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피니언] 피의자 시점의 얼굴 공개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 [외-피니언]은 ‘외대’와 ‘오피니언’의 합성어로, 외대알리 기자들의 오피니언 코너입니다. 학생 사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사안을 바라보며, 솔직하고 당돌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지난 4일 국민들의 시선은 이기영(31)이라는 남성에게 향했다. 동거하던 여자친구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그가 검찰에 송치되는 날이었다. 이기영의 신상은 작년 12월 29일, 경기북부경찰청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공개됐다.

 

이때 경찰은 10년 전쯤 찍었을 것으로 보이는, 과하게 보정된 면허증 사진을 공개했고 현재 모습이 궁금한 대중들은 그가 포토라인에 서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기영은 검찰에 송치될 때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결국 우리는 그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이에 피의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머그샷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만약 다수가 원하던 대로 이기영의 현재 얼굴이 공개됐다고 생각해보자. 무엇이 나아졌을까. 대중들의 호기심이 충족되는 것 빼고 말이다. 강력 범죄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될 때마다 그 실효성을 두고 첨예하게 찬반이 대립하지만, 매번 얼마 안 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다. 안타까운 피해가 다시 발생하고 또 다른 피의자가 카메라 앞에 서면 똑같은 이야기가 ‘무한 반복’될 뿐이다. ‘이기영 사건’이 완전히 잊히기 전에,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를 범죄 ‘억제’와 ‘예방’의 측면에서 냉철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먹구구식 공개 결정으로 강력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까

 

여론이 이기영의 머그샷을 공개하라고 하는 이유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응보적 수단’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왕조 시대에 가장 치명적인 형벌이었던 묵형(墨刑)을 생각해보자. 묵형은 범죄 전력을 알리는 문신을 신체에 새기는 것으로, 차라리 맞아 죽거나 참수형을 희망하는 죄수들이 있었을 정도다. 이는 누가 죄인인지를 명확하게 식별함으로써, 소위 ‘쪽팔림’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본보기 삼아 백성들의 범죄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근대 형법 사상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이탈리아 법학자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범죄 충동을 억제하기 위한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처벌에 대한 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억제 기제가 높아진다. 둘째, 처벌의 엄격성이 높아야 하며, 셋째로 처벌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현행 신상 공개가 확실한 낙인 효과를 발생시키고, 재판에 기소되기 전인 피의자 단계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엄격성과 신속성에는 부합한다. 그러나 신상 공개 처분이 이뤄질 것을 예상할 수 있는 ‘확실성’의 측면에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2018년부터 2020년 8월까지 강력 범죄(살인, 인신매매, 강간 등)는 총 2만 8,822건 발생했다. 그중 49건에 대해서만 신상 공개 심의위원회가 개최됐으며, 공개 결정은 29건에 그쳤다. 이를 수치화하면 신상 공개 고려 대상이 된 사건은 0.17%, 공개된 사건은 0.1%에 불과하다. 신상 공개 기준이 매우 모호한 탓에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사건에 한해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이기영 사건과 같은 시기 심의위가 열린 ‘제주 유명 식당 대표 살인 사건’의 경우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자택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CCTV를 설치하고 미리 집에 들어가 잠복하던 중 귀가한 피해자를 둔기로 살해한 중범죄 사건이었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했음에도 ‘공개를 통해 얻는 공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기영의 신상 공개 사유인 ‘범행 수단의 잔인성’을 똑같이 적용 가능한 사건이지만, 주먹구구식 판단에 의해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피의자 시점의 얼굴을 알면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저렇게 실물과 다르게 포토샵 된 사진을 보고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고 피하라는 말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자. 뭘 피한다는 거지? 신상 공개를 고려할 정도로 중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은 예외 없이 구속된 상태로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기에, 이들이 대중을 위협할 가능성은 없다. 이기영의 머그샷이 공개됐더라도 우리가 그 모습을 기억하고 피해 다닐 필요는 전혀 없다.

 

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가까운 미래에 이기영의 수사가 마무리되고 1년여의 재판을 거쳐 징역 30년이 확정됐다. 이기영이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된 현재, 그리고 31년 뒤 형을 마치고 출소하는 미래 시점이 있다. 이 중 언제의 모습을 대중들이 알아야 재범을 방지하고 또 다른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이기영이 사회로 다시 나오게 되는 시점이다. 자신을 흉악범죄 전과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알 권리’는 이때 발생한다.

 

그러나 이기영의 경우 ‘강도 살인 및 시체 은닉’ 혐의를 받는다. 출소 후 신상과 주소를 공개하는 ‘성범죄자 알림e’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신상 공개가 진정으로 강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려면 ‘공개 시점’에 대한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피의자 신분을 공개하기보다, 출소 시점의 정보를 제공하는 ‘성범죄자 알림e’같은 서비스를 강력 범죄에까지 확대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이기영의 동의하에 머그샷이 공개됐거나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다면? 국민들은 적어도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는 모른다. 혹은 공개된 증명사진에 비해 ‘역시나 흉악범스러운’ 눈매, 거친 표정 등을 보고 일반인들과 구별 지으며 안도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구별성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이기영의 현재 모습이 궁금한 것일지 모른다. 여기에 ‘역시 관상은 사이언스야’라는 농담은 덤이다.

 

 

이승진 기자(lsg102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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