폐지했다. 단순히 사업의 기간과 총액만을 언급하며 감행한 서울시의 폐지는 너무 엉성하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마을미디어 활동가들 역시 서울시의 주장에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한다. 서울 지역 마을미디어 단체들의 연대체인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의 신유정 공동대표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논리는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 익숙해진 이들이 많아진 만큼 마을미디어가 필요 없다는 주장인데, 마을미디어는 노인과 장애인 등 미디어 접근이 어려운 분들과 함께 미디어를 직접 제작해보면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유튜브 등을 마을미디어 사업 종료의 이유로 꼽는다는 것은 이 사업의 기본 취지에 대한 이해마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서울시의 주장을 비판했다.

 

서울시의 괴롭힘, 저항의 목소리

 

서울시가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과 사업 폐지를 감행하며 보인 일방적인 과정 자체가 졸속이라는 비판도 있다.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게 사업 중단을 통보받은 민간 위탁 기관인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이하 '서울마을센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마을센터는 15개월 동안 종합성과평가 2회, 회계감사 2회, 특정 감사 1회를 치러야 했다. 기존 서울시의 민간위탁 관리 지침에 따르면 종합성과평가와 특정 감사는 행정적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같은 해에 실시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시의회가 이를 지적하자 '종합성과평가와 특정 감사 중복 시 업무 부담 경감을 위해 특정 감사를 다음 해로 유예'한다는 규정에 '시 감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같은 해에도 특정 감사를 실시할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후 서울시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 대해서도 종합성과평가와 특정 감사를 같은 해에 모두 실시했다.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 사업 폐지에 관련 단체들은 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는 2022년 11월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참여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근거와 명분 없는 왜곡과 폄훼를 중지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의 일방적 삭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 홍보기획관에 96곳의 단체가 연서명한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17일에는 서울마을센터, 전태일 기념관 등 서울시에 의해 위탁 만료 통보를 받은 단체와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우수한 사업평가 점수와 민간 위탁 노동자의 생존권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사업 종료를 통보한 서울시를 규탄했다.

 

"마을의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바라보며, 내일을 꿈꾸는 마을미디어. 마을미디어를 통한 마을의 변화. 서울시가 지원합니다"는 2019년 서울시 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제작한 홍보 영상의 문구이다. 내일을 준비하고 결정할 때는 마땅히 어제의 기록을 통해 오늘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서울시는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종료했다. 그리고 사업의 기본 취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이유들을 명분 삼아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허탈함마저 안겼다.

 

김서중 교수는 회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마을미디어를 통해 시민이 주체로 등장하는 과정으로서 미디어 기본권 확장이 이야기된다. 마을미디어는 이미 시민미디어이자 공공미디어"라고 이야기했다. 마을미디어는 시민이 소유하고 직접 일궈가면서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스스로 주인됨을 실현해가는 미디어, 그 자체로 마을미디어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실현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이 점이 서울시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사업 폐지의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마을미디어를 이어 가고자 하는 움직임

 

서울시의회에서 예산안이 확정됨에 따라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는 오는 4월 6일을 기점으로 운영이 종료된다. 하지만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은 마을미디어 운영을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은경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장은 "센터가 사라져 (마을미디어 활동이) 일시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름의 장점도 있을 거라고 본다. 우리 스스로 성찰하고 회고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그간 쌓아 올린 네트워크와 아카이브를 최대한 지켜내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2022 마을공동체미디어포럼'에는 현장에 있는 활동가와 마을미디어에 주목하고 있는 이들이 "변화를 위한 도전"을 주제로 모였다. 이들은 10년간의 마을미디어 활동을 돌아보고, 서울시의 사업 종료 이후의 마을미디어를 논의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제24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에 수여하며 마을미디어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탰다. 선정위원회는 "시민 미디어기본권 확장에 기여한 성과를 격려한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 미디어 탄압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마을미디어의 소중한 성과를 지키기 위해"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수상자로 나온 신유정 대표는 서울시의 사업 종료 결정에 대해 "미디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키고 강화하기 위한 미디어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고, 관련 정책 마련에 끝이 존재할 수 없다. 마중물 역할을 마쳤으면 다음 역할을 마련하는 게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이다"라며, "오늘의 수상을 진정한 마중물로 삼아"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마을미디어의 내일

 

'풀뿌리'라는 단어의 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풀뿌리의 최전선은 언제나 지역이다. 누구나 이 삶의 터전과 밀접하게 관계 맺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대학은 주요한 행위자 중에 하나이자 학문 기관으로 지역 사회에 더욱 큰 책임을 가진다.

 

회대알리는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권을 가지고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통해, 대학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활동한다. 마을미디어의 활동을 되짚어 보면서 우리의 목표와 지역언론의 관계를 고민하던 회대알리 구성원들의 의견이 모였다. 마을미디어 현장의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지역과 대학, 지역언론과 대학언론의 공생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획을 준비하다 폐지 소식을 접했다. 갑자기 닥쳐온 마을미디어의 위기 앞에서 성공회대학교 구성원 역시 대학이 지역에 가지는 책임을, 연대를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성공회대학교가 위치한 구로구에도 마을미디어들이 활동하고 있다. 정은경 센터장은 그 중 구로FM의 '성원'과 일의 뉴노멀 탐험대의 '날지 않아도 괜찮아, 펭귄의 날갯짓'을 추천했다. '성원'은 떡집 사장님들의 오류시장 재개발 관련 투쟁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지역 밀착 미디어가 해야 할 일을 보여주었고, '펭귄의 날갯짓'은 기존 미디어가 다루는 청년 이슈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마을미디어를 이어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지켜달라고만 외치지 않는다. "당신의 목소리가 마을의 목소리"가 되고 "우리가 우리를 함께 돌보자"며, 스스로 주인됨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다. 다름 아닌 바로 우리를 위해, 마을미디어의 내일에 함께 하면 어떨까.

 

 

취재 = 권동원 기자, 유지은 기자

글 = 권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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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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